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135화 (135/193)

135화

“미아…… 양이죠?”

그녀는 당황한 미아와 미아 옆의 타르트를 보더니 손으로 입을 가렸다.

“아. 여기서 타르트를…… 드시고 있었나요? 혼자?”

“…….”

“괜찮아요. 나쁘게 보는 건 아니니까. 그게 뭐 흠이라고요. 다만 조금 비위생적인 듯해서.”

릴리벳은 생긋 웃고는 파고라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예의상 주변을 둘러보다가 미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저를 알고 있겠지만, 정식으로 소개할게요. 릴리벳 크라우스입니다.”

“미아예요. 애완동물입니다.”

미아가 우울하게 답했다.

‘아딜로트를 피해 도망쳐 왔는데 릴리벳을 만날 건 뭐람.’

릴리벳은 그녀를 내켜하지 않는 미아의 태도에도 그저 싱긋 웃었다.

“음. 미아 양은 매우 똑똑하다고 들었어요.”

“감사합니당.”

“그러니까 굳이 예의 차리면서 얘기하진 않을게요.”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는 걸까?

미아가 여전히 뚱한 얼굴로 릴리벳을 바라보았다. 그 표정을 보며 릴리벳은 곤란하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역시 이런 건 어렵네요. 하지만 황후는 이런 말도 할 줄 알아야 하는 거겠죠. 음…….”

“…….”

“좋아요. 너무 기분 나쁘게 듣지는 말고요. 원하는 거주지가 있나요?”

“……?”

미아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릴리벳이 아차 하고 덧붙였다.

“아. 미안해요. 내가 또 나 혼자 생각하고 말했네. 혹시 황궁을 나갔을 때 살고 싶은 동네가 있는지를 물어보는 거였어요. 가문도 망했는데, 집도 없이 쫓겨나면 좀…… 불쌍하잖아요.”

그 말에 미아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황궁을 나갔을 때…….”

“네. 미아 양은 곧 나갈 테니까 아무래도 거주지는 미리 구해 놓는 게 낫지 않나 해서요.”

“…….”

“돈은 크라우스 공작가에서 낼 테니 걱정하지 말고요. 그리고 혹시 폐하께서 미아 양을 지원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저는 승낙할 생각이에요.”

릴리벳은 그렇게 말하며 방긋 웃었다. 악의 한 점 없이 순수하게 선의로만 이루어진 미소였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살짝 미아 옆에 다가가 섰다.

“사실 전 미아 양의 상황에 대해 안쓰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 바람에 난간 위에 올려놓았던 복숭아 타르트가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릴리벳은 그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반면 미아는 스르르 복숭아 타르트의 주검으로 시선을 옮겼다.

“황제 폐하만 믿고 지냈을 텐데, 이렇게 되어서 불안하죠? 하지만 걱정하지…….”

“지금 제 복숭아 타르트 떨어뜨린 거예요?”

“……네?”

릴리벳이 잘못 들었다는 듯이 반문했다. 미아는 슬픈 눈으로 바닥에 엎어진 복숭아 타르트를 바라보았다.

“아직 더 먹을 수 있었는데…….”

“……사 줄게요.”

“황실 주방장이 만든 거라 못 사요.”

“……제가 만들라고 시키죠. 그럼 됐나요?”

“복숭아 철 끝났는데……. 마지막 복숭아였는데…….”

미아가 침울해졌다.

릴리벳은 일순 당황한 듯했으나, 이내 알 만하다는 듯이 쓴웃음을 지었다.

“음. 미아 양. 저를 견제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그러지 않아도 돼요. 전 폐하를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저도 아딜을 사랑하는 건 아닌데요…….”

“…….”

미아의 침울한 답에 릴리벳은 다시 할 말이 없어졌다.

그녀의 짙은 눈썹은 생전 처음 외계인을 만난 사람처럼 당혹으로 꿈틀거렸다.

“아. 좋아요. 그렇군요. 음…….”

릴리벳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화제를 돌렸다.

“그러니까, 어쨌든 원하는 거주 지역을 알려 주면 제가 처리하도록 할게요. 알았죠?”

미아의 슬픈 눈이 이번에는 릴리벳을 향했다.

“근데 폐하도 그렇게 하신대요?”

“네? 당연히 하시겠죠. 크라우스 공작가인걸요.”

그렇게 대답한 릴리벳은 멈칫하고는 곤란한 듯이 말을 이었다.

“아. 설마 미아 양……. 포기하지 않으시겠다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

“흠? 이런 경우는 예상 못 했는데…….”

릴리벳이 미아의 말을 자르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서성였다.

한참 뒤 그녀는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미아 양. 머리가 나쁘지는 않다고 들었거든요. 음……. 미아 양 말고 제가 폐하와 결혼하는 게 오르퀘니나를 위해서도 훨씬 좋은 일이라는 건 알고 있는 거죠?”

그 말에 처음으로 미아가 흠칫했다. 릴리벳의 예리한 녹색 눈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알 거예요, 미아 양도. 크라우스 공작가가 폐하를 지지하면 얼마나 이 나라가 부강해지고 평화로워질지. 그런데도 고집을 부리진 않겠죠?”

릴리벳이 그렇게 말하고서 제 말이 웃긴지 후후 웃음을 터뜨렸다.

“미안해요. 바보가 아니고서야 그걸 모를 리 없는데 설명씩이나 해 버렸네. 아무튼 잘 부탁해요. 이제 가 봐요.”

* * *

미아는 슬픈 얼굴로 황제궁으로 돌아왔다.

지나가던 궁인들은 그녀의 안색을 보고는 갑자기 황궁에 사는 들고양이를 데려와 품에 안겨 주었다.

미아는 고양이를 끌어안고 침울하게 궁에 들어섰다.

곧장 시녀 중 한 명의 비명이 들려왔다.

“꺄……악! 미아 님, 그 고양이는…….”

“폭신폭신해.”

“……궁 안엔 안 돼요!”

“폭신폭신한데…….”

미아가 말끝을 흐리며 고양이를 놓아주었다.

떠나가는 고양이를 보며 미아가 중얼거렸다.

“난 어디로 가야 하지…….”

그 말에 주변의 시녀들이 움찔했다.

그들은 시선을 교환하더니, 재빨리 최고참이자 황제의 수석 시녀인 제인을 데려왔다.

“어머, 미아 님? 일단 씻으시도록 하죠.”

빠르게 나타난 제인은 능숙하게 그녀를 씻기고, 네롤리 오일까지 발라 침대 위에 앉혔다.

“가시긴 어딜 가요. 미아 님의 집은 이제 여기인걸요.”

제인이 미아의 머리카락을 빗겨 주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하지만 미아의 안색은 나아질 줄을 몰랐다.

“등기부 등본에 따르면 그렇진 않은데요…….”

“……나중에 폐하께서 올려 주실 거예요.”

그렇게 말한 제인은 뒤늦게 미아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보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제인은 그렇게 말하며 은쟁반 하나를 가져왔다. 그 위에는 편지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게 뭐예요?”

미아의 질문에 제인은 착잡한 얼굴로 말했다.

“세레니티 듀레인 님이 남기신 편지입니다.”

“……?”

‘남겼다’니? 어감이 이상하다.

미아가 불안하게 편지를 펼쳤다.

그리고 불안한 예감은 적중했다.

⌜미아. 저 렌이에요.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들이닥쳐서 듀레인가로 돌아가게 되었어요.

황태후 폐하의 인가도 받아서 거부할 수 없었어요.

미아가 힘들 때 옆에 있어 주지 못해 미안해요.

금방 다시 미아 곁으로 돌아갈게요.

―사랑을 담아, 세레니티 듀레인.⌟

편지를 다 읽은 미아의 입이 벌어졌다. 정황은 대충 짐작이 갔다.

그나마 자신이 황후 후보라서 세레니티를 내버려 두던 에밀 듀레인 남작이, 릴리벳 크라우스가 대두되자 급히 발을 뺀 게 분명했다.

‘치사한 작자 같으니.’

세레니티가 없어지니 어쩐지 마음이 허했다. 그런 미아의 속을 짐작했는지 제인은 안쓰러운 듯이 말했다.

“그리고 폐하께서 최대한 빨리 업무를 처리하고 오시기로 했습니다.”

미아가 멈칫했다.

“아딜이요?”

“네. 아까 말씀도 남겨 두셨어요. ‘직접 보고 설명해 줄 테니 절대 오해하지 말라’고…….”

“…….”

뭘 오해한다는 걸까.

아딜로트가 당장 릴리벳과 결혼하려 들기라도 할 거라고?

미아가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없지.’

원작에서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세레니티와 아딜로트는 그 무렵 이미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자신이었다.

‘나만 사라지면 크리소르를 바로 끝장낼 수 있어. 그러면 아딜도 할아버지도 엠브라도 한이 풀릴 거야.’

미아가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지금까지 주인공의 행복을 위해서 달려왔는데, 이제 와서 망설이는 자신이 우스웠다.

“미아 님…….”

“…….”

제인이 쩔쩔매며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미아는 정신을 차렸다.

‘걱정 끼치면 안 돼!’

그리고 고개를 들고 걱정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제인을 향해 보시시 웃어 주었다.

“오해 안 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 주세요!”

* * *

“그게 끝이야?”

아딜로트는 미아의 말을 그대로 전달받고도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는 요아힘이 작정하고 미친 듯이 올리고 있는 서류를 살피고 서명하느라 거의 손이 여덟 개는 되어 보였다.

“네. 그렇게만 말씀하셨습니다.”

제인의 답에 아딜로트는 고양이처럼 날카롭게 뻗어 있는 눈매를 찡그렸다.

“정말 그게 끝이라고? 더 없어?”

“예.”

“…….”

제인의 말에 아딜로트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어쩐지 속이 얹힌 듯 무거웠다.

여러 반응을 예상했다. 토라지거나, 화를 내거나. 미아의 성격상 울진 않겠지만, 조금쯤은…… 서운해하거나.

그런데 오해 안 하니까 걱정하지 말라니.

아딜로트가 펜을 꾹 쥐었다.

‘너는…… 내가 다른 사람이랑 결혼해도 상관없어?’

그런 유치한 질문이 머릿속에서 맴돌기 시작했다.

“하…….”

무거운 한숨이 잇새로 흘러나왔다. 당장 확인하러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그럴 수도 없었다.

“폐하. 한숨 쉴 시간이 있으시면 이쪽 서류도 부탁드립니다. 에트루리나 지역 지원 사업 목록입니다.”

아무래도 재상이 미친 것 같다. 아딜로트의 눈매가 길어졌다.

요아힘은 아예 황제의 집무실에 터를 잡고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서류를 쳐내고 있었다. 그가 유능하단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요아힘. 적당히 하지?”

“나랏일에 ‘적당히’라는 말은 없습니다. 폐하.”

빙그레 웃으며 하는 말에는 허점도 없었다.

그때, 슐츠 공작이 뭔가를 가지고 들어왔다. 그는 낭패감을 숨기지 못하고 은쟁반을 들고 있었다.

“폐하…….”

부드러운 인상의 궁내관은 이런 말을 전하게 되어 몹시 괴롭다는 듯이 말했다.

“크라우스 공작의 서신입니다.”

와작.

아딜로트가 보고 있던 서류가 손에서 구겨졌다.

“공식 문서를 구기시면 안 됩니다. 폐하.”

요아힘의 낭랑한 바른말을 뒤로하고 아딜로트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슐츠 공작이 그 위에 서신을 얹어 주었다.

시더우드 향기가 나는 녹색 편지지.

아딜로트는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서신을 뜯었다.

“……하.”

곧 편지를 다 읽은 그가 헛웃음을 쳤다.

“웃기지도 않는군.”

“방금 웃으셨습니다. 폐하.”

“궁내관. 저거 좀 내보내.”

“하하…….”

아딜로트가 짜증스럽게 머리카락을 넘겼다. 편지에 쓰여 있는 것은 회합 요청이었다.

거절하려거든 크라우스 공작가의 체면이 있으니 최소한 세 번은 릴리벳 크라우스와 만나 달라는 내용이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