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54화 (54/193)

54화

“황제의 보트에 폭발석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네.”

수석 시녀 안젤라의 보고에 황태후 크리소르는 그녀는 차를 마시던 자세 그대로 눈썹을 치켜올렸다.

황태후 궁 뒤뜰의 백합 정원.

그녀는 전보다 더 초췌해진 얼굴로 녹색 눈을 살벌하게 빛냈다.

“자세히 말해 보도록.”

“세크레 호수의 야유회에서 황제와, 황제의 애완동물의 배에 폭발석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황제의 배에 설치된 것은 불발이었지만, 애완동물의 배에 설치된 것은 규모가 제법 컸다고…….”

“호오.”

“공식적으로는 보트 관리인의 잘못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실은 테레지아 카르디날레가 보트 관리인을 매수해 벌인 일이라고들 합니다.”

크리소르가 냉연한 태도로 차를 홀짝였다.

“그게 끝은 아닐 테지.”

“네.”

시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의 애완동물이 사건 이전에 보트 관리소에 혼자 들렀다고 합니다.”

그 말에 크리소르가 멈칫했다.

테레지아 카르디날레가 황제를 연모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유명했다. 그리고 그녀가 황제의 애완동물과 황립 의료원에서 거나하게 싸웠다는 사실도 말이다.

“뻔하군. 카르디날레의 멧돼지가 미아 셀레스티얼을 노리고 수작을 부렸겠지. 미아 셀레스티얼은 그걸 이용해 황제를 암살하려 한 모양이고.”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실패했다 이건가…….”

크리소르의 마른 손가락이 찻잔을 두드렸다. 상념에 빠진 얼굴에, 시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정말로 실패했을 뿐일까요? 아니면, 황태후 폐하께 보여 주기식으로…….”

“모르지. 모르는 법이야.”

“분명 황립 의료원에서의 행동을 들으면 폐하를 배신하려는 것 같지는 않지만…….”

시녀가 말끝을 흐렸고, 크리소르는 피식 웃었다.

“그러기엔 너무 친밀하지. 그 황제와 말이야.”

“네. 또한 야유회에서 황제가 그 애완동물을 극진히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합니다.”

“봐줄 만한 건 낯짝밖에 없는 더러운 태생의 황자라도, 여자를 홀리는 능력은 있나 보군.”

한참을 고민하던 크리소르는 우아한 손동작으로 찻잔을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우리 사냥개가 딴생각을 하지 못하게 목줄을 조여야겠어.”

창백한 얼굴 위에서 녹색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났다.

* * *

다음 날. 미아는 생각보다 가뿐하게 일어났다.

“어엉?”

문제는 허리를 휘감은 아딜로트의 팔이었다. 어느새 옷까지 갈아입었는지 잠옷 차림이었다.

“아딜……. 윽, 무거워.”

남주 아니랄까 봐 팔 한 짝 무게가 어마어마했다. 겨우 아딜로트를 밀쳐낸 미아가 가만히 아딜로트를 내려다보았다.

진줏빛 은발을 흐트러뜨린 미남이 단정치 못한 차림새로 잠들어 있는 광경.

‘절경이네요…… 가 아니라.’

렌에게 옮았나.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가까스로 끌어내린 미아가 아딜로트의 옷자락을 잡았다. 남이 올 수도 있으니 대충이라도 여며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미아 아가씨! 저 들어갈게요!?”

벌컥.

“혹시 폐렴으로 번질 수도 있으니까 상태를…….”

쾌활하게 말하며 방에 들어오던 엠브라는 눈앞의 광경을 보고 멈칫했다.

잠든 아딜로트. 그 옷깃을 붙잡고 벌리고 있는 미아.

흐트러진 침대. 당황한 눈빛.

엠브라는 침착하게 뒷걸음질쳤다.

“……다시 나갈까요? 도중이었나요?”

“아니거든요! 도중은 무슨 도중!”

“그럼 시작?”

“아니라고요!”

미아가 울상을 지으며 아딜로트의 옷깃을 흔들었다.

“아딜, 빨리 좀 일어나요! 엠브라 씨가 오해하잖아요!”

인상을 찡그리던 아딜로트는 그제야 나지막이 눈을 떴다. 그는 멍하니 자신의 옷깃을 붙잡고 있는 미아의 손을 바라보더니, 툭 던지듯 말했다.

“지켜 준다더니…….”

“아! 진짜!!”

미아가 억울함에 비명을 내질렀고, 아딜로트는 픽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진찰이나 받아.”

그러면서 하품하며 창가의 티 테이블에 앉았다. 남을 놀리고도 태연한 모습에 미아는 눈을 흘기며 꿍얼거렸다.

”……잔 건 맞아요? 피곤해 보이는데.”

“괜찮아.”

엠브라가 약함을 들고 오며 슬쩍 끼어들었다.

“원래 역사가 쓰인 다음 날엔 좀 피곤한 법이잖아요?”

“엠브라 씨. 그거 아니라니까요?”

“하지만 폐하. 이건 의원으로서 말씀드리는 건데요.”

아딜로트가 말해 보라는 듯이 턱을 까딱이자, 엠브라가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두 분이 사이가 좋으신 것은 알지만, 몸이 안 좋으실 땐 자제를 부탁드립니다.”

“…….”

아니라고.

아니라고! 아니라고!

미아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할 말을 잃은 사이, 아딜로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음엔 참아 보지.”

뭘! 대체 뭘!?

아니, 알지만 서로 목적어 없이 대화하지 말라고!

머리에 열이 다시 오르는 기분에 미아가 이마를 짚으며 다시 침대에 드러누웠다.

“쓰러질 거 같아…….”

“하하! 죄송해요. 아가씨! 너무 재밌어서 그만.”

엠브라는 그제야 진료를 시작했다. 한참 뒤, 그녀는 빙긋 웃으며 약함을 닫았다.

“걱정이 많았는데, 감기는 다 나으신 모양이에요! ……역시 옮기면 낫는 게 사실인…….”

“안 옮겼다고요!”

“그래도 역시 자제를 부탁드립니다.”

“알았다니까.”

이 소설 등장인물들은 전부 미쳤어. 미아가 울상을 지은 채 씨근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엠브라가 은근슬쩍 운을 띄웠다.

“그나저나 두 분이 요즘 데면데면하신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잘 풀린 모양이네요?”

“…….”

그 말에 미아는 멈칫했고, 아딜로트는 심드렁히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생각해 보니 초조해할 필요가 없더라고.”

어라. 정신 차린 걸까.

‘내 망명 허락해 주나?’

미아의 눈이 반짝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아딜로트는 나긋하게 중얼거렸다.

“못 도망치게 하면 그만이잖아. 내가 황제인데.”

“……딸꾹.”

농담이라고 하기엔 너무 진심이 담긴 듯한 말에 미아가 딸꾹질을 시작했다.

“……하, 하! 우리 아딜은, 농담도 참, 잘하네……?”

가까스로 웃는 척 했으나, 아딜로트는 대답 없이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보다 어제 말한 대로 하지. 대신, 단순히 총애 정도가 아니라 내가 심중에 둔 황후 후보로.”

“……네?”

“아니면 차라리 내가 널 황후로 점찍었는데 셀레스티얼 백작이 거절해서, 일부러 셀레스티얼 백작가를 반역으로 몰았다고 하든가.”

“……아딜! 신전에 가요!”

“내 머리는 너랑 달리 멀쩡해.”

아딜로트는 그렇게 말하더니 그대로 방을 나가 버렸다. 미아는 멍한 얼굴로 그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가만히 두 사람을 지켜보던 엠브라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신혼여행은 국내로 가셔야겠어요?”

“…….”

* * *

미아는 요양을 처방받았다. 제인을 통해 다행히 세레니티는 무사하다는 소식도 전달받았다.

‘그나저나 이렇게 되면, 세레니티와 아딜로트가 이어지는 건 거의 물 건너갔네.’

세레니티의 성격상 친구의 남자라고 소문 난 사람을 좋아하진 않을 테니 말이다.

이래서야 둘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미아가 아는 ‘행복한 엔딩’은 원작의 엔딩 뿐이었으니까.

“하아, 일이 꼬이네…….”

그때였다. 시종 한 명이 방문을 두드렸다.

“미아 님. 황태후 폐하께서 보내신 편지입니다.”

시종은 편지를 건네주고 돌아갔다. 연한 보라색의 편지지에서는 씁쓸한 약재 냄새가 났다.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편지를?’

아니꼬운 눈으로 스트레스의 주범이 보낸 편지를 노려보던 미아는 한숨과 함께 봉투를 뜯었다.

「미아 셀레스티얼 양. 폐하를 보필하는 그대의 노고를 위로하겠소. 다만, 앞으로 폐하실 모실 일이 있다면, 이 늙은 몸에게도 기회를 주길 바라오.」

편지를 다 읽은 미아가 다시 깊은 한숨을 쉬었다.

‘폭발석을 내가 설치했다가 실패했다고 생각하는구나.’

어쨌든 들키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그런데 ‘기회를 주길 바란다’는 건, 다음 암살에는 자기도 끼워 달라는 거겠지? 이걸 또 어떻게 둘러대…….”

그때였다.

“둘, 둘러대실 필요는 없는데…….”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미아가 고개를 돌렸다.

“읏……차.”

그곳에는 분홍색 머리카락에 갈색 눈을 가진 남자 한 명이 자연스럽게 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창문으로 말이다.

“안, 안녕하세요…….”

남자는 방으로 들어와, 긴 소매로 입을 가리고서 수줍게 쩔쩔맸다. 미아는 입을 벌린 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여기 2층인데?’

새카만 옷.

날렵한 체구.

눈앞에 있는데도 희미한 인기척.

미아가 남자를 한번, 편지를 한번, 남자를 한번, 편지를 한번 보았다.

순간, 어떤 깨달음이 머릿속을 스쳤다.

“혹시 직업이……?”

분홍색 머리카락의 남자는 처진 눈꼬리로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정, 정보 길드를 운영하고 있는데…….”

“있는데……?”

“부업으로 사람을 조금…….”

“아하. 돕거나……?”

“죽이거나…….”

“…….”

보통은 그런 걸 암살자라고 한단다?

미아가 재빨리 탁상 위의 촛대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통할 것 같지는 않았다.

역시나 남자는 신경도 쓰지 않고서 오히려 꾸벅 고개를 숙였다.

“율, 율리시즈인데……, 시즈라고 불러 주세요…….”

“율리시즈?”

이름을 들은 순간 미아가 멈칫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었다.

“……혹시 네가 운영한다는 정보 길드 이름이…….”

“그, 그것도 율리시즈예요. 작명은 잘 못해서…….”

남자가 우물쭈물하며 하는 말에 미아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율리시즈.

<장미 정원의 세레니티>에서 세레니티가 아딜로트를 구하기 위해 찾아갔던 정보 길드.

원작에서 ‘율리시즈’는 치트키에 가까운 역할이었다. 모르는 정보가 없었고, 청탁하면 하면 모든 게 해결됐다.

독자들 사이에서는 ‘작가가 편하려고 치트키 집어넣은 거다’라는 의견이 우세할 정도였다.

문제는 그 율리시즈의 길드 마스터는 원작에서는 나오지도 않은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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