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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52화 (52/193)

52화

애초에 미아는 자신만 다치는 거라면 이 사건이 유야무야 넘어갈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만약 황제가 탄 보트에서 폭발석이 발견되었다면?

‘큰일이지. 그것도 엄청 큰일.’

그리고 그거야말로 이 사태가 묻히길 바라는 테레지아가 가장 싫어할 방향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테레지아는 입을 오므린 채 시체처럼 굳어 있었다. 아딜로트 앞에 엎어져 있던 보트 관리인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저, 저는 절대 아닙니다! 정말로 제가 아닙니다! 저, 정말 저는 폐하를 시해하려는 계획 따위 전혀 없었습니다! 이, 이건 음모입니다!”

그가 필사적으로 외치더니 미친 사람처럼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모두 그가 앞으로 받게 될 형벌을 예상했는지 두려움에 뒷걸음질칠 뿐이었다.

“정말 제가 아니라……! 저는 그저……!”

그 순간 보트 관리인과 미아의 눈이 마주쳤고, 일순 그의 눈이 번득였다.

“저, 저 계집의 짓입니다!”

곧 보트 관리인의 손가락이 미아를 가리켰다.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선이 미아에게 향했다.

“저, 저 여자가 분명합니다! 폐, 폐하의 애완동물이라는 저 여자가 보트 관리소에 들렀습니다! 저 여자가 그때 폭발석을 설치한 게 분명합니다!”

미아는 담담히 그의 외침을 듣고 있었다. 어차피 여기서 자신을 변호해 줄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내 ‘애완동물’이 이걸 설치했다?”

곧 냉담한 얼굴의 아딜로트가 한 걸음 나섰다.

“예! 그게 아니라면 왜 보트 따위를 보러 왔겠습니까!? 부, 분명 미리 폭발석을 설치하려고 왔을 겁니다!”

“자기가 다칠 위험을 감수하고?”

“그, 그건 아마 의심받지 않으려고……!”

아딜로트가 냉소했다.

“그렇다 치고. 뭐하러?”

“……가, 가문의 원한을……?”

“날 죽일 생각이었다면 침실이 더 쉬웠을 텐데. 굳이 이런 탁 트인 곳에서, 저런 불확실한 방법으로?”

관리인은 패닉이 왔는지 온몸의 모공에서 땀을 흘리며 말을 더듬었다.

“그, 그럼 폐하의 총애를 받고 싶어서…….”

“그러니까 이미 나랑 침실도 같이 쓰는 마당에, 고작 그 이유로?”

“…….”

대답하지 못하는 보트 관리인을 보며 아딜로트는 나직하게 웃었다.

“그런 것보다 네 말은, 미아가 관리소에 들른 이후 배를 점검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들리는데.”

“……!”

관리인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뭐가 됐든 결과적으로 그가 업무에 태만해서 벌어진 일인 건 사실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확인했다면 이런 사태가 벌어지진 않았을 터였다. 마침내 관리인의 고개가 떨어졌다.

“저는, 그냥 협박을 당했을 뿐입니다……!”

그 말에 사람들이 다시 술렁였다. 말인즉 황제를 시해하려는 무리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건 이제 좀 잠잠해진 황궁에 다시 피바람이 분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 하지만 제가 사주받은 건 폐하를 시해하는 게 아니라…….”

“뭐가 됐든 내 걸 건드리진 말았어야지. 네가 받은 그 모든 협박보다 날 더 두려워했어야지.”

“히, 히끅……!”

아딜로트의 검이 천천히 관리인의 어깨 위에 올라갔다. 그 상태로 그는 고개를 모로 비틀어 그라스 후작을 바라보았다.

“그라스 후작. 이래도 이게 사소한 소동인가?”

“…….”

입술을 깨문 그라스 후작은 정중하게 예를 차렸다.

“달을 기울게 하려는 사특한 무리가 있다는 것이 드러났으니, 어찌 사소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뜻대로 하소서.”

아딜로트는 고개를 끄덕이곤, 보트 관리인에게 몸을 돌렸다.

“몸통을 쫓아야 하니 죽이진 않으마.”

곱게는.

아딜로트는 그렇게 말하며 검을 휘둘렀다.

“아아악!”

그 순간 미아의 눈앞을 까만 것이 가로막았다. 세레니티의 손이었다.

“……안 보는 게 좋겠어요. 미아.”

그녀는 굳은 목소리로 말했고, 미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관리인이 끌려 나가는 동안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속닥거렸다.

“반황제파의 짓이겠죠?”

“하지만 폐하의 애완동물은 대체 왜 건드렸을까요?”

“개인적인 원한일지도 모르지.”

“대체 누가……. 아.”

사람들은 최근 미아와 테레지아가 크게 싸웠다는 사실을 떠올리곤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예상한 대로의 흐름이 생겨나고 있었다. 미아는 사람들이 충분히 떠들기를 기다린 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렌. 잠깐 다녀올게.”

“네? 미아…….”

“괜찮아. 인사만 하려는 거니까. 콜록!”

작은 재채기 소리에 아딜로트가 고개를 돌렸다. 탁한 육홍색 눈에 살짝 당혹이 스쳤다.

“왜 아직도 안 가고 있어?”

“아딜 보트에도 폭발석이 나왔다니까 걱정이 돼서요.”

“의원을 불러 줄 테니 들어가서 쉬어.”

“가기 전에 잠시만요. 콜록! 킁, 말할 게 있어서.”

미아는 아딜로트의 코트로 몸을 감싼 채 인파 쪽으로 다가갔다. 발자국을 따라 젖은 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모두가 그 모습을 의미심장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미아의 비틀거리는 걸음은 테레지아 앞에서 멈췄다.

“테레지아 양.”

테레지아는 창백하게 질려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이었다. 미아는 천천히, 마치 포옹하듯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상냥하게 속삭였다.

“내가 경고했지.”

“……!”

경악과 분노에 찬 테레지아를 바라보는 미아의 눈은 차가웠다.

“말했잖아. 너 나 못 이긴다고.”

온갖 감정이 뒤범벅된 얼굴의 테레지아가 입술을 콱 깨물었다. 무너진 자존심, 굴욕, 분노, 증오, 혐오…….

그러나 전과 다른 게 있었다. 바로 그 모든 감정의 저변에 명백히 두려움이 깔려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미아는 테레지아의 귓가에 다정하게 속삭였다.

“조용히 살아. 이번이 마지막이야.”

그리고 몸을 떼어내고서,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콜록!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카르디날레 양!”

* * *

방으로 안내받은 미아는 몸을 씻자마자 들이닥친 지로티 공작에게 크게 혼났다.

“감기 걸리기 딱 좋은 짓을 했구만!”

“아직 안 걸렸는데!”

“척 보면 알아!”

“으앙!”

지로티 공작의 말이 맞는지 몸이 으슬으슬 떨리긴 했다. 미아는 제인과 지로티 공작의 손에 얌전히 도톰한 이불 속에 들어갔다.

“렌은요? 괜찮을까요?”

“의원이 보러 갔으니 괜찮을 걸세.”

“역시 어떻게든 렌은 피하게 하는 게 좋았을까요? 몸도 약한데 감기까지 걸리면 어떡하지!”

미아가 우울하게 뱉는 말에 지로티 공작은 뜨거운 꿀물을 내밀었다.

”남 걱정 말고 자기 걱정이나 좀 하게!”

“하지만, 에취! 딱 좋은 계획이다 싶어서…….”

“폭발석을 구해 달라고 했을 때부터 보통 일이 아닐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자네 정말 막무가내로군?”

“헤헤. 할아버지는 오늘 좀 근사해요! 술 냄새도 안 나고.”

지로티 공작이 내민 꿀물들 받아들고 미아가 살짝 웃었다. 열이 오른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지로티 공작은 그 모습을 마뜩잖은 시선으로 보았다.

“쯧! 그래서 뭐가 문제였던 게야?”

“그게…….”

미아는 그에게 테레지아가 보트 관리인을 매수해 한 일을 설명했다.

“자넨 그걸 대체 어떻게 알았는데?”

“제가 너무 귀여운 나머지 하늘에서 계시가 내려왔어요!”

“흠, 흠! 하늘이 아니라 사람의 입이겠지. 굳이 묻진 않겠지만 조심하게.”

미아가 샐쭉 웃었다. 미아에게 따로 정보원이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정보원이 필요하긴 하겠어. 어떻게 구할 방법이 없을까?’

분명 원작에도 쓸만한 정보 길드가 있었는데, 찾으려면 황궁을 빠져나가야 했다. 방법을 생각하려고 했지만 열 때문인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나중에 하자, 나중에…….’

미아가 끙끙대자 지로티 공작은 안쓰러운 듯이 그녀의 이마를 토닥였다.

“그나저나 일부러 일을 키운 건 알겠지만, 이리 위험한 계획을 짰을 줄이야.”

“하지만 초장에 기선제압을 해 놔야 앞으로 그런 짓 안 할 것 같아서…….”

“그야 겁을 잔뜩 먹긴 했더군. 카르디날레의 딸내미 말일세.”

“어떻게 될까요?”

지로티 공작이 팔짱을 낀 채로 미아를 흘낏거렸다.

“만약 우리 폐하께서 사형 선고라도 내리면, 후회라도 하려고?”

미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다시 꿀물을 호록 마셨다.

“사형까지는 안 갈 것 같은데…….”

“어째서?”

“꼬리가 밟혀서 테레지아의 행적이 드러난다고 해도, 카르디날레 공작가의 금지옥엽을 함부로 죽일 수는 없을 테니까요.”

지로티 공작의 눈에 놀람이 스쳤다.

“하지만 아딜로트가 카르디날레 공작가를 압박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카르디날레 공작가는 대표적인 태후 파니까…….”

미아는 따끈한 컵을 손에 쥐고 점점 감겨 오는 눈을 끔뻑거렸다.

“그 관리인, 충성심이 강해 보이진 않았어요. 카르디날레 공작가가 무가라고는 해도 아딜의 기사들을 이길 순 없고, 테레지아를 버리는 패로 사용할 순 없으니, 카르디날레는 져 줄 수밖에 없어요.”

“뭐냐.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게야?”

“겸사겸사~? 하는 김에~?”

미아가 실없이 웃었다. 흰 치아를 보이며 흐흐 웃는 미아를 기막히다는 얼굴로 쳐다보던 지로티 공작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앞으로는 자중하게나. 말 만한 처녀가 옷을 그렇게 훌렁훌렁 벗으면 쓰나!”

“총각은 되나요!”

“총각도 안 돼!”

“아하!”

미아는 손을 내민 지로티 공작에게 컵을 건네주고는 자리에 누웠다.

“이제 쉬게. 의원들이 곧 올 테고, 폐하는 일을 다 처리한 뒤 오실 거라네. 약 때문에 한동안은 비몽사몽할게야.”

“네에…….”

미아는 인사도 못 하고 골골대며 잠에 빠져들었다.

* * *

미아는 한밤중에 깨어났다. 감기 때문에 머리가 몽롱했다. 창문에 두꺼운 커튼이 쳐져 있는데도 몸이 추웠다.

미아가 침대에 누운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세레니티였다.

‘렌은 괜찮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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