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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168화 (168/193)

168화

그리고 이윽고 희미하게 괴로움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제가 미아 님과 가까운 사람에게 해를 끼쳤다면…… 어떠실 것 같아요?”

“허억.”

미아가 주먹으로 입을 가렸다.

‘올 것이 온 건가!’

율리시즈의 직업상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고는 생각했다.

‘나랑 가까운 사람이면 아딜이나 렌일 텐데, 과거형이니까 아딜인가?’

미아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어, 어, 얼마나 큰 해를 끼쳤는데?”

“많이요…….”

“그, 그렇구나. 많이 해를…… 끼쳤구나.”

본업이 암살자, 부업이 정보 길드인 사람이 ‘많이’ 해를 끼친 거면 대체 어느 정도일까…….

정도를 추측하려던 미아는 이내 과장된 웃음소리를 내며 눈을 부릅떴다.

“그치만 아무도 안 죽었으면 되는 거 아닐까!?”

“…….”

“…….”

“……죽.”

텁.

미아가 뭔가 말하려는 율리시즈의 입을 막았다.

‘죽였구나. 응…….’

아니, 그치만 자신과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라니. 미아는 의아함을 느꼈다.

‘연락 끊긴 사람도 없는데 죽긴 누가……, 아?’

생각을 이어 가던 와중 미아의 머릿속에 뭔가가 번득 떠올랐다.

“설마…… 셀레스티얼 백, 아니, 미아 아빠?”

“……!”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율리시즈가 숨을 들이켰다.

늘 여유롭고 수줍은 미소나 짓고 있던 율리시즈의 뺨이 어찌나 창백해졌던지, 미아는 저도 모르게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시즈?”

“…….”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말없이 입술만 깨물고 있던 율리시즈가 미아의 손을 끌어 내렸다. 그리고 힘겹게 말했다.

“맞아요……. 제가, 미아 님의 친부를…… 죽였어요.”

그 침통한 표정을 보며 미아는 당혹을 느꼈다.

‘……잘했는데?’

놀라울 정도로 아무 감흥도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영지민 수탈하던 놈이라서 죽어도 싸고. 내가 가문 좀 살려 보겠다고 개처럼 일할 때도 놀러나 다니던 사람이었고.’

……역시 잘 뒤졌다 싶은데?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기 아빠가 죽었다는데 그렇게 말하는 건 도리에 어긋나는 것 같아서 미아는 차분히 미소 지었다.

“한 방에 주님 곁으로 보내 줘서 고마워…….”

“…….”

“……한 방이 아니었니?”

“……좀, 오래…… 걸리긴 했어요. 황태후의 명령이라서…….”

“…….”

멈칫한 미아가 과장되게 웃었다.

“어쩌겠어! 다 자기 업보지!”

율리시즈는 움찔했다. 성호까지 그린 그녀가 이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럼 이제 나 안 피해?”

그 기대감 가득한 얼굴에 율리시즈는 조금 울컥한 듯이 입술을 깨물었다.

“미아 님은……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제가 미아 님의 가족을 죽였는데도…….”

“응? 난 나한테 개같이 대한 사람은 가족이라고 생각 안 해. 차라리 네가 나한텐 가족이야.”

그 말에 율리시즈의 눈이 커졌다.

그의 연갈색 눈동자는 서서히 젖어 들기 시작했다. 어쩐지 ‘왜 이제야 나타났느냐’며 원망하는 것 같기도, 고마워하는 것 같기도 한 시선이었다.

“하……. 하하.”

이윽고 율리시즈가 나직한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미아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저는…… 살면서 제가 잘못하고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누군가는 이런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런 순간이 오네요…….”

“그런 순간?”

율리시즈는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좀 더 건실하게 살 수도 있었을 텐데……, 하고 후회하게 되는 순간이요.”

갑작스러운 고해에 미아가 입술을 달싹거리다 겨우 말문을 뗐다.

“그치만 시즈는 시즈의 위치에서 제일 노력한 거잖아?”

미아는 아는 진심이었다.

그녀가 알기로, 율리시즈는 빈민가 출신이라고 들었다. 귀족 출신이었던 ‘미아 셀레스티얼’보다는 선택지가 적었을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시즈가 나한테 찾아온 것도 에트루리나 지역 빈민 구제 사업이 제대로 돌아가게끔 해 달라는 목적이었으니까.’

거기서부터 율리시즈가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었다는 것을 미아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셀레스티얼 백작을 죽인 거라면 내가 용서했으니까 괜찮잖아!”

“맞아요……. 제가 괜히 그러는 거예요……. 저 혼자.”

그런 그녀의 속마음과 다르게, 율리시즈는 쓸쓸한 낯을 하고서 호수를 바라보았다.

“반역자의 딸……. 바닥 중의 바닥인데, 미아 님은 악착같이 노력해서 결국 뭔가를 바꿨잖아요……. 나도 저럴 수 있지 않았을까, 왜 나는 그런 방식을 택한 걸까 하고…….”

“…….”

미아는 당황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율리시즈가 당장이라도 호수에 몸을 던질 것처럼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기에, 미아는 저도 모르게 율리시즈의 팔을 붙잡았다.

율리시즈는 그런 미아를 보며 쌕 웃었다.

“암살자 팔 잡는 거, 아니랬는데…….”

그러더니 미아를 뿌리치기는커녕 난데없이 톡, 이마를 맞대 왔다.

“미아 님.”

갑작스럽게 얼굴이 가까워지자 놀란 미아가 눈을 크게 떴다. 코앞에서 율리시즈가 나직하게 속삭였다.

“저랑 같이 갈래요……?”

이윽고 나온 말에 미아는 눈도 깜빡이지 못하고 굳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에는 곧 안타까움이 드리워졌다.

“시즈. 나는…….”

미아가 힘겹게 입을 연 순간.

“농담이에요. 미아 님은 밝은 곳에 있는 게 어울려요…….”

휙 하고 율리시즈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미아는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았다.

‘……농담? 그게?’

서 있는 율리시즈의 얼굴은 호수 쪽을 향해 있어 표정을 짐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얼핏 보이는 옆모습이 굉장히 쓸쓸해 보였다. 미아는 거기다 대고 눈치 없이 뭔가를 묻거나 말하지 않았다.

‘하긴 진담이었더라도 어쩌겠어.’

미아는 그의 제안을 수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율리시즈는 그걸 듣고 싶지 않았을 테고.

어색한 침묵이 세크레 호숫가에 내려앉았다.

그러다 한참 뒤, 율리시즈가 홱 고개를 돌려 미아를 바라보았다. 그때엔 이미 그는 평소처럼 새실거리고 있었다.

“수석 의원 렌나 그리말디의 아버지는 살아 있어요……. 찾으시는 중이었죠?”

“……! 그게 진짜야?”

율리시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전에 크라우스 공작이 길드에 그를 찾아 달라고 의뢰한 적이 있거든요…….”

“찾아냈어?”

“찾아내긴 했지만…….”

율리시즈가 소매로 입을 가리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도 마음이 지옥에 있는 듯해서, 그냥 못 찾아냈다고 둘러댔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그는…… 황립 의료원의 의원이었어요. 황태후의 명령을 아주 잘 들었고요……. 그래서 그녀가 시키는 대로 독약을 만들었거든요…….”

“아!”

미아가 탄성을 흘렸다. 렌나가 해독법을 알고 있던 게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 충성심이 강했다면 왜 도망친 거야?”

“글쎄요. 그도 저처럼 뭔가를 깨달은 모양이죠……. 자기 죄를 뒤늦게 깨닫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은 법이니까…….”

“…….”

미아가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율리시즈가 어깨를 으쓱했다.

“처음에 ‘잭 와인더’를 찾으셨죠? 황태자 클라우디오가 죽을 때 함께 있었던 마부요……. 그건 지금 황제가 황태자를 죽였다는 누명을 벗기기 위해서였겠죠?”

그 이야기가 왜 나오지?

미아가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하지만 죽어 버려서…….”

“렌나 그리말디의 아버지인 바루스 그리말디의 협조를 얻으면, 그건 해결될 거예요……. 그가 그때 죽은 클라우디오 황태자를 부검한 사람이거든요…….”

“……!”

“그리고 황태자의 죽음을 ‘너무 정직하게’ 부검한 죄로 황태후의 미움을 사서 도망치게 된 사람이기도 해요…….”

미아가 번개같이 원작을 떠올렸다.

클라우디오 황태자의 사인은 뇌출혈.

그리고 그때 같이 발견된 아딜로트는 클라우디오보다 훨씬 상태가 위중했다.

무기 역시 클라우디오만 갖고 있던 상황.

누가 봐도 아딜로트는 살기 위해 반항했을 뿐이고, 클라우디오는 제풀에 넘어져 죽었을 뿐이었다.

‘그걸 그대로 고했다면 황태후가 길길이 날뛸 만하지.’

그렇다면 바루스 그리말디가 증언만 해 준다면 아딜로트에게 씌워진 ‘황태자 살해 의혹’은 사라지게 된다.

“그 사람은 어딨어!?”

미아가 급하게 물었다.

율리시즈는 쌕 웃고서, 손을 내밀었다.

“여기로 가세요……. 그는 겁이 많지만, 미아 님이라면…… 설득하실 수 있을 테죠.”

그렇게 말하며 율리시즈는 미아의 손바닥 위에 빛나는 글씨로 주소를 적어 주었다.

미아는 손을 소중히 가슴에 모으고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것을 물었다.

“시즈. 황태후 편이 아니라면, 왜 황태후 옆에 있는 거야? 거기 있으면 더 나쁜 짓만 하게 되잖아.”

내 옆에 있어,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그건 그에게 실례니까.

율리시즈는 미아의 말을 듣고 고개를 쌜긋하더니, 이내 처음 만났을 때처럼 수줍고 화사하게 미소 지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 미소에 미아는 괜히 울컥했다.

“……넌 역시 진로 선택을 잘못했어.”

“하하…….”

율리시즈가 조용히 웃었다.

“하지만 아마 곧 제가 필요하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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