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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78화 (78/193)

78화

황제의 애완동물에게는 황제가 그녀에게 죽고 못 산다는 소문이 따라다녔다. 당연히 뇌쇄적인 여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사탕을 준다고 하면 따라올 것 같은 얼굴에 모두 놀란 상태였다.

‘그래도 속으면 안 되죠. 파이퍼 양에게 한 것만 봐도…….’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영애들이 시선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살롱이 시작되었다.

대화 주제는 사사롭지 않았다. 그들 모두가 관리직에 있는 자들이었고, 능력도 뛰어났다. 자연히 가문과 나라와 관련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저희 가문에서는 최근 트레베레움의 포트듀케인 상회와 교역을 텄답니다.”

“어머, 포트듀케인 상회라면 남대륙 제일의 상회 아닌가요?”

“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며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도 선물 받았죠.”

“세상에! 트레베레움 산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라니……. 요즘은 괜찮은 보석이 시장에 나오질 않아서 구하기 어려운데 말이에요.”

“트레베레움이라 하면, 알렉사 양은 어떠신가요? 콜 백작가는 트레베레움에 철광석을 수출하고 있지 않나요?”

“네. 최근 판매가를 15% 올려서 꽤 이득을 보았어요.”

“어머, 수완이 대단하세요!”

대화가 강물처럼 흘러 지나갔다.

그리고 모든 대화에서, 그중 누구도, 단 한 번도 미아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흥! 어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있어 보라지!’

아니카 파이퍼는 속으로 고소함을 느꼈다. 귀족이라면 누구도 굴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녀라고 이런 방식을 쓰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가장 효과적인 도발 방법이기도 했다.

여기서 미아가 폐하의 애완동물인 자신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부들대는 순간, 그녀는 절대 아딜로트의 신하들에게 인정받지 못할 터였다.

자신이 아무런 능력도 없이 황제 옆에 붙은 거머리라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될 테니까.

그 장면을 상상하니 기분이 좋다 못해 짜릿했다.

‘어디 얼마나 수치스러워하는지 볼까?’

아니카가 두근대는 마음을 숨기고 슬쩍 미아를 향해 시선을 돌린 순간이었다. 그녀는 보고야 말았다.

“와! <르세이레>의 무지개 쿠키!”

반짝이는 눈으로 태연하게 쿠키를 오물거리는 미아의 모습을.

“…….”

“…….”

타이밍 좋게 대화가 끊긴 순간이었다. 아니카 파이퍼의 어처구니 없다는 눈빛 덕에, 영애들의 시선도 미아에게 향했다. 그리고 그들 역시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눈으로 입을 벌렸다.

‘아니 쟤는…… 멘탈이 다이아몬드라도 돼?’

하다 못해 괜찮은 척 허세 부리려는 기미라도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기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미아에 얼굴에는 과자가 맛있어서 행복하다는 기쁨만 충만했다.

결국 누군가가 큰 목소리로 외치고 말았다.

“미아 양, 설마 저희 대화를 안 듣고 계시는 건가요? 저희 이야기가 지루해서 과자나 드시겠다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 순간, 미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답을 내놓았다.

“솔직히, 네!”

해맑게 웃으며 하는 말에 모두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오로지 로사 바이지겔만이 그 모든 모습을 흥미롭게 주시하고 있었다.

“……뭐라고요?”

질문자였던 알렉사 콜은 이내 공격적으로 눈을 치뜨고서 냉소를 지었다.

“어머! 그럼 지루하지 않을 이야기를 미아 양이 해 주시겠어요?”

“그럴까요?”

미아가 심드렁하게 쿠키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방긋 웃었다.

“말씀하신 그 생각, 별로 좋지 않아요.”

“네?”

“철광석 가격을 올리는 거요. 적정 인상률은 10%였어요.”

알렉사 콜의 눈초리가 사나워졌다.

“무슨 말씀이시죠?”

“트레베레움은 거대한 섬이라 국경 방어가 필요 없어요. 무기가 덜 필요하고, 당연히 철광석의 필요도가 낮죠.”

“그러니 철강 산업이 더 발달한 오르퀘니나가 이득을 볼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왜 트레베레움이 꼭 우리나라를 고집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거야 당연하죠! 주변 어느 나라도 오르퀘니나만큼 철강 산업이 발달하지 않았으니까.”

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아요. 당장은 그렇죠. 지금까지는 합리적인 가격에 철광석을 수출해 왔으니까요.”

“저희 가문이 제시한 가격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건가요?”

“네.”

“우스운 말이군요. 당신 생각과 달리 트레베레움은 거래에 응했어요!”

“그야 당장은 수입해야죠.”

미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새 광산에 투자해 이득을 보는 게 낫다고 판단한 순간, 트레베레움은 자국의 철광석 광산을 개발하는 게 낫다고 판단할 거예요. 즉, 장기적으로 보자면 수출 판로가 막히는 거죠.”

“그걸 미아 양이 어떻게 알죠?”

미아가 무슨 말을 하냐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으응? 방금 말씀하셨잖아요. 질 좋은 보석을 찾기가 힘들어졌다고.”

“그건, 그게……. 네……?”

“그 보석을 캐던 인력과 장비가 다 어디로 갔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 순간, 알렉사 콜은 누군가 뒤통수를 때린 듯한 얼굴을 지었다.

“트레베레움은 자국과 달리 광산 개발 노동 인력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어요. 게다가 애초에 오르퀘니나가 트레베레움보다 우위였던 건 철광석의 매장량과 질이에요. 가공 쪽에선, 트레베레움을 따라갈 수가 없죠.”

“하지만 그런 소식은…….”

“시기를 생각하자면 이제 막 개발이 결정났겠네요. 트레베레움의 새 왕비는 꽤 수완가라고 알고 있으니까, 일을 시끄럽게 처리하진 않았을 걸요?”

그제야 그들은 미리 로사 바이지겔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 애가 사실은 미로미스 상회의 실질적 주인이었다고 하는군요.’

솔직히 말하자면 로사에게 듣고도 믿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미아 셀레스티얼은 사교계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셀레스티얼 백작저에서 그녀를 본 사람들은 몇 명 있던 것이다. 그들 모두 같은 이야기를 했다.

‘미아 셀레스티얼 양이요? 예쁘장하게 생겨서 백작이 싸고도는 것은 이해가 가더라고요.’

‘소심하고 수줍음이 많은 분이셨어요.’

‘모친인 백작 부인을 닮아서 몸이 연약하셨죠?’

‘침대 밖으로는 잘 못 나온다던데…….’

원래의 미아 셀레스티얼은 그랬다.

그런 증언이 있는 만큼, 셀레스티얼 백작가를 일으킨 사람이 미아라는 것은 더더욱 믿기 어려웠었다.

“…….”

하지만 눈앞의 여자는 너무나도 당당했다. 천진하고 순진한 눈은 흔들림 없이 알렉사 콜을 응시했다.

모두가 느꼈다. 미아는 더 많은 근거를 댈 수 있다. 다만, 너무 말이 길어지니 말하지 않을 뿐이다.

알렉사 콜이 이마를 짚었다.

“하, 하지만 이미 올렸는데…….”

“당장은 괜찮아요. 개발은 한두 해로 되는 게 아니니까. 다만 미래를 생각하면 좀 곤란하겠죠?”

“아, 아직은 모르는 거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신문을 잘 보세요! 제 생각에 조만간 트레베레움이 대대적으로 철광석 개발에 투자한다는 기사가 뜰 거예요.”

알렉사 콜은 혼란을 숨기지 못했다. 그런 그녀를 미아는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사실, 장기적인 손해 없이 이득을 볼 방도가 하나 있긴 해요.”

그 말에 알렉사가 번개같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녀의 몸이 저절로 미아에게 기울었다.

“그게 뭐죠!?”

“뭐냐면요! 그건 바로…….”

“바로!?”

그 순간, 미아가 까르륵 웃었다.

“멍!”

“…….”

“……?”

모두가 잠시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사이에서, 미아는 싱그럽게 웃으며 깍지 낀 손으로 턱을 받쳤다.

“아. 제가 사람 취급도 못 받는 ‘애완동물’이라 그만.”

* * *

미아는 ‘무해해 보이려는 노력’을 완전히 집어던졌다. 순진한 눈망울, 천진한 미소는 그대로였지만, 흔들림 없는 시선은 당돌하고 호전적이었다.

“아무도 말 안 걸어 주는 ‘애완동물’이라 그만 본성대로 짖어 버렸네요! 사람이었으면 말할 수 있었을 텐데멍, 애완동물이다 보니멍, 멍멍?”

미아는 그렇게 말하며 해맑게 웃었다.

“여러분이 진짜로 고작 ‘동물’의 말에 귀 기울였을 리도 없지만요! 제가 생각한 것쯤은 다 알고 계셨죠? 아하하!”

누가 들어도 비꼬는 말이었다.

그렇게 날 무시하더니, 나만큼 생각하지도 못해? 짐승만도 못한 건 너희 아냐?

로사 바이지겔을 제외한 모두의 얼굴에 노기가 떠올랐다.

“지금 저희를 놀리시는 겁니까, 미아 양?”

“놀리는 건 괜찮고, 놀림당하는 건 싫으신가요?”

“모욕적이군요. 폐하의 총애만 믿고 저희를 무시하는…….”

“으응? 제가 지금까지 폐하를 언급한 적이 있나요?”

미아가 까르륵 웃으며 손을 가슴 위에 얹었다.

“잘 들으세요, 여러분.”

겸손한 자세와 달리 시선에는 힘이 있었다.

“미로미스를 만든 것도 저. 망해 가던 셀레스티얼을 일약 대부호로 만든 것도 저. 에트루리나 광산을 개발한 것도 저. 방금 콜 백작 영애에게 조언한 것도 저.”

“…….”

“여기 어디에 빌린 권위가 있죠? 난 정말 모르겠는데 알려 주실 수 있나요?”

그때였다. 당당한 미아의 말에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이를 뿌득 간 앙겔라 클룸 백작 영애가 나섰다.

“당신이 여기 초대되고, 발언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폐하의 은덕 아닙니까!”

“아! 좋은 지적이에요, 앙겔라 클룸 양. 그럼 폐하는 왜 그러셨을까요?”

“네?”

“폐하는 왜 반역자의 딸을 살려 두셨을까요? 폐하는 왜 저를 황후 후보로 올리셨을까요?”

“그건, 폐하의 뜻이니까 저로서는…….”

“네. 폐하의 뜻이죠. 그런 폐하의 뜻을 어째서 양들이 시험하시나요? 설마 폐하의 눈을 의심하시나요?”

“……폐하께서 잘못된 길로 걸어가고 있다면 간언하는 것도 충신의 의무예요!”

“폐하께서 뭘 잘못하셨는데요?”

“당신처럼 수상한 자를 곁에 두셨죠!”

“폐하께서 설마 저를 조사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폐하께서 그렇게 허술한 분이시던가요?”

아니다.

앙겔라 클룸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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