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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20화 (20/193)

20화

“아! 고마워!”

미아가 활짝 웃었다. 양장사들은 부지런히 침실 안에 의상을 갈아입을 용도의 파티션, 온갖 드레스가 걸린 옷걸이 등을 날랐다.

방이 금세 드레스로 가득 찼다. 미아는 조금 기가 질렸다.

“이거…… 다 입어 봐야 하는 건 아니지?”

미아의 말에 주근깨가 있는 붉은 머리 여자가 상냥하게 웃어 보였다.

“어머, 갈아입는 걸 별로 안 좋아하시나 봐요?”

“그런 건 아닌데 무도회에 별로 나간 적이 없어서…….”

“괜찮아요. 저희만 믿어 주세요. 제일 예쁜 드레스로 골라드릴게요.”

그녀의 말을 들은 미아는 그제야 조금이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

“으응. 부탁해!”

사실, 어떻든 상관없기도 했다. 무도회보다는 세레니티를 만나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드레스 따위야 아딜로트의 체면을 세워 줄 정도면 괜찮았다.

하지만 드레스를 고르는 사이사이, 미아는 조금 꺼림칙한 기분을 느꼈다.

“와! 이거 너무 귀엽다! 이거 어때요?”

미아가 연한 노란색의 드레스를 만지작거렸을 때였다.

“어머! 노란색이라뇨?”

한 양장사가 낚아채듯 미아의 손에서 드레스를 빼앗으며 정색했다.

“병아리도 아니고 유치하게……. 촌스러워 보일 거예요!”

“어……, 그래?”

“네! 미아 님은 머리카락도 분홍색이라, 어린애같이 보이기 쉽잖아요? 차라리 이 초록은 어떠세요?”

미아는 그녀가 내민 녹색 드레스를 살펴보았다. 어깨에 러플이 한가득이고, 재질은 두꺼운 새틴에, 긴 천이 뒤로 질질 끌리는 디자인이었다.

‘요즘은 이런 게 유행인가?’

미아가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봐도 촌스러운 것 같은데……. 무도회에 가 본 적이 있어야 알지.’

‘미아 셀레스티얼’의 몸에 빙의하고 나서 사교계를 위한 연습 정도는 했다. 하지만 실제로 나간 적은 없다. 당연히 다른 영애들이 어떤 드레스를 입는지도 모른다.

“미아 님은 무도회에 나간 적이 없으시다고 들었어요. 저희를 믿으세요.”

“맞아요! 저희가 최신 유행으로 꾸며드릴게요.”

양장사들은 당당했다. 결국 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일단 입어 볼게.”

그녀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파티션 뒤쪽으로 이동했다.

‘좀 아닌 것 같지만 저 사람들이 나보다 더 잘 알 테니까!’

그때였다. 병풍 뒤에서 작게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백치 아냐, 저거?”

미아의 동작이 뚝 멈췄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다음 말이 이어졌다.

“기억을 잃었다더니 정말인가 봐, 풉…….”

“근데 너 저건 좀 심했다……, 킥킥. 우리 할머니 세대에나 입던 거잖아…….”

미아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표정으로 가만히 서서 눈만 깜빡였다.

‘……설마.’

양장사들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반역자의 딸이라니……. 원래 자기 심기 거스르면 다 죽였으면서, 그걸 살려 두네?”

“황제라면서 여자 하나에 홀랑 빠져가지곤…….”

“솔직히 그렇게 예쁜진 모르겠는데.”

“맞아! 그냥 흔한 얼굴 아닌가……?”

‘다 들린다, 이것들아.’

미아가 한숨을 쉬었다. 나가서 깽판 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남들 눈에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으니까.

아딜로트는 잔인했고, 가차없었다. 지금까지 범죄자와 반역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엄한 처벌을 내렸다.

그러니 미아의 존재는 이례적이다. 시선을 끌 수밖에 없다. 자신이 요부라 아딜로트를 꾀어낸 게 분명하다는 불유쾌한 추측도, 어쨌든 이해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수다는 다음 순간 크게 선을 넘었다.

“나라님이라는 황제가 그따위잖아. 소문 알지? 자기 형 죽인 거. 인성이 그 모양이니 여자 취향도 저따위지.”

“그것뿐만이 아니지 않나? 사실 지금 황제가 슈뢰더 황가의 핏줄이 아닐 수도 있다며! 알지? 레아 황비가…….”

“알지. 자기 호위 기사랑 정분나서 낳은 건데 황자랍시고 들이밀었을 수도 있다며.”

미아가 숨을 들이켰다.

‘저거 미쳤나? 여기가 어딘지 알고?’

양장사들이 떠들고 있는 곳이 무려 황제의 침실이다.

그 폭군의 침실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적진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적을 신랄하게 까는 게 마치 어떤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양 굴었다.

“어우, 생각해 보니 그러네. 나 갑자기 너무 무서워. 왜 저런 사람이 아직도 황제야?”

“다른 황족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지만…….”

“있어도 다 죽였겠지. 지 엄마가 그렇게 죽었는데.”

“어휴! 사람 죽여도 멀쩡하고. 백치랑 노닥거려도 괜찮고. 한가해서 좋겠네!”

“역시 피는…….”

기어이 미아의 인내심이 뚝 끊어졌다. 미아가 바로 파티션을 걷어찼다.

쾅!

“꺄악!”

파티션이 큰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양장사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미아를 바라보았다.

“나 이거 못 입겠어. 그냥 저기 금색 드레스로 할래!”

그녀들을 향해 미아가 활짝 웃었다.

“네? 하…….”

잠깐 당황했던 양장사들의 얼굴에 짜증이 떠올랐다.

“그러실래요? 안목이 낮아서 어쩌시려고요?”

그중 가장 리더로 보이는 주근깨가 있는 여자가 나섰다.

깔보는 시선 어디에도 미아를 향한 존중은 없었다.

“원래는 그것도 너희 일이라고 말할까 했는데.”

미아가 입지 않은 녹색 드레스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콱!

바닥을 강하게 찍은 구두가 그것을 잘근잘근 지르밟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미아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애교 있게 웃었다.

“앞뒤 사정도 모르면서 남 헐뜯기 바쁜 사람들보다는 내 안목이 더 높을 거 같더라고!”

“하!”

주근깨가 새된 목소리로 코웃음 쳤다.

“그러세요? 황제한테 아양이나 떨어서 살아남은 주제에 수준 높게 구시네?”

그 말에 미아는 태연하게 한숨을 쉬었다.

“아양이 아니라 그냥 내가 너무 귀여운 거거든? 너 생각하는 거 너무 저질이야! 말싸움을 해도 좀 수준 높게 할 수는 없는 거야?”

“뭐, 뭐요? 당신 수준에 맞춰 준 거잖아요!”

미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내 수준은 그렇지 않은데? 네 수준 아니야? 한번 네 수준대로 말해 봐!”

“하라면 못 할 줄 아나 보죠?”

주근깨가 콧방귀를 뀌며 언성을 높였다.

때마침 그녀의 눈에, 주변에 아무렇게나 놓인 신문의 앞면이 보였다. 그녀가 으스대듯 목청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여기서 지금 우리나라의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고, 얼마 전 채굴을 시작한 철광산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논의하기엔, 당신이 너무 아는 게 없지 않나요?”

허어? 미아가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헛웃음을 흘리며 발치의 녹색 드레스를 걷어찼다.

“잠깐만. 고작 그거야? 에이……, 아니지……?”

“고작…… 이요?”

주근깨의 얼굴에 당혹이 스몄다.

“응. 다른 거 없어? 그게 전부는 아니지? 그것도 꼭 어디 신문에서 논평 하나 본 게 전부인 것 같은데…….”

비아냥이 분명한 미아의 중얼거림에 주근깨를 가진 여자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러는 당신은……!”

“좋아! 질답식으로 해 볼까? 내가 물어볼게!”

미아가 여자의 말을 끊고 손뼉을 짝 쳤다.

“음, 최근 신문에 나올 정도였으면 에트루리나 지역의 철광산이겠지? 왜 거기가 이렇게 유난인지 알아?”

“그, 그거야, 그……, 수출입이…….”

자신이 먼저 물어봤으면서, 그녀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 미아의 짐작이 정확했다. 그녀는 신문에서 어떤 평론가가 말한 것을 대충 읽었을 뿐, 정확히 아는 건 없었다.

뒤에 서 있는 다른 양장사들의 시선을 느꼈는지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대답 안 해?”

고개를 갸우뚱하던 미아가 다시 손뼉을 치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아! 혹시 내가 네 의견을 무시할 것 같아서 그래?”

“……그, 그러는 당신은 알아요!?”

“어? 당연한 거 아냐?”

미아가 천연덕스럽게 답했다. 그리고 여자 쪽으로 다가가 손을 뻗었다.

“읏……!”

여자가 움찔했다. 하지만 미아는 여자 뒤쪽에 있던 금빛의 드레스를 들어 올릴 뿐이었다.

“지금 에트루리나 광산 때문에 경제가 들썩이는 건, 그 광산에서 질 좋은 철이 나오기 때문이야.”

“조, 좋은 철?”

“응! 단순 연철이나 주철과는 달라. 지금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철은 연철인데, 최근 강철을 뽑아내는 새로운 방법이 개발되면서 철광 기술이 엄청나게 도약하고 있거든. 덕분에 그 일대가 철강산업 특구로 지정되면서, 엄청난 알력 싸움이…….”

“그만!”

여자의 얼굴은 이제 터질 듯한 붉은색이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문 채, 파들파들 떨며 미아를 노려보았다.

“왜? 너도 아는 거야? 아는 거 또 들어서 싫었구나?”

미아는 드레스를 자신의 몸에 갖다 댄 채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 잘난 척 하기는!”

여자가 빽 소리 질렀다.

“나 잘난 척 안 했는데……. 다 아는 거잖아, 이 정도는.”

미아는 정말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면 정말 몰라? 으으응, 안 보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아는 척을 하지? 에이, 그런 거 아니지……?”

“당신도 결국 어디서 주워들은 지식을 외워서 지껄이는 거잖아!”

“주워들었다니! 속상하네!”

“그게 아니면 어떻게 그런 세세한 걸……!”

“그야 그 광산, 개발 지시한 게 나인걸?”

그 순간 아주 잠시, 싸늘한 침묵이 침실에 내려앉았다. 양장사들이 눈을 크게 홉떴다.

“……뭐, 뭐?”

미아가 해맑게 웃었다.

“그거 내가 했다고. 에트루리나 광산의 철광석이 어마어마한 가치를 갖고 있다는 걸 가장 먼저 알아챈 게 나야.”

물론 미아는 그 정보를 <장미 정원의 세레니티>에서 얻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다.

“거, 거짓말…….”

“이런 걸로 거짓말을 왜 해! 후후, 바보구나? 아니, 백치인가?”

사르르 눈웃음을 친 미아가 말을 이었다.

“그 광산을 개발하던 미로미스 상회는 셀레스티얼 백작가에서 운영하던 거야. 그때 잠정 가치가 한…… 346조 규모?”

양장사들의 입이 점점 더 벌어졌다. 미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설마 미로미스가 셀레스티얼 백작가 소유인 줄도 모르고 그런 이야기를 꺼냈던 거야?”

미아의 말에 여자가 크게 움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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