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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77화 (77/193)

77화

미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딜 부하들 마음에 들기는 진짜 어렵네요! 페르 님도 그랬지만.”

“불참해도 돼. 바이지겔도 그렇게 말했고.”

천진하게 웃기만 하는 미아와 달리 아딜로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아딜로트는 로사가 어째서 미아를 불렀는지 알고 있었다. 애초에 미아를 들였을 때 제일 반대했던 것이 로사였다.

확인하고 싶은 것이리라.

황후 후보로 거론되는 반역자의 딸이 누구인지.

그녀가, 그들이 모시는 황제의 눈을 가린 게 아닌지.

충심과 월권의 선을 애매하게 넘나드는 초대장이었다.

어떻게 보면 아딜로트 선에서 먼저 거절하는 게 나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로사 바이지겔의 초대가 지극히 정중했다.

숙녀들이 만나 이야기를 하겠다는데, 그걸 말리는 것도 보기에 좋지 않다.

그리고 그녀는 어쨌든 아딜로트와 생사고락을 같이 한 부하였다. 로사에게 다른 뜻이 없는 것은 그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바이지겔은…… 나쁜 사람은 아니야. 충성심이 강할 뿐.”

아딜로트의 말에 미아는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알아요, 그런 건! 걱정하지 마세요. 잘하고 올게요! 아딜 부하니까 저도 잘 보이고 싶고요!”

아딜로트가 물끄러미 미아를 바라보았다. 붉은 눈에서 무심한 기색이 차차 사라지고, 묘한 잔인성이 떠올랐다.

“‘샹귀스―에키온’ 들고 갈래?”

“그걸 왜요?”

“여차하면 휘두르라고.”

“부하인데?”

“부하라서 더 엄격해야 하는 부분도 있는 거지.”

태연한 농담 같지만 뼈가 있는 말이었다.

‘혹시라도 그녀가 선을 넘었을 때 자기를 생각해서 참지는 말라는 거지.’

아무리 미아가 굴러온 돌이래도, 황제가 인정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혹시라도 무례하게 대한다면, 그건 사실 황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도 같다.

하지만 미아는 아딜로트가 부하와 멀어지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그녀는 으스대며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휙 넘기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휴, 아딜? 강자는 함부로 검 뽑는 거 아니랬어요! 그래서 저도 함부로 칼질 따위는 하지 않는답니다!”

“검도 없으면서.”

아딜로트는 픽 웃었지만 더는 권하지 않았다.

뭐가 됐든 미아는 기가 막힌 방법으로 헤쳐나갈 거란 믿음이 있었다.

* * *

로사 바이지겔은 유능하고 충성스러운 기사다. 황제파 여귀족들의 구심점이기도 하다. 원작에서는 세레니티를 돕는 조연의 역할을 했다. 특히 무도회나 티 파티, 살롱 같은 세계에서 말이다.

‘물론 그건 세레니티가 여자주인공이라 가능했던 일이고…… 나한테는 어림없겠지.’

미아가 탄 마차가 바이지겔 백작저에 도착했다.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미아는 진한 장미향을 맡았다. 살롱 장소는 정원이었다. 잔디밭 주변으로 장미가 만발한 정원이 보였다.

그곳에는 이미 여섯 명의 귀족 여인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중 가장 상석에 앉은 여인이 바로 로사 바이지겔이었다.

그녀는 붉은 머리카락을 틀어 올리고, 어두운 붉은색의 드레스를 입었다. 장밋빛 눈은 눈꼬리가 매서웠으나, 관대함을 가장한 표정 덕에 귀족다운 품위 정도로만 보였다.

그녀는 삼십 대 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로사 바이지겔 옆의 바닥에 꽂혀 있는 창이었다. 언제 어디에서든 기사로서 행동하겠다는 다짐 때문에, 그녀는 티 타임에서도 창을 놓지 않았다.

‘역시 바이지겔답네.’

미아는 조심스럽게 그들에게 다가갔다. 이 살롱은 원작 소설에는 없던 것이니만큼, 신중해야 했다.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 모양이군요.”

미아가 나타난 걸 눈치챈 로사가 말했다. 그녀는 들고 있던 찻잔을 내리고 싱긋 웃었다.

“어서 와요. 로사 바이지겔입니다.”

“안녕하세요! 미아입니다.”

미아가 방긋 웃고 눈으로 주변을 훑었다.

‘율리시즈가 보내 준 초상화대로네.’

주변에 포진한 다섯 명의 영애들은 전부 로사보다 어렸다. 그리고 유력 가문의 후계자거나, 일원이거나, 고위 관리직인 이들이었다.

‘쟁쟁한 영애들이야. 황제파의 핵심이기도 하고.’

역시 바이지겔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녀들이 미아를 보는 시선은 차분했으나 곱지는 않았다.

이해는 간다.

셀레스티얼 백작가는 반역으로 몰락했다. 그런데 그 딸이 살아 있는 데다, 황후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미아가 아니었다면, 아딜로트는 이들 중 한 명과 결혼했을 확률이 높다.

‘나 싫다는데 잘해 주긴 싫지만…… 아딜 부하니까 참아 봐야지.’

그런 생각을 하던 미아는 문득 뭔가를 깨닫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의자가 없네?’

사람은 일곱. 자리는 여섯.

설마.

미아가 애써 웃으며 물었다.

“저는 어디에 앉으면 될까요?”

그 말에 제일 말석에 앉아 있던 아니카 파이퍼 자작 영애가 키득거렸다.

“바닥에라도 앉으시는 건? 어차피 ‘애완동물’이니 사람 앉는 의자는 필요하지 않을 텐데요.”

미아는 입을 다물고, 나오려는 한숨을 참았다. 골이 띵했다.

‘이건 너무 유치하잖아!’

로사 바이지겔은 그들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우아하게 차만 마셨다. 끼어들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약간 괘씸한 기분이 들었다.

오기 전까지만 해도 미아는 이들과 친목을 다지려 했다. 이들 모두가 아딜로트를 돕는 자들이다. 그러니 되도록 잘해 주고, 아딜을 잘 부탁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나온다면 내가 굳이 머리 숙이고 들어갈 필요가 없지?’

미아가 방긋 웃었다. 태연한 미소에 영애들이 이상함을 느낀 순간이었다.

“알았어요! ‘애완동물’이 좋다 이거죠?”

다음 순간, 미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에 앉았다.

정확히는, 아니카 파이퍼의 무릎에 앉았다는 뜻이다.

* * *

잠깐 모두가 멍해졌다. 졸지에 미아에게 끌어안긴 아니카가 뒤늦게 경악했다.

“꺄, 꺄악!?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앉을 데가 없어서요!”

“그런데 왜 내 무릎에 앉아요!”

“원래 애완동물은 무릎에 앉는 거예요!”

“당신은 품위도 자존심도 없나요!?”

“아하항! 애완동물에게 품위라뇨! 무슨 말씀이신지!”

“저, 저리 가요!”

“멍머머멍! 동물이라 못 알아듣겠네!”

“이, 이게 진짜!?”

“아하하하!”

기어코 아니카 파이퍼가 미아의 몸을 밀쳤다.

하지만 미아가 그녀를 워낙 단단히 붙잡고 있던 터라, 오히려 아니카의 몸이 의자에서 미끄러졌다.

“악!”

아니카가 바닥에 무릎을 찍었다. 하지만 미아는 예상했다는 듯이 두 발로 사뿐 섰다. 그리고 방실방실 웃으며, 살포시 빈 의자에 앉았다.

“앗. 자리당.”

“…….”

모두의 머릿속에 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미친년이다!’

귀족이 아닌 평민이라도 자존심이라는 게 있다. 보통은 문제가 생기면 최대한 고상하게 해결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눈앞의 여자에겐 그런 게 없다.

건드리면 문다.

나는 동물이라 체면이고 뭐고 없다.

가문도 몰락했다.

밑질 게 없다.

내가 이 구역에서 제일 미쳤으니 알아서 조심하라는 선전포고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방긋방긋 웃는 모습이 무시무시하게 느껴져, 사람들은 침을 삼켰다.

자고로 화난 사람보다 미친 사람이 무서운 법이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이런 타입일 줄은 몰랐는데!’

미아 셀레스티얼은 셀레스티얼 백작가의 금지옥엽이라고 들었다. 당연히 오냐오냐 자랐을 거라고 생각했다.

‘조금만 찔러 주면, 자존심에 못 이겨 폭발하겠지?’

그런데 예상과는 달랐다. 눈앞에 있는 여자에게서 느껴지는 건…… 산전수전 다 겪어 본 듯한 어마어마한 쌍X의 기미였다.

“의자를 하나 더 가져오도록.”

그때, 차만 마시고 있던 로사 바이지겔이 말했다.

그녀의 건조한 명령에 영애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교환했다.

‘너무 흥분하지 말아요, 우리.’

‘그래요. 시작보다 말려들 필요는 없죠.’

시종이 빠르게 의자를 가져왔다. 로사는 그제야 미아와 눈을 마주쳤다.

“내 친구가 조금 짓궂었군요. 사과하겠습니다, 미아 양.”

“아뇨! 이런 장난 오랜만이라 두근두근했어요!”

미아는 방글방글 웃으며 새로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의자를 짚고 일어나려는 아니카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파이퍼 양! 왜 그러고 계세요? 다리가 저리세요? 제 무릎에 앉으실래요!?”

“…….”

영애들이 다시 깨달았다. 미쳐도 보통 미친 여자가 아니다.

“……이, 이이!”

졸지에 존경하는 바이지겔 백작 앞에서 수치스러운 꼴을 보인 아니카 파이퍼는 당장이라도 고함을 칠 기세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로사가 제지했다.

“자리에 앉도록 해요, 아니카 양.”

“……!”

거절은 받지 않겠다는 단호한 말이었다.

아니카 파이퍼는 씨근거리며 자리에 앉아, 미아를 노려보았다. 본때를 보여 주고 말리라는 뜻으로 이글거리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미아는 그 시선을 받고도 수줍게 뺨을 붉혔다.

“눈빛이 너무 열렬하지만, 죄송해요, 파이퍼 양! 전 남자가 좋아요!”

“너!!”

“아니카 양.”

아니카 파이퍼가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으나, 로사가 재차 아니카의 말을 잘랐다.

“아니카 양의 차가 식었군요. 더 드리도록 하죠.”

싱긋 웃는 얼굴에서 압박감이 느껴지자 아니카가 흠칫하고 입을 다물었다. 로사 바이지겔은 도도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모두를 향해 입을 열었다.

“미아 양입니다. 모두 환대해 주시길.”

그러자 로사의 눈치를 보며 모두가 미아를 향해 한마디씩 던졌다.

“환영해요, 미아 양. 콜 백작가의 알렉사예요.”

“안녕하세요, 미아 양. 보겔 남작가의 에디트라고 해요.”

“네! 미아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미아 역시 방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흰 뺨에 발그레하게 홍조까지 떠오르는 모습이, 제법 귀엽게 느껴져 영애들은 영애들이 흠칫했다.

‘좀 더 요염한 인상일 줄 알았는데…….’

‘미인이긴 하지만, 소문과는 다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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