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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111화 (111/193)

111화

미아가 씩 미소 지었다. 아마 지금쯤 율리시즈는 열심히 호흐실트 후작의 집무실을 뒤지고 있을 터였다.

‘잠입도 하고, 초대도 해결하고.’

그리고 수상한 점이 없나 살피기도 하고.

샴페인 잔으로 가려진 미아의 눈이 스르르 호흐실트 후작에게로 향했다. 호흐실트 후작 주변에는 그에게 말을 걸고 싶어서 안달인 사람들로 넘쳐났다.

‘주변엔 전부 황제파 귀족들뿐이야. 딱히 수상한 점은 없어 보이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먼 곳에서 환한 빛이 비쳐 들었다.

“미아!”

“윽.”

차원을 높이는 미모에 미아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환한 빛의 주인공은 바로 세레니티였다. 그녀는 몸 선을 따라 차르르 흘러내리는 상앗빛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더 아름다워 보였다.

“렌……. 나의 여신, 나의 천사…….”

가까이 다가온 세레니티가 쿡쿡 웃으며 장난스럽게 금빛 눈을 빛냈다.

“미아 말하는 거죠? 날개는 오늘 두고 왔나요?”

“……렌, 요즘 어디서 그런 거 배워 오는 거야?”

“미아를 보고 느낀 점을 말했을 뿐인걸요?”

그 말을 내뱉은 후 세레니티는 곧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그녀에게 대화를 걸고 싶어서, 혹은 걸리고 싶어서 주변을 배회하던 귀족들이 움찔했다.

“미아는 사람들하고 대화하지는 않나요? 모두 미아가 말을 걸어 주면 좋아할 텐데요.”

“나보다는 아딜이 주목받는 게 좋아. 그러라고 온 자리니까.”

미아가 시큰둥하게 샴페인 잔을 흔들었다.

세레니티는 의아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미아가 미로미스 상회를 운영했던 걸 밝혔잖아요?”

“폐하 옆에 있으려면 그 정도 업적은 있어야지. 그리고 어차피 나한텐 렌 있는데 뭐!”

상관없다는 듯한 미아의 대답에 세레니티가 숨을 들이켰다. 뽀얀 얼굴에 복숭앗빛 홍조가 떠오르더니, 그녀는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저, 저도 미아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미아가 저만의 친구였으면 좋았을 텐데…….”

묘하게 집착 속성 대사를 내뱉은 세레니티가 미아의 두 손을 잡았다.

“미아는 나중에 뭘 할지 정하지 않았다고 했죠?”

“응? 그랬지?”

“미아! 그럼 역시 나중에 둘이―”

“시, 실례합니다!”

그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나한테 말을 걸 사람이 있다고?’

보통 윗사람이 먼저 말을 거는 것이 관례다. 그렇지 않으면 대화하기 싫을 때도 아랫사람이 일일이 말을 걸어올 테니까.

“저, 저를 혹시 기억하시나요……?”

미아에게 말을 건 것은 단아한 차림새의 여성이었다. 미아는 바로 그녀가 누군지 기억해 냈다.

“아! 나선 정원에서!”

* * *

크리스티아네 포크트는 포크트 남작가의 삼녀였다.

포크트 남작가에는 빚이 있었고, 크리스티아네는 그 빚 때문에 베버 자작에게 팔리듯 시집갈 처지였다.

그게 아버지의 명령이었던 것이다.

‘키워 준 은혜를 알아야지!’

아버지의 말에 크리스티아네는 자신이 관료 시험에 합격했다는 말을 할 용기조차 잃었다.

그녀가 현실에 순응하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황궁에 들렀을 때였다. 그곳에서 크리스티아네는 우연히 베버 자작을 만났고, 운명처럼 미아 셀레스티얼을 만났다.

‘가문의 빚이…….’

‘그걸 왜 딸 인생으로 갚아?’

‘비밀리에 공부해서 시험을 쳤는데, 운이 좋아서 합격했어요…….’

‘열심히 한 거지, 운이 어딨어!’

그녀는 크리스티아네의 노력을 인정해 주고, 자신이 가족 때문에 남은 인생을 저당 잡히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었다.

그 길로 크리스티아네는 관료가 되었다.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냈지만, 결과적으로 크리스티아네를 가문에서 내쫓지는 않았다.

가문의 빚은 여전했고, 관료가 된 크리스티아네 역시도 월급을 받아 그것을 갚기 위해 애써야 했지만, 그래도 크리스티아네는 행복감을 느꼈다.

‘언제고 꼭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싶어.’

늘 그런 생각을 하던 크리스티아네의 귀에 호흐실트 후작의 무도회 소식이 들린 건 며칠 전이었다.

‘이번 호흐실트 무도회에 폐하랑 폐하의 애완동물이 온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크리스티아네는 가슴이 쿵쿵 뛰는 것을 느꼈다.

미아 셀레스티얼.

자신의 운명을 바꿔 준 사람.

크리스티아네는 어렵사리 초대장을 구해 무도회에 참석했다. 황제와 함께 볼룸으로 들어서는 미아를 보았을 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희고 긴 팔을 드러낸 그녀는 황제와 그린 듯이 잘 어울렸다. 황제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다정했고, 황제 역시 미아를 볼 때 세상에서 하나뿐인 보물을 대하듯 아끼는 것이 느껴졌다.

‘……행복하시구나. 다행이야.’

워낙 안 좋은 소문이 많아서 내내 걱정이었는데, 아무래도 그럴 필요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저, 저를 혹시 기억하시나요……?”

크리스티아네는 미아가 황제와 떨어지길 기다렸다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혹시 기억하지 못하시면 어떡하지?’

자신은 그날의 기억을 두고두고 회상하며 인생의 지침으로 삼고 있지만, 미아에게는 다를지도 몰랐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미아는 그녀를 향해 활짝 웃어 주었다.

“크리스티아네 포크트! 맞지!”

“……!”

이름까지 기억해 주시다니.

크리스티아네가 벅차오르는 감정을 삼켰다.

“네, 맞아요.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나중에라도 잠시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크리스티아네가 미아 옆의 영애를 흘끗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미아 옆에 있던 영애가 손을 내저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저는 신경 쓰지 말고 대화하세요.”

그녀는 크리스티아네도 아는 사람이었다.

현재 사교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칭송받는 세레니티 듀레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세레니티는 그런 말을 듣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빛이 났다.

허리까지 흘러내는 금발에는 윤기가 자르르했고, 갑작스럽게 끼어든 자신을 바라보는 금빛 눈도 온화하고 다정했다.

‘아, 아니야. 내겐 미아 님이 있어! 미아 님이 더 귀여우시다고!’

잠시 세레니티에게 홀릴 뻔한 크리스티아네는 고개를 붕붕 젓고서 입을 열었다.

“그, 그럼…… 크리스티아네 포크트, 인사 올립니다.”

드레스를 잡아 올리는 떨리는 손을 눈치챘을까? 미아가 큰 눈을 접어 아이처럼 해맑게 웃어 보였다.

“관료는 됐어?”

크리스티아네는 침을 삼켰다. 그리고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상무부에 배정받아서 일하고 있어요.”

그렇게 자신을 소개하며 크리스티아네는 뿌듯함을 느꼈다.

스스로를 무슨 무슨 영애, 무슨 무슨 자작 부인이 아닌 ‘상무부의 크리스티아네 포크트’로서 소개하는 게 이렇게 기쁜 일일 줄은 미처 몰랐다.

그리고 그 기쁨을 알려 준 건 바로 눈앞에 있는 미아였다.

“전부 미아 님 덕이에요. 그때 미아 님께서 제게 그런 조언을 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어영부영 가문의 빚 때문에 결혼했을 거예요.”

“조언한다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그건 그냥 네가 대단한 거야!”

미아는 처음 봤을 때와 다르지 않은 환한 미소를 보였다. 그녀의 분홍색 눈에 기특하다는 빛이 가득했다.

그때도 말은 강하게 했지만 눈빛으로는 걱정과 우려를 마구 표출했던 것처럼 말이다.

크리스티아네의 뺨이 수줍음으로 더 붉게 물들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꼭 다시 한번 뵙고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무도회에도 참가했어요.”

“그, 그래?”

진심이 담긴 말에 기분이 좋은지 미아의 입꼬리가 살짝 씰룩거렸다.

크리스티아네는 그녀를 귀여워하지 않기 위해 입가에 힘을 주고 웃음을 참았다. 옆에 있는 세레니티 역시 같은 표정이었다.

“네. 저한테 그런 식으로 조언해 주신 분은 미아 님밖에 없었는걸요? 상대를 진정으로 생각해 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조언이잖아요?”

“그, 그런가!?”

미아의 입꼬리가 다시 씰룩했다. 최대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괜히 눈을 부릅뜨는 듯했지만, 별로 소용은 없어 보였다.

“게다가 미로미스 상회를 운영하셨다는 게 정말인가요?”

“그, 그렇지? 뭐, 별 건 아니지만!”

“별것 아니라뇨! 정말 대단하세요! 미로미스 상회라고 하면 샛별처럼 나타나 오르퀘니나 최고의 상회로 떠오른 곳이잖아요! 원래 ‘사는 건 기술, 파는 건 예술’이라고들 하지만, 미로미스 상회는 사는 것부터가 예술이었는걸요!”

“흐, 흐흠……!”

바로 앞에서 듣는 칭송이 부끄러웠는지 뺨을 붉힌 미아의 입에서 피리 소리 같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결국 크리스티아네와 세레니티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런 멋진 분께 조언을 받았다니, 정말 영광이에요. 전보다 더 미아 님을 존경하게 될 것 같아요.”

“그, 그렇다면야 딱히 말리진 않겠지만!”

우스갯소리처럼 말했지만 크리스티아네는 진심이었다.

장소가 적절치 못해 말은 하지 않았지만, 미로미스 상회는 나타나자마자 호흐실트 후작이 운영하는 세빌 상회를 누른 대단한 곳이었다.

‘비록 지금은 황실에 귀속됐지만…….’

그래서 크리스티아네는 미로미스 상회가 얼마나 대단한 곳이었는지 더 잘 알 수 있었다. 미로미스 상회가 하던 것을 황실의 상무부가 넘겨받았기 때문이다.

업무 처리, 인력 배정, 자잘한 서류와 대륙을 오가는 큰 거래까지.

미로미스 상회는 모든 부분에서 쓸데없는 요소를 싹 걷어내고 지극히 효율적으로 운영된 상회였다.

분명 상단주가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미로미스의 주인은 그걸 잘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적재적소에 전문가를 배치하고 그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끔 돕는 것에 기를 쓴 게 보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게 눈앞의 미아라니.

무엇보다 미로미스 상회가 부흥한 건 강철을 뽑아내는 미로미스 전로 때문이었는데 그 개발자가 미아였다니.

분명 이 무도회가 끝나고 소식이 전해지는 대로 사람들은 놀라 나자빠질 것이다.

미래를 예감한 크리스티아네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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