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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141화 (141/193)

141화

“게다가 미아 양은 폐하께 관심이 없어 보이던걸요.”

“…….”

그 말에, 내내 잘 벼린 칼 같던 황제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그의 눈이 살짝 커진 것을 본 릴리벳은 한숨을 쉬었다.

‘거짓말은 싫지만 공익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지.’

릴리벳이 진심을 숨기려 눈을 내리깔았다.

“얼마 전 미아 양와 티 타임을 가졌어요. 그때 미아 양이 그러더군요. 자신은 주말농장이나 하고 싶다고. 그게 오르퀘니나와 폐하를 위해서 옳은 일이라고.”

“……미아가 그렇게 말했다고?”

아딜로트가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는 듯했지만, 그는 어느새 긴장하고 있었다.

릴리벳은 거기에 쐐기를 박았다.

“네. 미아 양은 폐하의 곁을 떠나고 싶어 해요.”

* * *

릴리벳이 티 룸으로 미아를 불러냈을 때, 미아는 약한 불안감을 느꼈다. 그녀가 중앙궁에서 나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아딜이랑 뭔갈 얘기했나?’

그녀의 불안을 눈치챘는지 제인은 굳은 얼굴이었다.

“최대한 예쁘게 꾸며드릴게요. 미아 님.”

“…….”

미아는 주먹을 꼭 쥔 채 그걸 말리지 않았다.

그렇게 단장을 마치고, 레벤토르의 티 룸에 들어서자 릴리벳이 이미 미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미아 양.”

릴리벳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미아를 맞이했다. 그녀의 당당하고 우아한 얼굴에는 이전에 봤을 때보다 더한 자신감이 가득했다.

“무슨 일로…….”

“일단 앉죠.”

릴리벳이 턱짓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미아를 하대하는 모습에 미아를 따라온 제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릴리벳은 심지어 그걸 놓치지도 않았다.

“제인 고트샬크 씨.”

“……!”

릴리벳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제인은 눈을 크게 떴다가, 물 흐르듯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네. 릴리벳 크라우스 님.”

릴리벳은 차향을 맡으며 눈을 내리깐 채 입을 열었다.

“궁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표정 관리를 좀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제인 씨는……!”

당황한 미아가 서둘러 그녀를 변호하려 했으나 제인이 좀 더 빨랐다.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제인은 평온하고 무심한 낯으로 고개를 깊이 숙였다. 릴리벳은 그런 제인의 태도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저었다.

“가 봐요.”

제인이 잠자코 물러났다. 릴리벳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미아의 얼굴을 보더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미아 양. 앉아요.”

“…….”

미아는 입술을 꾹 깨물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릴리벳이 바로 본론을 꺼냈다.

“우선, 같이 나들이를 가는 게 어때요? 크라우스 공작령으로요.”

예상치 못한 말에 미아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나들이요?”

“네. 오르퀘니나를 이끌 젊은 귀족들끼리 친분을 다지는 시간을 가지려고요.”

“아…….”

약하게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릴리벳은 미아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대신 파트너를 데려와야 해요.”

“파트너요?”

“네.”

녹색 시선이 흔들림 없이 미아를 꿰뚫었다. 미아는 다음 순간 그녀가 할 말이 뭔지 눈치챘다.

“제 파트너는 폐하예요. 폐하께서 저와 가시기로 했어요.”

아주 서서히 미아의 눈이 크게 뜨였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사람처럼 입술만 달싹거리는 미아를 보며 릴리벳은 만족스러움과 안타까움을 둘 다 느꼈다.

그러게 진작 물러났다면 이런 우스운 꼴을 당하진 않았을 텐데.

“속상할지도 모르지만, 폐하를 이해해 줘요. 공적인 업무잖아요? 크라우스 공작가와 황실의 결합은 중요한 문제고요. 폐하께서는 오르퀘니나의 황제시니, 나라를 위한 선택을 하실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

“미아 양도 그 뜻에 공감해 주길 바라요. 폐하께서 그러셨듯이 말이에요.”

정확히는 아딜로트가 충격을 받은 사이 재상을 통해 날치기처럼 승낙을 받아온 것이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황실과 크라우스 공작가의 결합으로 나라를 안정시키는 것. 대의를 위한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몰락 영애의 자존심이 조금 상하더라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 그럼 이야기는 끝났고……. 초대장을 두고 갈게요. 아무나 좋으니 데려와요.”

할 말을 마친 릴리벳은 품에서 초대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몇 걸음 걸어나갔다가, 여전히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미아를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그래서 그 신사분은 아직도 친구분을 좋아한다던가요?”

그녀는 그 말을 남긴 뒤 떠나갔다.

* * *

분홍색 유령이 황궁을 떠돌기 시작했다. 정신줄을 놓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의 미아였다.

제인이 ‘뭔가 이상하다, 그럴 리 없다’며 미아를 만류했으나, 미아는 비틀거리며 가장 먼저 지로티 공작에게 찾아갔다.

“할아버지. 저랑 나들이 가실래요?”

“음?”

국방부 대신으로서 업무를 보고 있던 지로티 공작은 미아를 보자마자 당황했다.

“자네 꼴이 왜 그러나?”

“제 꼴이요?”

미아가 영혼 없이 고개를 갸웃했다. 눈이 텅 비어 있었으나 본인은 모르는 듯했다.

지로티 공작이 당황으로 땀을 삐질 흘렸다.

“무슨 나들이길래 그런 상태가 된 게야?”

“릴리벳 양이 크라우스 공작령으로 나들이를 가재요.”

“거기에 자네도 초대를 받았다고?”

지로티 공작이 흠칫했다. 그는 뭔가를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괜히 턱수염을 매만졌다.

“뭐, 폐하가 계시니 괜찮겠지. 그런데 지금 나더러 거기 같이 가 달라는 건가?”

“안 되나요?”

지로티 공작이 허, 하고 침음성을 흘렸다.

“자네, 내가 북부 지로티 공작가의 가주라는 건 알고 말하는 거겠지?”

“쎄다는 뜻이니까 좋지 않을까요…….”

미아가 음울하게 답했다. 늘 하얀 빵 같던 양 볼에 그늘이 진 것을 본 지로티 공작은 당황하고 말았다.

“이보게 자네. 폐하도 원해서 그런 곳에 가시는 건 아닐세. 재상의 책략 때문에…….”

“상관없는데요…….”

상관없는 얼굴이 아닌데.

지로티 공작이 끙 하고 침음을 내뱉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난 안 되겠네. 내가 크라우스 공작령에 갔다간 그날로 전쟁일세.”

“역시 그렇겠죠…….”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미아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지로티 공작은 이내 주변의 눈을 살피며 낮게 말했다.

“그리고 자네가 맡긴 그거 말일세.”

“……분석 끝났나요?”

죽은 북어 같던 미아의 눈이 반짝였다.

일전에 미아는 지로티 공작에게 황태후가 준 극독의 분석의 맡긴 적이 있었다.

“보통 독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네. 코끼리도 즉사시킬 수준이야.”

지로티 공작은 곤란하다는 듯이 턱수염 쓸었다.

“그리고 아마 특별한 방법으로 제조한 모양이네. 엠브라 테타 양의 도움을 받았는데도 아직 성분 분석을 마치지 못했으니 말이네. 아무래도 황립 의료원의 전 의원들이 만든 게 아닌가 싶네만…….”

“전 의원들이면 엠브라의 부모님이요?”

“그보다 더 전의 의원들이네. 한때 크리소르 황태후가 의원들을 데리고 뭔가 비밀리에 연구 중이라는 이야기가 있었거든.”

“그럼 그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요?”

지로티 공작이 피식 웃었다.

“크리소르 황태후가 그걸 살려 뒀겠나? 다 죽여 버렸지. 설령 운 좋게 살았더라도 어딘가에 숨어 지낼 게 분명하다네.”

미아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해독제는 그럼 못 만든 건가요?”

“흠, 흠! 내가 또 누군가. 해독제 비슷한 걸 만들긴 했지! ……물론 테타 양의 도움이 컸네만.”

그렇게 말하며 지로티 공작이 품에서 슬쩍 작은 유리병을 꺼냈다.

“감사합니다!”

미아가 말보다 빠르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지로티 공작은 다시 유리병을 자기 품에 집어넣고 눈을 가늘게 뜰 뿐이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성분 분석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네. 따라서 이 해독제도 미완성품이야.”

“네! 감사합니다!”

“마시면 안 된다는 뜻일세. 알아듣겠나!”

“네! 감사해요!”

“…….”

지로티 공작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서 유리병을 미아에게 넘겨주었다. 유리병은 순식간의 미아의 주머니 속으로 쏙 들어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미아를 보며 지로티 공작은 여전히 걱정스럽다는 얼굴이었다.

“자네. 이번엔 절대로 조심해야 하네. 저번의 루비트 용액처럼 쉬운 독이 아니야. 내성이 없는 자네 몸으로는 일다경도 지나지 않아 사망일세.”

주머니를 토닥이던 미아가 멈칫했다.

“그럼 혹시 이 독이 쓰였을 때 그걸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이 독은 무색, 무미, 무취라네. 음식에 섞이면 절대 구분할 수 없어. 그러니 조심하라는 거네. 크리소르 황태후가 이런 걸 가지고 있는 거라면, 크라우스 공작도 같은 것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으니 말일세.”

미아가 잠자코 원작의 릴리벳을 떠올렸다.

릴리벳 크라우스.

크라우스 공작가의 일원이라는 자긍심과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그녀는, 자신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인물이었다.

따라서 그녀는 독 같은 비겁한 방법을 쓸 위인은 아니었다.

‘성격이 좀 재수없을 뿐.’

미아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아딜 잘 지켜볼게요.”

미아의 대답에 지로티 공작이 예상했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폐하는 괜찮네. 폐하 말고 자네나 걱정하게.”

“아딜, 코끼리보다 강해요?”

“독에 관해서라면 그런 편일세.”

“오…….”

미아가 감탄했다.

로판남주 대단하잖아…….

“게다가 크라우스 공작의 초대를 받고 간 상황에 폐하께 별고가 생길 리가 없지 않은가. 그날로 오르퀘니나는 전쟁일 텐데. 그보단 자네가 문제지!”

지로티 공작이 끝에 가서 버럭 외쳤다. 그러더니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그냥 할아비가 같이 갈까?”

“아뇨. 애들 노는데 어른이 끼면 안 되죠. 감사합니다!”

미아는 그대로 쪼르르 도망쳤다.

혼자 남은 미아는 저도 모르게 황립 의료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늘 세레니티가 그곳에 있었기에 습관이 든 것이다.

하지만 세레니티가 엠브라와 렌나에게 의학을 배우던 야외 테이블은 비어 있었다.

미아는 멍하니 그곳에 앉았다.

‘얼른 다 해결되고 예전처럼 다 같이 놀면 좋겠다.’

미아가 시무룩하게 주머니 속의 골칫거리를 꺼내 들었다. 지로티 공작에게 맡긴 뒤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극독이었다.

“어쩐다…….”

손수건 위의 작고 투명한 구슬.

‘먹으면 즉사라 이거지.’

파트너는 둘째치고, 만약 이런 게 크리소르에게 여러 개 있다면 정말로 곤란했다. 지로티 공작의 말에 따르면 아딜로트야 괜찮다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으니까.

‘만약 정말로 황궁을 나가게 되면 비밀정보부의 보호도 못 받을 텐데…….’

미아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 바람에, 손톱 끝에 걸려 있던 독이 손수건 위에서 굴러떨어졌다.

“헉.”

미아가 재빨리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다행히 독은 무사했다.

‘십년감수했네.’

그 순간, 한숨을 쉬는 미아 앞에 곧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미아 님? 왜 그러고 계세요?”

미아가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회잿빛 머리카락을 대충 묶은 키 작은 의원이 서 있었다. 황립의료원 수석 의원이자 황태후의 주치의인 렌나였다.

순간 미아는 주춤했으나, 이내 누구라도 그냥 봐선 이게 뭔지 모르리라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하지만 아니었다. 미아의 손에 들린 것을 본 렌나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미아 님……. 그거 어디서 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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