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히히힝!”
“어!?”
“……!”
꽈르릉!
귀청을 찢는 듯한 천둥 소리와 함께 미아가 타고 있던 말이 날뛰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던 다른 말들도 마찬가지였다.
“꺄악! 저기 봐요!”
“위험해요!”
“미아 양!”
릴리벳은 간신히 말발굽에 채이지 않고 빠져나와 남들처럼 놀란 표정을 지었다.
“빨리 진정시켜!”
“이놈들아! 가만히 있지 못해!”
하인들이 재빨리 달려들었지만 한꺼번에 놀라 날뛰는 말을 진정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그사이 미아는 놀랍게도 날뛰는 말 위에서 안장의 전교를 붙잡은 채 버티고 있었다.
“……!”
뒤늦게 질린 얼굴의 페르디안이 다가서려 했지만 어느새 장대비가 내리는 어둠 속에서는 아무리 그라도 해도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스르륵.
반면 아딜로트는 즉각 검을 뽑아 들었다.
그는 무시무시한 얼굴로 제 앞길을 방해하는 말을 아예 베어 가면서 미아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안 돼!’
그가 끼어들게 하면 절대 안 돼! 릴리벳은 발을 동동 구르며 간절하게 빌었다.
‘제발 그냥 떨어져서 즉사해 줘! 그냥 바로 밟혀서 죽는 게 너한테도 더 호상이야! 그러니 제발!’
하지만 그녀의 간절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미아는 떨어지지 않았다.
“……!”
꽈르릉!
그 순간 번개가 한 번 더 쳤다. 이제 말들은 사방팔방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피, 피해!”
귀족들은 미친 듯이 날뛰는 말들을 피하기 위해 우왕좌왕하며 바닥으로 몸을 던지고 있었다. 내리는 비 때문에 그들은 모두 진흙 범벅인 상태였다.
릴리벳의 시선이 다시금 미아가 있는 쪽으로 향할 때였다.
“미아!”
그리고 그 순간, 아딜로트의 외침도 들려왔다.
하지만 그의 외침이 무색하게 미아를 태운 말은 이미 오솔길을 타고 리기모어 숲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됐어!’
릴리벳은 안도했다.
밤의 리기모어 숲은 한 치 앞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말도 못 모는 귀족 영애 따위는 달려가다가 굴러떨어질 게 분명했다.
‘이제 그대로 죽어 주면 돼!’
릴리벳은 뒤늦게 앞으로 나섰다.
“모두 진정하세요! 지금 당장은 비와 어둠 때문에 구조대를 보낼 수 없으니……!”
“말!”
그러나 그녀의 말을 자르고 아딜로트가 나섰다.
무시할 수 없는 위엄이 서린 목소리에 귀족들이 움찔하고 하인들은 부랴부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몇 마리 말은 그가 죽인 상태였고, 다른 말들은 뿔뿔이 흩어진 상태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제 비는 피부가 따끔할 정도로 거세게 쏟아지고 있었다.
“폐, 폐하! 여기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가까스로 하인 한 명이 말 한 마리를 제압해 데려오자마자 아딜로트는 그 위로 올라탔다.
“폐하! 안 됩니다!”
“저희가 가겠습니다!”
기사들이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당장 박차를 가하려는 아딜로트 앞을 페르디안을 막아섰다.
“폐하!”
단호한 음성과 다르게 그 역시도 평소의 차분한 낯이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어 하는 듯 간절한 얼굴이었다.
“제가……, 제가 가겠습니다.”
평소의 페르디안답지 않게 그의 목소리는 불안정했다. 아딜로트는 그런 페르디안을 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너 뭐 한 거야?”
“…….”
“말도 못 타는 애를 두고 자리를 비워?”
노골적인 비아냥에 페르디안의 표정에서는 차분함이 깨져 나갔다. 아딜로트는 그런 페르디안을 보며 다시 혀를 찼다. 그리고 언성을 높여 명령했다.
“키토 후작은 여기서 진상을 파악한다. 가만히 있던 말들이 괜히 날뛸 리 없어. 혹여 이게 누군가의 짓이라면…….”
아딜로트의 서릿발 같은 시선이 그 순간 릴리벳을 향했다. 검은 하늘에 대비되는 붉은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각오해야 할 거야.”
“……!”
릴리벳은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설마 본 걸까?’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그럴 리 없었다.
황제의 성격상, 확실히 봤다면 이미 그녀의 목은 떨어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증거는 없어. 저건 그냥 허세야!’
릴리벳은 최대한 당당한 태도로 허리를 세웠다.
황제는 그런 릴리벳을 살벌한 시선으로 노려보더니 이내 말의 허리를 차올렸다.
“하!”
그리고 여전히 비키지 않고 서 있던 페르디안의 옆을 지나 장대비를 뚫고 사라져 버렸다.
물안개에 가려지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릴리벳은 손을 모았다.
‘여신이시여. 저를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제발, 미아 양이 돌아오지 않게 해 주세요…….’
* * *
미아는 악착스럽게 고삐를 움켜쥔 채 말의 몸에 달라붙었다.
‘무서워!’
빗줄기는 아플 정도로 세게 피부를 때렸고, 앞을 볼 정신 따위는 없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으나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두 다리로 말의 허리를 꽉 붙잡았다.
‘싫어! 죽기 싫어!’
그런 미아의 속도 모르고 말은 숲속으로 전력 질주를 하고 있었다. 늘 오던 숲이기에 이쪽으로 향한 듯했다.
‘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야!’
설상가상으로 중간에 길을 잘못 들었는지 지형이 점점 험해지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천둥 번개는 지표를 울릴 정도로 거세게 내리쳤다.
그러다 어느 순간, 미친 듯이 질주하던 말의 발에 뭔가 걸렸는지 갑자기 멈추어졌다.
히힝!
“악!”
안장에서 몸이 붕 뜬 순간, 미아는 말과 자신이 넘어질 것을 직감했다.
‘고삐를……!’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말에서 떨어질 땐 절대 고삐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머리부터 떨어져서 말발굽에 밟히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주마등처럼 떠오른 정보에 미아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눈을 부릅떴다. 고삐를 놓을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 순간, 마침내 말이 넘어지며 바닥을 굴렀다.
이히히힝!
“크헉!”
그리고 몸이 강하게 땅에 닿는 순간, 그녀는 재빨리 고삐를 놓았다.
하필 내리막길이었기 때문에 말은 미아를 두고도 조금 더 굴러 내려갔다. 그리고 축 처진 채 꿈틀거렸다.
“아…… 흑…….”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미아는 거센 숨을 몰아쉬며 겨우 상체를 일으켰다. 온몸이 두드려 맞은 듯이 아파 왔다. 하지만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는 듯했다.
“하…….”
미아는 덜덜 떨리는 어깨를 움켜쥔 채 꿈틀거리는 말을 바라보았다.
‘살았다…….’
그제야 심장이 제자리를 찾은 것 같았다.
처음 말이 날뛸 때 고삐를 놓치지 않은 것.
말이 쓰러질 때 같이 깔리지 않은 것.
넘어질 때 말발굽에 차이지 않은 것…….
엄청난 기적이었다.
하지만 기적에 감사할 겨를도 없었다. 머리 위로 바로 번개가 번쩍였다.
번쩍. 꽈르릉!
“히끅.”
미아가 딸꾹질했다.
안 그래도 저녁에 가까워지던 시간이었는데 하늘에는 짙은 구름이 깔린 데다 송곳 같은 비가 내리는 중이었다.
어느새 어두워진 숲 때문에 이곳이 어딘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무서워.’
눈물이 줄줄 흐르는 상황에서도 생존 욕구가 솟아올랐다.
‘일단은 비라도 피해야…….’
미아는 입술을 깨물고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강한 통증이 발목에 느껴졌다.
“아!”
미아가 찡그린 얼굴로 자신의 발목을 내려다보았다. 넘어질 때 잘못 삐었는지 발목이 퉁퉁 부어 있었다.
비 때문에 체온은 점점 내려가고 있었고, 주변에 있는 거라곤 죽어 가는 말 한 마리뿐.
미아의 숨이 거칠어졌다. 그녀가 저도 모르게 울먹였다.
“아딜…….”
그렇게 말한 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바보 같아.’
아딜로트는 황제다. 자기 ‘애완동물’이 위험에 빠졌다고 똑같이 위험한 곳에 올 리가 없다. 와서는 안 된다.
옆에 페르디안이 있었으니, 아딜로트가 오려고 해도 냉철한 그가 막았을 것이다.
‘혼자 해야 해. 할 수 있어. 기다리면 돼. 누가 구하러 오긴 할 거야.’
미아는 마음을 다잡고 한쪽 다리로 몸을 지탱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불편한 걸음걸이로 근처의 큰 나무 밑으로 향했다.
바늘로 쑤시는 것 같던 비를 피하자 그나마 좀 나았다. 미아는 몸을 웅크리고 덜덜 떨려오는 무릎을 끌어안았다.
‘아까 분명 릴리벳이었지.’
미아도 정확히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번개가 번쩍인 순간, 릴리벳의 손에서 뭔가 날카로운 것이 빛을 반사한 것은 확실히 보았다.
미아가 눈을 질끈 감았다.
‘원작에서는 그렇게까지 하는 인물은 아니었는데.’
원작에서 릴리벳 크라우스는 늘 품위를 유지하려고 하는 인물이었다. 늘 일을 벌이는 건 그녀의 추종자들이었다.
‘뭐가 뭔지 모르겠어. 엉망진창이야…….’
미아는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였다.
‘얼마나 지난 거지?’
그러고 있기를 한참.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빗줄기는 약해질 기미가 없었다. 그녀를 찾으러 오는 사람도 없었다.
숲은 고요했고, 큰 나무 아래에서는 밤새들이 비를 피하며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분명 구조대가 편성됐을 텐데.’
미아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못해도 한 시간은 지난 것 같았다. 숲에 길이 여러 갈래라서 찾지 못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정말로 아무도 안 오는 걸까…….’
운 나쁘게도 몸이 점점 으슬으슬해지고 있었다. 체온이 낮아져서인지 점점 졸음이 몰려왔다.
‘자면 안 되는데.’
미아는 몸을 옹송그린 채 눈물이 마르지 않는 눈을 감았다.
“―아!”
어디선가 환청처럼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아딜 목소리…….’
그대로 미아가 눈을 감으려던 때였다.
“―미아!”
“……!”
좀 더 가까이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미아가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아딜?”
“미아! 젠장……!”
목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설마 아딜이 온 거야?’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미아는 저도 모르게 외쳤다.
“아딜!”
장대비에 가로막혀 잔뜩 쉰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미아는 그 순간 공기가 숨죽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아딜로트가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것을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