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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110화 (110/193)

110화

모두 너무 놀라운 이야기를 들어서 하던 대화가 뚝 끊긴 것이다.

그리고 몇 초 뒤, 여기저기서 놀라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났다.

“……지금 미로미스 상회라고 했나요?”

“마. 맞아요! 지금 미로미스 상회를 저 여자, 아니지, 영애가 만들었다는 거예요?”

“정체 모를 천재 투자자가 도와주고 있다고 들었는데…….”

“하지만 호흐실트 후작이 거짓말을 할 리도 없고―”

“그래도 말이 안 되는……!”

주변에서 구름처럼 부푸는 의혹에 미아는 웃으며 쐐기를 박았다.

“별거 아닌데요, 뭐! 세빌 상회의 역사에 비하면 미로미스 상회야 신흥 상회에 불과하죠.”

“……!”

입을 떡 벌린 사람들을 곁눈질하며 호흐실트 후작이 작게 속삭였다.

“이런 걸 바라신 게 맞을까요, 폐하?”

“몹시.”

“모르제 코르보트인데 이쯤이야.”

호흐실트 후작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오른 가슴 위에 손을 얹으며 허리를 굽혔다.

“그럼, 새롭게 태어난 기분으로 맘껏 즐기다 가시길.”

* * *

아딜로트는 귀족들이 다가와 미아에게 인사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달리 말해 둔 것은 없지만, 호흐실트 후작의 태도를 보고 노선을 빠르게 정한 듯했다.

미아는 거리낌 없이 그들의 인사를 받아 주었다.

“어색해할 줄 알았는데.”

“그냥 인사 좀 받는 게 왜 어색해요?”

귓가에 속삭인 말에 태연하게 대답하는 것을 듣고 아딜로트는 실소를 흘렸다. 그녀는 정말로 강심장이다.

하지만 아딜로트도 고드릭 릴레 후작이 다가왔을 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곳에서 뵐 줄은 몰랐습니다.”

그는 무도회임에도 불구하고 브로치 하나를 추가로 단 것 외에는 평소와 다른 점이 없었다. 까탈스러운 성격이 드러나는 꽉 다문 일자 입도 여전했다.

그 상태로 매번 자신을 보며 희미하게 눈썹을 찌푸리던 작자였는데, 놀랍게도 그 작자는 미아에게 다가와 깍듯하진 않더라도 정중한 예를 차렸다.

“인사해 주실 줄은 몰랐는데요!”

미아 역시도 조금은 놀란 듯했으나, 다정한 분홍색 눈에는 반가움이 더 컸다.

릴레 후작도 그걸 눈치챘는지 이마의 근육이 약간 풀어지는 게 보였다.

“……딱히 하고 싶어서는 아닙니다.”

“그럼 그냥 저 예쁘다고 칭찬해 주러 오신 건가!?”

“허.”

그리고 그 릴레 후작의 입에서 헛웃음이 튀어나왔을 때.

주변은 물론이고 아딜로트도 내심 놀라고 말았다.

코웃음에 가깝긴 하지만, 어쨌든 미소였기 때문이다.

분명 릴레 후작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웃기도 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이런 사사로운 대화를 하면서 웃는 모습은 결코 보인 적이 없었다.

그걸 당사자도 뒤늦게 깨달았는지, 릴레 후작이 빠르게 웃음기를 지워 내곤 입을 열었다.

“저는 지금껏 저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자를 본 적이 없습니다. 이제 겨우 한 명 만났는데, 그런 이가 마땅한 입지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묻히길 바라지 않을 뿐입니다.”

다소 냉정하게 들릴 수 있는 말에도 미아는 콧잔등을 찡그리며 환하게 웃었다.

“후작 각하. 제가 정치가였다면 저흰 굉장히 좋은 동료가 되었을 것 같지 않으세요?”

그 배짱 넘치는 말에 고드릭 릴레는 결국 다시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몸을 돌리며 말했다.

“아직도 딱히 늦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

그렇게 멀어져 가는 릴레 후작의 등을 멍하니 바라보던 아딜로트가 시큰둥하게 입을 열었다.

“나한텐 시비를 못 걸어서 안달이더니 너한텐 왜 저래? 벌써 노망났나?”

“제가 너무 귀여운 탓이죠!”

“저 인간이 귀엽다고 봐줄 사람 같아?”

“이제 제가 귀엽다는 건 인정하시는 거예요?”

아딜로트는 당장 까르르 웃을 준비를 하는 미아를 보며 뭐라고 말하려다, 문득 시선을 느끼고 그녀의 뒤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미아의 뒷모습을 구경하고 있던 젊은 남자 귀족들과 눈이 마주쳤다.

흠칫.

그들은 흘러내린 숄 안쪽으로 드러난 미아의 등을 보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짓다가, 아딜로트와 눈이 마주치자 부랴부랴 인파 속으로 몸을 숨겼다.

“……역시 옷이 너무 눈에 띄어.”

아딜로트가 인상을 찌푸리며 미아의 등을 감싸듯 팔을 둘렀다.

“그래요? 숄도 둘렀는데? 이 정도면 충분히 얌전한 거 같은데!”

동의할 수 없었던 아딜로트가 헛웃음 쳤다.

드레스 가봉일, 미아가 옷을 갈아입으러 간 사이 레미냑 프뤼게가 뿌듯하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폐하. 저 드레스는 홀터넥 디자인이라고 합니다. 상의를 목 뒤의 리본으로 묶어 고정하는 방식이지요.’

‘그래서?’

‘흠! 리본이 풀리지 않게 조심, 또 조심하시라는……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말만 당부고 표정은 미아의 친구인 금발 변태가 자주 짓는 표정이었다.

‘올리버. 이거 감옥에 처넣어.’

‘네!? 폐하!?’

회상을 마친 아딜로트가 괜히 미아를 응시했다.

그 시선을 눈치챈 미아가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았다. 그러자 목 뒤의 리본이 나비 날개처럼 팔랑였다.

“아딜이 보기에도 예쁘죠!”

“…….”

미아가 하는 말은 잘 들리지도 않았다. 아딜로트의 머릿속에서 리본이 팔랑거리는 모습만 반복 재생되었다.

“아딜?”

그때 미아가 아딜로트의 코앞에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딜로트는 저도 모르게 허리춤의 검을 움켜쥐었다가, 당황을 숨기기 위해 헛기침했다.

“왜?”

“제가 할 말이에요! 왜 그래요? 역시 무도회는 좀 별론가?”

자신을 바라보는 분홍색 눈에는 걱정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분명 평소와 같은 눈빛인데도 평소보다 낯설고 성숙하게 느껴졌다.

아딜로트는 입이 마르는 기분을 느끼며 인상을 썼다.

‘여기서 성숙해지기까지 하면 내가 진짜 미쳐 버릴지도 모르니까 안 와도 돼.’

‘그땐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정말로 그렇게 된 꼴이 우스웠다.

그가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미아는 발을 동동 구르며 그를 살피는 중이었다.

“조, 좋은 거 생각하면 어때요? 마음속에 호수를 그립니다……. 백조가 한 마리…….”

이전 같았으면 귀엽다고 픽 웃어 버렸을 텐데도 아딜로트는 그러지 못했다. 평소와 다른 성숙한 차림새로 옆에서 기웃거리는 미아의 모습에 심란함이 도무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돌아가면 진짜로 처넣는다.’

미아가 드레스를 마음에 들어 해서 결국 감옥에 처넣지 못한 게 한스러웠다. 역시 몰래 감옥에 처넣은 다음, 계속 드레스나 만들게 해야…….

“아딜. 본격적으로 춤추려나 봐요. 원래 황제 부처가 가장 먼저 춤추는 거죠?”

“그래.”

방향이 크게 엇나간 상상에 빠지기 직전, 미아가 그를 불렀다.

아딜로트는 아무 이상한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듯이 태연하게 정면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이쪽을 흘끔거리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호스트인 호흐실트 후작이 그랜드 마치로 시작을 알려야 했겠지만, 모든 무도회의 주인은 황제였다.

“준비는?”

아딜로트가 손을 내밀었고.

“제가 좀 실전에 강해서!”

미아가 으스대며 그것을 잡았다. 볼룸 중앙으로 나서며 그녀는 웃음 띤 채 속삭였다.

“이번에도 저 버리고 갈 거예요?”

“…….”

아딜로트는 걸음을 삐끗할 뻔했다. 미아가 황궁에 들어온 초반에, 그가 춤추다 말고 가 버린 적이 있었다.

덕분에 귀족들 사이에서는 미아가 버림받았다는 식의 소문이 잠깐 돌았었다.

“……아니. 절대로.”

그가 가까스로 답하며 미아의 손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미안해.”

미아는 까르르 웃으며, 등을 감싸오는 아딜로트의 손에 몸을 맡겼다.

“잘생겼으니까 봐줄게요!”

음악이 시작되었다.

* * *

춤이 끝나자마자 미아는 아딜로트의 등을 꾹꾹 밀었다.

“이제 폐하는 사교인 척 정치 좀 하러 가요!”

“그냥 같이 다니지?”

아딜로트가 불만스러운지 심드렁한 얼굴로 대꾸했으나 미아는 단칼에 그것을 거절했다.

“독과점은 나빠요! 그리고 요아힘이 떠나기 전에 말한 거 기억하죠?”

“하…….”

그 말에 아딜로트가 한숨을 쉬었다. 황궁에서 마차에 타기 전 요아힘이 당부, 또 당부했던 말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미아 님과의 이미지 합이 제법 좋습니다. 폐하께서 많이 유해졌다는 평을 듣고 계시니, 이참에 부드러운 모습을 보여서 쐐기를 박아 주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부드럽게 말하고는 있지만 안경 너머 연둣빛 눈에서 그냥 돌아오면 사직서 내겠다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있는 기회는 살려야지. 응, 응.’

아딜로트는 결국 혀를 차고서 뚱한 얼굴로 등을 돌렸다.

“맘에 안 드는 놈들 얼굴 기억해 놔.”

“끝나고 피의 축제라도 벌이시게요?”

“못할 거 없지.”

그는 희미하게 웃고선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오는 사람들 사이로 나아갔다.

귀족들이 모두 들뜬 얼굴로 아딜로트에게 슬금슬금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폭군이니 뭐니 하더라도 그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귀족은 어디에나 있었다.

무엇보다 호흐실트 후작은 황제파 귀족이기 때문에, 이번 무도회에 참석한 귀족들은 대부분 아딜로트에게 호의적이었다. 전보다 그의 날 선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다는 점도 한몫했다.

‘괜히 뿌듯하네!’

혼자 남겨진 미아가 가만히 샴페인 잔을 홀짝였다.

주변에 어떻게든 자신에게 말을 붙여 보려는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귀찮아서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였다.

‘그보다 시즈는 잘하고 있으려나?’

그 순간 미아는 무도회에 오기 전, 율리시즈와 몰래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호, 호흐실트 후작저는 보안이 생각보다 철저해서…… 아무래도 조사에는, 제가 가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미아 님을 노리는 암살자가 종종 있어서, 제가 미아 님 곁에서 떨어지긴 좀…….’

‘그럼 차라리 호흐실트 저택에서 재워 달랠까?’

‘어, 어떻게요?’

‘취한 척이라도 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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