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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93화 (93/193)

93화

입술을 오므린 채 남 일 보듯 눈을 깜빡이는 미아에게서는 일말의 난처함도 보이지 않았다.

‘……뭐, 뭐지?’

힐데가르트가 당황한 사이, 미아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저기, 힐다 양! 뭔가 오해가 있던 게 아닐까요? 저는 힐다 양의 약혼자와 바람을 피운 적이 없는데요.”

정신을 차린 힐데가르트가 거세게 말했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미아 님이 제 약혼자에게 청혼받은 모습은 모두가 다 봤다고요!”

“아. 그거…….”

미아가 난처하게 말끝을 흐렸다. 그녀는 조금 불만스럽게 뺨을 부풀리더니, 뚱한 얼굴로 말했다.

“저도 좀 곤란해요. 저한텐 폐하뿐이고, 제가 눈이 좀 높아서……. 힐다 양은 약혼자에게 그다지 까다롭지 않으신 것 같던데, 좋게 대화하셔서 푸는 건 어때요?”

“…….”

그딴 약혼자 줘도 안 가져, 라는 숨은 목소리가 힐데가르트의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힐데가르트는 잠시 망치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었다.

“지, 지금 뭐라고요……?”

“제가 귀여워서 청혼받은 게 제 탓은 아니라고요!”

미아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힐데가르트의 머리끝까지 분노가 치밀었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거짓말 아닌뎅.”

“미아 님은, 심지어 제가 대화를 하고자 보낸 시녀에게 해코지까지 하셨잖아요!”

“제가요?”

“그래! 네가!!”

노호를 내지른 힐데가르트가 흠칫했다.

‘아니야, 말려들어선 안 돼. 나는 우아하게 사람들의 칭송을 받아야 한다고!’

정신을 가다듬은 힐데가르트가 숨을 크게 들이켠 뒤 말했다.

“제 시녀에게…… 레기아 용액을 뿌리셨으면서!”

“……!”

그러자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말도 안 돼. 정말로?”

“세상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힐데가르트는 그것이 만족스러웠다.

‘증인은 내가 데리고 있어. 예니가 증언만 하면, 요제프까지 엮어서 넌 그 미친 황제한테 사형이야!’

힐데가르트가 끓어오르는 노기를 억누르며 미아를 바라보았다. 고지가 코앞이었다.

이 일이 끝나면, 자신은 세레니티를 뛰어넘는 고결한 성녀로서 사교계에 자리매김할 것이다.

그리고 미아 셀레스티얼은 희대의 탕녀가 되어 요절하리라.

“예니! 숨지 말고 나와! 내가 지켜 줄게!”

힐데가르트가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곧, 후드를 쓴 사람 한 명이 볼룸 입구에서부터 걸어 들어왔다.

무도회에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였으나 누구도 그걸 지적하지 않았고, 오히려 길을 내주기까지 했다.

새로 등장한 인물은 머뭇거림 하나 없이 다가와, 미아와 힐데가르트의 중간에 섰다.

‘예니?’

사전에 계획된 것과 달리 자신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예니의 모습에 힐데가르트는 눈썹을 찌푸렸다.

‘왜 거기 가 있는 거야? 내 옆에서 나를 돋보이게 해야 할 것 아냐!’

좀처럼 계획대로 되는 게 없다는 생각에 짜증이 치밀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주변을 의식하곤 작은 새처럼 몸을 떨었다.

‘뭐, 됐어. 뭐가 됐든 분위기는 이미 내 편이니까!’

어차피 예니는 일만 끝나면 사람을 시켜 죽여 버릴 생각이었다. 범죄는 완벽해야 하니까.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말이다.

“예니. 정말 힘들겠지만……, 후드를 벗어 줄래? 미아 님이 조금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널 보고서도 자신의 허물을 부정하진 못할 테니까.”

힐데가르트가 속을 숨기고 다정하게 말했다.

“네. 아가씨.”

그리고 예니는 천천히 자신의 후드를 걷었다.

“으……!”

“어우, 징그러…….”

그녀의 민낯이 드러나자마자 여기저기서 비명과 탄식이 흘러나왔다.

‘욱.’

힐데가르트 역시 새삼 토기를 느꼈다. 그녀는 예니에게서 시선을 돌려 미아를 바라보았다.

“예니는 저를 오랫동안 보살펴 주었던 제 가족 같은 시녀예요! 그런 예니에게 대체 어떻게 이런 잔인한 짓을 하실 수가 있어요! 저는…… 예니를 이렇게 만든 미아 님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요!”

힐데가르트의 말에 맞춰, 바람잡이들의 입이 일하기 시작했다.

“저도 저 시녀는 릴레 양을 꽤 오래 모신 걸로 기억해요.”

“힐데가르트 양은 제게 미용수를 나눠 주시기도 한 좋은 분이신데, 어쩌다 이런 일에 연루되셔서…….”

“크네히트 백작과 정분이 난 것도 그래요. 여지를 줬으니까 백작이 저리 달려든 거겠죠?”

“그러고 보니 저 여자는 세레니티 듀레인 양을 말벗으로 두고서 괴롭히기까지 했다네요.”

“어머, 정말요?”

미아는 그 모든 소란을 들으면서도 마냥 가만히 서 있었다. 힐데가르트는 그제야 약한 위화감을 느꼈다.

‘왜 이렇게 태연하지……?’

예상대로라면, 지금쯤 벌써 발작이라도 일으키고 있어야 하는데.

상상과 달리 미아는 몹시도 차분했다. 그녀는 강아지처럼 처진 눈을 깜빡이며, 그녀는 입술을 오므린 채 힐데가르트와 예니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묘한 위압감이 흐르는 목소리로 말했다.

“힐데가르트. 마지막 기회야. 다시 생각해.”

“…….”

힐데가르트는 저도 모르게 주춤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잠깐이나마 두려움을 느꼈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무슨 말이시죠? 기회는 제가 드리고 있는 거예요!”

“난 네 약혼자랑 바람피운 적도 없고, 네 시녀를 해친 적도 없어. 알잖아?”

“그럼 제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단 뜻인가요?”

“응.”

미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웃음기가 사라진 미아의 얼굴은 마치 비스크 인형처럼 무기질적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이 힐데가르트의 뒷머리를 잡아채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사람들이 미아의 당당함에 휩쓸려 비난을 망설이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야. 발버둥쳐 봤자야. 저건 그냥 허세라고!’

곧 힐데가르트는 예니를 향해 외쳤다.

“그럼 네가 말해 봐, 예니! 누가 널 그렇게 만들었는지!”

그 말에 내내 묵묵히 자리에 서 있던 예니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일그러진 얼굴이 힐데가르트에게 향했다.

그렇게 둘의 시선이 마주친 순간.

힐데가르트는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왜 그런 눈을 하고 있어, 예니?’

자신을 바라보는 예니의 눈빛에서는 증오가 끓어 넘치고 있었다. 차마 잘못 봤다고 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깊은 증오가 말이다.

힐데가르트의 두 눈이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가씨.”

그리고 예니 푹스는 손가락을 들어 힐데가르트의 명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절 이렇게 만든 건 당신이잖아요?”

* * *

힐데가르트는 눈을 크게 뜬 채 자리에서 굳었다. 예니의 충격적인 발언에 사람들 역시 그녀와 마찬가지로 굳은 상태였다.

“전부 아가씨 짓이잖아요. 왜 아닌 척 하세요?”

오로지 예니 푹스만이 증오와 분노로 얼룩진 목소리를 높였다. 힐데가르트의 눈이 당황으로 흔들렸다.

“예니……?”

“마부에게 돈을 쥐여 줘서 지정한 장소에서 멈추라고 지시한 것도 아가씨고! 제게 미아 님을 해치라고 한 것도 아가씨인데!”

“예니……. 거, 거짓말하지 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당신의 명령 때문에 저는 이 꼴이 됐어요! 미아 님은 호신용으로 반사 마도구를 가지고 계셨지만, 자신을 습격하려 한 저를 신관까지 써서 구해 주셨고요!”

“예니!!”

힐데가르트가 새된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더는 말하지 말라는 듯이.

하지만 예니는 비웃음과 함께 옷에 달려 있던 브로치를 떼어 낼 뿐이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있던 마법이 사라졌다. 뭉개져 있던 얼굴이 순식간에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사람들의 놀란 시선을 받으며, 예니는 미아를 향해 깊게 고개를 숙였다.

“게다가 미아 님은 제게 원래의 얼굴을 되찾을 수 있게끔 도와주시기까지 했죠…….”

숙였던 고개를 든 예니가 다시 힐데가르트를 노려보았다.

“명령에 실패하고 돌아간 나를 내치려고 한 당신과 달리!”

“그럼 사실 릴레 양이 저…… 미아 님을 해치라고 사주를 했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물었다. 예니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심지어 아가씨는 제게 그냥 죽어 버리지 왜 돌아왔냐고 하셨다고요!”

“내, 내가 언제!!”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을 깨달은 힐데가르트가 히스테릭하게 외쳤다. 예니는 그런 힐데가르트를 향해 조소했다.

“당신이 그때 그렇게 말했을 때, 전 당신 방문 앞에 있었어요.”

“……!”

힐데가르트가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녀는 변명거리조차 떠올리지 못했고, 사람들은 그 짧은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반응을 보니 정말인가 본데?”

“사람이 할 짓이 있고 못할 짓이 있지…….”

“거, 거짓말이에요!”

다급해진 힐데가르트가 주변을 향해 허겁지겁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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