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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80화 (80/193)

80화

미아와 요아힘까지 자리에 앉자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우선, 감사합니다. 미아 님.”

“네?”

“미아 님께서 폐하를 설득해 대외 선전에 힘써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렇긴 한데 별거 아니에요! 효과가 있을지도 아직 모르고…….”

요아힘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효과라면 이미 나왔습니다.”

“엑. 벌써요?”

“예. 미아 님은 외부인과 대화할 기회가 많지 않아 아직 눈치채지 못하신 모양입니다.”

“애초에 얘가 남이랑 얘기할 필요가 없잖아.”

아딜로트가 심드렁히 끼어들었다. 미아가 그를 째려보곤 요아힘을 향해 방긋 웃었다.

“들으신 거라도 있나요, 키르히 님?”

“요아힘라고 불러 주십시오.”

요아힘이 부드럽게 말했다.

“생 드나르와 회담을 마치고 오는 길에, 벌써부터 폐하가 생각보다 낭만적인 성품이시더라는 이야기가 돌더군요.”

“와!”

미아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손뼉을 쳤다.

“폐하, 성공했어요!”

“……그러네.”

아딜로트는 의외라는 얼굴이었다.

“설마 안 믿었어요?”

“요아힘이 해 온 것도 안 통했는데, 설마 그런 게 먹힐 줄은 몰랐지.”

“제가 말했잖아요! 미녀, 동물, 아기!”

“자기 입으로 그런 말 하면 안 부끄러워?”

“이……!”

미아가 뺨에 홍조까지 띄우며 씩씩거렸다.

‘……귀여워.’

아딜로트가 생각을 숨기려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결국 요아힘이 미아를 달랬다.

“말씀은 저렇게 하시지만 당장 죽이시진 않는군요. 미아 님을 꽤 마음에 들어 하시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요아힘의 태도는 아주 정중하고 상냥했다. 미아는 속으로 약간 놀랐다. 원작에서의 요아힘은 아주 깐깐하고 엄격한 재무 관리로 이름 높았다.

‘과자값으로 6억이나 받아 갔으니 한마디 할 줄 알았는데.’

아딜로트의 결정이니 토를 달지 않겠다는 걸까.

‘아니지. 요아힘 성격이면 이미 뒤에서 대거리했겠지.’

바른말은 무조건 하고 봐야 하는 게 요아힘이니까.

그러면서도 요아힘의 충성심도 어마어마했다. 원작에서 세레니티를 좋아하면서도 절대 나서지 않았으니까. 그저 끝까지 아딜로트를 뒤에서 도울 뿐이었다.

요아힘이 조금이라도 마음을 보인 건, ‘한여름의 블루문 축제’에서가 전부였다.

‘그러고 보니 축제도 곧이던가?’

그때, 원작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미아를 요아힘이 불렀다.

“그럼, 미아 님.”

“네?”

“혹시 앞으로의 일에 대해 정해 놓으신 것이 있습니까?”

“앞으로의 일이요?”

“예. 미아 님의 존재가 폐하께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니, 함께 일해 주시는 것은 어떠실지…….”

“지금도 그러고 있지 않나요?”

“좀 더 미아 님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분야에서 말입니다.”

미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

“다행히 저는 재상인지라, 어느 정도 자유로운 인사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

“바이지겔 백작 각하께서 인정하신 분 아닙니까. 분명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때, 아딜로트가 입을 열었다.

“아직은 아냐.”

요아힘이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폐하께선 달리 생각하십니까?”

“크리소르가 셀레스티얼 백작을 잡고 있잖아. 얘가 완전히 내 쪽으로 돌아선 것처럼 보이면, 백작을 죽이겠지.”

아딜로트는 가볍게 말했지만, 내용은 가볍지 않았다. 미아도, 요아힘도 동시에 뭔가를 깨달은 얼굴을 했다.

‘아딜이 내 자유행동을 봐주는 이유가 그거 때문이었구나.’

적당히 마음대로, 적당히 중립적으로 지내면서 가족을 지키라는 뜻이었다. 아딜로트 본인은 이제 가족이 없지만, 미아를 위해서.

‘역시 우리 애가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잘생겼어!’

미아의 콩깍지가 보다 두꺼워졌다. 반면, 요아힘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죄송합니다. 그 부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요아힘이 초여름의 새싹 같은 눈을 내리깔았다.

“제겐 가족이 있었던 적이 없기에, 실수를 할 뻔했군요.”

요아힘의 과거사를 아는 미아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괜찮아요! 사실 그건 생각 안 하셔도 되거든요!”

“예?”

“아빠 좀 죽으면 어때요!”

“…….”

남자 둘의 형언할 수 없는 시선이 미아에게 와닿았다.

‘아! 좀 더 부드러운 표현을 써야 하나?’

미아가 눈에 힘을 주었다.

“좋은 곳으로 보내드립시다!”

“…….”

“…….”

이거 아닌가 보다.

미아가 아무 일도 없던 척 화제를 바꿨다.

“그런데 페르 님은요? 요즘 안 보이시는데!”

“페르디안은 요즘 따로 조사하는 게 있어서 바빠.”

“그렇구나…….”

그때, 노크 소리가 울렸다. 곧 세레니티가 방으로 들어왔다.

“미아, 오늘……. 아.”

세레니티는 눈앞의 광경에 당황해 멈칫했다.

황제. 재상. 황제의 반려동물.

지나치게 신분이 높은 자들이 몰려 있었다. 당황한 세레니티가 서둘러 허리를 꾸벅 숙였다.

“실례했습니다……!”

“렌! 괜찮아. 들어와!”

“누구 맘대로? 난 변태 싫어.”

“방 주인은 나예요, 아딜! 무슨 일이야, 렌?”

“황궁 도서관에 같이 갈까 해서요…….”

미아의 물음에 세레니티가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하지만 바쁜 모양이죠, 미아?”

“아니아니아니! 전혀 안 바빠!”

“아닌데. 완전 바쁜데.”

그런 두 사람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던 아딜로트가 끼어들었다.

“좀! 아딜! 심술부리지 말아요!”

벌떡 일어난 미아가 세레니티를 테이블로 데려왔다.

“이쪽은 초면이지? 요아힘 님, 여기는 듀레인 남작가의 세레니티예요!”

그러고는 두 사람을 향해 서로를 소개시켰다. 두꺼운 책을 들고 있던 세레니티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한 마리 백조처럼 우아하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명민하신 재상님의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습니다. 세레니티 듀레인입니다.”

“재상 요아힘 키르히입니다. 그런데…….”

요아힘의 시선이 세레니티가 든 책에 닿았다.

“몹시 재밌는 책을 보고 계시는군요?”

“네. 미아가 추천해 준 책이랍니다. 제겐 아직 어려워서, 참고 도서를 찾으러 갈까 했어요.”

“미아 님이요?”

요아힘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딜로트 역시 조금 놀란 듯했다. 괜히 주목받는 느낌에 미아가 뺨을 긁었다.

미아는 요즘 세레니티에게 가문 경영에 대해 가르쳐 주고 있었다. 그 외에도 이것저것.

전부 소설에 들어왔다는 것을 깨닫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던 때 읽은 책이다.

그때 미아는 미친 듯이 공부했고, 미친 듯이 일했다. 셀레스티얼 백작가를 일으켜, 죽음을 피해 가기 위해.

‘사람이 죽기 싫으면 초인적인 힘이 난다던데 정말 그랬지.’

요아힘이 미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연둣빛 눈에서 어쩐지 굉장한 호감이 느껴졌다.

“이렇게 배움이 깊은 분인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나중에 가르침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미아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지금 저 놀리시는 거죠……? 현자의 재림이라고 불리는 분께…….”

“그 호칭은 제겐 너무 과분합니다.”

요아힘은 그렇게 말한 뒤 세레니티에게 몸을 돌렸다.

“괜찮으시다면 저도 책을 몇 권 추천해드려도 될까요?”

그렇게 말하는 요아힘은 묘하게 신나 보였다.

‘원래 책 좋아하는 사람은 남한테 책 추천할 기회를 안 놓치지.’

아무튼 세레니티에겐 좋은 일이었다. 요아힘은 정말 똑똑한 사람이니까. 세레니티의 안색도 확 밝아졌다.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주제넘은 말이지만, 혹시 어려운 점이 있다면 얼마든지 찾아오세요. 같이 연구해 보죠.”

“제가 괜히 재상님을 귀찮게 해드리는 건 아닐까요?”

“아닙니다. 제가 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바랄 뿐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미아가 문득 뭔가를 깨달았다.

‘이거 왠지…… 러브 라인?’

모르는 것을 알려 줘 가며 쌓이는 사랑. 정석 중 정석이다. 아딜로트와 대립하던 것과 달리, 세레니티도 요아힘 앞에서는 편해 보였다.

‘아니더라도 렌한텐 이득이야. 잘됐다.’

미아의 입가에 절로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 모습에 아딜로트가 중얼거렸다.

“넌 네 아버지보다 저 여자를 더 좋아하는 모양이야.”

“어떻게 아셨어요? 족집게시네!”

“……정말? 가족인데?”

“남보다 못한 가족도 있는 법이잖아요.”

가족도 아니고 애초에 남이지만 말이다. 물론 원래의 미아 셀레스티얼이 보면 속상할 수도 있겠지만, 미아는 원래의 미아 셀레스티얼도 백작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으리라 확신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일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

새 몸에서 깨어났을 때,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용인들의 눈빛으로 모든 걸 깨달았다.

원래의 미아가 슬픈 선택을 했었다는 걸.

그래서 백작에게 별로 미안하진 않았다.

‘애초에 가족과 떨어진 건 나도 마찬가지야.’

미아에게 가장 불쌍한 건 원치도 않게 다른 세계에 떨어져 살아야 하는 자신이었다. 그러나 내막을 모르는 아딜로트에게 미아의 그런 태도는 몹시 냉정해 보였다.

아딜로트가 묘한 눈으로 미아를 쳐다보았다.

“가끔, 너는 떠나거나 버리는 게 쉬워 보여.”

“어려울 거 있나요? 원래 무소유가 제일인 거예요.”

아딜로트의 입매가 굳었다. 미아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세레니티와 요아힘의 대화를 지켜보며 훈훈한 미소만 지었다.

* * *

시간이 흘렀다. 미아는 세레니티와 도서관에 들르기도 하고, 길 가던 못된 귀족을 밟기도 했다.

덕분에 돌아다니다 보면 누군가 미소 지으며 미아에게 인사하는 일이 잦아졌다.

대외적으로는 아딜로트와 봉사활동을 나가거나, 사회 취약층이 지내는 곳을 돌아보기도 했다.

세레니티는 요아힘에게 정기적으로 배움을 받는 듯했다. 미아 역시, 로사의 살롱에 계속 참여하며 활동 영역을 늘려 갔다. 살롱에 참여한 이들에게 원작을 이용해 약간씩 조언을 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교계에는 콜 백작가가 무역으로 큰 이득을 얻었고, 거기에 미아의 조언이 있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율리시즈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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