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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193화 (완결) (193/193)

193화

미아는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크리소르 황태후의 심복을 처형하는 식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관중들은 도망간 지 오래였고, 문관은 시말서와 경위서를 쓸 생각에 해탈한 얼굴이었다.

“…….”

그 사이에서 미아는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소리 내어 웃었다.

“아하하!”

역시 이야기는 아무도 죽지 않는 이야기가 최고다.

‘잘 지냈으면 좋겠다.’

미아는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시원하게 웃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조금 뿔난 얼굴의 아딜로트를 향해 신이 나서 외쳤다.

“도망갔어!”

“……아주 신나 죽겠지.”

“그치만 아딜도 알고 있었지!? 시즈가 도망갈 거란 걸!”

“…….”

아딜로트는 턱을 괸 채 침묵했다. 별로 수긍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그렇지만 누가 봐도 기사들은 율리시즈를 진심으로 잡으려 들지 않았다. 애초에 배치된 인력 자체도 터무니없이 적었고, 구속도 허술했으니 말이다.

‘역시 아딜은 진짜 착하다니까!’

미아는 결국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아딜로트의 목덜미를 껴안았다.

“고마워!”

“……죽이면 네가 두고두고 기억할 거 아냐.”

귀 끝을 붉힌 아딜로트가 고개를 휙 돌렸다. 미아는 그런 아딜로트를 바라보다가 함지박 같은 웃음을 띠며 말했다.

“아딜. 그거 알아?”

“뭘.”

“난 되게 외모지상주의야!”

“……?”

난장판이 된 처형식에서 하기엔 뜬금없는 말이었다.

아딜로트가 의아한 얼굴을 했고, 미아는 그런 아딜로트를 보며 다시 와락 웃어 버렸다.

“그런데 제인 씨가, 아딜 얼굴 보다가 밖에 나가서 만나는 남자들로는 만족 못 할 거래!”

“…….”

아딜로트는 그제야 미아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눈치챈 듯했다. 그가 조금 당황해 말했다.

“너 지금…….”

“그래서 말인데!”

“잠깐만.”

미아의 말에 아딜로트가 급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가 족히 사람 수백은 죽인 처형대.

낭만이라곤 단 한 톨도 없는 장소였다.

“미아. 여긴…….”

“나는 돈도 잘 벌고! 성품도 훌륭하고 얼굴도 귀엽고 사랑스럽고 매력적이니까!”

“잠깐, 잠깐. 이런 건 내가 먼저 해야―.”

“그리고 나는 이제 셀레스티얼 공! 작! 이니까! 높은 사람이니까!”

“제발 기달―.”

“그리고 나 아딜 좋아한다?”

갑작스럽게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는 말에 아딜로트가 굳었다.

“정말 정말 좋아해.”

미아는 고물고물 미소를 띤 채 분홍빛 눈을 다정하게 휘었다.

“그래서 말인데 나랑 결혼할래?”

“…….”

아딜로트의 말문이 막혔다. 그는 새실거리는 미아를 한참을 바라보기만 하다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너…… 내가…… 준비를…….”

“하고 있었겠지! 하지만 나는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청혼 당하지 않지!”

“하…….”

미아의 당당한 태도에 아딜로트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기어이 떠오르는 미소를 참지 못한 채 실소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생각한 거지만, 넌 너무 예측불허야.”

“귀여우니까 괜찮아!”

“너무 논리적이고.”

아딜로트가 미아의 손가락을 잡아 올렸다. 약지에는 언젠가 그가 선물했던 루비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그것을 내려다보며 아딜로트는 여전히 조금은 억울한 얼굴로 말했다.

“반지도 준비해 놨는데.”

“난 이게 좋아. 그때 좀 청혼 같았지?”

“정작 청혼은 못 했지만 말이지.”

“당한 걸로 만족해!”

아딜로트가 낮게 웃었다. 반지 위에 입 맞춘 그는 지긋이 미아를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 줄게.”

미아는 자신의 손을 붙잡은 아딜로트의 손이 떨리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 샐쭉 웃었다.

“응.”

“절대 후회 안 하게 해 줄게.”

“응!”

미아의 서슴없는 대답에 아딜로트가 재차 실소했다. 그러나 태연한 표정과 달리 붉은 눈은 긴장으로 조금 떨리고 있었다.

“……나한테 와 줘서 고마워.”

그 말에 미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나 이내 배꽃같이 웃으며 아딜로트의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응!”

소리 높여 웃으며 미아는 생각했다. 역시 소설의 결말에는 모두가 웃는 게 어울린다고.

* * *

미아는 셀레스티얼 백작령, 아니, 공작령으로 향했다.

셀레스티얼 백작가는 생각보다 유서 깊은 가문이었고, 오르퀘니나에서 가장 질 좋은 포도를 생산하는 게 셀레스티얼 백작가의 포도밭이었다.

미아가 마차에서 내리자 열 명 남짓한 소수의 인원이 기쁜 얼굴로 그녀를 환대했다.

“아가씨!”

“잘 지내셨어요!?”

“세상에, 피골이 상접하신 것 좀 봐요!”

모두 몰락하던 셀레스티얼 백작가를 일으킬 때 만났던 와이너리 사람들이었다.

“아하하! 다들 잘 지냈어!?”

미아는 쾌활하게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저희야 잘 지냈지요. 폐하가 따로 여길 건드리진 않으셔서……. 그렇지만 아가씨는, 아휴…….”

사람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기도 했다. 어린 아가씨가 황궁에 끌려가 온갖 고초를 당했을 텐데 그걸 막지 못했으니 말이다.

미아는 씩 웃기만 했다.

“괜찮아! 다 끝났는걸!”

“아가씨…….”

“그보다 들었지? 이제 내가 셀레스티얼 공작가를 이어받기로 했어.”

거기까지 말한 미아가 살짝 뺨을 붉힌 뒤 덧붙였다.

“그러니까, 음……. 몇 개월만!”

최근 수도에서 가장 떠들썩한 소문을 떠올린 와이너리 사람들이 동시에 환하게 웃었다.

“소식 들었어요! 정말 축하드려요!”

“정말이지 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렇지만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데요!”

“맞아요!”

“으응! 일단 와이너리는 하던 대로 두려고! 운영은 그대로 부탁해!”

이후 미아는 와이너리 운영과 관련된 이야기를 몇 가지 더 나눴다.

그리고 기사까지 물린 채 혼자 포도밭 주변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날씨 좋다.’

가을이 다가오고 있기에 포도밭 역시도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색색의 잎으로 물든 포도밭은 장관이었다.

“…….”

미아는 적당한 울타리에 걸터앉아 포도밭을 둘러보았다.

유서 깊은 와이너리답게 포도밭 역시도 넓었다. 그 사이를 인부들이 돌며 포도를 살피는 모습이 보였다.

구획을 나눠 조랑조랑 열려 있는 포도를 바라보며 미아는 과거에 드미트리에게서 들은 말을 떠올렸다.

‘서로의 영혼이 지평선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재구성되어 더는 아프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죠. 그 의식을 진행하려면 대량의 피가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원래의 ‘미아 셀레스티얼’은 아마 저 넓은 포도밭을 밤새 돌아다니며 포도를 짓이겼을 것이다.

‘무슨 심정이었을까.’

미아가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생각했다. 그 마음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울었겠지.’

외로웠을 테고.

‘살고 싶었을 거야.’

미아가 눈을 감았다.

아직도 눈에 선한 병실의 천장 무늬.

자신의 몸과 연결된 의료기계의 소리.

아무도 오지 않는 조용한 병실의 적막감.

그 사이에서 당장 내일 아침 눈을 뜰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짓눌리고 있던 자신.

미아 셀레스티얼이 되기 전, ―――는 불치병 환자였다.

건강했던 것은 아주 어릴 적뿐. 그녀는 인생의 칠 할을 병원의 1인실에서 보냈다.

부모님은 부족함 없이 그녀를 키워 주었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온전히 자신이 감내해야 할 고통이었다.

죽는 게 무섭다고 울기엔 그녀의 가족들은 이미 너무 많은 희생을 하고 있었으니까.

‘아마 그래서 <장미 정원 세레니티>가 좋았던 거겠지.’

‘아가씨는…… 폐하를 왜 그렇게 좋아하세요?’

엠브라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때 자신이 그 글에 어떤 위로를 받았는지.

세레니티는 가족들의 냉대와 외로움으로 힘겨워했고, 아딜로트는 죽은 레아 황비의 그림자 때문에 괴로워했다.

그런 두 사람이 서로 바닥을 보이며 사랑하는 모습이 좋았다.

‘나는 바닥은 보여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녀도 죽는 게 두려워 울고불고했던 적은 있지만, 그건 초반뿐이었다. 지쳐 가는 가족들을 보며 미아는 깨달음을 얻었다.

어차피 떠날 거, 웃는 모습만 남기고 떠나고 싶다고.

‘이젠 다 옛날이야기지만.’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미아는 멍하니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미아가 된 것처럼, 미아는 ―――가 됐겠지…….’

그리고 자신이 건강해졌듯이, 미아 역시도 건강해졌을 것이다.

기적처럼 나은 딸을 붙잡고 울 가족들의 모습을 떠올린 미아가 저도 모르게 웃었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보다는 가족들이 더는 힘들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컸다.

‘그리고 나한테도 이젠…….’

생각을 이어 가던 미아는 문득 양조장 건물 쪽을 바라보았다. 언제 왔는지 붉은 사자가 그려진 마차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지나치게 젊고 잘생긴 황제 역시도.

“금방 갔다 온댔는데!”

미아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하늘은 맑았고, 이제 그녀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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