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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148화 (148/193)

148화

기사 한 명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곧이어 문이 열리고, 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저택 내부로 들어왔다.

그들 사이에서 아딜로트가 걸어 들어왔다.

‘미아는?’

릴리벳이 급하게 그를 살폈다. 그리고 황제가 품에 안고 있는 분홍색 덩어리를 발견했다.

“……!”

“당장 방을 준비해. 공작가의 시녀는 쓰지 않는다. 리베로 경이 미아를 씻기는 것을 돕도록.”

“예. 폐하.”

기사 한 명이 경례하고서 미아를 받아 안았다.

그 모습에 릴리벳이 비틀거렸다.

‘살아 있어……!’

죽었어야 했는데.

바닥이 꺼진 듯한 기분이었다.

‘말을 못 몬다면서! 왜! 왜 살아 있는 건데!’

그녀는 가까스로 낭패감을 숨기고 서둘러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꾸었다.

‘봤을까? 내가 브로치로 말을 찌른 걸, 미아가 봤을까?’

그걸 황제에게 일러바쳤다간 그녀는 끝이었다. 아니, 자신뿐만이 아니라 크라우스 공작가 전체에 영향을 끼칠 터였다.

릴리벳이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지고하신…… 오르퀘니나의 달을 뵙습니다.”

2층으로 이어진 계단에서 누군가 내려왔다.

깔끔하게 넘긴 흑발에 얇은 테 안경.

플로리안 크라우스 공작이었다.

자택에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의복을 정제하고 있는 그는 그린 듯 품위 있는 걸음걸이로 내려와 아딜로트 앞에 섰다.

“애완동물 때문에 변고를 당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녹색 눈은 미아가 기사에게 안겨 떠난 자리를 흘끗였다.

“글쎄.”

아딜로트가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차갑게 말했다.

“그게 미아 때문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술수 때문인지는 조사해 봐야 알겠지. 크라우스 공.”

두 사람의 시선이 맞붙었다.

비를 맞으며 숲을 헤맸을 텐데도 아딜로트의 시선은 불꽃이 튀듯 예리한 기운이 맴돌았다. 플로리안 크라우스 공작은 잠시 그 시선을 마주하다, 얌전히 눈을 내리깔았다.

“참으로…… 통탄할 노릇입니다. 크라우스 공작령에서 일어난 일이니…… 제가 책임지고 이 사태를 일으킨 원인을 찾아내도록 하지요.”

“당연히 그래야지. 쉽게 넘어갈 생각이라면 안 하는 게 좋겠어.”

“소명을 위해서라도 협조하겠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이들 모두가 그리할 것입니다.”

크라우스 공작은 그렇게 말하며 쭉 찢어진 눈을 릴리벳에게 향했다.

“사람은 모름지기…… 제 역할을 다해야 하는 법이니 말입니다.”

“……!”

릴리벳이 입술을 깨물었다. 크라우스 공작은 시선을 피하는 릴리벳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하인들에게 몸을 돌렸다.

“너희는 폐하를 잘 보필하도록. 뭘 요청하시든 들어드려라.”

그리고 다시 올라가 버렸다.

“아……!”

릴리벳이 급하게 그를 따라가려던 찰나였다.

“릴리벳 크라우스.”

차가운 목소리가 그녀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몸을 돌리자 아딜로트가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그녀를 오시하고 있었다.

쿵. 쿵.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릴리벳의 머리가 재빨리 돌아갔다.

‘침착해. 내가 그랬단 증거는 없어.’

릴리벳이 태연하게 빙긋 웃었다.

“네. 폐하.”

“그대는 이따 나와 이야기 좀 하지.”

“얼마든지요. 공작 각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크라우스 공작가는 이번 사태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낱낱이 밝혀낼 것입니다.”

“하.”

청산유수처럼 흘러나온 말에 아딜로트가 코웃음쳤다. 그리고 다음 순간 웃음기를 싹 지운 채 핏빛 눈동자를 빛냈다.

“기대하지.”

릴리벳이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 * *

크라우스 공작의 집무실.

자리에 앉은 플로리안 크라우스 공작에게 곧 손님이 찾아왔다. 집사나 수하마저 두지 않았기에 플로리안 크라우스 얇은 입술을 열어 말했다.

“들어오너라.”

“실례하겠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릴리벳 크라우스 또박또박 대답하고서 방 안으로 들어왔다. 차분한 말과 달리 그녀의 표정은 혼란과 낭패감 그 자체였다. 저변에는 두려움도 엿보였다.

그녀는 단두대로 나아가듯 크라우스 공작의 책상 앞으로 다가왔다.

번쩍.

번개가 치고 나서 시야가 잠잠해진 순간, 플로리안 크라우스는 무심하게 말했다.

“처리하지 못했구나.”

쿠르릉!

기다렸다는 듯이 천둥이 쳤다. 릴리벳이 급하게 입을 열었다.

“너무 급했어요. 바깥이었고요. 다행히 제가 했다는 건 들키지 않았으니, 시간을 좀 주시면 가능합니다.”

“시간이라……. 가장 값지고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바라는구나.”

“그렇게 많이 필요하진 않습니다!”

릴리벳이 급하게 변명했다. 크라우스 공작은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달도 가려진 한밤중이었다. 쏟아지는 비는 적어도 모레까지는 그치지 않을 것 같았다.

공작가의 기밀을 알아 버린 미아.

그걸 들어 버린 가신들.

그녀를 비호하는 황제.

그리고…… 원래는 아무 흠결 없이 황후가 되어야 했을 릴리벳 크라우스.

“…….”

침묵하던 플로리안 크라우스는 선선히 말했다.

“……그래. 어디 한번 해 보려무나. 필요한 게 있다면 집사인 에른스트에게 요청하렴.”

“아……! 그럼……!”

“대신, 네가 들키는 순간 크라우스 공작가는 너를 돕지 않는다.”

“……!”

예상은 했지만 차가운 말에 릴리벳이 움찔했다. 플로리안 크라우스는 만사를 하찮게 여기는 듯한 예의 시선으로 릴리벳을 바라보았다.

“우리 가문의 기밀이 새어 나갔다. 네가 미아 셀레스티얼 데려오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지……. 그러니 잘 해결해야 할 거야.”

“…….”

“여차하면, 솔개가 운구하는 관에 들어가는 게 울새가 아닌 참새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크라우스 공작가의 주인은 심드렁하고 오만하게 말했다. 릴리벳이 입술을 깨물었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녀의 녹색 눈이 마치 크라우스 공작의 그것처럼 서늘하게 빛났다.

* * *

릴리벳이 떠난 뒤, 크라우스 공작은 창밖을 내다보며 서 있었다. 화살처럼 내리꽂히는 빗줄기 때문에 바깥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미아 셀레스티얼……. 정말이지 늘 예상 밖이로군.’

플로리안 크라우스는 지금까지 뒤에서 계속 미아를 지켜봐 왔다.

테레지아 카르디날레를 이용해 카르디날레를 물러나게 한 것에서부터, 힐데가르트 릴레의 일로 릴레 후작을 포섭한 일까지.

그녀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세빌 상회를 무너뜨려 황제에게 대량의 현금까지 쥐여 주었다.

군사력과 몇몇 뛰어난 인재, 신진 귀족과 실무진의 지지밖에 가진 게 없던 황제에게 점점 많은 힘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라스 후작가까지 무너져 내렸다. 이제 황제의 패도는 쉽게 막을 수 없어.’

그것이 내키지 않은 것과는 별개로 이제 크라우스 공작가도 입장을 확실히 해야 할 때였다. 그래서 릴리벳 크라우스와의 혼인을 추진한 것이건만.

‘살을 내주려고 했을 뿐인데…… 뼈를 가져가 버렸군.’

좀처럼 놀라는 일이 없는 그조차 릴리벳이 급하게 보낸 전보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을 정도였다.

알트 언덕에서 보이는 크라우스 공작령의 광활한 밀밭은 크라우스 공작가의 자랑이었다.

그런데 그걸 보고서 장관이라고 감탄할 생각은 않고 비료를 떠올려?

크라우스 공작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단련된 무표정 탓에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그 역시도 이번 사태는 곤란했다.

크라우스 공작가는 안 그래도 수가 적은 마법사를 데려와 토지의 생산량이 떨어지는 이유와 그걸 회복시킬 방안을 모색했던 적이 있었다.

그로 인해 초석을 대체할 인공 비료를 개발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큰 부와 힘을 얻었다.

귀족의 힘이란 결국 토지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땅에서 나올 수 있는 수익에는 한계가 있다는 거였어요. 역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넘어가야 하지 않나 싶은데요…….’

전해 들은 말에 따르면 미아 셀레스티얼은 이미 다음 미래를 보고 있는 듯했다. 플로리안 자신은 보지 못하고 있는 미래를 말이다.

“…….”

때마침 그의 생각을 끝내고 싶다는 듯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렸다. 무심히 하늘을 바라보며 크라우스 공작이 생각했다.

‘죽여야 한다. 가급적 오늘 안에.’

릴리벳이 성공한다면 다행인 일이지만, 실패할 때도 대비해야 했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이들이야 쉽게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미아 셀레스티얼은 다르다.

무려 그 미친 황제의 호위를 받고 있는 애완동물을 어떻게 죽이느냐.

그것도 황제의 눈을 피해서.

“…….”

꼿꼿하게 서서 창밖을 바라보며 크라우스 공작은 초가 다 타들어갈 때까지 생각을 이어 갔다.

그리고 초가 반쯤 녹아 사라졌을 때, 크라우스 공작은 가장 위험한 도박을 할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황제까지 같이 처리해야 하는가.’

그가 지금껏 황제에게 무력으로 대들지 못했던 것은 황제의 기사단과 그 휘하의 군사력 때문이었다.

싸워도 이기지 못할 테니까. 그게 이유의 전부였다.

하지만 현재 황제는 기사단 일부만 데리고 내려온 참이었다.

갑작스러운 폭우 때문에 주변과의 연락도 끊겼을 테고, 황도 울름과도 고립된 상황.

차분히, 크라우스 공작은 자신이 가진 패와 황제가 가진 패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천재일우의 기회일지도 모르겠군.’

게다가 때마침 그에게는 써먹기 좋은 인형 하나도 있지 않은가?

번쩍.

내리치는 번개에 반사된 공작의 녹색 눈이 뱀의 비늘처럼 번득였다.

“오르퀘니나의 달이 기울 때가 되었는지 한번 봐야겠군.”

플로리안 크라우스 공작은 곧 탁자 위의 종을 울렸다. 얼마 안 있어 집사 에른스트가 조용히 방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가주님.”

“그래…….”

마지막으로 잠시 망설이던 크라우스 공작이 입을 열었다.

“기사단을 소집하고 인근 영주들에게도 비밀리에 파발을 보내도록. 크라우스는 내일 황제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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