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집 막내아들 (4)2021.11.04.
또 이 문자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보낸 이에, 확인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문자. 청와대 보안 시스템은 물론이고, 군 보안으로 인해 휴대폰으로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았기에 악성 프로그램이 깔렸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실제 문자가 왔다는 뜻인데. 하지만 영 문자의 정체가 의심되어 쉽사리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확인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신호에 걸렸을 때 나는 운전석 옆으로 휴대폰을 내밀며 고태욱 비서실장에게 물었다. “실장님. 혹시 이거 보이십니까?” 그는 지긋이 내 휴대폰을 바라보더니. “바탕화면 말씀이십니까? 어플 몇 개 말고는 안 보이는데.” 내 눈에는 명백히 문자 내용이 보이는 상태. 확실히 이상하다. “잠깐 실장님 휴대폰 좀 사용할 수 있을까요?” “예, 물론이죠.” 나는 고태욱 비서실장의 휴대폰을 받아 카메라를 켜서 내 휴대폰 화면을 찍어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찍힌 사진에는 문자가 아닌, 휴대폰의 바탕화면이 보이고 있었다. 다른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동영상을 확인하는 수밖에. 나는 고태욱 비서실장의 휴대폰으로 녹음을 켜 둔 채 내 휴대폰의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안녕하십니까, 국민 여러분! 아버지였다. 그것도 무려 광화문 광장에 서 있는 아버지. 단상의 뒤편에는 ‘6.25 70주년 기념식’라는 커다란 플래카드가 붙어 있는 상태. 그곳에서 아버지는 연설을 이어가셨다.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의 남침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무고한 희생자가 생겨나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동영상이 재생되는 와중에도 고태욱 비서실장은 꿈쩍도 않고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볼륨을 더 키운 채 동영상을 시청했다. -국민 여러분, 우리 대한민국은…….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연설을 듣는 대중들 사이로 한 남자가 사람들을 헤치며 경계선 가까이 접근하기 시작했다. 경호원들이 그쪽으로 주의를 기울이려는 찰나. 남자는 순식간에 앞으로 뛰쳐나와 품에서 권총을 꺼내들었다. -이런 빌어먹을 독재자 새끼야! 탕! 탕! 탕! 탕! 총 4발의 총성의 울렸다. 이를 보고 있던 내 손엔 어느새 주먹이 쥐어져 있었고. 동공은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남자는 곧이어 경호원들에게 제압당했지만, 단상에 서 계시던 아버지는 정신을 잃으셨다. 경호원들이 몸을 던졌음에도 워낙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아버지의 왼쪽 가슴과 배에는 붉은 피가 솟구치듯 흘러나오고 있었다. 2발. 아버지 몸에 두 발이 관통한 것이다. 그 외의 1발은 경호원의 몸을 맞췄고. 다른 한 발은 공기를 찢었다. 그럼에도 나머지 두 발만으로 아버지에게 치명상을 입히기엔 충분했다. 아버지는 정신을 잃으신 게 아니었다. 즉사(卽死). 현장에서 사망한 것이다. 광화문 광장에는 비명이 난무했고 혼란이 드리웠다. 그 모습을 끝으로 동영상은 끝이 났다. 어느새 내 손발은 떨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아버지다. 이 나라의 대통령이자, 평생 나를 사랑으로 키워 주신 아버지. GP에서 근무하며 자살 사건을 두 번이나 보았지만,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정신 차려야 한다. 냉정해져야 한다. 이건 일어난 일이 아니다. 그저 동영상일 뿐이다. “후우우.” 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손발의 떨림이 가신 뒤에야 겨우 제정신이 들었다. 그제야 나는 조심스럽게 고태욱에게 물었다. “실장님. 무슨 소리 못 들으셨습니까?” 그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되물었다. “혹시 엔진 소리입니까? 제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잘 느껴지지 않는데. 청와대 들어가서 바로 점검 맡겨 보겠습니다.” “아, 제가 잘못 들은 것 같습니다. 이제 안 나네요.” 그의 휴대폰을 이용해 녹음한 내용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보았던 동영상의 소리는 단 하나도 담겨 있지 않았다. 확실해졌다. 이건 해킹이나 스팸 따위가 아니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종의 초자연적인 현상이다. 머리가 지끈거려 온다. 이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싶지만, 이미 눈앞에 벌어진 이상, 믿는 수밖에. 두 문자의 공통점은 하나.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이라는 것. 첫 번째는 동영상에서 보았던 것처럼 아버지와 고태욱 비서실장의 대화가 실제로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건 그 동영상을 보지 못했다면, 나는 국어 30번을 틀리고 수능 만점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즉, 동영상에 나온 대로 전국 수석은 했겠지만, 수능에서 1개는 틀렸을 것이라는 뜻이지. 물론, 그 동영상을 본 뒤로 내 생각이 바뀌어 한국대에 정시 원서를 넣는 대신, 군대에 입대했던 건 달라졌지만, 지금까지의 결과가 절대 우연은 아니다. 순간, 머릿속에 의문이 피어올랐다. 첫 번째 보낸 이는 20. 그리고 이번에는 22. 중간에 하나가 빠졌다. 21이라는 보낸 이로부터 문자를 받은 적은 없다. 내가 병사로 근무하던 시절, 훈련에 나가서 받지 못했던 건가?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아직까지 보낸 이의 의미는 알 수 없는 상황.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생각해야 한다. 다만, 지금 신경을 쓸 건 따로 있다. 문자로 본 동영상이 확실한 미래가 맞느냐는 것. 순간,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그거라면 이게 실제 미래에 일어날 일인지 어느 정도 가늠은 할 수 있을 터. 나는 고태욱 비서실장에게 휴대폰을 돌려주며 물었다. “실장님. 혹시 6.25 기념행사에서의 아버지 연설문을 볼 수 있을까요?” “아직 안 나왔습니다. 연설 비서관 측에서 작성 중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만약 나오면 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나오는 대로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보안만 잘 유지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우리 막내, 완전 상남자 됐네!” 나의 유일한 누나, 셋째 형 최지곤과 쌍둥이인 최은실이 탄성을 뱉으며 나를 와락 껴안았다. “우와, 어깨 봐. 이게 사람이야, 태평양이야?” “오버하지 마.” “오버는 무슨. 널 업어 키운 누나로서는 뿌듯하기 그지없구나.” 나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아들 왔니?” 어머니는 나를 보며 환하게 웃어 주셨고. “지훈이 왔어?” “이야, 의젓하네.” 4명의 형은 반갑게 날 맞이했다. 나의 전역 날이라고 몇 년 만에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GP가 그렇게 빡세다는데 괜찮았어?” “적응되니까 할 만하더라.” “그나저나 무슨 생각으로 대학도 안 가고 입대를 한 거야?” “맞아. 바로 군대로 가 버려서 물어볼 겨를도 없었네.” 군생활 내내 면회도 한 번 안 와 본 인간들이 말은 잘한다. 내가 군대에 있는 2년 동안 내 형제 중 면회를 온 인물은 막내 형인 넷째 최지성이 유일했다. 누나인 최은실은 전화를 몇 통 한 것 정도가 전부. 그 외에 다른 형들은 안부조차 묻지 않았다. 모두 2년 만에 보는 얼굴들. 말이 형제지, 남보다 못한 관계다. 전부 아버지의 권력을 이용해 자기 배를 불리기에 바쁜 더러운 인간들이었으니까. “대답 좀 해 봐. 우리 막내가 무슨 생각으로 대학을 안 간 거야?” “맞아. 나도 진짜 궁금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버지 아들로서 어떻게?” “지성이가 연극영화과로 가겠다고 선언했을 때 그렇게 화내시면서 버린 자식 취급하셨던 걸 생각하면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더라.” 넷째 형, 최지성이 눈앞에 있는데 대놓고 말하는 본새하고는. “그냥.” “그런 게 어디 있어. 무슨 이유라도-.” 셋째 형 최지곤이 열심히 캐물으려던 그 순간. 끼이익. 커다란 문이 열리며 정장을 입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들어왔다. 우리는 일제히 말을 멈춘 채 자리에서 일어났고. 아버지는 나를 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시며 한 마디 하셨다. “늠름해졌구나.” “감사합니다, 아버지.” “식사부터 하자.” * * * 아버지는 정치에 관해서는 따로 말씀이 없으셨다. 아마도 형제들이 많아서 일부러 말씀을 사리신 것일 터. 광화문 광장에서의 연설이 끝난 후에 자세한 이야기가 나오겠지. 똑똑. “나야.” 넷째 형의 목소리. “들어와도 돼.” 문이 열리며 최지성이 웃으며 들어왔다. “바쁜데 방해한 거 아니지?” “형은 괜찮아.” 다른 형들이었으면 쫓아냈을 것이다. 그 만큼 내가 다른 형제들과 최지성을 대할 때 온도 차이가 있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유일하게 우리 남매 중에서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형이다. 그래서 속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인물이고. “뭐 하고 있었어?” “군대 물품 정리.” “하긴, 오늘 전역했으면 정신없겠네.” 그는 침대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그나저나 앞으로 계획은 있는 거야? 전역했으니까 길 찾아야지.” “응.” “웬일이야? 내가 몇 번이나 면회를 가도 바로 입대한 이유는 안 알려 줬잖아. 이제는 알려 줄 수 있는 건가?” “말할 수 있어.” 넷째 형에게는 솔직히 터놓을 수 있었다. 우리 남매 중에서 유일하게 돈과 권력을 좇지 않는 인물이니까. 모두 법대나 의대를 가며 아버지를 만족시켰던 다른 형제들과 달리,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겠다며 연극영화과로 진학해 지금은 연예계에서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고 있다. 덕분에 아버지의 눈 밖에 나긴 했지만, 원하는 일을 하며 사는 걸 보면, 우리 남매 중에서 제일 행복한 인물이 아닐까 싶다. “막내 형이 하는 일은 어때?” “나야 늘 비슷하지.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이제 겨우 자리 잡은 수준이야.” 그는 어설프게 웃으며 내게 턱짓했다. “내 근황 말고 너 이야기하자니까. 말해 준다면서.” 나는 정리하던 것을 내려두고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막내 형만 알고 있어. 믿으니까 이야기해 주는 거야. 다른 형들이나 누나한테도 절대 말하면 안 돼. 고태욱 실장님한테도.” “당연하지. 걱정 마. 나도 너 말고는 안 친해.” 눈빛만 봐도 진실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나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은 뒤,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정치를 할 거야.” “……뭐?” 여실히 놀란 눈치다. “너 그게 얼마나 힘든지는 알고 하는 이야기야?” 나는 꿋꿋이 말을 이었다. “어, 알아. 오래 생각했고. 아버지도 알고 계셔.” “아버지도 아신다고?” “그래서 군대를 다녀온 거야. 아버지가 정치하려면 다녀오라고 하셨거든.” “……어쩐지 네가 한국대로 진학하지 않았는데도 아버지가 노하지 않으시더라니.” 그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비밀로 할 만하네. 다른 형들 알면 난리 나겠다. 특히 둘째 형이.” “응. 그래서 지금까지 숨긴 거야.” “절대 말 안 할 테니까 걱정 마.” 믿는다. 넷째 형이 이렇게까지 말했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말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니까 터놓고 이야기한 거고. “계획은 짰어?” “어느 정도는. 이번 주말에 형들 다 돌아가고 나면 아버지랑 천천히 이야기해 보려고.” “그래. 잘 생각했다. 너는 옛날부터 똘똘했으니까 잘할 거라고 믿는다.”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쓸어 넘겼다. “내가 도와줄 일은 없고?” “생기면 이야기할게.” “알았다.” 넷째 형, 최지성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곤할 텐데 얼른 자라.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고. 돈이든 인맥이든 전부.” “그럴게. 형도 잘 자.” “그래.” 왠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든든한 아군이 하나 생긴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띠링. 휴대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보낸 이: 고태욱 비서실장. -연설문.hwp -말씀하셨던 연설문 초안입니다. 각하께서 손보시면 내용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 참고해 주십시오. 나는 곧장 파일을 확인했다. 그리고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동영상 속 아버지가 말했던 내용과 똑같았다. 말투나 문장부호, 어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건 같다고 볼 수 있는 수준. 다시 말해 문자 속 동영상에서 본 일은 실제로 일어난다. 즉. 아버지는 머지않아 시해 당한다. 내가 나서지 않는다면 말이지. 그리고 이번이야 말로, 아버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다시 오지 않을 기회.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해도 좋을 만한 판이다. * * * 광화문 광장. “와아아!” “최준석! 최준석!” “대한민국 대통령 최준석!” 대통령을 연호하는 목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아버지는 웃으며 손을 뻗어 이들을 만류하고는 낮게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국민 여러분!” 동영상에서 보았던 대로 아버지의 뒤편엔 6.25의 70주년을 기념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본 것과 마찬가지로 나와 둘째 형 또한 단상 위에 올라와 있는 상태. 차이가 있다면, 내가 동영상 속에서보다 아버지에게 훨씬 더 가까이 서 있다는 것 정도.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의 남침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무고한 희생자가 생겨나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아버지는 동영상에서와 똑같은 목소리와 변함없는 내용으로 연설을 이어 가셨다. 나는 끊임없이 시선을 굴렸다. 특히 동영상에서 괴한이 튀어나왔던 쪽을 주시하면서. 그리고 역시나. 스으윽. 저 멀리서 모자를 푹 눌러쓴 사내가 사람들을 헤치며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문자 속 동영상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인상착의. 주먹에 땀이 쥐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언제라도 튀어나갈 수 있도록 준비했다. 마음 같아서는 방탄조끼라도 차고 싶었지만,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결국 내려놓았다. 극적인 상황이야말로 아버지의 마음을 더 흔들 수 있을 테니까. 살아남기만 한다면, 둘째 형에게 대항할 만한 힘을 가질 수 있을 터. 아니나 다를까, 몇 초 뒤. 내가 눈여겨보고 있던 남자가 순식간에 앞으로 뛰쳐나오며 소리쳤다. “이런 빌어먹을 독재자 새끼야!” 그 말과 함께 괴한의 품에서 권총이 튀어나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던졌고. “아버지!” 탕! 동시에 총성이 하늘을 찢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