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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112화 (112/193)

112화

‘폐하께선 이걸 알고 계셨을까?’

가슴에 주먹을 얹은 크리스티아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미아 님.”

“응?”

“폐하를 지지하시는 거죠?”

미아가 큰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천진한 얼굴에 곧 당찬 미소가 떠올랐다.

“당연하지! 폐하는 진짜 좋은 분이니까!”

크리스티아네의 심장은 이제 걷잡을 수 없이 뛰기 시작했다. 관료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 있다.

폭군, 피에 미친 황제, 잔인한 살인마, 부덕한 어미를 둔 천출…….

그 모든 소문과 달리 황제의 집무실은 황궁의 그 어느 곳보다 늦게 불이 꺼진다. 그가 개혁한 관료제는 획기적이었고, 쓸데없이 의전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돌아가셨다는 클라우디오 황태자 전하가 황제가 되었다면 이럴 수 있었을까?’

불경한 생각이지만 크리스티아네는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황궁에서 일하는 관료들 역시도 습관처럼 나라님이 폭군이니 뭐니 투덜대지만, 막상 붙잡고 물어보면 아딜로트에 대해 나쁘게 평가하는 이는 드물었다.

그만큼 그는 좋은 황제였다. 아직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물론 여전히 아딜로트를 꺼리는 분위기가 있긴 했다. 황제의 손속이 잔인한 건 맞았으니까.

‘하지만 미아 님이 옆에 계신다면.’

잘 풀린 거란 근거 없는 믿음이 크리스티아네에게 생겨났다.

아니, 근거가 없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미아가 오고 나서 황제는 누군가의 목을 성 밖에 효수한 적이 없으니까.

백성들 역시도 황제가 사랑꾼이라는 사실이 재밌는지 그를 보다 친근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죽어 나가는 사람이 없으니 민심도 안정되었다.

‘나 역시도 미아 님 덕에 변하게 되었지. 폐하도 그런 걸까?’

“아딜은 말이야! 진짜 잘생겼고, 키도 크고, 몸매도 좋고, 일도 잘하고…….”

눈앞에서 귀여운 얼굴로 황제의 장점을 늘어놓는 미아를 보며 크리스티아네는 앞으로 다가올 변화를 예감했다.

아마 곧 좀 더 많은 사람이 황제의 변화와 미아의 존재를 눈치챌 것이다.

‘그렇다고 일이 마냥 쉽진 않겠지만…….’

다들 암암리에 알고 있는 황제와 황태후의 적대 관계를 떠올리며 크리스티아네가 주먹을 꼭 쥐었다.

‘나도 도울 수 있다면 돕고 싶어.’

그녀는 곧 당당한 모습으로 미아를 향해 웃어 보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전 폐하와 미아 님의 편이니까요. 상무부의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불러 주세요.”

* * *

크리스티아네는 연신 고맙다고 인사한 후에 떠나갔다.

크리스티아네와 대화하는 동안 묘하게 자식 자랑하는 부모 같은 얼굴로 뿌듯한 표정을 짓던 세레니티가 웃으며 말했다.

“미아를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네요. 저 영애에게 조언해 준 적이 있나요?”

“나도 모르게 했나 본데?”

미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보다 폐하와 미아의 편이라니. 굉장히 의미심장한 말인데.’

알고 한 거면 의미심장한 거고. 모르고 한 거면…….

‘아딜이 좋게 보이기 시작했다는 거니까 좋은 거지 뭐!’

기분이 좋아진 미아가 방글방긋 웃었다.

“어떡하지, 렌? 내가 너무 귀여운 나머지 또 내 포로를 만들어 버렸나 봐!”

“어쩔 수 없죠. 미아는 무슨 짓을 하든 사랑스러우니까…….”

“…….”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한 세레니티의 호응에 미아는 율리시즈가 보고 싶어졌다.

율리시즈라면 비수를 날리면서 비웃어 줄 텐데. 아니면 아딜로트였다면 차가운 목소리로 헛소리가 취미냐고 물어봐 줄 텐데.

머쓱함에 입술을 우물거리는 미아를 보며 세레니티는 또다시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보다 미아. 피곤해 보이는데 발코니에라도 쉬러 갈래요?”

“그럴까? 가는 김에 우리 술병도 하나 챙겨서―”

“미아 님! 혹시 절 기억하십니까?”

그러나 미아와 세레니티가 움직이기도 전에 또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미아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조금 상기된 얼굴의 젊은 남성이 서 있었다. 이번에도 미아는 그가 누군지 바로 기억해 냈다.

‘이게…… 제국 백성들의 세금이라는 건 알고 계십니까?’

“재무부의!”

“예! 아르…….”

“아르르 어쩌고!”

“…….”

아르르 어쩌고가 당황으로 굳었다.

‘사실 기억은 하고 있지만, 어쨌든 황후 후보인데 외간 남자 이름을 막 부르는 건 좀 그렇지.’

미아는 눈에 띄지 않게 미소 지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르민 슈라이버. 분명 재무부에 과잣값으로 6억을 받으러 갔을 때 자신에게 간언했던 사람이었다.

‘근데 얘는 왜? 아딜이 보면 안 좋을 텐데.’

그의 신변을 걱정한 미아가 크리스티아네 때와 달리 도도한 태도로 물었다.

“아르르 어쩌고도 귀족이었어?”

“예! 슈라이버 자작가 출신입니다.”

“그래?”

미아는 시큰둥하게 대답하면서도 내심 그가 기특했다.

그 말인즉슨, 스스로가 귀족이면서도 아르민은 백성들을 생각해서 그런 말을 했다는 뜻이 되니까.

“그래서 나한텐 왜?”

“저,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머뭇거리던 아르민이 입을 열었다.

“그때 미아 님께서 다녀가신 뒤에 제가 승진했는데……. 재상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미아 님이 저를 좋게 봐주신 덕에 제가 승진할 수 있었던 거라고……. 그, 그리고 그 이후로 갑자기 재상님께서 제게 잘 대해 주셔서…….”

아르민의 말을 들으며 미아가 샴페인을 홀짝였다.

‘아딜에게 말하긴 했었지.’

아르르 어쩌고가 제법 괜찮은 놈인 것 같다고.

아마 아딜로트가 그걸 흘려듣지 않고 요아힘에게 말한 모양이었다. 재무부를 관리하는 건 재상인 요아힘의 일이니까.

‘그렇다고 그 깐깐한 요아힘이 고작 내 말 한마디 때문에 아르민을 승진시키진 않았겠지.’

아마 종합 평가는 원래도 우수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라의 재정을 관리하는 사람으로서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게 필요한 법이었다.

정직함 말이다.

‘뭐, 황제의 애완동물에게 간언할 정도면 사람이 정직한 건 증명된 셈이니까!’

곧 죽어도 바른말은 해야 하는 요아힘의 성격상 아르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리가 없고 말이다.

호록 샴페인을 마신 미아가 방긋 웃었다.

“그게 왜?”

머뭇거리던 아르민이 입을 열었다.

“……어째서 그러셨습니까? 저는 분명 잘릴 거라고 각오하고 있었는데…….”

“맞는 말 했는데 왜 잘라?”

“그건…….”

아르민은 대답하지 못했지만 미아도 몰라서 물은 건 아니었다. 원래 위정자에게 바른말 하면 칼 맞는 법이다.

‘삼국지에서도 예형이 바른말만 하다가 골로 갔지.’

하지만 오르퀘니나의 주인은 아딜로트다. 간언 좀 했다고 죽일 거였으면 요아힘은 벌써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는 상태일 것이다.

“아르르 어쩌고.”

미아는 샴페인 잔을 지나가던 시종에게 넘기며 말했다.

“……예.”

“우리 폐하는 맞는 말 좀 했다고 자르는 그런 분 아니야.”

아르민이 흠칫했다.

“그런 말을 하려던 건 아닙니다! 당연히 그건 알고 있지만 보통은……!”

“우리 폐하는 보통이 아니라니까!?”

미아가 호통치면서 부채를 펼치려다, 오늘은 부채를 안 들고 왔다는 것을 깨닫곤 멈칫했다. 그때 옆에서 세레니티가 부채를 내밀었다.

“내 걸 써요, 미아.”

“앗! 고마워, 렌!”

활짝 웃은 미아가 재빨리 부채를 펼치고 도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솔직히 폐하가 맞는 말 한다고 내칠 사람이었으면 요아힘은 재상 못 했어!”

“…….”

난데없이 상사 욕에 아르민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턱을 덜걱거렸다. 미아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외쳤다.

“그러니까 넌 안심하고 바른말 줄줄 내뱉으면서 명예퇴직한 다음 노후에 관료 연금이나 받으면서 손주들 재롱이나 보면 돼!”

“……예?”

“못 알아듣겠어? 평생 말끝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나 달고 살면서 월급 따박따박 타 먹다가 호봉이나 높이라는 거야!”

아르민이 얼빠진 얼굴을 했다.

“그, 그러니까 지금 말씀하시는 게……, 저를 안 자르실 거라는…….”

“그래! 계속 그렇게 뻣뻣하고 깐깐하게 굴란 말야! 입에 발린 말만 하면 된다고 누가 그래? 우리 폐하는 그런 거 싫어하시거든? 그러니까 그냥 지금처럼 정직하게 살다가 월급 잔뜩 받아서 호의호식이나 해! 밀어 줄 테니까!”

버럭 외친 미아가 마무리로 사람들 사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물론 내가 아니라 폐하가!”

“아…….”

아르민이 멈칫하더니, 갑자기 고개를 푹 숙였다. 이윽고 그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뭐, 뭐야? 울어?’

당황한 미아가 그를 살피려던 순간, 아르민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겁먹고 있던 두 눈에 힘이 가득했다.

“그렇군요……. 저는 그냥 옳은 길을 가면 되는 거군요! 해야 할 말을 참지 않아도 되는 거군요!”

“……그래!”

왠지 좀 지나치게 감동한 눈치지만 미아는 일단 호응해 주기로 했다.

그 대답에 아르민의 눈빛에 감동이 넘쳐 흘렀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재무부의 일원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절대 부정에 눈감지 않겠습니다!”

“……그러던가!”

대충 옳은 말 같긴 한데. 고개를 끄덕인 미아가 멈칫했다.

‘잠깐만. 그럼 내 과잣값은 어떻게 되지?’

미아의 머릿속에 6억을 횡령하면 붙는 벌금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잠시 뒤 조금 사근사근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치만 아르르 슈르르야? 생각해 보니 사람이 적당한 융통성은 필요한…….”

“예! 융통성 없이! 저는 늘 정도만을 걷겠습니다!”

“그, 그게 아니라…….”

“감사합니다, 미아 님! 그럼 저는 가 보겠습니다! 역시 저는 무도회보다는 일이 좋은 것 같습니다!”

“아, 아르르야!”

아르민은 미아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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