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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놈인지, 안 될 놈인지 (1) (6/200)
  • 될 놈인지, 안 될 놈인지 (1)2021.11.06.

    “내가 정말 제대로 밀어주마.” 예상치 못한 말씀에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오래도록 아버지를 봐 왔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처음이셨으니까. “단.” 아버지는 완고한 목소리로 조건을 내걸으셨다. “네가 능력을 증명할 경우에 한해서다.” “그 말씀은…….” “말 그대로다. 네가 이 자리를 이어받을 자격이 된다는 걸 보여 준다면, 내 모든 힘을 다해 밀어주마.” 다시 말해서 둘째 형 최지원보다 내가 더 낫다는 걸 증명한다면, 아버지께서는 날 후계자로 결정하시겠다는 뜻이다. 기회다. 22년간 막내로 살며 감히 넘보지 못했던 후계자 자리. 늦둥이로 태어나 형들과의 세월이라는 간극을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찾아왔다. 해야 한다. 아니, 해내야만 한다. 아버지 대신 총까지 맞았다. 저승 문턱까지 밟고 온 마당에 못 할 게 뭐가 있겠는가. ‘권력.’ 그 정점에 오를 수 있는, 다시없을 천재일우의 기회가 내게 찾아왔다. “증명해 보겠습니다.” 나는 이를 악물고 결연하게 말했다. “어떻게든 입증하겠습니다.” 내 눈빛을 확인한 아버지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셨다. “기다리마.” 그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 “고 실장이 연락할 게다.” 아주 짧은 말을 남기고는 병실을 떠나갔다. 혼자 남은 병실에서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찌나 힘이 들어갔는지 팔이 파르르 떨려 왔다. 아버지의 후계자. 대한민국의 차기 대통령. 권력의 정점이자 끝. 그 모든 칭호를 단번에 거머쥘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절대 놓칠 수 없다. 반드시. 반드시 내 손으로 거머쥐고 말 테다. * * * “그러면 각하께서 지훈 도련님을 후계자로 밀겠다는 뜻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고태욱 비서실장의 물음에 최준석은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일단 생각은 그렇다는 거지. 아직까지 확정을 지을 만한 단계는 아니야.” 최준석은 담배를 태우며 고태욱 비서실장을 바라봤다. “정치라는 건 떡잎만 보고도 알 수 있는 게 아니잖나. 더 지켜보며 될성부른 녀석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자고.” 대통령과 함께 한 시간이 무려 40년이 넘는다. 그의 마음은 영부인보다 고태욱 본인이 더 잘 안다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 가족에게 말 못 하는 사실이라도 자신에게는 숨김없이 털어놓는 막역한 사이였으니까. 그렇기에 말은 이렇게 해도, 대통령의 마음은 이미 막내아들에게 기울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물론, 그걸 눈치챘다는 티를 내진 않았다. “알겠습니다.” 최준석은 등받이에서 몸을 떼어내며 물었다. “그래서 말인데, 어디 보낼 만한 곳이 없나?” “정치를 배우기 위한 곳으로는 국회만 한 곳이 없죠.” “역시 그곳뿐이려나.” 그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국회의원으로 출마를 시키고 싶지만, 아들의 나이는 이제 고작 22살. 대한민국 국민은 만 25세가 되어야 국회와 지방 의회, 지방자치단체에서의 피선거권을 얻게 된다. 지금은 어느 곳에서도 출마를 할 수 없다는 뜻이지. 그런 최지훈이 정치를 배우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실로 들어가는 게 최선이었다. “특채법은 통과시켜 뒀지?” “예. 작년 초에 통과되었으니, 막내 도련님이 들어가도 문제 삼을 수는 없을 겁니다.” 대학을 포기하고 당돌하게 정치를 하고 싶다는 아들 녀석이 군대에 간 뒤, 최준석이 직접 고태욱에게 지시해 만든 법안. ‘국회의원실 보좌관 특채법.’ 보좌관을 포함한 비서관 및 비서들을 구성할 때 국회의원이 원하는 대로 선발을 할 수 있다고는 하나, 몇몇 조건이 붙는다. 그러나 이 법안이 통과되며 군 간부 전역자들은 특별한 조건 없이 바로 국회의원실로 특채가 가능해진 것. 오롯이 막내아들을 위해서 만든 것이었다. 물론, 국민들은 대통령과 연관이 없는 모 국회의원이 발의해서 만든 법안이라고 알고 있다. “문제는 누구 밑으로 보내냐는 건데…….” 고태욱 비서실장은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전상국 의원실은 어떻겠습니까?” 국회의원 전상국. 정치 1번지 종로를 지역구로 삼아 무려 7선이나 해먹은 의원. 여당의 실세 중에 실세라고 볼 수 있다. 그의 밑으로 들어간다면, 정치뿐만이 아니라, 인맥을 늘리는 것까지 순식간일 터. 그러나 최준석은 고개를 저었다. “정치판 돌아가는 건 빠르게 배울 수 있을지라도, 그 녀석은 지원이와 너무 가까워.” 전상국 의원은 이미 둘째 최지원에게 줄을 섰다. 막내아들이 그의 밑으로 들어간다면 오히려 일거수일투족을 최지원에게 알리며 더 의심을 살 가능성이 컸다. 여차하다가는 약점을 잡힐 수도 있을 테고. “여당에서 너무 무능하지 않으면서도 둘째 도련님과 가깝지 않을 만한 인물이라…….” 최지원과 가깝지 않으면서, 거물들의 거수기가 아닌, 나름대로의 정치를 할 줄 아는 인물. 짧은 고민 끝에 최준석의 입에서는 예상외의 발언이 떨어졌다. “차라리 야당으로 보내지.” 대통령의 발언에 고태욱은 제 귀를 의심했다. “야당은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국회의원 300석 중 여당은 160석.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데 반해 야당은 겨우 140석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그마저도 다수당이 두 개의 당으로 찢어져 80석과 50석으로 나누어져 있다. 나머지 10석은 소수 정당 및 무소속으로 힘없는 의원들. 제 힘으로 법안 하나 통과시키기 힘들 정도로 적은 인원수라는 것이지. 정치보다는 오히려 무기력함을 배울 가능성이 컸다. “그렇더라도 그 녀석이 될 놈이라면, 버틸 거야.” 버티지 못한다면, 겨우 그 정도 그릇일 테니까. “보내더라도 야당에서 막내도련님을 기꺼이 받을 만한 인물이 있겠습니까?” “한 명 있긴 하지.” 순간, 고태욱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설마 이치현 의원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치현. 최준석 대통령의 검사 시절, 그의 오른팔이었던 충직한 부하 검사. 첫 대통령 당선까지만 해도 같은 여당의 핵심 의원이었으나, 그의 독재에 질려 야당으로 둥지를 옮겼다. “그 녀석 밑이라면, 정치를 배울 만할 거야.” 고태욱은 대답 대신 침을 꿀꺽 삼켰다. 이치현 의원이라는 말이 나왔다는 건, 의견을 낸 게 아니라, 결론을 내린 것이다. “야당에서 거대 여당을 상대로 무기력하게 몇 번 깨져 봐야 정치라는 게 얼마나 살벌한 얼음판 위를 걷는 건지 알게 될 테니까.” 그렇게 될 경우 결론은 단 두 개다. 정치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포기하거나. 그에 분노하고 각성해서 정치를 하기 위해서 ‘진정한 힘’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거나. 전자라면, 오히려 이 더러운 정치판에서 벗어나 다른 꿈을 찾을 수 있을 테고. 후자라면, 지금 최준석이 있는 높은 곳까지 올라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니까. 어느 것이든, 막내아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최준석 대통령이 바라는 건 당연히 후자였다. 둘째 녀석을 후계자로 선택한 건, 그가 마음에 쏙 들어서가 아니었다. 형제들 중 그나마 나은 녀석이 둘째 최지원이었기 때문. 약삭빠르게 행동하는 점이나, 밀고나가야 할 때 뚝심이 없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물론이고. 무엇보다 대놓고 욕심이 눈에 드러나는 건 아들이라도 예쁘게 봐 줄 수가 없었으니까. 그러나 막내아들은 자신과 판박이였다. 다른 모든 걸 차치하고, 누구보다도 학벌을 중요시하는 자신의 앞에서 대학을 포기하고 정치를 하겠다는 선언을 하는 담력만 보아도 간덩이만큼은 다른 형제 녀석들과 비교할 바가 못 된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정점에 서려면, 그 정도 그릇은 되어야 하는 법. 다만, 너무나도 나이가 어린 탓에 후계자로 고려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정치에 뜻이 있다는 걸, 그리고 그 의지가 확고하다는 걸 보여 준 만큼 이야기는 달라졌다. 최준석은 지금 당장이라도 막내아들을 제대로 갈고닦아 키워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이곳은 조선시대가 아니라, 대한민국. 아무리 대통령이라고 한들, 손바닥 뒤집듯 후계자를 바꿀 수 있는 시국이 아니다. 최준석이 할 수 있는 건 아들에게 국가 원수의 자리를 ‘승계’하는 게 아니라, 국민들로 하여금 특정한 누군가를 원하도록, 그를 뽑을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니까. 지금까지 정치인들에게 둘째를 은근히 밀어 놓고 이제 와서 갑자기 막내아들을 밀어준다면, 더 성장하기도 전에 이미 힘을 기른 둘째에게 짓밟힐 게 뻔하다. 젊은 시절이라면 모를까, 올해로 벌써 일흔하나다. 아무리 백세시대라고 한들,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른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하는 나이. 그가 어중간한 상황에서 세상을 뜨게 된다면, 대한민국 자체가 분열되거나 북한에 잡아먹힐 수도 있을 터. 어떻게 이곳까지 올라왔는데, 연개소문이 되는 꼴만은 지양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더욱 더 천천히 가야만 했다. 아주 은밀하고 위대하게. “이치현 의원에게 연락해 봐. 빠른 시일 내에 자네가 한 번 만나고 와.” “알겠습니다.” * * * “도련님.” 고태욱 비서실장은 손수 내게 정장을 가져와 건넸다. “각하께서 직접 주문해서 맞추신 양복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의도에 오피스텔 하나를 준비해 뒀습니다.” 여의도라면, 필시 국회의사당을 뜻하는 것일 터. 이제는 청와대의 품을 떠날 때다. “주말에 출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이치현 의원실로 출근하시면 됩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민국당 이치현 의원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맞습니다.” 그는 무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도련님의 건투를 빌겠습니다.” 고태욱 비서실장은 고개를 꾸벅이고는 밖으로 떠나갔다. 나는 정장을 내려 둔 채 고민에 빠져들었다. “야당이라…….” 예상치 못한 방향이었다. 다선 의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여당 쪽으로 배치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야당일 줄이야. 허나,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이 아닌, 이치현 의원이었으니까. 과거, 아버지의 심복이었던 인물이었지만, 지금은 정치적 이념이 달라 반대편에 선 인물. 그분과 아버지의 관계가 왜 틀어졌는지도 알고 있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도 잘 알고 있고. 초등학교에 막 들어가던 어린 시절에 이치현을 삼촌이라 부르며 따랐던 기억이 아직까지 기억 속에 선명할 정도. 지금은 소수 야당에 들어간 탓에 정치적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한들, 그의 능력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아버지께서 유일하게 인정한 야당 의원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 또한, 나에게 해코지를 하거나 내 앞길을 막을 만한 일을 할 만한 인물도 아니다. 그랬다면, 애초에 아버지가 나를 이쪽으로 보내지도 않았겠지. 즉. 고태욱 비서실장의 전달 사항이라고 한들, 온전히 아버지의 결정이라는 것쯤은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내 입가에선 미소가 피어났다. 대충 아버지가 무슨 의도로 나를 이치현 의원실에 배치하셨는지는 알 것 같았으니까. 대통령의 독재를 반대하는 야당의 텃밭에서 살아남기만 해도 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엔 충분할 것이다. 허나, 나는 그에 만족할 생각은 없다. 한 발 더 나아가 아버지가 기대한 것 이상을 보여 줄 생각이니까. 그렇게 된다면, 나는 아버지의 정식 후계자로 모든 걸 거머쥘 수 있을 터. 피식. 입꼬리가 절로 비틀어졌다. “이치현 의원실이라…….”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아주 재미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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