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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129화 (129/193)

129화

미아가 제철소 구석의 사무실처럼 보이는 방을 가리켰다. 방엔 온갖 집기가 널려 있었다. 통신석으로 보이는 것도 함께였다.

특이한 점이라곤 없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미아는 예리한 눈으로 방 안을 살폈다.

‘저거다!’

예상대로 덩치 큰 나무 책장 하나가 놓여 있었다. 책 하나 꽂혀 있지 않은 책장은 이질적이라고도 할 수 있었으나, 특별해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저 특별할 것 없는 책장에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바로 선반이 달린 벽면을 밀면 숨을 수 있는 공간이 드러난다는 것. 원작에서 세레니티는 우연히 이곳을 발견해 에트루리나 광산의 가치를 설명한 서류를 찾게 된다.

“아딜! 같이 밀어 줘!”

미아가 아딜로트 품에서 내려와 책장을 더듬었다.

그러자 선반이 달려 있는 책장의 뒷판이 밀려나더니, 숨겨진 공간이 나타났다.

“여기로!”

좀 좁긴 하지만 다행히 두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아는 뻣뻣하게 머뭇거리는 아딜로트를 공간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자신 역시 구겨지듯 그 위로 몸을 던졌다.

탕!

선반이 약간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닫힌 순간.

“지금 방에서 소리 난 거 아니야?”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쉿.”

“…….”

미아가 어둠 속에서 아딜로트의 입을 막았다. 좁은 공간 탓에 두 사람의 몸은 손바닥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딱 달라붙었다.

아딜로트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침음을 흘렸지만 다행히 얌전히 밑에 깔려 있어 주었다.

그 순간, 문이 열렸다.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누구냐 하고 외치고 들어오지 않는 걸 보면 어중이떠중이들은 아니네.’

미아가 아딜로트의 심장 박동을 느끼며 생각했다. 방 안으로 들어온 이들은 처음엔 긴장한 듯했으나, 아무도 없자 이내 떠들기 시작했다.

“정말 누가 들어온 건 맞아?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혹시 모르니까 확인하는 거야, 인마. 우리 고용주가 좀 깐깐하대잖아. ‘사냥꾼’ 조도 연락이 끊겼다고 하고.”

“축제인데 그럼 여자나 만나러 갔겠지! 에이, 우린 이게 뭐야?”

“그래도 경계 늦추지 말고. 좀 더 살펴본다.”

“알겠다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전부 방을 나갔다. 정말로 제철소 전부를 뒤지려는 듯했다.

그들이 걸을 때마다 들리는 무기 소리에 미아는 한참 동안이나 더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러다 완전히 인기척이 사라진 뒤에야 아딜로트의 입을 막고 있던 것을 풀며 속닥였다.

“잠깐 이러고 있어야겠지?”

“…….”

“아딜?”

미아가 의아하게 고개를 들었다. 너무 구겨 넣었나?

“불편해? 잠깐만. 내가 자세를…….”

“아니. 움직이지 마.”

아딜로트가 다소 급하게 답했다. 어둠 속이라 아딜로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코앞에 있을 텐데.

책장의 틈으로 들어오는 실낱같은 빛은 그의 얼굴을 드러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미아가 느낄 수 있는 거라고는 자신 아래에 깔린 아딜로트의 심장 박동뿐이었다.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

난데없는 어색함에 미아는 괜히 고양이처럼 손을 오므렸다.

그때, 아딜로트가 말했다.

“페르랑도 이런 적 있어?”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미아의 생각보다 더 가까웠다. 미아가 괜히 침을 삼킨 뒤 답했다.

“……아니? 나 페르랑 그렇게 안 친한데?”

“그럼 나랑은 친하고?”

목소리는 점점 은근한 속삭임에 가까워졌다.

“……페르보다야 친하지 않을까?”

“그럼 시즈라는 걔랑은?”

미아는 어쩐지 입이 마르는 기분을 느끼며 태연한 척 답했다.

“시즈는 그냥…… 친구?”

“친구.”

아딜로트가 그 말을 작게 중얼거렸다. 묘하게 즐거운 기색이 느껴지는 어조였다.

“그래서 그 친구랑은 무슨 일이 있었는데?”

‘윽. 안 잊어버렸구나.’

미아가 찔끔한 뒤 조용히 말했다.

“호흐실트 후작저에서 내가 들킬 뻔했어. 그래서 나 숨겨 주려고 잠깐 포옹 비슷한 걸 했을 뿐이야. 지금처럼…….”

구구절절 길게 말하니 어쩐지 변명처럼 들렸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 약간 불안해진 미아가 살짝 아딜로트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아딜?”

“……지금처럼?”

“어? 으음, 아니. 이 정도로 가깝진…….”

“그럼 어떻게?”

그 순간 아딜로트의 손이 미아의 등을 감싸고, 반대쪽 어깨까지 감싸 안았다. 아주 부드럽지만 단호한 움켜쥠이었다.

“이렇게?”

목덜미 근처에 숨이 와닿았다. 일순 소름이 등허리를 타고 흘렀다.

미아가 저도 모르게 몸을 비튼 순간, 아딜로트는 다시 희미하게 목을 울렸다.

“움직이진 말고.”

“…….”

뭔가를 눌러 참는 듯한 목소리였다.

한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딜로트는 그녀의 어깨를 강하게 쥐었다 풀기만을 반복했다.

‘이상해.’

미아가 아딜로트의 옷자락을 움켜쥔 채 눈을 감았다. 어쩐지 머리가 핑핑 돌았다.

‘시즈나 페르랑은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뭘까, 이 기분은?

점점 미아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녀의 입술 사이로 애달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잠깐, 아딜……. 흣.”

“……미안한 말이지만, 자꾸 움직이면 내가 정말로 좀 곤란―”

숨넘어가겠는데 무슨 소리야!

미아가 흐느끼듯 외쳤다.

“산……, 산소!”

그 순간 아딜로트는 반사적으로 벽을 박찼다.

“흐억. 허억. 흐어어…….”

밖으로 빠져나온 미아가 급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이런 느낌은 무슨. 산소 부족이구만!’

어쩐지 쓸데없이 심장이 빨리 뛰는 것 같더라니.

그때, 바닥을 짚고 헥헥거리던 미아의 손가락에 뭔가가 걸렸다.

바스락.

“응?”

손에 걸린 것은 서류 뭉치였다. 비밀 공간을 빠져나올 때 딸려 나온 듯했다. 미아가 의아하게 그것을 살피기 시작했다.

곧 그녀의 얼굴이 굳었다.

“아딜! 이거…….”

“봤어.”

다른 곳에 흩어져 있던 서류를 찾은 아딜로트가 답했다. 그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서류에는 그라스 후작이 호흐실트 후작에게 철광석을 빼돌려 주고, 그 대신 수수료를 받는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라스 후작과 호흐실트 후작의 인장도 확실했다. 그 밖에도 미로미스 전로의 제작법과 기술자의 인적 사항 등, 온갖 극비 정보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런 곳에 숨겨놨으니 베일리가 찾지를 못하지.”

아딜로트가 혀를 찼다. 서류를 살피던 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이게 원본이 맞는 것 같아. 그라스 후작이 배신할지도 모르니까 딱 한 부만 남겨놓았나 본데?”

그렇게 말한 미아는 곧 고개를 기울였다.

‘문제는 라지푸트 쪽이랑 손을 잡았다는 서류가 없네. 간첩죄로 집어넣으려면 그게 필요한데…….’

그때였다.

뚜벅.

숨을 죽이고 있기에 겨우 눈치챌 정도로 작은 발소리가 방 너머에서 들려왔다.

“…….”

미아와 아딜로트가 동시에 숨을 죽이고 시선을 교환했다. 다음 순간 미아는 재빨리 서류를 모아 치맛자락 아래로 숨겼다.

그사이 발소리는 점점 더 다가오고 있었다.

주변을 탐색하던 경비조와는 달랐다. 조용하고 은밀했다. 마치 다른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것처럼.

그 행동으로 미아는 깨달았다.

‘우리가 아니야. 뭔가를 찾으러 온 거야.’

예를 들어, 서류라든가.

‘침입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겠지.’

호흐실트 후작은 결벽적으로 흔적을 남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런 공간에 대해 아는 사람을 둘 이상 만들어 놓았을 리 없다.

그렇다는 건, 지금 나타날 사람은 최소한 호흐실트 후작과 이어진 사람이라는 뜻.

아딜로트도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그의 붉은 눈이 빛난 순간, 문이 열렸다.

* * *

리누스 호흐실트.

그는 호흐실트 후작가의 가주이자 세빌 상회의 주인이었고, 쉽게 꼬리를 잡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잠깐 반짝한 미로미스 상회 때문에 밀리긴 했어도 세빌 상회는 유구하게 오르퀘니나 최고의 상회였다.

“수리하러 보낸 기술자는 처리했겠지?”

손안에서 와인잔을 굴리며 리누스 호흐실트 후작이 물었다. 곁에 있던 부관은 대답하려다가 멈칫했다.

‘이걸 말씀드려야 하나?’

다르켈 시의 기술자가 틈을 타 도망쳤다는 연락을 받긴 했다. 하지만 뚱뚱한 중년 기술자 한 명이 달려 봤자 어디를 가겠는가?

다르켈 시에 황제가 가 있다고는 하나, 그 전에 잡힐 터였다. 제철소에 있는 책임자에게 추적조를 배정했다는 연락도 받았으니 말이다.

‘아마 곧 처리했다는 연락이 오겠지.’

안 그래도 자신의 주인은 갑작스러운 황제의 출현 때문에 민감한 상태였다. 굳이 거기다 고민거리를 얹을 필요는 없을 듯했다.

“예. 처리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잘됐군. 이제야 한시름 놓겠어.”

씩 웃은 호흐실트 후작은 몸을 일으켜 침실로 향했다.

“자네도 수고했네. 때가 되면 나를 모시는 기쁨을 알려 주지. 물론, 돈으로 말이야.”

그는 그렇게 말하고서 문을 닫았다.

호흐실트 후작의 부관은 기대감 반, 불안감 반으로 한동안 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호흐실트 후작에게 고용되어 있었다.

그동안 호흐실트 후작이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거나 탈세를 하는 것도 수없이 보아 왔다. 라지푸트와의 거래는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일이었으나, 성공하기만 한다면 큰 소득을 얻게 될 터였다.

‘일이 끝나면 기술자들은 죽여야겠지만, 뭐, 내 목숨도 아닌데.’

부관은 그렇게 생각하며 방으로 돌아가 통신석을 연결했다. 마력의 파장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목소리만 연결되는 통신석이었다.

연결은 좀처럼 빨리 이루어지지 않았다.

‘왜 안 받지? 설마 무슨 일이 있나?’

부관의 마음속에 불안감이 스친 것도 잠시.

곧 통신석이 연결되었다.

―……프, 플랑크 사무관님.

“왜 이렇게 늦게 받는 건가?”

―하, 하하. 주변 사람을 물리느라 시간이 좀 걸려서……. 어쩐 일이십니까?

부관, 플랑크가 미간을 구겼다.

“어쩐 일이냐니. 도주한 기술자를 처리했는지 보고해야 할 것 아닌가.”

그의 짜증스러운 말에 제철소를 담당하는 사내가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이 답했다.

―예, 예! 물론입니다. 깔끔하게 처리했습니다!

“정말인가?”

―물론이죠! 아무, 문제없습니다. 모든 게 이상 없습니다.

“다행이군. 물건은?”

―물건도 안전합니다. 황제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고요.

“그래. 조만간 거래 날짜가 잡힐 예정이니 단단히 신경 쓰도록.”

―예.

* * *

통신석의 불이 꺼졌다.

“시, 시키는 대로 했으니, 사, 살려 주십시오…….”

얼굴에 상처가 있는 남자가 포박당한 몸을 덜덜 떨며 울상을 지었다. 미아와 아딜로트, 요아힘은 그를 사이에 놓고 동시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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