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131화 (131/193)

131화

미아는 중앙궁 앞에 아딜로트와 함께 서서 호흐실트 후작이 압송되어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봉두난발을 한 호흐실트 후작의 뒤로는 그가 팔아넘기려 한 전로 역시 마차째로 옮겨지고 있었다.

미아가 남몰래 감탄했다.

‘그렇구나. 이러면 당연히 호흐실트 후작도 기술을 못 쓰고, 이미 미로미스 전로 기술을 팔아먹었다고 해도 더는 못 쓰겠지.’

역시 요아힘이었다.

‘이거 미로미스 전로에서 생산된 강철이 너무 잘 깨져서 문제라는 거죠?’

‘석회암을 쓰면 돼요!’

분명 그런 정보를 준 적이야 있었다.

국방부를 담당하는 지로티 공작이 공작령에서 미아의 정보를 이용해 새 전로를 개발했다는 소식도 전해 듣긴 했다.

하지만 대대적으로 전로를 교체하진 않아서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는데, 그걸 이렇게 써먹을 줄이야.

미아가 요아힘을 흘끔거렸다.

‘절대 적으로 돌리지 말아야지…….’

그즈음 가장 앞에서 압송되던 호흐실트 후작이 황제 앞에 다다랐다. 리누스 호흐실트는 미아를 발견하자마자 눈을 부라렸다.

“너 이 계집애!!”

멀끔하고 능글맞던 모습은 어디 가고 악에 받친 모습이었다. 미아가 아딜로트 뒤로 쏙 숨었다.

“호흐실트 후작. 아니, 리누스 호흐실트.”

아딜로트는 당연하다는 듯이 미아를 가리며 차갑게 말했다.

“죗값은 목숨으로 치러야 할 거야.”

“……!”

무정한 말에 호흐실트 후작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그대로 기사들에게 질질 끌려갔다.

미아는 아딜로트의 옷자락을 잡고 그의 등 뒤에서 나왔다.

“거기 감옥에 갇히는 거예요?”

“독방에.”

“헉. 거기 엄청 무섭던데.”

“그렇지. 누구는 펑펑 울었지.”

“……그거! ……때문! ……아니었거든요!”

미아가 빨개진 얼굴로 아딜로트의 등을 팡팡 때리기 시작했다. 황제의 등을 때리는 무엄한 행동이었으나 솜방망이 같은 주먹에 주변 사람들은 흐뭇한 미소만 지었다.

씩씩거리던 미아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마차 행렬을 보며 말했다.

“근데 전로 몇 개인 줄만 알았는데 마차가 많네요?”

그 말에 요아힘 뒤에 서 있던 재무부 직원들이 동시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직 한참은 더 와야 합니다!”

“맞습니다! 저희의 행복을 위해서!”

“네?”

“전로의 운송은 끝났습니다. 지금 들어오는 건 세빌 상회와 호흐실트 후작의 재산입니다. 간첩죄를 저지른 자는 재산을 몰수하는 것이 국법이니까요.”

요아힘이 미소 지으며 설명했다. 그 말에 미아는 다시 마차 행렬을 바라보았다.

끝이…… 없었다.

“저게 다…… 돈이라는 거죠?”

“네.”

멍하니 마차를 바라보던 미아가 말했다.

“저 상여금 안 주나요?”

“나중에 찔러드리겠습니다.”

* * *

똑. 똑.

어디선가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어둠 속이라서인지 소리가 더 잘 들렸다. 호흐실트 후작은 독방에 갇힌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 됐지?’

이럴 순 없는 거였다. 고지가 코앞이었는데!

그의 눈이 질끈 감겼다.

페르디안 키토 후작은 검을 뽑자마자 온몸에서 예기를 뿜어내며 단숨에 바라하 장군을 진압했다.

자신의 기사들도 애썼지만, 라지푸트와의 전쟁에서 실전을 겪고 돌아온 황제의 기사단을 이길 수는 없었다.

“끄으. 흐으으……!”

후작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튀어나왔다.

‘이게 다 그년 때문이다!’

미아 셀레스티얼. 그 별거 아닌 계집애가 ‘미로미스 전로’ 이상의 것을 숨기고 있었다니!

애초에 미로미스 전로 자체도 혁명적인 물건이었다.

그런데 새로 고안한 ‘지로티 전로’는 그 20배라니.

믿을 수 없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그의 머릿속에 있는 미로미스 전로 따위는 이미 가치가 없었다.

“젠장! 젠장! 그 썩을 년! 망할 계집애 같으니!”

게다가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제철소에 숨겨놓았던 그라스 후작과의 계약서까지도 찾아낸 모양이었다.

죽인 줄 알았던 기술자 역시도 살아 있었다.

“그! 망할! 재상!”

쾅! 쾅!

호흐실트 후작이 분노에 못 이겨 수갑으로 바닥을 내려쳤다.

전로 자체는 미아 셀레스티얼이 고안했겠지만, 판을 짠 것은 재상이리라. 그 샌님의 가증스러운 미소가 호흐실트 후작의 눈에 아른거렸다.

그때,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호흐실트 후작이 있는 감옥 창살을 붙잡았다.

“이, 이! 당신!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요!”

“하…….”

“똑바로 걸으십시오, 그라스 후작.”

감옥 담당 기사에게 잡혀 들어온 그라스 후작이었다.

‘저런 팔푼이도 있었지.’

호흐실트 후작이 경멸의 시선으로 그라스 후작을 바라보았다. 그라스 후작은 그것을 읽어내곤 더 거칠게 쇠창살에 달라붙었다.

“당신 때문에 나까지 끌려 들어왔잖소! 빨리 나는 라지푸트와 관계없다고 말해! 어서!”

“그라스 후작. 걸으십시오.”

“이래서 장사치들은……!”

그의 등을 밀어낸 기사는 더는 경고하지 않았다. 그저 발로 그라스 후작의 오금을 거세게 밟을 뿐이었다.

“악!”

그라스 후작이 거위 같은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내가 누군 줄 알고……. 내가 누군 줄 알고!”

“당신이 누구든 황제 폐하께서 제대로 관리하라 명하신 철광석을 빼돌리고 라지푸트와 내통할 권한은 없습니다.”

그의 호소와 흐느낌에도 기사는 냉담했다. 그렇게 그라스 후작은 그대로 지하감옥의 다른 독방으로 끌려갔다.

“…….”

그 상황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직관한 리누스 호흐실트 후작은 고개를 떨군 채 움직이지 않았다.

오르퀘니나에서 간첩죄는 사형이다.

그는 죽을 것이다. 무조건.

‘……죽기 싫어!’

뒤늦은 두려움이 몰려왔다. 손가락 끝이 벌벌 떨려 오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그때, 여리여리한 그림자 하나가 쇠창살 앞으로 다가왔다.

“리누르 호흐실트 후작 각하. 식사입니다.”

리누스 호흐실트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지하 감옥의 어슴푸레한 불빛에 평범한 인상의 시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손에는 쟁반이 들려 있었다.

멀건 수프와 빵이 전부였다.

세빌 상회의 주인으로서, 호흐실트 후작가의 가주로서 살던 그에게는 턱없이 수준 낮은 식사였다.

‘역시 이런 곳에 있을 순 없어.’

호흐실트 후작이 입매를 다잡았다.

“이봐, 시녀. 황제에게 내 말을 전해.”

“네?”

“내가 누굴 통해 라지푸트와 접선했는지 증언하겠다고 전하면 알아들을 거다.”

리누스 호흐실트는 그렇게 말한 뒤 저도 모르게 심호흡했다.

‘이젠 정말 이 길뿐이야. 일단 살아만 남으면 어떻게든 재기할 수 있어!’

세빌 상회는 오르퀘니나 국내 최대의 상회지만 국제 교역은 많지 않다. 그래서 미로미스 전로를 보면서도 입맛만 다셔 왔는데, 그런 그에게 누군가 제안해 온 것이다.

‘라지푸트에게 팔아 볼 생각은 없나?’

호흐실트 후작은 그 손을 잡았다.

‘황제라면 반드시 이 정보를 탐낼 것이다.’

인물이 인물이다 보니 ‘그 사람’과 연락한 증거는 자신만 아는 곳에 숨겨놓았고, 그걸 미끼로 구명을 요청하면 될 터였다.

“알겠나? 황제에게 가서…….”

“예. 후작 각하. 그보다 식사를 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꼬르륵.

그제야 리누스 호흐실트는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배에서 새어 나오고 있던 소리를 눈치채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연달아 터진 사건 때문에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였다.

‘내키진 않지만 어쩔 수 없지.’

그는 마지못해 빵을 집어들어 수프에 찍어 먹었다.

그리고 그 순간, 평범한 인상이라고 생각했던 시녀의 얼굴이 조각처럼 무기질적으로 변했다.

그 변화는 지나치게 극적이라서, 그녀를 전혀 의심하지 않고 있던 호흐실트 후작마저 절로 멈칫할 정도였다.

“……커헉!”

그것도 잠시.

호흐실트 후작의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이게, 무슨…….’

뭔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의 몸이 돌바닥으로 쓰러졌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시녀가 얼굴에서 뭔가를 뜯어내며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는 장면이었다.

* * *

“처리했나?”

노을이 지는 저녁, 정원에서 차를 마시며 크리소르 크라우스 황태후가 말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으나, 어딘가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네. 더는 당신이 라지푸트와 내통했다고 증언할 수 없을 거예요…….”

정원의 백합에 물을 주고 있던 건장한 체격의 정원사가 말했다.

“서류는? 리누스 호흐실트의 성격에 분명 기록이나 증거 하나쯤은 챙겨 두었을 텐데.”

“길드에서 찾는 중이에요…….”

“쯧. 확실히 처리하도록.”

크리소르가 혀를 차곤 찻잔을 들었다.

그녀는 일찍이 만리타 장군과 호흐실트 후작을 이어 주었다.

전로가 라지푸트로 유출되어 그들이 국방력을 갖추고, 다시 오르퀘니나를 침공해 주기를 바라며 말이다.

자신 역시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아딜로트를 무너뜨리고 아들의 복수를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괜히 시간만 들였군.’

크리소르가 언짢게 찻잔을 내려놓았다.

“미아 셀레스티얼은? 돌아오자마자 죽이라고 했잖나.”

“황제와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걸요……. 그리고 그녀에겐 비밀 정보부원이 여럿, 호위로 붙어 있어서…….”

“계획대로 되는 게 없군.”

“지금은, 조용히 지내는 게 좋아요…….”

율리시즈가 작게 말하며 물조리개에 남은 물을 탈탈 털어 냈다.

“비밀 정보부가 더 먼저 호흐실트의 기록을 찾아내면 안 되니까…….”

“황제와 재상이 나를 의심하고 있던가?”

율리시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행동에 잠시 미간을 찌푸린 크리소르가 한숨을 쉬었다.

“좋아. 당분간은 조용히 지내야겠군. 하나 준비는 해 놔야겠어.”

“……?”

“신전에 연락하게. 내가 보자고 한다고 전해.”

그녀가 입꼬리를 끌어 올려 미소 지었다. 녹색 안광이 시퍼렇게 빛났다.

“슬슬 황제의 가장 큰 약점을 써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