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190화 (190/193)

190화

그는 미아가 자신을 보며 미소 짓자 살짝 흠칫했다.

‘크리소르에게 협조했다는 이유만으로 죽게 두진 않을 거야.’

미아는 다시 아딜로트에게 말했다.

“폐하. 그러니 제가 이번 일로 자그마한 공이라도 세웠다면, 부디 제 청 하나를 들어주세요.”

그 말에 율리시즈의 표정이 묘해졌으나 미아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청컨대 폐하를 위해 용기를 낸…….”

신민 하나를 구명해 주십시오.

미아가 그렇게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콕.

‘어?’

날카로운 뭔가가 미아의 손가락을 찔렀다. 미아는 잠시 몸이 덜걱거린다고 느꼈다. 그녀의 시선이 손으로 향했다.

작은 침 하나가 손가락 끝에 꽂혔다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미아가 스르르 고개를 들었다.

‘시즈?’

소매 사이로 침을 수습하며, 율리시즈가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어쩐지 애달프기도, 만족하는 것 같기도, 기쁜 것 같기도, 괴로운 것 같기도 한 미소였다.

‘어째서…….’

묻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 대신 율리시즈가 작게 속삭였다.

“……고마워요, 미아 님.”

미아의 눈이 커졌으나, 동시에 그녀는 시야가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안 돼…….’

미아의 몸이 그대로 허물어졌다. 누군가의 따뜻한 온기를 마지막으로 미아는 정신을 잃었다.

* * *

미아가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것은 한낮의 태양이었다.

“…….”

장소는 황제궁에 있는 자신의 방, 침대 위.

미아는 누운 상태로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왠지 몸이 무거웠다.

‘몸살이라도 났나 보네.’

한동안 정말 긴장하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제대로 마무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상당했던 모양이다.

미아가 부스럭대자 옆에서 인기척이 났다.

“미아. 일어났어요?”

고개를 돌리자 세레니티가 작은 책을 덮고 있었다. 그녀의 평온한 낯을 멍하니 지켜보던 미아는 이윽고 배시시 웃었다.

“렌. 지로티 공작이 된 거 축하해…….”

세레니티가 눈을 크게 떴다가 풋 하고 웃었다.

“고마워요. 셀레스티얼 공작에게 들으니 더 실감나네요.”

“응?”

미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자 세레니티가 웃으며 말했다.

“미아는 다시 귀족이 되었어요. 셀레스티얼가는 공작가가 되었고, 가주는 미아예요.”

그렇게 말한 세레니티는 묘하게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떴다.

“물론 미아도 알다시피 황후는 가문을 이을 수 없지만요…….”

“…….”

당황한 미아는 눈만 깜빡였다.

그런 미아를 바라보며 세레니티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누군가를 원망하듯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 마음에 안 들지만……, 어쩔 수 없죠.”

“으, 음? 으음.”

“그렇지만 이제 미아의 가족은 저니까요. 혹시라도 싫어지면 바로 지로티 공작가로 오는 거예요, 미아. 알았죠?”

뺨이 살짝 달아오르려고 하는 것을 느끼며 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미아. 몸은 좀 어때요?”

“아하하……. 좀 무겁긴 해.”

“너무 피곤했나 봐요. 그간 미아가 많이 고생했으니까요. 황제 폐하와 재상님께 다 들었거든요.”

“그래?”

“네. 드미트리 대신관님께도 사정을 들었고요.”

“그렇구나…….”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미아의 머릿속에 문득 기절하기 직전의 광경이 떠올랐다.

‘고마워요, 미아 님.’

“……!”

미아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녀가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시즈는!?”

미아의 질문에 세레니티는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처형일이 정해졌어요. 당장 그 사람에게 갈 것 같아서 미리 말해 주는 거지만, 미아의 면회는 거절한다고 했고요.”

“말도 안 돼!”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려는 미아를 세레니티가 잡아 눕혔다.

“미아. 쉬. 괜찮아요. 아직 시일이 좀 남았어요. 당분간은 좀 쉬기로 해요.”

“시즈가 위험한데 내가 어떻게 쉬어! 심지어 시즈는 날 위해……!”

“미아.”

세레니티는 말로만 그치지 않고 가만히 이마를 맞대 왔다. 언젠가 미아가 먼저 했던 행동이었다.

“…….”

코앞에서 보이는 온화한 미소에 미아는 점차 마음을 가라앉히고 심호흡했다. 그러자 세레니티는 싱긋 웃으며 거리를 벌렸다.

“구할 거죠?”

“……응.”

미아가 불안한 얼굴로 답했다.

‘설마 막진 않겠지?’

하지만 세레니티는 생각 외로 흔쾌히 말했다.

“저도 도울게요. 그 율리시즈라는 사람도 미아의 친구인 모양이고, 내버려 두면 미아는 혼자 그 사람을 구하려 들 테니까요.”

세레니티의 대답에 미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 그래도 돼? 지로티 공작인데…….”

“지로티 공작이니까 가능한 거 아닐까요? 저는 이제 얼마든지 미아를 도울 수 있어요.”

“렌…….”

“고맙다고 안 해도 돼요. 내가 미아에게 받은 게 더 많은걸요. 아버지도 괜찮다고 하실 거예요.”

세레니티의 다정한 말에 미아는 이내 배시시 웃으며 뺨을 붉혔다.

세레니티는 제인을 불러와 미아의 기상을 알린 뒤, 작은 윙체어를 침대 옆에 두고 앉았다.

미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그보다 어떻게 됐어?”

세레니티는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크리소르 황태후 폐하를 말하는 거죠?”

“응.”

“그녀는…….”

세레니티가 금빛 눈을 내리깔았다.

“사실, 미아가 쓰러져 있던 동안 그녀를 사형시킬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어요.”

“그래? 어떻게 됐는데?”

“사형시키진 않기로 했어요.”

세레니티는 묘하게 미아의 눈치를 보는 듯했다. 아무래도 크리소르가 그녀를 죽이려 한 전적이 있기에 그러는 모양이었다.

“흐음.”

하지만 미아는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당사자들이 그렇게 정했다면야 상관없지. 나야 살았으니 그만이고.’

그렇지만 조금 의외였다. 원한이 깊을 줄 알았는데.

미아의 의문을 짐작했는지 세레니티가 덧붙였다.

“이유가 있어요. 그날 이후, 크리소르는 죽는 것보다 더 심한 상태가 되었거든요. 실성했다고 해요.”

“아…….”

“가끔 제정신으로 돌아오긴 하는데, 그럴 때마다 울부짖으며 죽으려고 한다고 하네요.”

왠지 그럴 것 같았지만, 정말로 그렇게 되었구나. 동정심은 들지 않았다. 심드렁한 미아의 낯을 보며 세레니티는 빠르게 말했다.

“하지만 어쨌든 라지푸트와 내통한 죄가 있으니 성을 빼앗고 노예 신분으로 내쫓기로 했어요. 아마 루넬 씨가 돌봐 주겠죠.”

“그렇구나. 잘 지낼 수 있으려나.”

세레니티는 싱긋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역시 어렵겠지.’

궁에서 내쫓긴 범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가문의 지원도 기대할 수 없고, 국사범을 도울 사람도 없을 테니 여생이 꽤 힘겨울 게 뻔했다.

게다가 크리소르는 이미 죽을병에 걸렸으니 괴롭게 생을 마감하리라. 악역다운 최후였다.

‘그래. 악역다운…….’

미아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소설이…… 드디어 끝난 거구나.’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미아는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와. 나 정말 살아남은 거네…….”

소설에 들어와, 남자주인공에게 죽을 뻔하고, 수차례 위기를 넘겨 온 과거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살아는 남았지만, 내가 정말 잘한 걸까?’

문득 그런 의문이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미아.”

따뜻한 손이 미아의 손등을 덮었다.

고개를 돌리자 세레니티가 온화하게 반짝이는 미소를 지으며 미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 끝났어요. 괜찮아요.”

미아는 홀린 듯이 그녀의 짧은 머리칼을 바라보았다.

원작과 달리 짧은 머리를 하고, 의원이 될 준비를 하며, 지로티 공작이 된 세레니티.

“렌. 행복해?”

미아의 질문에 세레니티는 눈을 크게 떴다가, 눈매를 곱게 휘며 활짝 웃어 보였다.

“미아를 만난 순간부터 항상이요.”

멍하니 그 미소를 지켜보던 미아 역시도 이내 활짝 웃었다. 그런 미아를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문득 든 생각에 세레니티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미아, 긴장해요.”

“응?”

세레니티가 쌕 웃었다.

“밖에 나가면 모든 게 달라져 있을 거예요.”

* * *

몸이 다 나은 미아를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레벤토르의 총 시녀장이자 아딜로트의 수석 시녀인 제인 고트샬크였다.

“미아 님. 앞으로 미아 님을 모시게 된 제인 고트샬크입니다. 불편하시다면 새로운 시녀를 들이셔도 좋으니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

다짜고짜 제인이 무릎을 꿇고 깊게 인사하자 미아의 머릿속에는 물음표만이 떠올랐다.

제인 뒤로는 황궁에서 가장 일을 잘하기로 소문난 시종들이 똑같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제인 씨? 이게 무슨…….”

“미아 님도 이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으셔야 하니까요. 아무래도 면식이 있는 시녀가 편하시리라 판단하여 폐하께서 저를 미아 님께 보내셨습니다.”

“아딜이요? 그치만 왜…….”

미아의 말에 제인은 살짝 곤혹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가 주변의 시종들을 물렸다.

둘만 남자 그녀가 말했다.

“미아 님은 이제 황후가 되실 분입니다. 당연히 독자적인 세력을 마련하셔야지요.”

“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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