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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101화 (101/193)

101화

그리고 그녀는 그 이후 정말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몸을 비틀거렸다.

입이 헤 벌어지고 연신 한숨을 쉬는 것은 기본.

자신을 흘끔거리며 슬쩍 손가락을 스치려는 시도에 페르디안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기사단 규율을 읊었다.

“후, 더워…….”

그리고 미아는 그런 그의 속도 모르고 제 드레스 앞섶을 팔랑거렸다.

얇은 옷자락이 흔들릴 때마다 새빨갛게 물든 쇄골이 드러났다 가려지기를 반복했다.

“…….”

페르디안은 잔을 부서져라 쥔 채로 딱딱하게 굳어 침묵했다.

정말 취한 걸까? 아니면 연기일까?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금방 취하고, 주정을 부릴 수가 있는 걸까?

혹시 황제 폐하 앞에서도 저런 모습을 보였을까?

그는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려는 자신의 생각을 다잡기 위해 묵묵히 정면만 바라보았다.

그 사실을 눈치챈 미아가 더 흐느적거리며 그의 팔에 찰싹 달라붙었다.

“디안. 나 더운데…….”

원래부터 애교 있는 목소리였지만, 지금은 나른함이 더해져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렇게 술을, 마셔 대니.”

“그치만 맛있는걸…….”

미아가 떨리는 숨을 내뱉더니 페르디안의 손을 잡아끌어 자신의 뺨에 가져다 댔다.

“디안 손은 차갑네.”

페르디안이 크게 덜컹거렸으나, 그녀는 그걸 의식하지 않고 복사꽃처럼 미소 지었다.

“기분 좋아…….”

“…….”

미아에게서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나긋한 속삭임에 페르디안은 저도 모르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묘한 시선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미아와 눈이 마주친 순간, 머릿속에 있던 모든 생각이 날아가 버렸다.

“…….”

“디안? 디안? 디안?”

“……듣고 있다.”

페르디안은 가까스로 대답했다. 정체 모를 초조함에 손바닥에서는 계속 식은땀이 흘렀다. 그럼에도 그는 미아를 바라보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녀의 큰 분홍색 눈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디안은 안 더워?”

“……안. 덥다.”

“진짜? 치…….”

그의 딱딱한 대답에 미아가 즉각 울상을 짓더니 뾰로통하게 볼을 부풀렸다.

“이럴 땐 그냥 나도 덥다고 하는 거야, 멍청이…….”

……연기겠지? 연기 맞겠지?

당황한 페르디안에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바텐더가 슬쩍 다가왔다.

“신사분. 아가씨가 많이 취하신 듯한데, 혹시 휴식할 공간을 마련해 드릴까요?”

“…….”

그 말에 페르디안은 저도 모르게 침음을 흘렸다.

‘……허무하군.’

몇 달 동안 이곳에 들렀지만 처음 듣는 제안이었다.

잠입을 위해서라면 부탁한다고 말해야 했으나, 페르디안은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미아의 술 취한 모습이 연기라면 그녀를 떼어놓고 움직일 수 없었고, 연기가 아니어도 마찬가지였다. 슬슬 주변에서 그녀를 흘끔거리는 남자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입술을 꾹 다문 페르디안 대신 미아가 발간 얼굴로 대뜸 외쳤다.

“난! 좋아!”

“방은 됐다.”

페르디안의 즉답에 미아는 상처받은 얼굴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기울이고서 강아지처럼 순한 눈망울로 물어 왔다.

“그럼 난 언제 어른의 계단을 오르게 해 줄 거야……?”

“…….”

“내가 머, 나쁜 거 시키는 것도 아니구……. 같이 좋은 거 하자는 건데. 응?”

그때 바텐더가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고개를 돌린 미아가 대뜸 바텐더를 향해 물었다.

“아저씨! 아저씨가 보기엔 나 별로야?”

바텐더는 갑자기 지목당한 상태에서도 능숙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뇨. 매우 아름다우십니다.”

“그치!? 난! 귀여워!”

미아가 가슴을 탕탕 치며 외치다가, 갑자기 시무룩해져선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런데 디안은 내가 별론가 봐…….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길래, 그럼 알아 오라고 여기 보낸 것도 난데…….”

“그렇습니까…….”

“그동안 뭐한 건지 모르겠어…….”

미아가 한숨을 쉬고는 강아지처럼 애처로운 눈으로 물었다.

“아저씨는 우리 디안 알아?”

언제 봤다고 아저씨?

그러한 불편함을 느낀 건 페르디안 한 명뿐인 모양이었다.

바텐더는 철없고 순진해 보이는 미아가 싫지 않은지 거리낌 없이 답했다.

“워낙 체격이 좋으시기에 기억 못 하기가 더 어려운 분이시지요.”

“그치!? 우리 디안이! 어? 어깨도 좀 넓고! 키도 좀 크고! 그리고 가슴이 진짜……!”

텁.

묘하게 진심이 섞여 들어간 듯한 말에 페르디안이 재빨리 미아의 입을 막았다.

“……조용히 하십, 해라.”

그 와중에 존대하려다가 반말로 바꾼 것은 미아의 연기에 맞추려는 페르디안 나름의 노력이었다.

미아는 그런 어설픈 연기에도 만족스러운지 배시시 웃으며 속닥거렸다.

“알았어, 나만 알고 있을게……!”

“…….”

정말…… 변태 같았다.

이게 연기라면. 아니, 연기겠지만, 정말 가공할 연기력이었다.

다시 바텐더와 노닥거리기 시작한 미아는 얼마 안 있어 꽤 중요한 단서를 뽑아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신사분은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분이셨기에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 디안이 조금 그래……. 그게 더 귀엽지 않아?”

“예. 지금이야 그렇게 느껴집니다만…… 오셔서 누구에게도 눈길조차 주지 않으시고 술만 마시다 가셨기에, 사실 저희 측에서는 신사분을 예의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오늘 결정하려고 했는데…….”

“결정?”

미아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바텐더는 제 말실수를 깨달았는지 흠칫 놀라더니 이내 비즈니스적인 미소를 지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저희의 기우였던 듯합니다. 사죄의 의미로 제가 선물을 하나 드릴까 하는데, 어떠실까요?”

그는 그러면서 아주 능숙하게 녹색 병을 꺼냈다.

“글렌켈란!”

미아가 바로 함박웃음을 지었다. 진짜로 좋아하는 표정이었다. 페르디안은 침음성을 흘리며 바 테이블 위를 바라보았다.

처음에 시킨 한 잔이 전부인 자신과 달리, 미아 앞에는 어느새 온갖 잔이 주르르 늘어서 있었다.

그렇게 마시고도 또 마시겠다고?

하지만 페르디안이 말릴 틈도 없었다. 미아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글렌켈란을 잔에 쏟아붓더니, 순식간에 그 독주를 한 병 다 먹어치웠다.

“디안. 나 진짜 졸려…….”

그러고는 그렇게 말하며 스르르 자신의 몸 위로 엎어졌다.

페르디안은 가까스로 그녀의 몸을 붙잡았다. 예전에 잡았을 때처럼 가느다란 몸이 죽은 사람처럼 늘어지는 것에 그는 몹시도 당황했다.

술에 젖어 반짝이는 입술과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뺨을 내려다보는 페르디안을 향해 바텐더는 눈빛으로 의사를 물었다.

결국 페르디안은 살아서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고, 할 거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쉴 수 있는 방을…… 부탁하지.”

그 목소리를 들으며, 만취 상태를 연기하던 미아는 생각했다.

‘하. 먹고 살기 더럽게 힘드네…….’

* * *

아무래도 페르디안이 상처 입었던 건 그가 너무 뻣뻣하게 굴어서였던 게 분명했다. 계속 이쪽을 힐끔거리던 경비원들이 더는 관심을 주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이다.

‘이제 다칠 일은 없다는 뜻이지!’

대체 그동안 얼마나 뻣뻣하게 굴었길래 칼빵까지 맞았나 싶지만, 페르디안의 평소 성격을 생각하면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애초에 그 같은 사람이 이런 곳에 잠입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만, 원래 로판이 다 그런 거니깐.

“위층은 처음 온 거죠?”

미아가 페르디안에게 안긴 채로 물었다.

두 사람은 지금 안내인에게 2층의 방 하나를 안내받아 들어온 상태였다. 방은 어두웠고, 거대한 침대가 있었으며, 구석에는 아무리 봐도 수상한 물병이 놓여 있었다.

“저건 드시지 마세요.”

“그 정도는 나도 안다.”

페르디안은 팔다리를 나무토막처럼 움직이며 미아를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매우 빠른 속도로 뒤로 물러나, 문 앞에 섰다.

하얀 가면 너머의 잘생긴 얼굴에 혼란이 가득한 게 보였다.

‘섭남이라 여자 손목 한번 잡아 본 적도 없을 테니까, 이해해 줘야지!’

미아는 그에 신경 쓰지 않고 날름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와! 침대 엄청 푹신해요!”

그 태연한 모습에 페르디안이 어이없다는 듯이 한숨을 흘렸다.

“……넌 긴장이란 걸 모르나?”

미아가 침대를 꾹꾹 누르며 고개를 갸웃했다.

“긴장할 이유가 없는데요!”

“장소가 이런데도?”

“페르가 지켜 줄 거 아니에요?”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대답에 페르디안이 기묘한 침음성을 흘렸다. 예상외의 반응에 미아가 흠칫했다.

‘안 지켜 주겠다는 뜻인가?’

그럼 위험해지면 알아서 살아남으란 거야?

미아가 입을 삐죽 내밀고서 침대 옆을 팡팡 두드렸다. 뭐가 됐든 당장의 일은 아닐 터였다.

“그보다 기왕 2층에 올라온 거, 바깥을 살펴보러 갈 거죠? 바로 나갈 거 아니면 잠깐 앉아 계세요!”

“안 나간다.”

“엥! 왜요?”

미아의 물음에 페르디안이 한숨을 쉬었다.

“취한 아녀자를 두고 자리를 뜨는 것은 기사도에 어긋난다.”

“저 안 취했는데…….”

작게 반박해 봤지만 듣는 눈치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역시 자신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탓에 두고 갈 수가 없는 거겠지.

‘뭐, 됐다. 본인이 기회를 걷어차겠다는데!’

여기까지 와서 칼침 맞는 걸 구해 준 것만으로도 미아는 할 일을 다 한 셈이었다.

‘그보다 시즈는 잘하고 있으려나?’

그 순간, 미아의 머릿속에는 애초에 율리시즈의 잠입이 목적이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그라스 후작이 누구와 작당 모의 중인지 알아내는 것 말이다.

율리시즈야 뒷골목 출신이니 연기 못해서 칼침 맞을 일은 없을 터였다. 나름 오르퀘니나 최고의 정보 길드를 운영하고 있으니 잠입도 성공했을 테고.

‘일이 술술 풀리네!’

게다가 오랜만에 글렌켈란을 마셔서 기분이 좋았다. 미아가 드러누운 채 실실 웃었다. 글렌켈란은 꽤 독한 술이라서, 웬만한 술집에서는 취급조차 하지 않았다.

술고래인 지로티 공작 때문에 <장미 정원의 세레니티>에서는 다양한 술 이름이 나왔지만, 그중에서도 글렌켈란을 마시는 인물은 지로티 공작을 포함해 세 명뿐이었다.

“……?”

멍하니 생각하던 도중, 미아는 옆자리가 눌리는 느낌을 받았다.

고개를 돌리니 페르디안이 머뭇거리며 침대 끝에 걸터앉아 있었다.

시선을 의식했는지 그가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편이, 자연스러울 것 같아서.”

“지금은 아무도 안 보는데.”

“…….”

말없이 다시 일어나려는 페르디안을 미아가 실실 웃으며 도로 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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