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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160화 (160/193)

160화

어떻게 세레니티에게 접근할지 고민하던 미아는 로사 바이지겔 백작에게 찾아갔다. 리겐하이드 산악전의 영웅 말이다.

“바이지겔 백작 각하!”

“바이지겔 백작입니다. 미아 님.”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바이지겔 백작은 여전히 깍듯하고 엄했다. 그녀가 싱긋 웃으며 하는 말에 미아는 주춤했다가 말했다.

“백……, 백작!”

쪼그만 토끼가 결사의 각오를 하고 내지른 듯한 외침에 바이지겔 백작이 피식 웃었다.

“격조했습니다.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점 사죄드립니다.”

“아니에요! 그보다 저 부탁드릴 게……!”

“‘아니. 그보다 시킬 게 있어.’라고 하셔야죠?”

바이지겔 백작이 다시 싱긋 웃었다.

“릴리벳 크라우스 양이 물러났으니, 저도 좀 더 엄해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으윽…….”

이런 멋진 언니한테 반말하고 싶지 않은데.

하지만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 같은 태도였기에 미아도 각오를 다지고 눈을 부릅떴다.

“알았어! 앞으로 내가 쫌 반말한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 바이지겔에게 뭐가 필요하신가요?”

“아! 혹시 최근 세레니티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거 있을까!?”

“듀레인 양 말씀이십니까?”

잠시 기억을 뒤진 바이지겔 백작이 선선히 답했다.

“세레니티 듀레인 양이라면 최근 자매와 함께 소규모 살롱이나 무도회에 참석하는 모양이더군요.”

“괜찮다던가요!?”

“딱히 문제가 있어 보이진 않았습니다.”

“그럴 리가!”

미아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 둘이 곁에 있다면 분명 또 고의로 세레니티의 발을 밟거나 세레니티에게 찻물을 엎지르거나 세레니티의 옆구리를 꼬집거나 세레니티만 대화에서 따돌리고 있을 게 분명해요!”

미아의 절규에 바이지겔 백작이 멍해졌다.

“……본 것처럼 잘 아시는군요.”

“분명 그럴 거라니까요!?”

미아가 울상을 지은 채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을 지켜보던 바이지겔 백작이 말했다.

“그럼 확인해 보러 가시겠습니까?”

“진짜요!?”

방법이 있나!?

미아의 분홍색 눈이 번쩍거렸다. 바이지겔 백작은 그 모습이 귀엽다는 생각을 하며 미소 지었다.

“미아 님이 그렇게까지 확신하신다면 분명 뭔가가 있는 거겠지요. 제가 돕겠습니다.”

“사랑한다고 말해도 돼요?”

“그런 말은 폐하께 해 주십시오.”

미아가 도르륵 눈을 굴리며 시선을 피하는 것을 본 바이지겔 백작이 다시 피식 웃었다.

“제 이름으로 살롱을 열어도 좋지만, 듀레인 남작가와는 연이 없군요. 하지만 다행히 며칠 뒤에 파이퍼 자작가에서 다과회가 열립니다. 아니카 파이퍼 양에게 듀레인 남작 영애들을 초대하라 일러두겠습니다. 그곳에 몰래 잠입하시죠.”

“와! 부탁해요!”

“대신, 저도 함께 갑니다. 귀한 몸이시니 호위가 필요하니까요.”

“응!”

바이지겔이 와준다면 이쪽이 오히려 안심이다. 미아가 실실 웃었다.

“고마워요!”

“‘고마워’입니다.”

“고마워! 사랑해! 최고!”

“그건 나쁘지 않군요.”

미아의 웃음에 바이지겔 백작이 픽 웃었다.

* * *

며칠 뒤, 미아는 바이지겔 백작과 함께 파이퍼 자작가로 향했다.

“미아 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니카 파이퍼입니다.”

“응! 반가워!”

미아는 옆에 있는 바이지겔 백작의 눈치를 보며 반말로 인사했다.

‘내가 무릎에 앉았던 아가씨다!’

전과 달리 태도가 매우 깍듯해져 있었다.

‘그런 걸 보면 확실히 내 입지도 많이 높아지긴 했나 보네.’

그때, 아니카가 고개를 번쩍 들며 눈을 빛냈다.

“그런데…… 크라우스 공작가의 비료 기술을 간파하셨다고요!?”

“앗, 그렇긴 한데…….”

“정말 대단하세요! 저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정말이지 미아 님께 함부로 굴었던 과거의 저를 때리고 싶을 정도랍니다! 이런 분께 제가 감히 막말을…….”

“아니카 양.”

호들갑을 떨며 미아를 추켜세우는 아니카의 앞을 바이지겔 백작이 가로막았다.

“우리는 그 일로 온 게 아니니 그건 다음에 얘기하죠.”

“어머.”

아니카 파이퍼가 수줍게 얼굴을 붉혔다.

“죄송합니다. 너무 영광스러워서 그만……. 일단 그럼 저택을 좀 안내해 드릴게요. 하녀로 변장하신다고 하셨죠?”

미아와 바이지겔은 곧 아니카 파이퍼의 도움을 받아 하녀복으로 갈아입었다.

검은 드레스에 흰 앞치마. 거기에 동그란 안경까지 쓰자 미아는 제법 하녀처럼 보이게 되었다.

문제는 바이지겔 백작이었다.

“음……. 백작 각하는…….”

하녀복을 입은 바이지겔 백작을 본 아니카 파이퍼가 말끝을 흐렸다.

하녀복 따위로는 숨겨지지 않는 훤칠한 키에 근육질의 몸매. 그리고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카락.

‘그냥 누가 봐도 하녀복 입은 바이지겔 백작인데.’

미아가 생각했다.

“이건…… 확실히 잠입에는 어렵겠는걸.”

바이지겔 백작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난처하게 중얼거렸다.

“그럼 어떡하죠? 집사로 변장하신다고 하더라도 머리카락 때문에 눈에 띌 것 같아요.”

“염색하거나 마법석으로 가리기엔 준비 시간이 모자라고.”

바이지겔 백작은 잠시 뭔가를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나는 손님으로 참석하는 게 좋겠군요.”

그녀가 미아에게 몸을 돌렸다.

“미아 님. 제 미흡함 때문에 상황을 곤란하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응? 아니야! 여기까지 도와준 것만으로도 난 고마운걸!”

“비록 함께 잠입하진 못하겠지만, 상황을 봐서 세레니티 듀레인 양을 따로 불러내겠습니다. 그때 대담을 나누시지요.”

“응!”

곧 파이퍼 자작가의 다과회가 시작되었다. 주인공은 단연, 로사 바이지겔 백작이었다.

“젊은이들 사이에 내가 참석하게 되어 미안하군요.”

갑작스러운 등장에도 영애들은 모두 바이지겔 백작을 환영했다.

다과회에 참석한 영애들은 모두 한미한 가문 출신이었고, 그래서 바이지겔 백작 같은 고위 관료를 만나긴 어려운 위치였다.

“백작 각하께서 오시는 줄 알면 더 예쁜 드레스를 입고 올 걸 그랬어요!”

“저도 평소에 여쭤보고 싶은 게 정말 많았어요!”

“환대 고마워요. 나도 그대들과 나눌 대화가 아주 기대된답니다.”

바이지겔 백작이 중성적이고 우아한 미소를 짓자 영애들은 뺨을 붉히며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역시 멋진 언니는 모두의 아이돌이지.’

덕분에 다과회의 모든 시선은 바이지겔 백작이 독점했고, 하녀복을 입은 미아는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미아는 벽에 붙어 서서 가만히 응접실을 살폈다.

그리고 마침내 미아는 그곳에서 세레니티를 발견했다.

“…….”

그녀는 살롱의 가장자리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차만 마시고 있었다.

분명 그리 좋은 자리가 아니었는데도 이상하게 그 주변만 햇빛이 유난히 반짝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미아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니었는지, 종종 다른 영애들도 세레니티를 바라보았다가 멍하니 시선을 떼지 못하곤 했다.

미아가 흐뭇하게 그런 세레니티를 바라보던 와중, 어디선가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레니티. 너 레벤토르에서 바이지겔 백작 각하와는 만난 적 없니? 미아 님이 바이지겔 백작 각하랑 친하시다던데?”

“그러게 말이야, 언니.”

“아니면 혹시 우리를 백작 각하와 못 만나게 하려고 모르는 체하고 있는 건 아니지?”

“헉. 진짜? 세레니티, 그런 거면 넌 진짜 못된 거야!”

미아의 시선이 뒤늦게 세레니티 양옆에 앉은 두 영애에게로 향했다.

“그런 게 아니면 빨리 가서 친한 척이라도 해 봐! 미아 님 이야기라도 꺼내 보든가! 대체 뭐 하고 있는 거야?”

검은 머리에 조금 말랐고, 얼굴에 주근깨가 있는 여자가 장녀인 베티 듀레인.

“맞아, 맞아!”

똑같이 검은 머리에 풍채가 좋고, 아까부터 계속 맞장구만 치고 있는 여자가 차녀인 셜리 듀레인.

세레니티의 의붓언니들이었다.

듀레인 남작가는 세가 크지 않기 때문에, 이 한미한 모임에서도 위계에 밀려 바이지겔 백작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이런 곳엔 잘 안 오시는 분인데! 네가 어떻게 좀 해 봐!”

“맞아, 맞아! 좀 노력해 봐!”

두 언니의 재촉에 세레니티는 처음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발 그만 좀 하세요, 언니들. 저는 미아를 그런 식으로 이용하고 싶지 않아요.”

진력이 났다는 듯한 태도였다.

‘어지간히 저걸로 렌을 괴롭혔나 본데?’

그 말에 베티 듀레인과 셜리 듀레인의 눈빛이 달라졌다.

촐싹거리던 베티는 순식간에 삼백을 치뜨고서 세레니티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넌 정말 나쁜 애야, 세레니티. 우리가 너랑 동복 자매가 아니라서 무시하는 거지?”

그 말에 세레니티의 얼굴에 수심이 차올랐다.

“누차 말씀드렸잖아요, 언니. 그런 게 아니에요. 저는 그저 미아와의 우정을 권력을 얻는 데에 쓰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그럼 지금 우리가 남을 이용해서 권력에 빌붙으려고 한다는 거야?”

“베티 언니. 저는…….”

“대~단하신 성녀 납셨네. 그래, 우린 가족도 아니다 이거지. 너는 이미 끈을 잘 잡았으니 우린 무시하고 고결한 척 하겠다는 거잖아?”

“세레니티. 정말 너무해. 아무리 우리가 한 핏줄이 아니라지만…….”

“셜리 언니, 절대 그런 게 아니라…….”

“하!”

그 순간 베티 듀레인이 이죽거리듯 속삭였다.

“악랄한 계집애. 네가 그렇게 마음을 곱게 안 쓰니까 네 어머니가 빨리 돌아가신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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