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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113화 (113/193)

113화

자기 손으로 무덤을 판 기분에 미아가 울상을 지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아…….”

그러자 옆에서 내내 대화를 지켜보던 세레니티가 쿡쿡 웃었다.

“그런가요? 저는 다 잘된 것 같은데. 미아가 평소에 어떤 일을 해 왔는지도 알 것 같고요.”

“평소에……?”

“이러니 모두가 미아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거네요.”

까닭 모르게 그윽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세레니티를 보며 미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모르겠다. 렌이 좋다면 좋은 거지, 뭐…….’

횡령죄가 걸리기 전에 망명하면 되겠지. 응.

* * *

아딜로트는 미아 주변을 맴도는 귀족 영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시선을 받은 이들은 뒤통수에 꽂히는 살기에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그와 눈이 마주치면 새하얗게 질려서 빠르게 볼룸을 탈출하곤 했다.

‘무시하고 다가간 한 놈은 나중에 찾아봐야겠군.’

노란 불빛에 드러난 미아의 목선과 등을 바라보던 아딜로트가 미간을 찌푸렸다.

‘인기도 많지.’

내내 황궁에서만 지냈으면서 뭐 그리 아는 사람이 많은 건지.

그나마 자신의 눈치를 줄곧 보고 있던 바이지겔 백작이 미아 옆에 붙는 것이 보였다.

“……하.”

이제야 좀 안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아딜로트가 한숨 쉬었다. 그래도 그녀를 함부로 대하는 이들이 없어 보여서 다행이었다.

“걱정되시나요?”

대화 중이던 호흐실트 후작이 씩 웃으며 물어왔다. 아딜로트가 뒤늦게 다시 그에게 눈을 돌렸다.

“아무래도.”

“흐음?”

생각보다 직접적인 발언에 호흐실트 후작이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흥미롭다는 얼굴이었다.

“그렇게 귀한 분과 참석해 주시다니, 무척 영광입니다.”

“앞으로도 종종 하긴 해야겠지.”

“아하. 폐하의 귀여운 반려동물께선 이런 곳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그대까지 미아를 동물 취급하는 건 내키지 않으니 관둬.”

아딜로트가 그렇게 말하며 샴페인을 넘겼다. 뼈가 있는 말에도 호흐실트 후작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럼 미래의 황후 폐하라고 불러야 할까요?”

“…….”

아딜로트가 말없이 잔을 흔들었다.

그 반응에 호흐실트 후작의 보라색 눈이 커졌다. 놀랍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녀가 수락하지 않았군요?”

“별로 그대와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는 아니군.”

“하하. 실례했습니다. 워낙 신기한 일이라.”

호흐실트 후작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고, 아딜로트는 심드렁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리누스 호흐실트 후작. 사십 대의 명랑한 중년 남성.

그리고 중립을 유지하다가 가장 마지막에 황제파로 돌아선 귀족.

그를 가장 경계한 건 페르디안이었다. 페르디안은 여전히 호흐실트 후작을 싫어했다.

‘속을 알 수 없다고 했나.’

하지만 호흐실트 후작은 노선을 정한 뒤 단 한 번도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국적으로 촘촘한 유통망을 가진 세빌 상회를 운영 중이기에 아딜로트에게 여러 가지 도움을 주곤 했다.

“일은 잘되어 가나?”

던지듯 물은 말에 호흐실트 후작이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지금 세빌 상회에 관해 물으신 건가요? 폐하께서?”

“그리 놀랄 질문 같진 않은데.”

“아니긴요! 제 평생 폐하께서 이런 사사로운 질문을 하시는 모습은 처음 보았습니다.”

“공정성을 위해서야.”

“압니다. 다만, 그분이 폐하를 정말 바꿔 놓으시긴 했군요.”

말하다 말고 호흐실트 후작이 눈을 게슴츠레 떴다.

“아니지……. 미아 님이 미로미스 상회를 운영하신 분이셨죠? 아하. 제가 미아 님께 악감을 가지고 있을까 봐 여쭤보신 거군요?”

호흐실트 후작의 말에도 아딜로트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무심히 잔을 흔들었다.

과거 세빌 상회는 미로미스 상회에 밀려 에트루리나 지역의 광산 개발권을 놓친 적이 있었다. 전적으로 미아와 미아가 개발한 전로 덕이었다.

“이런! 전 또 제 충심을 이제야 이해받은 줄 알았는데 말이죠.”

높은 모자를 쓴 호흐실트 후작이 과장되게 팔을 펼치며 말했다.

그가 놀리듯 하는 말에도 아딜로트는 심드렁했다.

“충심은 역사가 증명할 테니 내 소관은 아니지. 다만, 혹시라도 그대가 미아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다면 골치가 아프거든.”

“…….”

잠시 멈칫한 호흐실트 후작이 목소리를 낮추고 웃었다.

“만약 있다고 하면 어쩌시겠어요?”

도전적이고 호승심이 강한 호흐실트 후작다운 말이었다. 아딜로트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내가 잘하는 걸 해야지.”

호흐실트 후작이 미소 짓던 그대로 살짝 굳었다.

아딜로트 겐첸 슈뢰더가 가장 잘하는 것.

당연히 전쟁이었다.

“…….”

저도 모르게 아딜로트의 허리춤에 있는 ‘샹귀스―에키온’을 흘끗한 호흐실트 후작이 눈썹을 으쓱거리며 몸을 물렸다.

“……무시무시한 매력을 지니셨나 보네요, 미아 님은.”

“그래서 대답은?”

“당연하지만 저는 미아 님께 아무런 감정이 없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분을 건드리진 않을 겁니다. 저는 귀족이지만 상인이고, 미아 님을 건드리는 순간 제가 가진 모든 게 날아갈 테니 말이죠.”

호흐실트 후작은 눈동자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싱글싱글 웃었다.

그 모습을 아딜로트는 지긋이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잘 생각했어. 나도 또 하긴 좀 귀찮던 차거든.”

“하하. 농담도…….”

호흐실트 후작이 말꼬리를 흐렸다.

그는 확신했다. 여기서 조금의 기미라도 보였다면 아딜로트 겐첸 슈뢰더는 즉시 검을 휘둘렀으리라고.

‘누가 이 미친 사자를 길들이나 했더니…….’

호흐실트 후작은 가만히 아딜로트가 시선을 두고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대화하는 사이에 미아 셀레스티얼 주변에는 어느새 제법 사람이 많이 모여 있었다.

간혹 누군가가 뭔가를 얘기하면, 미아는 고개를 귀엽게 갸우뚱하거나 까르르 웃었다. 혹은 입술을 오므리고 눈을 빛내며 ‘그래서?’하고 묻는 얼굴을 했다.

그녀는 주변에서 가져다주는 술을 넙죽넙죽 받아 마시며 뺨을 붉히고 있었다. 아딜로트가 인상을 썼다.

‘너무 많이 마시는데.’

평소에 위엄이 넘치니 이럴 때만이라도 친근감을 보여 주라는 말에 따로 떨어져 있긴 하지만 여전히 내키지 않았다.

미아도 미아 나름의 지지 세력을 구축하는 게 맞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웬 귀족 영식 한 명이 슬쩍 미아의 뒤로 움직여 그녀의 숄 안쪽을 힐끔거리는 곳을 본 아딜로트가 잔을 내려놓았다.

“가 봐야겠어.”

“뜻대로 하시죠.”

같은 것을 본 호흐실트 후작이 웃으며 답했다.

아마 저 영식은 곧 어딘가의 개울에서 머리부터 떨어진 채 발견될 것이다.

아딜로트가 곧장 미아에게로 향했다. 인파를 헤칠 필요는 없었다. 그가 움직이자마자 모두가 빠르고 자연스럽게 길을 내어주었으니까.

“미아.”

갈라진 인파 끝에서 아딜로트는 미아를 발견했다.

“아……! 가 아니라, 폐하!”

미아의 목소리 끝이 녹인 설탕처럼 달콤하게 늘어졌다. 얼굴도 평소보다 발그레했다. 살짝 처진 분홍색 눈은 어찌나 다정한지 꿀이 흘러넘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딜로트의 눈에는 다른 게 더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 사이에 가려져 있던 와인잔으로 된 탑이었다.

“이걸 왜 쌓아 놔? 이게 무슨 전리품인 줄 알아?”

“사람 목을 쌓을 순 없잖아요~?”

제대로 취한 모양이었다. 아딜로트가 한숨과 함께 옆에 있던 세레니티 듀레인을 돌아보았다.

“이렇게 취할 때까지 뭘 한 거야?”

“죄송합니다. 말려도 듣지 않아서…….”

세레니티가 난처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때 흐느적거리며 다가온 미아가 아딜로트의 팔에 매달렸다.

“렌 혼내지 마요……. 내가 마신 거니까. 사람들이 자꾸 줘서 마신 거야……. 그리고 맛있어요!”

“누가 줬는지 얼굴은 기억해?”

“아마도~?”

“잊지 말고 있어. 나중에 몽타주 그릴 거니까.”

그 말에 주변에 있던 사람 중 몇이 빠르게 자리를 피했다. 아마도 황제의 여자에게 술을 진탕 먹이고서 가십이나 빼내 볼 속셈이었으리라.

“그보다 폐하…….”

미아가 말하다 말고 가볍고 들뜬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배시시 웃었다.

“저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 같아요…….”

“…….”

아딜로트는 그제야 달콤한 청포도 향기가 코를 찌르는 걸 느꼈다. 그는 자기 팔에 매달려 자신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미아의 시선을 피했다.

“같은 게 아니라 그래. 이만 돌아가지.”

“못 걸을 거 같은데…….”

그 말에 아딜로트는 곧바로 미아를 안아 올리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미아가 비틀거리며 그의 가슴에 몸을 기댄 탓에 그럴 수 없었다. 그의 귓가에 뜨거운 숨이 닿았다.

“그냥 쉬었다 가요, 저희…….”

“…….”

작은 속삭임이 귀를 타고 내려와 아딜로트의 심장을 간지럽혔다.

아딜로트가 그 말을 듣고도 평온한 얼굴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그를 개처럼 물어뜯던 태후파 귀족들 덕분이었다.

감정을 조금이라도 드러내면 그걸 빌미로 온갖 꼬투리를 잡았으니까.

그는 온갖 생각이 오가고 있는 머릿속을 아무도 모르는 것에 감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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