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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65화 (65/193)

65화

그러나 미아의 얼굴은 여전히 펴질 줄 몰랐다. 이번엔 세레니티가 초콜릿을 까서 미아의 입에 넣어 주었다.

“저도 그랬는걸요. 처음엔 오해했지만, 미아를 보고 깨달았어요. 폐하가 소문만큼 나쁜 분은 아니란 걸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미아 님!”

엠브라가 분위기를 밝게 띄우며 말했다.

“어쨌든 셀레스티얼 백작가 일이 있는데도 미아 님은 사셨잖아요? 그게 폐하가 생각만큼 잔인한 분이 아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만들기도 해요!”

“그래요?”

“네! 게다가 실제로 좀 부드러워지신 것 같다는 말도 있고요.”

“그, 그렇구나…….”

자신이 도움이 되었다는 말에 미아의 뺨에 살짝 홍조가 올랐다. 엠브라는 씩 웃었다가 한숨을 쉬었다.

“황태후 폐하도 이제 그만 본인 삶을 사시면 좋을 텐데…….”

옆에 세레니티가 있어서인지 엠브라의 말은 대단히 완곡했다. 그녀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미아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황태후 폐하의 몸은 괜찮으세요?”

“흠! 주치의를 맡은 후배 의원의 말로는, 그렇게 좋진 않대요. 갈수록 지병이 악화되고 있어서……, 앗!”

엠브라가 말하다 말고 입을 가렸다.

“참! 내 정신 좀 봐. 방금 말은 잊어 주세요!”

“그럴게요. 걱정 말아요, 엠브라!”

이어진 세레니티의 말에 미아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황태후 폐하가요?”

“네. 미아가 워낙에 활기차니까……. 보고 있으면 기운이 나는 게 아닐까요?”

“흐응.”

“아, 나쁜 이야기를 한 건 아니고…….”

“응! 괜찮아! 렌이 그런 거 할 리가 없는걸.”

미아의 말에 세레니티가 살포시 웃었다.

“고마워요, 미아. 그리고 또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 요즘은 안 그러셔서요.”

미아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밝혀지면 제일 위험할 사람은 엠브라인데, 엠브라가 언젠가 슬쩍 말해 주었던 것이다.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도주 가능하니까, 만에 하나라도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더군다나 황태후가 대놓고 자신을 죽일 수는 없으니 암살자를 쓸 게 뻔한데, 제일 뛰어난 암살자라는 율리시즈가 미아 편이다.

그녀로선 딱히 두려울 게 없는 상황이었다.

생각에 빠져 있는 미아를 유심히 쳐다보던 세레니티는 살짝 손을 잡아 오며 물었다.

“미아, 폐하 때문에 걱정이 많은 거죠?”

그런 세레니티를 따라 엠브라까지도 미아의 손을 잡아 주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가씨! 젊은 귀족들이나 실무진은 대부분 폐하를 지지하는걸요! 폐하를 싫어하는 건 꼰대 같은 늙은 귀족들뿐이에요!”

그 꼰대들이 권력자라 문제지만, 하고 엠브라가 중얼거렸다. 세레니티는 엠브라의 당돌한 말에 웃음을 터뜨리곤 말했다.

“저도 사람들이 알아줄 수 있을 방법을 생각해 볼게요, 미아.”

“응……. 고마워요, 모두.”

다정한 말들에 미아가 살짝 홍조를 띄웠다. 그리고 곧 마음을 다잡은 그녀는 결의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맞아. 처져 있으면 안 되지. 모두가 아딜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해!”

“그래요. 그러니까…….”

“좋은 방법이 떠올랐어!”

미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눈을 빛냈다.

“그럼 내가 더 나쁜 사람이 되어 주지!”

왜…… 생각이 거기로 튀죠?

엉뚱한 미아의 말에 세레니티와 엠브라가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았다.

* * *

레아 황비의 막내 시녀이자 황제의 수석 시녀이고, 황궁 레벤토르의 총시녀장이기도 한 제인 고트샬크.

그녀는 황궁에서 황제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아딜로트를 보살폈기 때문이다.

때때로 받는 목숨의 위협을 이겨 내면서도 제인은 권력 없는 황자의 옆을 지켰다.

그에 아딜로트 겐첸 슈뢰더는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그녀의 수고에 보답해 주었다.

황궁의 하녀들을 관리하는 가장 높은 직책을 준 것이다. 덕분에 황궁에서 일하는 여성 근로자들은 모두 제인의 관리를 받았다.

황제는 그녀의 인사 관리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았기 때문에, 제인의 입지는 어마어마하게 높았다.

그녀가 부정이라도 저질렀다간 궁의 기틀이 흔들릴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제인은 그 황제를 키운 시녀답게 엄격하고 성실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로 그 제인을 미아 셀레스티얼이 불러냈다.

‘나를 왜 부르신 거지? 먼저 부르시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제인이 복도를 걸으며 미아를 떠올렸다.

미아.

셀레스티얼 백작가의 영애.

‘폭군’ 아딜로트에게서 살아남은 유일한 사람.

그리고 황제의 총애를 받는…… 애완동물.

제인은 그녀가 궁에 들어오고 나서 황제에게 그녀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폐하. 새로 들어오시는 분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조심스러운 물음에 황제는 복잡한 표정을 짓더니 짤막하게 답해 주었다.

‘잘해 줘.’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신중하고 냉정한 황제에게 그 말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제인은 모르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 제인을 미아의 시녀로 붙여놓기까지 했다.

궁의 업무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붙어 있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극히 이례적이고 파격적인 인사였다.

그리고 미아 셀레스티얼은 그 인사 이동의 의미를 아는 듯했다.

‘제인 씨가 저를 돌봐 주신다고요?’

‘네, 아가씨. 잘 부탁드립니다.’

‘……인력 낭비…….’

우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미아는 이후로 자신의 시중을 받을 때마다 다람쥐처럼 움찔거렸다.

‘그렇게까지 미안해할 필요는 없는데.’

하지만 그렇게 신경 쓰는 모습이 제법 귀여워, 제인은 황제의 마음을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아주 불경한 말이지만, 값비싼 것을 잔뜩 던져 주고서 미아가 부담감에 ‘으앙!’하고 울먹이는 것을 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게다가 폐하를 정말로 좋아해 주고 계시니.’

그녀뿐만이 아니라 수석 시종인 올리버도, 궁내관인 슐츠 공작도 마찬가지였다. 황제의 일이라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애쓰는 게 보이니, 미아를 예뻐하지 않을 수가 없던 것이다.

‘그러니 아마 폐하와 관련된 일 때문에 부르신 거겠지?’

얼마나 오래 생각했는지 어느새 미아 셀레스티얼의 방문 앞이었다.

똑똑.

‘후우.’

한차례 심호흡을 한 제인은 문을 두드렸다.

“미아 님. 제인 고트샬크입니다.”

“들어오세요!”

명랑하고 밝은 말소리에 제인이 문을 열었다. 미아 셀레스티얼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제인을 보자마자 미아의 얼굴이 밝아졌다.

“제인 씨!”

귀여워라.

상황도 잊고 제인은 잠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쭉쭉 뻗은 팔다리에 비해 앳된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는 것이 자못 사랑스러웠던 탓이다.

“저기, 바쁜 분을 오라가라 하면 안 되는 건 아는데, 부탁할 곳이 없어서요!”

미아가 미안하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는 점이 제인의 마음에 들었다.

제인도 미소로 화답해 주었다.

“아닙니다. 제가 할 일인걸요. 저도 불러 주시는 것이 더 편하답니다.”

“다행이네요!”

“한데 오늘은 어쩐 일로……?”

제인이 운을 띄웠다. 그러자 안 그래도 유난히 색이 밝아 눈에 띄는 미아의 눈이 번쩍였다.

“센 화장을 부탁드리려고요!”

“…….”

제인은 다행히 미소의 관성으로 ‘예?’ 소리를 내뱉지 않을 수 있었다.

“센…… 화장이라 하심은.”

“아무도 저를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진하고 세고 사납고 부리부리한 인상을 만들어 주세요.”

“어머나…….”

제인이 놀란 얼굴로 손을 들어 입가를 가렸다. 그러나 이유는 묻지 않았다. 시종이 그런 것을 묻는 것은 실례다.

‘대체 무슨 일이지? 폐하의 취향은 아닐 텐데.’

제인은 일단 고개를 끄덕이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녀를 치장할 준비를 끝냈다. 자신이 젊을 적, 레아 황비의 시녀로 일한 경험이 남아 있어 다행이었다.

“입술은 빨강으로 해 주세요!”

거울 앞에 앉자마자 미아가 신나 외쳤다.

“미아 님은 연한 분홍이 어울리실 것 같은데요.”

“오늘은 세게 보여야 해요!”

“어디 가시나요?”

“악녀가 되러 갈 거예요!”

“어머나.”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묻지 않기로 했다.

“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제인은 그저 아기 엉덩이처럼 부드러운 뺨을 화장수로 두드리며 부드럽게 화제를 이었다.

“네. 저한텐 수많은 책에서 배운 악녀 전용 대사가 있는걸요!”

“어머나…….”

그리고 그 책의 악녀는 분명 강아지상에 눈꼬리가 처지고 볼살이 아기처럼 통통한 영애는 아니었겠죠,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오르는 걸 겨우 억눌렀다.

미아는 분홍색 눈을 반짝이며 몹시 기대된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저를 악녀로 만들어 주세요!”

“성심성의껏 노력하겠습니다.”

요리조리 둘러봐도 그녀는 눈빛부터 악녀와는 백만 년쯤 거리가 멀었지만, 제인은 인자하게 웃었다.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몰라.’

눈앞의 소녀 같은 영애가 황후 후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앞으로 제인의 상관이 될지도 모르니, 황후다운 모습에 익숙해지도록 미리 경험시켜 놓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이 아가씨는 남의 떠받듦에는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니 말이야.’

제인이 분첩을 들었다.

“드레스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제가 옷이 별로 없는데…….”

“다행히 황궁에는 황가의 여성 분들을 위한 예비용 드레스가 몇 벌 있답니다. 그걸 걸치시지요.”

“와! 저는 좋아요!”

“장신구는 되도록 큰 것으로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색이 강한 귀보석 위주로 하시는 편이 어떠신가요?”

“으음, 그런데 저는 가진 패물이 따로 없는데…….”

“황궁에는 모든 게 있답니다, 미아 님.”

“아하!”하고 미아가 순진하게 답했다.

물론 황가 소유의 귀금속은 황제의 인가를 받아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제인은 황제가 그것을 허락할 거라는 예감을 받았다.

‘일단 내어드리고 보고는 나중에 하자.’

피부 화장을 마친 제인이 설렁줄을 흔들었다.

“제대로 꾸며드리도록 하죠. 일단 장신구와 드레스를 종류별로 내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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