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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106화 (106/193)

106화

“그렇군요. 그럼 당분간은 봐 드릴 수밖에 없겠군요.”

“고마워요!”

“발라뒤르 클럽에 관한 것도 폐하께는 비밀로 해드리겠습니다.”

헉. 언니 최고.

미아가 다시 양손을 맞잡고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냈다. 바이지겔 백작은 그런 미아가 귀엽다는 듯이 웃었다.

“고충이 많으셨겠군요.”

“고충은 페르 님이 다 겪었죠! 그런데 사실 혼날 줄 알았는데, 화내지 않으시네요?”

그 말에 바이지겔 백작의 웃음기가 진해졌다.

“키토 후작 각하의 잘못인데 어째서 미아 님께 화를 내야 하죠?”

“…….”

미아가 멈칫했다. 생긋 웃는 미인의 뒤로 갑자기 아수라의 형상이 보이는 듯했다.

바이지겔 백작은 심지어 물어보길 기다렸다는 듯이 술술 말을 이었다.

“이번만큼은 후작 각하께서 판단을 잘못하셨습니다. 그런 난잡한 곳에 미아 님을 데려가다니……. 그분의 판단력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겠군요.”

“제, 제가 가겠다고 한 건데……!”

“물론 미아 님께서 황제 폐하를 위해 행동하셨음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미아 님은 그런 곳에 직접 가시기엔 너무 연약합니다. 또한, 윗사람의 오판을 바로 잡는 것도 아랫사람의 역할이죠. 윗사람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면 고쳐 주는 것. 그게 진정한 충심이 아닐까요, 미아 님?”

“잘못했습니다…….”

미아가 얌전히 죄를 인정했다. 미소 너머로 어마어마한 압박감을 흘리던 바이지겔 백작은 그제야 조금 다른 분위기로 픽 웃으며 한 발짝 물러섰다.

“다치지 않으셨으니 괜찮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그런 일은 사람을 시키시는 게 좋겠군요.”

“넵…….”

더는 이 주제를 지속할 용기가 없었던 미아는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

“그, 그보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아. 호흐실트 후작 각하께 가는 중입니다.”

스스럼없는 대답에 미아가 멈칫했다.

“호흐실트 후작 각하요? 왜요?”

“곧 본격적인 사교 시즌이니까요. 무도회를 꾸미기 위해 바이지겔 백작가의 장미를 사들이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아…….”

“그러고 보니 무도회에 미아 님도 참여하시나요?”

그러고 보니 슬슬 제대로 된 사교 시즌이었다. 많은 귀족이 이 시기에 무도회를 열곤 했다.

특히 5월에서 7월까지가 시즌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황실 주도의 조정 경기와 경마, 승마, 그리고 황립 예술원에서 주최하는 온갖 전시회와 연주회. 그 이후의 블루문 축제까지.

오르퀘니나가 가장 소란스럽고 화려한 시기였다.

‘잠깐, 그야말로 누굴 관찰하기엔 딱 아닌가?’

이참에 호흐실트 후작을 감시해 봐?

거기까지 생각한 미아였지만, 이내 고개가 스르르 미끄러졌다.

“참여는 하고 싶은데, 후작 각하가 주최하시는 정도의 무도회라면 초대장이 안 올 것 같―”

“무슨 말씀을!”

그때 로사 바이지겔 백작이 눈을 부릅뜨고 노호를 질렀다. 그녀가 몹시 비장하게 말했다.

“이 로사 바이지겔은 절대 그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미아 님은 장차 황후가 되실 분이니 일찌감치 모두에게 그 위엄을 보이셔야 합니다.”

“……근데 백작 각하? 저 아직 황후가 되겠다고는…….”

“당연히 호흐실트 후작 각하께서도 미아 님을 초대할 생각이었겠지만! 제가 한 번 더 확인해 보겠습니다. 폐하께선 이런 것까지 꼼꼼히 챙기시기엔 업무가 많으시니까요.”

응. 들리지 않는구나.

우레처럼 말을 다다다 쏟아 낸 바이지겔은 이내 깍듯하게 경례까지 했다.

“그럼 저만 믿고 기다려 주십시오.”

결국 미아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며칠 뒤.

놀랍게도 호흐실트 후작은 진짜로 초대장을 보내왔다. 잿빛 편지지에서는 고급스러운 담배 향이 은은하게 났다.

“진짜로 왔네…….”

셰즈롱그에 누워 초대장을 받은 미아가 중얼거렸다. 로사 바이지겔이 제대로 일한 모양이었다. 아마 꽤 어려웠을 텐데.

이전에도 힐데가르트를 몰아세웠던 것처럼 무도회에 참석한 적은 있지만, 그건 그리 큰 규모가 아니었다.

오르퀘니나를 떠받치는 호흐실트 후작의 무도회와는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가는 게 조사에는 더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요즘들어 주변 사람들이 정말로 자신을 미래의 황후처럼 바라보는 것이 약간 부담스러웠다.

아딜로트는 좋았지만 황후는 싫었다.

일도 많을 테고, 남들도 신경 써야 할 테고, 애초에 아딜로트가 황후 시켜 준다고도 하지 않았다.

“…….”

미아는 한참을 더 초대장을 바라보며 뒹굴뒹굴하다 세레니티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맞은편 소파에서 흘러내린 금발을 귀 뒤로 넘기며 열심히 요아힘이 내준 과제 중이었다.

“렌. 많이 어려워?”

미아의 부름에 세레니티가 고개를 들었다. 천사같이 고운 얼굴이 울상이었다.

“정말 어려워요. 따라가기도 벅차고요.”

“뭐, 요아힘 님이니까!”

“하지만 미아는 재상님과 곧잘 대화하시잖아요?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죠?”

“나? 음~ 그냥 친구를 잘 둬서!?”

“친구요?”

“응! 위키랑 구글이랑 테드라는 친구 있어!”

미아가 키득키득 웃자 세레니티는 묘하게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처음 들어요. 똑똑한 친구들이었나 봐요?”

“엄청!”

그 말에 세레니티가 입술을 오므렸다.

어쩐지 약간 속상해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미아는 초대장을 내려놓고 배시시 웃었다.

“너무 초조해하지는 마! 렌은 진짜 잘하고 있어.”

그건 진심이었다. 실제로 세레니티는 소설 속 여자주인공답게 요아힘이 알려 주는 것들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있었다.

따라가기도 벅차다는 말은, 요아힘이 워낙에 천재라 빈말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범재 수준이란 뜻도 아니었다.

세레니티는 피곤한 얼굴 그대로 미아를 응시하다가, 불쑥 말했다.

“미아. 역시 저는 미아가 정말 좋아요. 폐하에게 주긴 너무 아까워요…….”

‘……갑자기?’

픽 웃은 미아가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거렸다.

“보통은 반대로 생각할걸?”

“폐하도 반대로 생각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제가 미아를 영원히 데리고 살 텐데…….”

세레니티가 그렇게 말하며 수심에 빠졌다. 요즘 세레니티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었다.

다행히 둘만 있을 때만 하긴 하지만, 묘하게 진담처럼 들린단 말이지…….

“그보다 렌, 어떻게 생각해?”

“호흐실트 후작가의 무도회 말인가요?”

“응! 가도 될까?”

짧게 고민한 세레니티가 펜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물론 저는 미아 맘대로 하라고 말하고 싶지만……, 보다 객관적인 시선을 바라는 거라면, 오히려 빠지기가 더 어렵지 않나요?”

“응?”

“호흐실트 후작 각하는 황제 폐하와 사이가 나쁘지 않으시니까요. 핵심 세력이기도 하고요. 미아가 바이지겔 백작 각하의 살롱에 자주 참여하는 게 많이 알려져 있는데도 무도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아.”

아딜로트의 세력이 단합되지 않은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구나.

자신은 호흐실트 후작이 수상하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입장을 바꿔 보니 호흐실트 후작 입장에서 수상한 건 미아일 터였다.

‘바이지겔 백작을 통과했으니 이제 후작 차례라 이건가.’

거기까지 생각한 미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렌. 나 아딜 집무실 좀 다녀올게?”

“미아.”

세레니티가 호다닥 달려와 미아의 손을 쥐었다.

“누차 말하지만,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강제는 범죄예요. 미아가 싫으면 꼭 싫다고 말해야 해요. 알았죠?”

“……집무실 가는 거라니까?”

“집무실이 더 위험해요!”

어째서.

“그런 곳이야말로 사건이 발생하기 가장 좋은 공간이니까요!”

무슨 사건?

미아가 착잡함을 숨기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최근에 세레니티가 오피스물이라도 본 모양이었다.

“괜찮아. 어차피 이 시간이면 재상님도 계실 거고…….”

그 말에 세레니티의 뺨이 더 붉어졌다.

“……셋이서도 가능하잖아요! 더 위험해요, 미아!”

“……렌. 돌아오면 책장은 불태우자?”

“네? 아, 안 돼요! 아직 못 본 게……!”

미아는 슬픈 마음으로 여자주인공을 진정시킨 뒤 방을 나섰다. 자신이 이 소설에 들어와서 바뀐 것 중 세레니티의 변화가 제일 죄스러웠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

양심의 가책을 외면하며 미아는 아딜로트의 집무실로 향했다. 노크하고 들어가자 곧바로 책상 앞에 앉은 아딜로트가 보였다. 옆에는 드물게도 페르디안과 요아힘까지 있었다.

“현재 강철 주조 상황이 매우 좋으므로, 이를 이용해 라지푸트를…….”

“하지만 뇌제 쪽에서 어떻게 나올지…….”

“그렇다곤 해도 라지푸트에서 그런 움직임이 있다면, 절대 좌시할 수는…….”

뭔가를 열심히 떠드는 중이었다. 외교 문제인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도울 일은 없을 것 같아, 미아는 얌전히 소파에 앉았다.

소파 테이블에는 디저트 몇 종류가 놓여 있었다. 미아가 그것을 뒤적거리다 눈을 빛냈다.

‘오! <뉴미니>의 신작 별꽃 사탕!’

그리고 히히 웃으며 사탕을 까먹기 시작했다. 하루에 100개만 한정 판매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여기 있는 그 100개 같았다.

뺨에 사탕을 한 개씩 넣고 흥얼거리던 미아는 문득 엠브라를 떠올렸다.

‘별꽃 사탕 못 구하겠다고 엠브라가 땅을 치고 원통해하던데……. 엠브라 갖다 줄까?’

그러고 보니 엠브라에게 부탁할 일도 있는데.

‘갖다 주자.’

곧 미아가 사탕 한 줌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런 김에 렌도 먹어 보라고 하고, 제인 씨도 하나…….’

그렇게 양 주머니를 꽉꽉 채워서 사탕을 쑤셔 넣던 도중.

미아는 묘하게 주변이 조용하다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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