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크리소르도, 엠브라도, 쿠아쉬도, 모두 눈을 크게 뜨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모두의 시선 속에서, 미아는 병을 단숨에 비워 냈다. 그리고 깨끗하게 비운 병을 뒤집어 보이며, 울상을 지었다.
“으. 맛없어…….”
* * *
침묵 속에서 시간이 흘렀다.
갈수록 쿠아쉬는 핼쑥해졌고, 크리소르의 기세는 사나워졌다. 엠브라는 눈알이 빠져나올 것처럼 놀라 미아만 바라보았다.
그 사이에서 미아는 태연하게 천장의 무늬를 세며 생각했다.
‘아. 너무 많이 마셨다. 배불러.’
당연하지만 미아의 몸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해독제를 주사하고 온 보람이 있네.’
황태후 궁으로 오기 전.
미아는 가장 먼저 아딜로트의 수석 시종인 올리버에게 대량의 우유를 부탁했다.
‘위를 보호하고 독을 희석해야 하니까.’
이후 바로 황립 의료원에 들렀다. 아딜로트에게는 미리 황립 의료원의 의원들을 밖으로 빼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미아는 그들이 없는 틈을 타, 엠브라의 방에서 해독제를 찾아냈다.
루비트의 해독제는 안티루이 용액.
해독제가 있는 것은 당연했다.
‘의원이라면 당연히 약도 만들어 두는 법이니까. 엠브라 같은 엘리트라면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원작에 나온 그대로 불투명한 주황색을 하고 있어서 알아보기 쉬웠다.
‘원작이 살렸지, 뭐.’
<장미 정원의 세레니티>에서 쿠아쉬는 황태후의 명령을 받고 세레니티에게 루비트를 먹였다.
세레니티는 쓰러졌고, 아딜로트는 대노했다. 그러나 세레니티를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때 지로티 공작은 황궁에 없던 모양이었다.
아딜로트가 방도를 찾지 못한 가운데, 황립 의료원의 의원 한 명이 나섰다.
‘아, 아무래도 그녀가 마신 독은 루비트 같습니다, 폐하.’
‘루비트?’
‘예. 그리고…… 제가, 루비트의 해독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황립 의료원은 아직 황태후 편이긴 했다.
하지만 매사를 열심히 하는 세레니티의 모습에 의원들은 서서히 그녀에게 마음을 열어 가는 중이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그들은 의원이지 않은가? 그런 그들이 죽어 가는 사람을 내버려 둘 리 없었다.
‘우유를 먹이고 토하게 한 다음, 안티루이 용액을 네 시간마다 150mg 주사하면 됩니다.’
작가에게 고마운 일이었다. 그렇게 구체적으로 해독법을 써 주다니.
원작을 기억하고 있는 미아는 그걸 그대로 따라 했을 뿐이다.
쿠아쉬는 이제 두꺼비처럼 펄쩍 뛰기 시작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말이다.
“이, 이럴 리가 없습니다! 이건 뭔가 잘못된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저는 몸이 멀쩡한걸요?”
“그럴 리가……! 네, 네가 숨기고 있는 거겠지!”
“응? 30분이면 증상이 나타날 거라고 말한 건 너잖아. 왜 한 입으로 두말해?”
“……!”
“그리고 너 아까부터 왜 반말이야? 나 알아?”
쿠아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가 홱 고개를 돌렸다.
“하, 하지만 폐하! 폐하께서 보내 주신 약을 대량으로 쥐에게 먹였을 때, 실험 쥐가 보인 증상은 루비트의 증상이 확실했습니다!”
“…….”
쿠아쉬의 말을 들으며 크리소르는 침묵했다. 그녀는 어느새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서늘하게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원작을 읽은 미아는 알고 있었다. 저게 태연하거나 아무 생각 없는 게 아니라, 분노와 짜증을 참고 있는 모습이란 걸.
‘그리고 그 대상은 자신을 우습게 만든 쿠아쉬겠지.’
하지만 아직 충분하지는 않았다.
크리소르는 의심이 많다. 그녀를 속이려면 하나가 더 필요했다.
‘원래 없는 호랑이를 만들려면 세 사람이 입을 맞춰야 한다고도 하잖아.’
그리고 미아의 계획대로라면, 곧 그 세 번째 사람이 나타날 터였다.
“너.”
그때 크리소르가 시녀에게 말했다.
“너. 황립 의료원에 가서 의원 한 명을 데려오너라.”
역시.
미아가 남몰래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얼마 안 있어 의원 한 명이 부름을 받고 응접실에 도착했다. 그는 응접실로 들어오자마자 엠브라가 바닥에 꿇려져 있는 것을 보고 바로 창백하게 질렸다.
“시, 실례합니다. 부르셨다고…….”
연한 보라색 머리카락을 한 남자 의원이 몸을 떨며 말했다. 그를 보며 미아는 안도했다. 정확히 미아가 아딜로트에게 부탁한 대로였다.
‘아딜! 무슨 이유를 대서라도 지금 당장 황립 의료원의 의원들을 전부 밖으로 빼내 줘!’
‘그거면 되나?’
감히 황제에게 명령하는데도 ‘그거면 되나?’라니. 그는 정말로 합리주의적이었고, 미아는 그 점이 고마웠다.
‘응! 대신 머리카락 색이 연한 보라색인 의원이 있을 거야! 그 사람만은 의료원에 남겨 둬야 해!’
미아가 그를 고집한 이유는 간단했다.
원작에서 세레니티를 도와준 의원이니까.
“이름이 뭐지?”
크리소르의 물음에 남자가 흠칫하더니 고개를 조아렸다.
“아, 아마치 코헨입니다, 폐하.”
“루비트를 알고 있나?”
크리소르의 입에서 루비트라는 단어가 나오자 아마치 의원의 눈이 커졌다.
“예. 압니다만…….”
“내 주치의 엠브라 테타가 내게 처방해 주던 약에 루비트가 들어 있었다고 하더군.”
크리소르는 그렇게 말하며 쿠아쉬를 턱짓했다.
“이자가 말이네.”
“예!?”
“하여 미아 셀레스티얼에게 그것을 먹여 보았지.”
“예에!?”
아마치가 입을 떡 벌리고서 미아를 돌아보았다. 미아는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한 걸음 나섰다.
“제가 약을 먹은 지 한 시간 정도가 지났어요!”
“예에에!? 그런데 아직 멀쩡하시다고요?”
“네! 저 그윈이라는 분이 분명 치사량을 계산해서 몇 배를 더 먹이셨는데…….”
미아가 손의 병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녀는 교묘하게 자신에게 루비트를 먹인 책임을 황태후가 아닌 쿠아쉬 그윈에게 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녀의 말을 들은 아마치 의원은 눈에 띄게 안심했다.
“아! 그럼 절대로 루비트가 들어 있을 리 없습니다. 루비트를 치사량으로 음독했다면 지금 그렇게 태연히 계실 리 없으니 말입니다.”
“그렇죠?”
“저, 정말 소량으로 넣어서 그렇소!”
기어이 쿠아쉬가 외쳤다.
하지만 아마치 의원이 즉각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저 정도의 양을 마셨다면 증상이 나타났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증상이 없다는 건, 루비트가 들어갔어도 극소량이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보통 그 정도의 루비트는 약으로 쓰기도 합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루비트는 독이오!”
“독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극소량의 루비트는 자양강장제로 쓰기도 합니다.”
“아. 저도 들어 본 거 같아요!”
미아가 슬쩍 손을 들었다.
“어느 산악 지방에서는 극소량의 루비트를 기력 회복을 위해 먹는다고 하던데요! 으음, 저도 상회를 운영할 때 선물로 받아 본 적도 있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부러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데 넌 그것도 몰라?”
“이, 이……!”
쿠아쉬는 아마치 의원의 말에 반박해야 할지, 미아의 반말에 화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미아가 샐샐 웃었다.
“정말 수상한데! 오리존 아카데미를 졸업한 게 맞긴 해?”
“……!”
쿠아쉬 그윈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가 급하게 외쳤다.
“다, 당연하지! 나는 오리존 아카데미 102기의……!”
“예? 102기요?”
그러자 아마치 의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기하네요. 제가 105기인데……. 선배님이셨나요? 아카데미에서는 뵌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자세히 말해 보게.”
그 순간,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크리소르가 끼어들었다. 아마치 의원이 급하게 허리를 숙였다.
“더 말씀드릴 것도 없이……. 제가 오리존 아카데미의 105기입니다. 그런데 선배님을 뵌 기억이 없는 듯해서…….”
“나, 나는 도서관에서 살아서……!”
“예? 개인 학업 증진실이 아니라요? 저희 때 도서관을 대대적으로 보수 공사하느라 사용하지 못하게 했잖습니까?”
“……!”
그랬다. 쿠아쉬 그윈은 원작에서 학력 위조까지 저지른 사람이었다.
그는 애초에 오리존 아카데미에 입학할 능력도 안 되는 사람으로, 거액의 뒷돈을 주고 크라우스 공작가 쪽에 올리는 서류 자체를 조작해 학력을 위조했다.
아카데미의 학생이 알 법한 내용은 다른 졸업생의 말을 듣고 교묘하게 짜깁기해서 말이다.
“읍! 브으으읍!”
그때 엠브라가 거칠게 몸을 흔들었다. 이제껏 그녀에게 시선도 주지 않던 크리소르가 기사들에게 말했다.
“재갈을 풀어 보게.”
기사들이 바로 엠브라의 입에 물렸던 재갈을 풀었다.
“……프하!”
엠브라가 그제야 살 것 같다는 듯이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고는 뿔테 안경 너머 갈색 눈을 희번덕거렸다.
“저도 아까부터 수상했어요! 루비트가 약으로도 쓰인다는 사실은, 오리존 아카데미에서 의학과 약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아는 상식이라고요.”
“수석 의원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기본적으로 약과 독은 한 장 차이인 게 당연하고, 의원이라면 그걸 아카데미 1학년부터 배우죠.”
아마치 의원까지 거들자, 응접실의 모두가 쿠아쉬를 의심의 눈초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섬뜩하고 서늘한 시선은 당연히 크리소르의 것이었다.
하얗게 질린 쿠아쉬의 관자놀이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보였다.
“나, 나는……!”
“실례지만 교수님의 성함을 대실 수 있습니까?”
“무, 물론이지! 그, 독센 교수님도 계셨고……!”
“그분은 안식년이셨는데요?”
“그, 그렇지만 돌아오셨잖나! 내 은사님이시네! 여전히 편지도 주고받는다고!”
이제 아마치 의원의 얼굴에는 노골적인 불쾌함이 떠올라 있었다.
“어디서 무슨 정보를 듣고 오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독센 교수님은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오신 지 얼마 안 있어 병환으로 세상을 뜨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