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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47화 (47/193)

47화

하지만 페르디안은 세레니티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서 미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시선을 받은 미아는 내심 당황해 눈을 깜빡였다. 지금 그가 보내고 있는 시선이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다행히 페르디안은 곧 다시 테레지아에게 몸을 돌렸다.

“이 일은 폐하께 보고하겠다.”

테레지아의 얼굴엔 즉각 다급함이 떠올랐다.

“후작 각……!”

“물러나라.”

페르디안의 단호한 대답에 테레지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가 카르디날레 공작가의 직계라고는 하나 결국 한낱 영애에 불과했다. 키토 후작에게 대들 수 있을 리 없었다.

빠득.

테레지아는 잇소리를 내며 몸을 돌렸다. 그러나 의료원에서 뛰쳐나가려던 그녀는, 미아를 지나치기 전 멈칫했다. 그리고 죽일 듯이 미아를 쏘아보기 시작했다.

“너…… 가만 안 둬.”

독기를 넘어 원한까지 서린 듯한 음산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대로 돌아서려는 테레지아를 미아가 잡아세웠다.

“안 두면 어쩔 건데?”

“…….”

설마 자신을 붙잡을 줄은 몰랐던 테레지아는 당황한 눈치였다.

그녀는 향해 미아는 눈웃음치며 말했다.

“조용히 살아. 어차피 너 나 못 이겨.”

“……너!!”

“그만.”

페르디안이 한숨을 내쉬며 두 사람을 막아섰다. 미아는 세레니티를 감싼 채 한 발짝 물러나,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우리 그만해야겠다! 내가 너랑 달리 교육을 좀 잘 받아서!”

“이……! 으으……! 아아악!”

결국, 제 분에 못 이겨 발을 쾅쾅 구르던 테레지아는 그대로 의료원을 뛰쳐나가 버렸다.

난동의 주범이 사라지자 그제야 의료원의 공기가 느슨해졌다.

“휴…….”

“어서 치료를……!”

“청소도 해야…….”

의원들은 다친 의원을 살폈고, 엠브라가 미아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뜯어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가씨! 별일 없으셨어요!?”

“전 괜찮은데 렌이 머리카락을 잡혔어요. 좀 봐주실래요?”

“네!? 그 불곰 같은 여자 손에!? 이리 오세요, 듀레인 님!”

“아……. 하지만, 미아에게 할 말이…….”

“이따가요!”

미아에게 뭔가를 말하려던 세레니티는 엠브라의 손에 이끌려 가 버렸다. 그러자 시장통처럼 바빠진 의료원 속에서 덩그러니 남은 건 미아와 페르디안뿐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페르디안이 입을 열었다.

“도발이 과했다.”

“그렇긴 하죠?”

미아가 와락 웃자 페르디안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저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는 알고나 있나?”

“불곰 같다는데요?”

“…….”

당당한 대답에 어이없다는 시선이 닿았다. 미아는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후작 각하께 폐는 안 끼칠게요! 오늘은 어째 타이밍이 그렇게 됐네요!”

그 순간, 페르디안이 물끄러미 미아를 내려보았다.

‘또 저 눈이네.’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진 않고,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는 것 같지도 않은. 묘한 잿빛 눈.

남의 눈을 피하는 법이 없는 자신이지만, 이 눈은 이상하게 피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미아는 그렇게 하는 대신 고개를 갸웃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었다.

“왜 그러세요?”

“……아니다.”

페르디안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말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저……. 미아 아가씨?”

그때, 눈에 두툼하게 거즈를 붙인 의원 한 명이 다가왔다. 테레지아 때문에 다친 의원이었다.

“눈은 괜찮아요? 주의를 돌려보려고 노력은 했는데…….”

미아의 말에 의원이 배시시 웃었다.

“감사해요. 덕분에 늦지 않게 치료할 수 있었어요. 안구는 상하지 않았고요.”

“다행이에요!”

미아가 활짝 웃자, 그녀는 조금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손가락을 꼼질거리며 말을 이었다.

“저, 엠브라 선배님에게 듣기론 아가씨가 일찌감치 기사님을 불러 달라고 하셨다고…….”

미아가 볼을 긁적였다.

“그야 그 카르디날레 양이니까, 아무래도 보통 사람이 막긴 좀 힘들잖아요!”

“그런데도 나서 주시고…….”

“그야 뭐, 누군가는 막아야 했으니까……?”

“그렇지만 카르디날레 공작 영애를 상대로 시간을 끄는 게 가능하다니요!”

다시 미아와 테레지아의 따귀 공방을 떠올렸는지 의원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의 눈이 별이 박힌 듯 빛났다.

“카르디날레 영애에게 대들었다가 의료원에 실려 온 영애들만 해도 티 파티 하나를 채울 정도인데 말예요!”

테레지아야. 너 정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엄청나게 깽판을 치고 다녔구나.

“그렇지만 그냥 운이 좋았…….”

“저…… 황태후 폐하께 꼭 이 일을 말씀드릴게요!”

“네?”

예상치 못한 의원의 말에 미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실 저, 엠브라 선배님의 뒤를 이어 황태후 폐하의 주치의를 맡았거든요…….”

“그, 그래요?”

“네! 그러니 다음 진료 때 꼭 미아 아가씨의 활약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그녀의 말에 미아의 머릿속에 일순 온갖 생각이 오갔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미아는 덥석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황태후 폐하의 주치의셨다니! 그분께 도움이 되었다니 기뻐요! 저를 좋게 봐주실까요?”

어차피 제 발로 찾아갈 일은 없으니, 이렇게 다른 사람 통해서 적당히 관계 유지하면 되겠지.

이해타산적인 계략은 반짝거리는 분홍색 눈에 싹 가려졌다. 손을 잡힌 의원은 다행히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뺨을 붉혔다.

“물론이죠! 황태후 폐하께서도 이 이야기를 들으면 매우 기뻐하실 거예요. 무엇보다 저희를 그렇게 대단한 사람처럼 말씀해 주시는 분은…… 귀족 중에선 정말 드물거든요.”

“에헤. 전 이제 귀족도 아닌데요 뭐! 게다가 그게 어떻게 제 인품이겠어요? 그냥 의료원 여러분의 실력과 노력은 그만한 대우를 받는 게 당연하고요!”

“아가씨……!”

“의원님……!”

옆에서 페르디안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는 얼굴을 했으나, 미아가 옆구리를 찌르자 코웃음 비슷한 소리를 내곤 고개를 돌렸다.

“그보다 아직 어려 보이시는데 주치의시구나! 대단하세요!”

미아의 칭찬에 의원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었다.

“부끄럽네요. 원래 아마치 선배님이 주치의를 맡으셨어야 했는데……. 선배님이 거절하셔서 제가 맡게 되었거든요.”

“그래도 능력이 있으니까 그런 자리에 올라간 거잖아요! 자신감을 가져요! 세상이 어디 능력 없는 사람을 승진시켜 줄 만큼 만만한가요!”

스치듯이 내뱉은 빈말이었다. 말하자면 사회 생활용 비즈니스 멘트.

하지만 의원에게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그녀는 몹시 감격한 얼굴로 울먹였다.

“그렇게 봐 주셔서 감사해요. 저, 원래는 자신이 없었지만…… 미아 아가씨를 보고 용기를 얻었어요!”

뜻밖의 단어에 미아가 멈칫했다.

“……용기요?”

“네! 하룻강아지가 멧돼지한테 대드는 것 같은 그 용기!”

“하룻강아지…….”

“진짜 광기가 뭔지 보여 주겠다고 말하는 듯한 기세!”

“광기…….”

“제게 부족한 건 그런 자신감과 패기였던 거예요! 내가 어떤 꼴이 되든 문 건 놓지 않겠다는……, 그래요! 마치 미친 개 같은!”

“…….”

너 지금 은근히 맥이는 거지. 그렇지.

아무래도 좀 눈치가 없는 모양인지, 의원은 떨떠름한 얼굴의 미아를 두고 마냥 기쁜 듯이 웃었다.

“그러니까 저도 힘내 볼게요!”

“하하. 네에…….”

“그리고…….”

그녀는 크게 숨을 들이켠 뒤, 방금과 달리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늦었지만 엠브라 선배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료원 모두가 감사드리고 있어요. 필요하시면 언제든 의료원에 들러 주세요.”

“…….”

그 말에 미아가 반사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는지 의원들과 바로 눈이 마주쳤다. 그들은 모두 눈이 마주치자 쑥스러운 듯 미소 지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미아는 뭐라 정의할 수 없는 모호한 감정을 느끼며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누군가 자신이 한 일에 고마워하고 호의를 표하는 게 어색했고, 낯설었다. 분명 살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관계나 인정에 대한 욕구는 전부 내다 버렸을 텐데.

아니,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뭐, 나쁜 기분은 아니네.’

미아의 입술 새로 실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어쨌든 무사 해결이었다.

* * *

카르디날레의 멧돼지가 지나간 현장을 수습하는 혼잡한 상황 속에서도 세레니티의 의료원 봉사는 무사히 허락을 받았다.

의원을 위해 나선 세레니티의 행동, 대선배인 엠브라의 한마디가 각각 한몫을 했다. 물론, 미아도 따로 부탁했다.

‘이 정도로 분위기가 좋으면 소설에서처럼 의원들이 렌을 적대하지는 않겠지.’

세레니티는 정말 기쁜 얼굴이었다.

“미아. 고마워요. 전부 미아 덕분이에요! 카르디날레 양을 막는 것도 원래는 제가 나섰어야 했는데 미아가 대신…….”

그 말에 미아는 고개를 저었다.

“고생은 무슨. 게다가 계속 나서려고 했던 렌을 말린 건 나인걸.”

“미아…….”

“그보다 렌은 다친 덴 없고? ……가 아니라, 괜찮아요?”

너무나 자연스럽게 반말을 하던 미아가 아차 하고 잽싸게 존대하자 세레니티가 작게 웃었다.

“편하게 불러 줘요, 미아.”

“그……래도 돼?”

미아가 슬쩍 눈치를 살폈다. 안 그래도 여주한테 우리 애기 하고 싶은 거 다 하라며 반말하던 버릇 때문에 존댓말이 영 입에 안 붙던 차였다.

세레니티는 환하게 웃었다.

“물론이에요. 미아라면 얼마든지.”

“정말? 고마……!”

“하지만.”

웃으며 말하던 세레니티의 표정은 금세 엄격해졌다.

“너무 위험한 행동이었어요. 미아. 알고 있지요?”

그녀의 말에 미아는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그러곤 뒤늦게 뭔가를 깨닫곤 울상을 지었다.

“맞다! 많이 무서웠지!”

“……네? 아뇨, 미아. 그게 아니라…….”

“해 보라고 부추겨서 겁났지! 미안해! 테레지아가 정말로 렌을 해치진 않을 거라고 확신했거든! 그치만 렌은 몰랐을 테니까…….”

미아가 그렇게 테레지아를 부추길 수 있었던 건, 원작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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