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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18화 (18/193)

18화

지로티 공작이 턱을 긁적였다.

‘그럴 리 없지.’

그는 자신의 눈을 믿었다. 미아 셀레스티얼은 반역을 저지를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정말로 그럴 생각이었다면 보다 확실하게.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저지를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 모든 걸 떠나서, 아딜로트에 대해 말하는 그녀의 눈은 정말로 맑고 순수했다.

”저는 아무리 봐도 그 아이가 그렇게 보이지 않으니, 말을 아껴야겠습니다.“

지로티 공작의 말에 페르디안이 인상을 썼다.

“지로티 공. 겉으로는 순진하고 귀여워 보일지 몰라도 속은 어떨지 모릅니다.”

“응? 키토 후작, 그 말은 자네 눈에도 그 아가씨가 귀여워 보였다는 겐가?”

“…….”

순간적으로 아딜로트의 눈이 페르디안에게 향했다. 몇 초 뒤, 페르디안이 가까스로 답했다.

“남들 보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뜻입니다.”

“……그러한가?”

지로티는 페르디안의 대답에 망설임이 섞여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허허. 자네도 참 힘든 사람이야.”

“예?”

“아닐세. 아무튼 그렇다면 폐하, 그 토끼 양이 사실은 적일지도 모른다……, 이런 말씀이시군요?”

“그래.”

아딜로트가 팔짱을 끼며 답했다.

“셀레스티얼을 잡기 전까지는 어느 쪽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으니까.”

“흠…….”

지로티 공작이 재밌다는 듯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런 의심을 하는 것치고는 그 토끼 양이 아주 해맑고, 재밌게, 자유롭게 지내고 있는 것 같더란 생각이 들긴 했지만, 굳이 내뱉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반란 진압을 축하하는 무도회를 연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슐츠 공작부인이 맡아서 진행 중이야.”

“흠, 흠. 이번에도 바이지겔 백작과 입장하십니까?”

사실, 물으면서도 지로티 공작은 별생각 없었다. 당연히 하던 대로 부하이기도 한 바이지겔 백작과 입장하겠거니 싶었다.

말하자면. 그냥 찔러나 본 거였다.

“…….”

그런데, 아딜로트가 움찔했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미아 셀레스티얼과 간다.”

지로티 공작도, 페르디안도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폐하. 반역 혐의는 아직 벗겨지지 않았습니다.”

당장 페르디안이 인상을 썼다.

“알아. 하지만 고품질의 강철을 뽑아내는 방법을 얻었어. 그만한 대가는 치러야지.”

“하지만…….”

“호오. 최근 들어온 그게 그 아이 머릿속에서 나온 방법입니까?”

지로티 공작이 페르디안 앞을 가로막으며 끼어들었다.

그는 북부를 다스리는 공작이고, 오르퀘니나의 산맥이 제국 서부와 북부에 몰려 있는 탓에 광업은 지로티 공작가의 주요 사업이었다.

당연하지만 아딜로트는 미아에게 정보를 받은 직후 기술자의 검증을 위해 지로티 공작에게 정보를 보냈다.

결과는 가히 놀라웠다.

무른 연철을 무기에 쓸 수 있는 강철로 바꾸는 전로.

그 내부 구조를 미아가 조언한 대로 바꾸자 어마어마한 효율이 나왔다. 미아가 진즉 이 기술을 사용했다면 미로미스 상회는 대륙 최대의 상단이 되었을 것이다.

책임자인 지로티 공작 앞으로는 ‘이런 방법을 고안한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는 기술자들의 요청이 쇄도 중이기도 했다.

“놀라운 아이군요. 그만한 능력이 있다니……. 죽이지 않길 정말 잘하셨습니다.”

“그렇다곤 해도 왜 무도회를…….”

“본인이 원하던데.”

“예?”

페르디안의 질문에 아딜로트가 심드렁히 답했다. 아딜로트가 미아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옛말에 사랑은 사랑으로 잊는 거랬어요!’

생각하고 있자니 어쩐지 몹시 피곤해졌다. 짜증이 올라오는 것 같기도 했다.

“새 사랑을 찾겠다던데.”

쿵!

지로티 공작이 술병을 떨어뜨렸다.

“기존 사랑이 있었단……?”

“남몰래 약혼했던 남자가 있나 보더군. 있는 집 자식 같으니 무도회에도 참석하겠지.”

“그럼 새 사랑을 찾으려는 게 아니라, 원래 사랑을 되찾으려는 게 아닙니까?”

아딜로트가 멈칫했다.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무도회에 참석한 미아 셀레스티얼이 누군가의 옆에 서서 예의 함박웃음을 짓는 것을 떠올렸다.

“…….”

갑자기 기분이 아주 별로였다. 아딜로트가 침묵하면서 분위기는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페르디안 역시 잠깐 사이에 묘하게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흠, 흠! 이렇게 재밌을 데가! 당분간은 수도에 붙어 있어야겠구만.’

지로티 공작만 재밌어 죽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웃으면 이 황제는 단숨에 벽을 치고 그를 내쫓을 게 틀림없었다.

그는 안간힘을 써서 심각한 목소리를 연기했다.

“그건 좋지 않군요! 귀중한 정보를 알고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키토 후작 말대로, 아직 혐의가 풀린 것은 아니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폐하의 소속이라는 걸 확실히 해 두시는 게 좋겠습니다.”

아딜로트는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어떻게?”

물었다. 미끼를.

지로티 공작이 무릎을 꼬집으며 웃음을 참았다.

“제일 쉬운 건 장신구 아니겠습니까? 거, 지하 창고에 널려 있는 거 하나 갖다 주시면 되겠지요!”

“지로티 공. 그것은 황실 소유의 보물입니다. 그런 것을 반역자의 딸에게 내어준다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페르디안이 즉각 반론을 제기했다.

‘에잉, 깐깐쟁이 같으니.’

지로티 공작은 재빨리 요란한 웃음을 터뜨렸다.

“어차피 많이 갖고 계시지 않습니까? 폐하 옆에 서려면 치장도 해야 하니, 나쁘지 않을 겝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거, 키토 후작. 폐하 옆에 설 사람이라면 응당 가장 아름답게 꾸며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애초에 반역자의 딸이 무도회에…….”

“그럼 자네! 그 아이가 후줄근한 차림으로 무도회에 가도 괜찮단 뜻인가!”

“……이야기가 왜 그렇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공.”

“그럼 역시 자네도 그 아이가 귀엽게 꾸미는 걸 보고 싶단 뜻이군!”

“…….”

페르디안은 대화를 포기했다. 질렸다는 얼굴이었다.

좋아, 이쪽은 해결!

지로티 공작이 다시 아딜로트를 향해 웃어 보였다.

“흠, 흠! 그래서 제 말은, 보기 좋게 장신구 같은 게 좋겠다는 뜻입니다!”

“장신구?”

“그야 침 발라 놨다는…… 이 아니라! 그래야 혹시 그 아이가 곤란해질 일이 안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렇죠! 좀 귀엽게 생겼으니까요!”

“그건 그렇…….”

아무 의심 없이 답하던 아딜로트가 멈칫했다. 젊은 황제의 아름다운 얼굴에 순식간에 서늘한 짜증이 뱄다.

“헛소리할 거면 나가.”

에잉. 이제 못 놀리겠군.

지로티 공작이 능청스레 술병을 땄다.

“그럴 수야 없지요. 황궁의 술이 얼마나 맛있는지 아십니까? 오랜만에 만난 것인데 한잔하시죠!”

“노인네……. 또 새벽까지 마실 생각이야?”

“전 빠지겠습니다, 공.”

“아니, 젊은이들이 술을 무서워하면 어떡합니까! 크하하!”

페르디안이 한숨을 쉬며 잔을 받았고, 아딜로트 역시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잔을 들었다.

미아는 모르는 밤이 깊어져 갔다.

* * *

며칠 뒤, 아딜로트는 사람을 시켜 미아를 불러냈다. 그것도 평소라면 대신들과 회의를 하는 시간인 한낮에.

장소도 황제궁을 벗어난 중앙궁의 정무실이었다.

‘웬일이지? 내가 할 일이라도 있나?’

황제의 애완동물이라는 위치 탓에 딱히 할 게 없는 미아는 신나서 시종의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중앙궁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누군가와 마주쳤다.

깔끔하게 넘긴 반백의 머리카락에 외눈 안경.

그라스 후작이었다.

그를 보자마자 머릿속에 소설 속 그라스 후작의 프로필이 주르륵 떠올랐다.

‘그라스 후작. 대표적인 황태후 파. 틈만 나면 아딜을 깎아내리기 바쁜 재수 없는 인간.’

그에 대해 떠올린 미아가 예의상 생긋 웃었다.

“안녕하세요, 후작 각하! 미아라고 해요. 날이 참 좋죠?”

그러나 그라스 후작은 냉담했다. 그는 무정한 갈색 눈으로 미아를 내려다보다가, 경멸 어린 중얼거림을 내뱉었다.

“아비를 버리고 황제에게 붙은 딸인가. 쯔……. 눈을 버렸군.”

들으라고 하는 말인 게 분명할 정도로 또렷한 목소리였다. 미아는 잠깐 놀랐으나, 빠르게 동정의 눈빛을 보냈다.

“먼저 버린 게 그 애비 쪽인데 그럼 내가 의리를 지켜 줘야 되나? 으, 꼰대 냄새…….”

“뭐, 뭣?”

그라스 후작이 당황해 눈을 부릅떴다. 후작쯤 되는 인간이 자신을 향한 폭언을 들어 본 적이 있을 리 없다.

‘어디 21세기 키보드 워리어에게 까불어?’

미아가 보다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며 입을 열었다.

“쓰레기는 썩으면 비료라도 되는데, 사람 뇌가 썩은 건 어떡하면 좋지? 별로 쓸데도 없는 것 같은데 빨리 강 건너셔야겠다……. 어쩜…….”

“이, 이런 못 배워 먹은 계집이!”

“힉!”

미아가 기겁한 척 물러났다.

“할 말 없으니까 계집거리는 것 좀 봐……. 감정 과잉에 야만적이기까지…….”

“너, 너 지금 감히 내게……!”

“앗. 폐하가 기다리시겠당.”

“이 계집이! 거기 안 서!?”

미아가 콧노래를 부르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자고로 키배는 차단하고 시작하는 사람이 이기는 거거든.’

뒤에서 그라스 후작의 노성이 들렸으나,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어차피 잃을 것도 없는데 뭐.’

휘파람까지 불며 모퉁이를 돌 때였다. 바로 누군가의 가슴팍이 보였고, 미아는 기겁해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들자, 기가 찬 얼굴의 페르디안이 보였다.

미아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드, 들었어요?”

“들었다.”

그녀가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키배 뜨는 모습을 들키다니, 수치도 이런 수치가 없었다. 제 발 저린 미아가 바락 외쳤다.

“……제가 먼저 시비 건 거 아니에요!”

“안다.”

“원래 그렇게 막 나가지도 않고요!”

“아니까 조용히 하고 폐하께 가도록.”

“그, 그럼 하는 김에 아딜한텐 비밀로…….”

미아가 페르디안의 눈치를 보며 울상을 지었다. 분홍색 머리카락 사이로 강아지같이 순한 인상의 큰 눈이 깜빡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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