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집 막내아들 (5)2021.11.05.
탕! 탕! 탕! 첫 발에 뒤이어 추가적으로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그러나 이는 내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들을 만한 여력이 되지 않았다. “커헉!” 내 입에서는 괴상한 소리가 튀어나왔으니까. 속이 울컥했다. 감정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속에서 무언가가 튀어 올라왔다. 이쯤이면 직접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총을 맞았다. 그것도 복부에 제대로. 이런 X발. 아프다. 미친 듯이 아프다. 그리고 뜨겁다. 마치 피부를 불로 지진 뒤 커터칼로 난자하며 긁는 듯한 느낌. 관통했는지 등까지도 아려왔다. “쿨럭!” 입에서 피가 튀어나왔다. 젠장. 밑에 깔린 아버지의 하얀 셔츠를 내 피로 다 적셔 버렸다. 움직이고 싶지만, 경호원들이 내 위로 몸을 날려 몇 겹으로 덮고 있어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아니, 없어도 못 움직이려나. 머리가 핑 돌았다. 어지럽다. 그때, 무전기를 통해 경호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괴한 체포 완료. 피닉스를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켜라. 다행히 괴한은 진압한 모양. 안도감 때문일까.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다. 나를 덮고 있던 경호원들이 몸을 일으켜 세웠지만, 내 다리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들아!”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 대답하려 했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입에서는 그 대신 피만 튀어나올 뿐. 이를 악물고 정신 줄을 잡으려 했으나. 그럼에도 시야가 빠르게 흐려졌다. “최지훈!” 아버지가 내 어깨를 잡고 소리치셨다. 그러나 입도 채 벌릴 수 없었다. 시야가 마음대로 핑핑 돌며 뒤바뀌었다. 아무래도 경호원들이 날 들어서 옮기는 모양. “지훈아!” 아버지의 마지막 목소리를 끝으로. 나는 완전히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뚜우. 뚜우. Patient monitor. 즉 환자 감시 장치에서 간헐적으로 심박을 알리는 소리가 병실을 채우고 있었다. 최지훈은 병실에 누워 있었다. 벌써 사흘째 정신을 잃은 상태. 병실 밖에서는 커다란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 자식이 아직도 안 불었다고?” 대통령 최준석의 언성이 확 높아졌다. “국가안보실 이 새끼들은 뭐 하는 놈들이야!” 그는 쾅 벽을 내리쳤다. “괴한이 총을 쏘는 것도 못 막아. 누군지도 못 밝혀. 이렇게 무능한 놈들이 왜 국가안보실에 있는 건데!” 최준석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 새끼들 죄다 갈아 버려!” “죄송합니다, 각하.” 고태욱 비서실장은 진땀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일단 그 자식이 남파 간첩인 건 확실합니다. 다만, 녀석이 인정을 하지 않고 있는 터라…….” “그러니까 그 자백을 받아 오라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고태욱 비서실장에게는 윽박을 지르거나 화를 내지 않는 최준석 대통령이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물불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최준석은 살벌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그 개X끼 절대 자살 못 하게 만들고 전부 실토하게 만들어. 이번 건은 절대 허투루 못 넘어가. 알았어?” “예, 각하.” 고태욱 비서실장은 깍듯하게 허리를 접었다. 최준석 대통령은 의자에 털썩 앉으며 얼굴을 감쌌다. “하아.” 그는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최준석도 알고 있었다. 남파 간첩인 이상, 죽었으면 죽었지, 절대 자백하지 않는다는 걸. 그러나 자신을 대신해서 병실에 누워 있는 아들을 보면 도저히 이성을 찾을 수가 없었다. 대통령이라서가 아니라, 이 상황이라면 그 어떤 부모라도 마찬가지의 심정일 테니까. 최준석은 자신이 죽을 뻔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막내아들이 몸을 던지지 않았다면, 죽었을 것이다. 괴한 녀석은 한두 발도 아니고 무려 4발을 발포했으니까. 그렇기에 더욱 자신을 위해서 아들이 목숨을 던졌다는 게 너무나도 고맙고 미안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탱크들을 이끌고 평양을 불바다로 만들고 싶은 생각뿐. “각하.” 고태욱 비서실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선 들어가 쉬시지요. 병실은 영부인께서 지키신다고 하셨잖습니까? 이럴 때야말로 국정을 위해서 건재한 모습을 보여 주셔야 합니다.” 맞는 말이었다. 이럴 때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면 국민들이 더 힘들어질 테니까. “알았네.” 최준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아들 얼굴만 보고 오지.” 그는 조심스럽게 병실 문고리를 잡았다. 고태욱은 고개를 꾸벅였다. 문을 열기 전, 작은 창문을 통해 병실에서 기계에 의존해 호흡을 이어나가는 아들의 모습이 최준석의 눈에 들어왔다. 이내 그의 눈빛에 싸늘한 냉기가 감돌았다. 최준석은 멈춰 선 뒤, 고태욱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고 실장.” “예, 각하.” “북한에 전해.” 대통령은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입을 열었다. “만약 내 아들이 깨어나지 못한다면.” 순간, 그의 목소리에 살기가 묻어나왔다. “그땐 전쟁을 불사해야 될 거라고.” * * * “생포되었다고 합니다.” 정복을 차려입은 하수인의 보고에 커다란 덩치의 남성은 담배를 물었다. “성공은 했고?” “실패했습니다.” ‘실패’라는 단어에 남성은 담배를 내려놓고 굵직한 시가를 하나 꺼내 불을 붙였다. 땀을 흘리던 하수인은 어렵게 말을 덧붙였다. “아들이 몸을 던지는 바람에 대통령을 대신해서 총을 맞았다고 합니다.” “아들?” “예. 막내아들인 최지훈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최지훈. 최지훈이라…….” 남성의 머릿속에 어렴풋이 얼굴이 떠올랐다. 실제로 단 한 번 본 적이 있다. 최전방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을 격려하는 겸, 휴전선의 실태를 점검하기 위해 갔다가 광학 쌍안경을 통해 남측의 초소를 본 적이 있으니까. “아들은 죽었고?” “치명상을 입어서 병원에 누워 있다고 합니다.” “흐으음.” 남성은 불쾌한 듯 연기를 내뱉었다. “신분은 완전히 숨겼고?” “예.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하수인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당에 충성할 겁니다.” “그래. 그래야지.” 남성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그는 반도 피우지 않은 시가를 짓이겨 꺼뜨렸다. “다음에 내려 보내는 건 언제지?” “올해 말쯤으로 예정하고 있습니다. 그쪽에선 크리스마스로 한창 바쁠 테니까요.” “가기 전에 한 번 여기로 데리고 와. 최종 선발된 동무들 얼굴이나 한 번 보게.” “충성심을 북돋우기에 굉장히 좋을 것 같습니다.” 하수인은 가볍게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조만간 일정 잡아 보겠습니다.” “그래.” * * * 끔뻑. 병실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 오랫동안 푹 잔 느낌.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바로 배에 고통이 밀려왔다. “으윽.” 그대로 다시 누웠다. 오른손을 움직이려하자, 무언가에 턱 걸렸다. 어머니다. 피곤하셨는지 어머니는 보호자용 의자에 앉아 내 침대에 엎드린 채로 잠들어 계셨다. 그런데도 내 손을 꼭 잡고 있는 상태. 슬쩍 다른 손을 들어 휴대폰을 확인했다. 6월 28일. 벌써 사흘이나 지나있다. 아무래도 제대로 다쳤나 본데. 이불을 들춰 확인하자, 복부가 붕대로 완전히 도배가 되어 있다. 총알을 맞은 위치도 위험했다. 왼쪽 가슴 밑. 아슬아슬하게 심장을 피했다. 하마터면 내가 죽을 뻔했다. 천만다행이지. 제일 먼저 확인한 건 문자메시지함.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여전히 정체불명의 문자는 보이지 않는 상태. “허허…….”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설마 했는데 진짜였다니. 그 문자에 나온 대로 현실이 흘러갈 줄이야. 처음 문자를 받았을 때만 해도 의심스러웠지만, 이번 문자를 통해 일련의 문자들이 미래를 알려주는 것이라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그래. 이렇게 되면 남들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게 이해가 되지. 초자연적인 현상인데 메시지함에 남는 게 오히려 이상한 법이니까. 지금까지 상황을 정리하면. 이 문자들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이야기해 준다. 보낸 이가 뜻하는 건 아직까지 알 수 없다. 기껏해야 유추할 수 있는 건 카운트 정도? 문자를 받는 조건 또한 알 수 없다. 특정한 상황에서 오는 건지, 아니면 무작위로 오는 건지도.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내가 알 수 있는 건. 이 문자는 내 인생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 물론, 앞으로도 문자가 나를 도와줄 것이라는 확신은 없다. 다시금 문자가 오리라는 보장도 없고. 다만, 미래를 알려 주는 게 확실하다면. 나는 이것을 이용해야 한다. 미래에 어떤 대가를 치를지 몰라도. 반드시 사용해야만 한다. 그래야 내가 원하는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을 테니까. 지금으로서 추측할 수 있는 정보는 이 정도가 전부. 더 생각해 봤자 헛수고다. 다음 문자를 봐야만 미싱 링크를 채울 수 있을 터. 지금은 그저 때를 기다리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끼익. 그때, 조심스럽게 병실의 문이 열렸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들려오는 목소리. “아들?” 의문과 반가움이 뒤섞인 목소리. 내가 움직이는 걸 보신 모양이다. “네, 아버지.” “깨어났구나, 아들!” 아버지는 한걸음에 달려와 나를 껴안으셨다. 온힘을 다해 와락. “아버지, 저 배 아파요. 배.” “아, 미안하다.” 그는 바로 나를 놓아 주었다. 복부는 아렸지만, 입가엔 미소가 피어났다. 아버지가 이토록 따뜻하게 안아 주신 적이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으니까. 태어나서 지금까지 수능에서 만점을 받았을 때를 제외하고는 처음이 아닐까 싶다. “지훈이 깨어났니?” 어머니도 깜짝 놀라며 몸을 일으키셨다. “예, 어머니.” “아이고, 다행이다. 다행이야.” 어머니는 가슴을 쓸어내리셨다. 아버지는 안절부절못하며 나를 바라보며 물으셨다. “손가락은 다 움직이니? 다리는? 발가락은?” 그의 말을 듣고 까딱여 보자, 내 의지대로 움직였다. 이 작은 움직임에도 배가 쓰리긴 했지만, 불구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감부터 들었다. “네, 멀쩡해요.” “일단 의사부터 불러 오마.” 어머니가 나간 사이, 아버지는 털썩 앉으며 양손으로 내 팔을 붙잡았다. “고맙다 아들아. 살아 줘서 고맙고 또 살려 줘서 고맙다.” “아니에요, 아버지.” 나는 웃으며 되물었다. “아버지는 몸 괜찮으시죠?” “그래. 멀쩡하다. 전혀 문제없어.” “경호원들은요?” “현장에서 한 명이 총알에 스쳤는데 크진 않아서 바로 퇴원했다고 들었다.” “다행이네요.” 아버지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며 말하셨다. “깨어나자마자 경호원들 걱정이라니. 이 녀석 진짜 다 컸구나.” “아버지 닮아서 그렇죠.” 그는 내 손을 쓸며 계속해서 안도감을 내뱉었다. “다행이다. 네가 죽었으면 나는 정말…….” “그런 말 마세요, 아버지. 만에 하나 제가 죽더라도 대한민국의 별인 아버지를 지켰다는 사실에 안도했을 거예요.” 순간, 아버지는 행동을 멈추고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평소의 그것과 차원이 달랐다. “아들아.” 마치 둘째 형을 바라볼 때의 눈빛. 아니, 그 이상의 사랑과 애정이 담긴 눈이었다. “정치를 하고 싶다고 했지?” 진심이 담긴 목소리. 여느 때보다도 더욱 진한 감정이 느껴졌다. 아버지는 내 손을 꽉 쥐었다. 그리고는 아주 결연한 목소리로 말하셨다. “내가 정말 제대로 밀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