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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73화 (73/193)

73화

다음 날 저녁.

미아의 부름에 다짜고짜 불려 나온 율리시즈는 멍청히 눈을 깜빡였다.

“황태후를 만나 보겠다고요……?”

“응!”

의기양양하게 대답하는 미아의 모습에 율리시즈가 소매로 입을 가린 채 고개를 갸웃했다.

“싫어하시는 거, 아니었어요……?”

“싫어해!”

“그런데요……?”

“그래도 본격적으로 싸우기 전에 일단 말은 들어 볼까 해서!”

미아는 정탐을 통해 아딜로트의 상황이 생각보다 안 좋다는 것을 알아냈다. 아딜로트의 평판을 위해 이것저것 노력해 보긴 했지만, 궁에서만 사는 미아에겐 잘 되고 있는지 와닿지 않았다.

게다가 크리소르의 선동꾼 때문에 효과가 있더라도 오래 갈 것 같지도 않았고.

‘그러니까 가장 좋은 방법은 이 소설의 가장 큰 악당인 크리소르를 처리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율리시즈는 미아의 말을 듣고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눈웃음만 칠 뿐이었다.

“무슨 순진한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싸움은 칼부터 내미는 사람이 이기는 거예요…….”

“…….”

암살자의 조언은 별로 참고할 만한 것이 못 된다. 미아는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소설처럼 짠 하고 개과천선 해 줄지.”

미아는 빙의 후 지금까지 원작을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다. 그중에는 셀레스티얼 백작의 반역처럼 막지 못한 것도 있지만, 그녀의 존재로 바꾼 부분도 많았다.

잭 와인더의 죽음이나 엠브라 테타가 살아난 것, 테레지아의 표적이 바뀐 것 등이 그랬다.

‘그러니까 내가 크리소르를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일단은 시도라도 해 볼 생각이었다. 크리소르가 제정신만 차린다면 이 소설은 결말까지 평탄할 테니까.

“그래서 말인데, 혹시 렌이랑 황태후 사이는 어때?”

“어떠냐뇨……?”

“혹시 아주 친밀하거나…… 그래?”

미아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물었다. 조심스러운 화제였다.

’만약 렌이랑 크리소르의 사이가 좋으면, 내가 크리소르를 적대하는 순간 렌이 중간에서 애매해지니까.’

하지만 율리시즈는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전 미아 님이, 세레니티 님께 뭔가 언질을 주신 줄 알았는데요…….”

“응? 그게 무슨 뜻이야?”

“세레니티 님은 의외로, 황태후에게 미아 님의 정보를 흘리지 않아요…….”

“렌이?”

“그, 그런 것에 비해, 황태후는, 그녀를 꽤 좋아하는 것 같지만요…….”

이어지는 말에 미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곧 이유를 깨달았다.

여자주인공의 힘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여자주인공은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니까.

책과 달리 미아가 아딜로트의 옆을 차지했으니, 세레니티는 크리소르에게 미움받을 이유가 없었다.

세레니티도 귀족이니 황제와 황태후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자신이 이중 첩자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은 모를 터였다.

그러니 정보가 어느 정도 흘러나가는 것은 미아도 감안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아니면 혹시 렌이 뭔가 알고 있나?’

율리시즈가 했던 말을 되새긴 미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만약 세레니티가 아딜로트와 크리소르, 그리고 미아의 관계를 모르는 척 하고 있는 거라면…….

‘아슬아슬하지만 현명한 거라고 봐야지.’

안 그래도 크리소르 때문에 세레니티가 걱정됐는데, 그렇다면 더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듯했다.

“어쨌든 앞으로도 잘 부탁해!”

미아가 씩 웃으며 하는 말에 율리시즈는 소매로 입을 가린 채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도와드릴게요……. 다만 제가 미아 님을 돕는 건, 계약을 위해서라는 걸 잊지 마시고요…….”

율리시즈는 지나가듯 속삭이며 창문으로 나갔다. 그가 나간 즉시, 문이 열리고 세레니티가 들어왔다.

“미아. 제가 좀 늦었네요. 뭘 하고 있었어요?”

“응? 그냥…… 세상에 믿을 놈 없다는 생각을 좀 하고 있었어.”

뾰로통한 얼굴로 답한 미아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 나 황태후 폐하를 만나러 갈 생각인데, 렌은 어떡할래? 같이 갈 거야?”

“황태후 폐하를요?”

잠시 놀란 듯한 표정의 세레니티가 이내 빙긋 웃었다.

“그럼 당연히 저도 함께 가야죠.”

우선 두 사람은 크리소르에게 가기 전에 아딜로트에게 먼저 들르기로 했다. 적진이라고 할 수 있으니 아무래도 미리 말하고 가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탓이었다.

때마침 점심 식사시간이었다. 아딜로트는 보통 대신들과 식사를 하지만, 미아가 기별을 넣자 그것을 즉시 취소했다.

황제의 접견실에 다다르자, 긴 탁자의 상석에 앉아 있는 아딜로트가 보였다.

“폐하.”

미아의 부름에 서류를 보고 있던 아딜로트가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이야? 잘 찾아오지도 않더니.”

“보고 싶어서?”

순간 아딜로트가 멈칫했으나, 이내 곧 시큰둥하게 눈을 내리깔았다.

“거짓말.”

“와. 들켰다!”

“…….”

미아. 그거 아니에요…….

지켜보던 세레니티마저 아딜로트에게 애도를 표할 정도의 천연덕스러움이었다.

“그래서 용건은?”

어쩐지 기운이 빠진 듯한 아딜로트의 대답에 미아는 마냥 까르르 웃었다.

“황태후 폐하를 뵙고 싶은데, 허락해 주실래요?”

옆에 있는 세레니티를 의식해서 적당히 고른 말이었다. 그 말에 아딜로트가 멈칫했다.

“왜?”

“볼일이 좀?”

“네가 그 여자랑?”

“하고 싶은 얘기도 있고~ 황태후 폐하께서도 절 보고 싶어 하신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볼일 있으면 자기가 오지 왜 너더러 오라 가라야?”

아딜로트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치만…….”

“너는 지금 황제의 애완동물이야. 그런데 그런 너를 개처럼 멋대로 부리면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 것 같아?”

“그런 것치곤 폐하도 그 멍멍이랑 춤도 추고 방도 주고 이러쿵저러쿵 소문도 나고…….”

아딜로트의 얼굴이 팍 구겨지자 미아가 잽싸게 태세를 바꿨다.

“제 말은 황태후 폐하도 그냥 제 재롱을 보고 싶으신 게 아닐지!”

“네가 왜 그 여자한테 재롱을 부려.”

“폐하랑 사이좋게 지내 달라고요.”

“내가 왜 그 여자랑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데.”

아딜로트의 대답에 점점 더 날이 섰다. 미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야 폐하가 덜 힘들잖아요?”

“…….”

미아. 밀당 고수네요……. 뒤에서 세레니티가 중얼거렸다.

점점 싸늘해지던 아딜로트의 분위기는 한순간에 다시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좀처럼 대답은 떨어지지 않았고, 뒤에서 연신 타이밍만 보고 있던 세레니티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폐하. 미아 님이 걱정되시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제가 미아 님을 지켜볼게요.”

“맞아! 저희 같이 갈 거예요!”

미아가 활짝 웃으며 세레니티의 팔짱을 꼈다.

아딜로트는 그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

“그 여자가 널 해치면?”

“별걱정을 다 하시네! 황태후 폐하가 저를 왜 해치시겠어요!”

자기 첩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마당에.

옆에 있는 세레니티 때문에 뒷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딜로트는 알아들은 눈치였다.

“아무리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또 일신의 안위에는 매우 신경을 쓰는 타입이라!”

“쓰면 얼마나 쓴다고.”

“여차하면 불 지르고 튈게요!”

“그래, 불 지르고 튀……, 뭐?”

“제가 도망쳐 오면 받아 주셔야 해요!”

당당한 미아의 말에 아딜로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나도 가야겠어.”

……어째서?

* * *

결국 세 사람이 전부 크리소르의 궁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아딜로트의 뒤를 따르는 수많은 기사들까지.

‘그나마 궁 안까지 따라오지 않는 게 다행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미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곧 황태후 궁에 도착했다. 미아는 나란히 선 아딜로트와 세레니티를 보며 불안하게 눈을 흘겼다.

“저기…… 다녀올 테니까 싸우지 말고 있어요?”

그 말에 아딜로트가 낮게 코웃음쳤다.

“변태랑은 수준이 안 맞아서 못 싸워.”

그리고 세레니티는 얼음 백합 같은 미소로 화답했다.

“그렇다고 하네요. 어쩐지 폐하와는 마주치기도 싫더라니, 그런 이유가.”

“…….”

어쩐지 눈도 마주치지 않는 두 사람 뒤에 용과 호랑이가 싸우는 환각이 보이는 듯했다.

‘빨리 다녀오자…….’

미아가 애써 불안을 외면하며 몸을 돌렸다. 미리 기별을 넣어 놓은 덕에, 응접실에는 창백한 얼굴의 크리소르가 먼저 앉아 있었다.

입가의 점과, 미역처럼 구불구불 늘어졌지만 우아해 보이는 머리카락. 크리소르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셀레스티얼의 미아 왔는가.”

미아를 셀레스티얼로 부르는 사람은 이제 크리소르뿐이었다. 황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작은 시위였다.

미아는 그것을 눈치채고도 모르는 척 몸을 굽혔다.

“미아가 황태후 폐하를 뵙습니다.”

인사 후 일어나며 미아는 크리소르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는 제법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세레니티 듀레인 양에게 이야기는 들었네. 애쓰고 있다지?”

‘시즈를 통해서 감시 중이면서 아닌 척 하긴.’

어쨌든 말하는 것을 들어 보면, 확실히 율리시즈는 크리소르에게 자신의 행적을 전달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즉, 황태후 편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다. 율리시즈가 요청한 게 빈민 구제책이 제대로 돌아가게끔 해 달라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황태후는 꽤 사치스러운 사람이거든.’

미아가 모르는 체하며 방긋 웃었다.

“네. 그런데 아무래도 틈이 보이지 않아서, 일단은 환심을 더 사 볼 생각이에요!”

“각오가 훌륭하군. 그래서 내가 선물을 준비했네.”

“선물이요?”

의외의 말에 미아의 눈이 반짝였다.

‘황태후면 귀족보다 더 좋은 거 주겠지!?’

곧 시녀 한 명이 스르르 다가오더니 파란 쿠션을 미아 앞에 내밀었다. 그 위에는 새끼손톱보다 작고 투명한 구슬 두 개가 올려져 있었다.

“이게 뭔가요?”

“극독이네.”

아……. 선물이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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