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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31화 (31/193)

31화

“큰일이야! 황태후 궁에서 엠브라를 데려갔어!”

미아는 궁내관인 슐츠 공작과 눈인사하며 빠르게 아딜로트 앞으로 걸어갔다. 아딜로트는 눈짓으로 슐츠 공작을 내보낸 뒤 말했다.

“알아.”

“……안다고?”

“안 그래도 그 이야기 중이었으니까.”

―맞습니다. 아마 바로 오신 모양이죠?

의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아힘?”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미아 님.

주변을 살피니 책상 위에 놓인 타원형의 거울 위에 요아힘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소설에서 이런 원거리 마법 도구가 있다고 본 적이 있다. 미아가 엉거주춤하게 거울을 향해 인사했다.

“어……. 일단, 잘 지내셨어요?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에요!”

―예. 미아 님도 좋아 보이십니다. 서로 반말도 하시는 걸 보면, 폐하와 많이 친해지신 모양이군요.

‘윽.’

상냥한 말투였지만 뼈가 들어 있었다. 황제에게 반말하는 게 좋은 건 아니다. 그래서 최대한 존댓말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가끔 급할 땐 툭툭 튀어나오곤 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제가 원래 약간 위아래를 몰라요! 그보다 엠브라는 어떻게 된 거예요, 요아힘?”

―그녀는…….

거울 너머에서 요아힘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제 역할을 하게 된 거죠. 생각보다 이르게 발각된 점이 저로서는 몹시 아쉽지만요.

동그란 안경에 가려진 연둣빛 눈은 다정하면서도 냉정했다.

“그 말은…….”

미아가 뭔가 말하려던 순간, 옆에서 아딜로트가 말했다.

“엠브라 테타는 황태후에게 독을 먹이고 있었어.”

미아의 입이 벌어졌다.

“아딜이 명령한 거예요?”

“그보다는 서로의 목적이 합일을 이뤘다고 봐야지.”

그렇게 말하는 아딜로트는 요아힘과 달리 조금 속이 복잡해 보였다. 그리고 어쩐지 자신의 눈치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게 무슨……?”

그리고 이어진 이야기에 미아는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엠브라의 부모는 황립 의료원의 의원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날, 클라우디오 황태자가 독감에 들었다. 대륙 전역에 심한 독감이 유행하던 시기였다. 엠브라의 부모가 그를 치료했으나, 변종 독감이었기 때문에 마땅한 약이 발견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후 황태자는 자연 치유되긴 하였으나, 분노한 크리소르 황태후가 엠브라의 부모님을 사형시켰다. 엠브라는 그 이후 복수의 칼날을 갈았고, 아직 황자였던 아딜로트를 찾아갔다.

‘제 신분을 세탁해 주세요. 아무리 힘없는 황자님이시더라도 그건 가능하겠죠.’

그때 아딜로트는 비밀리에 키토 후작가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따라서 그 요구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 힘도 없는 황자를 찾아온 건 분명 의아한 일이었다.

‘왜 날 찾아왔지?’

아딜로트의 물음에 엠브라는 조용히 말했다.

‘루드비히 황제는 병에 들었어요. 돌아가신 저희 부모님이 해 주신 말씀이니 확실해요. 황제는 얼마 안 있어 죽을 겁니다.’

‘내 아버지가 죽는다고 해서 내가 황제가 되리란 보장은 없어.’

‘복수하실 거 아닌가요?’

‘……그럴 생각 없어.’

‘그럼 제가 대신해 드릴 테니, 제 신분을 세탁해 주세요. 크리소르 황태후도 죽일 겁니다. 황자님의 이름을 말하진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가능하지 않더라도 시도할 거예요. 부모님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그렇게 엠브라는 신분을 세탁한 뒤, 대륙의 다섯 국가가 함께하는 오리존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그녀는 뛰어난 성적으로 크라우스 공작가의 후원까지 받았으며, 남들보다 많은 나이에도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리고 오르퀘니나로 돌아와 황립 의료원의 수석 의원이 되었고, 황태후의 주치의까지 되었다.

아딜로트와는 그제야 다시 만났다. 힘없는 황자와 아무것도 아닌 소녀가 아니라, 황제와 황태후의 주치의로서.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이고 싶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그 여자 앞에서 웃어 주고 싶습니다.’

아딜로트는 그것을 허락했다. 그 역시 엠브라의 심정에 공감했으니까.

그게 무려 10년을 복수를 위해 달려온 엠브라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다 들은 미아는 아연했다.

‘이거였어. <장미 정원의 세레니티>에서 엠브라가 나오지 않은 이유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었다. 원작에서 ‘엠브라 테타’라는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황립 의료원은 세레니티의 주 활동 무대였는데도, 수석 의원도 황태후의 주치의도 다른 사람이었다.

그걸 의아하게 여기긴 했지만, 엠브라가 장기 휴가라도 냈나 보다 하고 그냥 넘어갔었는데.

‘아니야. 원작에 등장하기 전에 다른 사람으로 갈아 치워진 거야.’

“그럼 이제 어떻게 해요?”

―저희가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때, 엠브라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조용하던 요아힘이 말했다.

―그녀는 각오하고 그 일을 맡았습니다. 폐하의 이름을 발설하지 않도록 정신계 마법도 걸었죠. 여기서 죽더라도 테타 씨는 만족할 겁니다. 결국 그녀의 독으로 황태후 폐하는 병에 걸렸고, 나머지 복수는 아딜로트 폐하께서 완수해 주실 테니 말이죠.

“그런데 대체 황태후는 어떻게 엠브라가 독을 먹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병이 좀처럼 낫지 않아, 몰래 다른 의원에게 약의 분석을 맡긴 모양이더군.”

“다른 의원이요?”

“그래.”

아딜로트가 책상 위에 펼쳐져 있던 서류 한 장을 밀었다.

“쿠아쉬 그윈. 32세…….”

아딜로트의 말을 듣던 미아의 눈이 번쩍 뜨였다.

“쿠아쉬 그윈이요!?”

미아가 외쳤다. 한 줄기 희망이 보였다.

‘원작의 악역!’

쿠아쉬 그윈은 <장미 정원의 세레니티>에서 황립 의료원의 수석 의원이었던 남자였다. 그는 황태후의 수족이었고, 세레니티를 아니꼽게 여겨 그녀에게 독을 먹이려다 들켜서 사형당했다.

미아의 머릿속에서 뭔가가 착착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황태후에게 먹이던 독, 설마 루비트인가요?”

아딜로트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알았지?”

역시나.

루비트는 원작에서 쿠아쉬 그윈이 세레니티를 죽이려 했을 때 쓴 독이었다.

그제야 이해가 갔다.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황태후가 똑같이 당해 보라고 세레니티에게 그 독을 쓴 모양이었다. 원작에 나오지 않았던 뒷이야기가 원작을 이끌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다행인 점은.

‘원작에서 쿠아쉬 그윈은 이미 한번 망했다는 거지! 그리고 내가 그 방법을 이미 알고 있다는 거고!’

미아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필요한 건 아마 엠브라의 방에 있을 테고……. 다른 건 올리버 씨에게 부탁하고……. 그리고…….”

―미아 님?

“으! 하지만 사람들을 빼내지 않으면…….”

뭔가를 중얼거리며 집무실을 배회하던 미아가 곧 고개를 쳐들었다.

“좋아! 지금부터 나는 엠브라를 구하러 갈 거야!”

“뭐?”

―예?

당황한 두 남자의 시선을 받으며, 미아가 외쳤다.

“그리고 아딜은 해 줘야 할 게 있어!”

* * *

황태후 궁의 시녀가 자신을 불렀을 때, 엠브라는 모든 것을 예감했다.

‘죽을 때구나. 드디어.’

크리소르 황태후에게 독을 먹이기 시작한 지도 벌써 2년이었다. 아주 조금씩, 티가 나지는 않게. 그러나 독을 해독해야 하는 간과 신장이 부담을 느낄 정도로.

결과적으로 황태후는 병에 걸렸다. 그녀는 이제 시한부의 목숨이었다.

‘끝을 보지 못하는 건 안타깝지만…… 폐하께서 마무리를 해 주시겠지.’

참으로 길고 긴 세월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무려 10년을 복수를 위해 달려왔으니까.

‘아쉬울 건 전혀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마지막이 다가오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새로 황제궁에 들어온 그 아가씨였다.

미아 셀레스티얼은 분홍색 머리카락에 분홍색 눈을 가진, 설탕을 녹여서 만든 것 같은 귀엽고 예쁜 귀족 영애였다.

그러면서 말하는 것은 화통하고, 또 생각지도 못하게 다정하기도 해서 엠브라는 순식간에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두고 가는 게 미안하네.’

아마 미아 역시도 힘든 외줄 타기를 해야 할 터였다.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이렇게 빨리 가게 되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아가씨나 황제 폐하께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대한 잡아떼기나 해야겠어.’

그렇게 마음먹은 엠브라의 눈앞에서 문이 열렸다.

“황태후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시녀의 말대로, 응접실에 들어서자 황태후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녹색 셰즈롱그에 앉아 사납게 눈을 빛냈다.

“왔느냐.”

원래도 표독스러워 보이는 인상이, 입매를 길게 다물자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황태후의 옆에는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한 명 서 있었다.

‘누구지? 황립 의료원의 의원은 아닌데.’

크리소르 황태후가 얼마나 사람을 가리는지 안다면, 그의 존재는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꿇려라.”

크리소르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기사들이 다가와 엠브라를 무릎 꿇렸다.

“아윽!”

창대 사이로 목이 눌린 엠브라가 신음을 토했다. 그녀를 내려다보며 크리소르 황태후는 오만하게 말했다.

“네 죄를 네가 알겠지, 엠브라 테타?”

“폐하,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그래. 자백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지.”

크리소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의 옆에 있던 남자가 나섰다.

“자네가 감히 황태후 폐하를 독살하려 하지 않았나!”

그는 곰팡이 핀 두꺼비처럼 생긴 남자였다. 인상만으로도 비열해 보였다.

“황태후 폐하의 주치의라는 자가, 감히 약에 장난을 쳐! 내가 그걸 분석하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나!”

엠브라가 뒤늦게 상황을 파악했다.

‘다른 의원에게 약을 분석하도록 맡겼구나.’

엠브라는 속으로 혀를 찼으나, 그걸 드러내지 않고 억울하다는 듯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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