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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34화 (34/193)

34화

결정타였다. 더는 루비트는 중요하지 않았다.

크라우스 공작가를 속이고, 크리소르 황태후를 속이려 했던 쿠아쉬의 만행이 탄로 난 이상.

크리소르의 분노가 향할 곳은 명백했다.

“하.”

그녀의 입에서 짧고 날카로운 웃음이 튀어나왔다.

“하하하! 아하하하!”

정적이 오가는 응접실에서 새된 목소리로 웃던 크리소르가 섬뜩하게 눈을 부라렸다.

“이 쓰레기 같은 게……. 네가 감히 날 기만해?”

“폐, 폐하!”

쿠아쉬가 재빨리 바닥에 엎드렸으나, 크리소르는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마치 코헨!”

“예!”

크리소르는 손가락으로 쿠아쉬가 준비해 온 온갖 약병을 가리켰다.

“이 중에 루비트가 있나?”

“……!”

아마치 의원의 눈이 흔들렸다.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로, 애원하듯 인상을 썼다.

“폐하……. 저는 의, 의원이고…… 사람을 살리는…….”

“네가 마시고 싶은 게냐? 바른대로 고하지 않으면 네 목구멍에도 루비트를 처넣어 주마.”

“…….”

아마치 코헨이 눈을 질끈 감았다.

“황태후 폐하.”

그때, 엠브라가 한 발짝 나섰다.

“가느다란 플라스크에 든 갈색의 액체가 루비트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엠브라의 표정은 담담했다. 자신을 몰아붙인 황태후를 원망하는 기색조차 없었다.

“…….”

크리소르는 잠시 엠브라를 지켜보았으나, 그뿐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가는 손가락으로 루비트 병을 골라냈다.

“자. 그럼 이제…….”

그리고 입을 찢어 웃으며 쿠아쉬에게 다가갔다.

“나를 능멸한 대가를 치를 시간이네.”

* * *

쿠아쉬가 쓰러지는 약간의 사태 이후, 크리소르는 엠브라와 아마치를 물렸다. 그리하여 응접실에는 크리소르와 미아만이 남았다.

크리소르는 여전히 노기가 가시지 않는지 관자놀이를 문지르는 중이었다.

“몸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미아는 조금 늦게 답했다.

“폐하의 보은 덕에 아무 문제 없답니다!”

“하.”

크리소르가 짧게 탄식했다.

“참으로 용맹하군.”

“독이 들었을지도 모르는 것을 먹을 생각을 다 하다니.”

“과찬이세요!”

“아비와는 다르구나.”

“헤헤.”

미아는 어설프게 웃고 말았다. 보통의 정신 멀쩡한 사람이라면 그치를 닮을 수가 없었다. 맹하게 웃는 미아를 내려다보던 크리소르가 이어 말했다.

“셀레스티얼 백작을 시켜 독을 건네게 했을 텐데, 황제가 아니라 네가 앓아누웠더군. 어찌 된 겐가?”

예상했던 질문이기에, 미아는 막힘없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와 만난 현장을 키토 후작 각하께 들킨 바람에…….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서, 실수인 척 제가 독을 마실 수밖에 없었어요.”

“흠. 그만한 맹독을 마시고도 살아남다니…….”

“엠브라 테타 의원의 도움이 컸습니다!”

미아가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그래. 크라우스 재단에서도 그녀는 오리존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한 인재라 말했으니…….”

그렇게 말하는 크리소르의 눈은 냉정했다.

‘저렇게 말은 해도 더는 엠브라를 주치의로 두진 않겠지.’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엠브라가 조용히 그녀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이래서는 그대에게 뭔가를 지시하기가 곤란하군. 황제의 신임은 어느 정도지?”

“노력은 하고 있으나, 아직은…….”

“쯧……. 지금껏 누구도 옆에 둔 적이 없는 황제네. 자네가 잘만 하면 아예 자네에게 빠질 걸세.”

미아는 말없이 눈만 깜빡였다.

‘과연 그럴까요…….’

자신이 아딜로트라면 거울 속의 자신과 사랑에 빠졌을 거다. 아니면 세레니티랑.

그 미모를 갖고 어떻게 남 얼굴을 보면서 살을 부대끼겠는가?

하지만 크리소르는 아딜로트의 취향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유혹술은 배웠나?”

“……네?”

미아의 사고가 멈췄다. 크리소르는 짜증스럽게 눈을 부라렸다.

“눈짓, 손짓, 부채와 말씨를 이용해 남자를 유혹하는 기술 말이네.”

“아, 안 배웠…….”

“배운 게 뭔가, 대체?”

“음, 음! 그게, 정치, 사회―”

“하! 쓸데없는 것들만 배워서는…….”

“아하……. 쓸데없…….”

“유혹술을 가르칠 이를 보낼 테니 잘 배우도록 하게!”

“네……? 그, 꼭 필요할, 네, 필요하겠죠……!”

크리소르가 눈을 부라리자 미아가 바로 넙죽 엎드렸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한숨이 튀어나오기 직전이었다.

‘와. 나 책에 빙의해서 애교 부리는 법 배우게 생겼어!’

크리소르 역시 한숨을 쉬었다. 물론 다른 의미로 말이다.

“답답하군. 오늘은 그만 돌아가게. 조만간 사람을 보낼 테니.”

“그, 그럼 다음에 뵐 때까지 건강하세요…….”

미아는 최대한 눈치를 보며 조용히 물러났다. 황태후 궁을 나와, 그녀의 궁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되자 그제야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하…….”

마무리가 어이없긴 했지만 결국 원하던 건 이뤘다. 독을 마셨지만 살았고, 모든 게 무사히 끝났고, 엠브라는 살았다.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 * *

황제궁으로 돌아가자마자 미아는 엠브라에게 납치되다시피 하여 욕실로 향했다. 제인도 함께였다.

“토하세요! 어서!”

“네!?”

“미아 님. 잠시 손가락을 넣겠습니다.”

“악!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미아는 두 사람의 힘에 못 이겨 말끔하게 구토까지 마치고, 나머지 안티루이 용액도 주사했다.

“그럼 저는 폐하께 보고를 올리러 가 보겠습니다.”

제인은 미아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뒤 떠났고, 엠브라는 그제야 미아를 놓아주었다. 그리고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말했다.

“왜 그러셨어요?”

“그……, 일단 살려야 할 것 같아서요! 몸은 괜찮은 거죠, 엠브라?”

“하. 지금 제 몸 걱정할 때예요!?”

“그건 그렇죠!”

“이 아가씨가 정말!”

엠브라가 왈칵 성을 냈다. 그러나 그녀는 방실방실 웃는 미아를 보며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안티루이 용액이 해독제라는 건 어떻게. 아니, 우유를 마실 생각은 대체. 아니지, 해독제가 제 방에 있다는 건 어떻게 아신 거예요?”

“원래 독이랑 약은 같이 두는 거잖아요. 엠브라는 의원이니까!”

“다른 건요!”

“으음! 우유가 위장을 보호하는 거야 너무 당연하고, 안티루이가 해독제인 건…….”

미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책에서 읽었어요.”

“……책이요?”

“네!”

“하…….”

엠브라가 어깨를 들썩이며 헛웃음쳤다.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루비트의 해독제가 안티루이 용액이라는 걸 책에서 읽었다고요? 아가씨, 사실은 의원이기라도 했던 건가요?”

“그냥 제가 원래 책을 좀 잡다하게 읽어요!”

장르 소설을 잡다하게 읽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정을 모르는 엠브라만이 경외와 경악이 뒤섞인 시선으로 미아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가씨는 대체…….”

“흐히히.”

미아가 휘파람을 부는 척 하며 딴청을 부렸다. 엠브라가 시선을 떨군 채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위험했어요.”

“하지만 엠브라가 살았고, 저도 살았으니까 엄청 이득!”

미아의 말에도 엠브라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미아 역시 그녀의 심정은 이해하는 바였다. 의원도 아닌 사람이 독을 벌컥벌컥 들이켰으니,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까.

‘그래도 살렸으니까.’

다시 돌아간대도 미아는 같은 선택을 할 터였다. 가만히 엠브라를 바라보던 미아는 방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엠브라. 전 새것이 좋아요.”

“……네?”

엠브라가 의아한 눈을 했다.

“물건 말이에요. 엠브라가 자기 방에 있는 거 가져가라고 했잖아요.”

“아…….”

“죄송한데 저는 선물은 새것밖에 안 받아서!”

미아는 멍한 얼굴을 한 엠브라를 바라보며 까르르 웃었다.

“그러니까 저한테 헌것 넘길 생각일랑 하지 말아요, 엠브라!”

“…….”

“같이 또 단 거 먹어요! 알았죠?”

웃는 얼굴의 미아를 바라보며, 엠브라는 한참을 침묵했다. 온갖 감정이 뒤섞인 복잡한 눈을 하고서.

하지만 그 안에는 명백히 안도와 기쁨도 서려 있었다.

“…….”

뭔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거리던 엠브라는, 곧 애써 태연한 척하는 목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나중에 제가 니들리치의 온갖 베리 컵케익을 사다 드려야겠네요?”

“와! 너무 좋아요! 저 그거 못 먹어 봤어요!”

“아하, 그러시다? 이거 이거, 한정판이라도 갖다 드리면 아주 좋아서 날아다니시는 거 아닌가 몰라?”

“헉. 저 벌써 날개 생긴 거 같은데 볼래요, 엠브라?”

“으하하!”

욕조 앞에 앉아 두 사람이 마주 웃었다. 누군가의 목숨을 살렸다는 기쁨에 미아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저 아딜한테도 칭찬받겠다! 그쵸!”

“그건 아니죠.”

그러나 호쾌하게 웃던 엠브라가 바로 정색했다. 그리고 몹시 동정 어린 시선으로 미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가씨……. 힘내세요…….”

“…….”

미아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 * *

미아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나간 순간부터 아딜로트는 도무지 진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냉정하고 차분하게 미아가 요청한 일을 지시했다.

첫째, 황립 의료원의 의원들을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밖으로 빼내 달라.

둘째, 아마치 코헨이라는 의원 하나만 남겨 달라.

―제 생각보다 훨씬 더, 아주 가까워지셨나 봅니다. 폐하.

옆에서 요아힘이 뼈 있는 말을 읊조렸지만 무시했다.

“넌 빨리 생 드나르나 해결하고 돌아오기나 해.”

―그래야겠습니다. 폐하의 상태가 실로 말이 아니군요.

“입 다물고.”

―…….

요아힘은 더는 보고 싶지도 않다는 듯이 통신을 끊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딜로트는 어느 정도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림자 수행원인 베일리로부터 황태후 궁의 상태를 전해 들었을 때.

―미아 님이 루비트가 섞인 약을 음독하셨습니다.

아딜로트는 펜을 쥐어 부러뜨리고 말았다.

“……그 여자가 먹였나?”

제가 듣기에도 싸늘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만약 그런 거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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