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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11화 (11/193)

11화

그걸 보는 순간 미아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아딜로트는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심드렁히 말했다.

“처음 보는 차네.”

“기운이 허하신 듯하여 새 약재를 썼다 합니다.”

찻상을 가져온 시종이 답했다.

“그래? 어떤 거?”

“계피, 사과, 푸른 산사나무 열매, 그리고…….”

시종이 미묘하게 느린 박자로 다음 말을 덧붙였다.

“……조금 특이한 종류의 엉겅퀴를 사용했습니다.”

시종의 설명이 끝나는 바로 그때, 찻잔을 들어올리던 아딜로트와 미아의 눈이 마주쳤다.

붉은 눈이 묘하게 서늘했다. 하지만 미아는 그 의미를 눈치채지 못했다. 미아에게는 그저 아딜로트가 차를 목으로 넘기는 것만이 보였다.

그 순간 미아가 벼락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시지 말아요!”

그리고 손을 저도 모르게 움직여 아딜로트의 찻잔을 쳐 냈다.

탁. 쨍그랑!

찻잔은 날아가 바닥에 부딪혀 깨져 버렸다. 방 안에 정적이 끼얹어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폐하!”

잠시 헐떡대며 숨을 고르던 미아가 재빨리 아딜로트의 얼굴을 덥석 붙잡았다.

“어떡해, 어떡해……! 빨리 뱉어요! 빨리!”

미아의 얼굴은 울상이었다.

“놔 봐.”

반면, 아딜로트는 몹시 차분했다. 그는 미아가 갑자기 그런 행동을 한 것에 놀라지도 않은 것 같았다.

“제발 뱉으라니까! 삼키지 마!”

“……말이 짧다?”

“바보야, 빨리 토하기나 해!”

“하……?”

“인공호흡!? 인공호흡 해야 하나!? 아, 아니면 하임리히법!? 근데 그거 물에도 통하나!?”

아딜로트가 한숨을 쉬었다.

“미아.”

그 즉시 요란스럽게 허둥대던 미아의 몸이 멈췄다. 미아가 멍한 얼굴로 아딜을 내려다보았다.

”어……?”

“내려와. 너 지금 황제 위에 앉아 있어.”

미아는 대답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눈만 깜빡거렸다. 아딜로트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 준 건 처음이었다.

고작 이름인데.

어쩐지 새삼스럽게 쑥스러운 기분이 드는 것이 이상했다. 그러나 미아는 빠르게 감상에서 빠져나와 외쳤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닌데요!”

“이걸 페르가 보면 널 죽일지도 모르는데.”

“흐억.”

페르디안이 이곳에 없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반사적으로 몸이 굳었다. 아딜로트는 그런 미아의 허리를 잡고 번쩍 들어 옆에 내려놓았다. 미아는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아딜, 내가 의심스러운 건 아는데, 부탁이니까 한 번만 믿어 봐요……! 응? 차에 독이 들었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원랜 약인데……. 물론 확실한 건 아니지만, 일단 의원한테……. 아! 그렇지만 황립 의료원은 안 되고……!”

“알고 있어.”

“에?”

“폐하. 중화제입니다.”

그 순간 요아힘이 옆에서 작은 잔을 내밀었다.

아딜로트에게. 그리고 미아에게.

“그리고 미아 님도, 드셔야 합니다.”

“네……?”

“해독제입니다. 손에 뭔가를 바르셨죠?”

“아뇨? 안……, 아.”

발랐다. 엠브라가 발라 준 화상 연고.

그는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는 미아를 향해 미안하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피부로 흡수되는 독입니다. 극독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 독단이니 폐하를 너무 미워하진 말아 주시고요.”

미아가 얼떨결에 요아힘이 내민 잔을 받아마셨다.

탁.

아딜로트 역시 태연히 작은 잔을 받아 마신 뒤 내려놓으며 말했다.

“황제의 입에 들어가는 걸 그렇게 허술하게 관리할 리 없지.”

미아의 눈이 스르르 움직여 주변을 살폈다.

태연한 아딜로트.

곤란한 표정의 요아힘.

여전히 공손한 자세의 시종.

미아가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보라 뿌리 엉겅퀴’가 들어갔다는 걸 알고…….”

“그게 들어갔으니 이 색이겠지. 참고로 어릴 때나 그걸 먹고 앓았지, 지금은 손끝이 마비되는 정도야.”

“그럼 엠브라도…….”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딜로트가 손가락을 튕겼다. 집무실 뒤쪽의 책장이 스르르 움직이더니 엠브라가 나타났다.

“아하하! 수상한 미모의 의원 등장!”

녹색 단발머리의 수석 의원은 미안하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미아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죄송해요, 아가씨.”

“엠브라……?”

미아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서 눈을 깜빡였다.

“황태후의 첩자가 아니었어요……?”

“아핫! 그럴 리가요. 적어도 폐하의 집무실에 초대받을 정도로는 신뢰받고 있답니다!”

“하지만, 분명 황립 의료원은 크리소르 황태후가 장악하고 있을 텐데…….”

“맞아요! 그러니까 황태후의 주치의가 사실은 황제의 끄나풀이었다는 건, 당연히 비밀로 해 주실 거죠?”

엠브라가 경쾌하게 말하고서 윙크했다. 가벼운 행동이었지만, 미안해하는 듯한 표정은 여전했다. 멍한 얼굴의 미아를 향해 아딜로트가 말을 이었다.

“참고로 네가 본 ‘약함을 뒤지던 수상한 의원’도 내가 준비한 배우야. 정확히는 요아힘이.”

“……제가 의료원으로 향할 줄 어떻게 아셨는데요?”

“그건 제가 대답하겠습니다. 제 계획이었으니까요.”

요아힘이 말했다.

“미아 님, 알고 계십니까? 레벤토르에는 크리소르 황태후 폐하의 입김이 강한 곳이 몇몇 있죠. 황립 의료원도 그중 하나고요.”

“네. 대충은…….”

“네. 만약 미아 님이 크리소르 황태후 폐하의 아군이었다면 향할 만한 장소에는 전부 손써 뒀습니다.”

“그럼 저걸 마시려고 한 것도…….”

말하면서 답을 깨달은 미아가 말꼬리를 흐렸다.

‘내가 막는지 안 막는지 보려고.’

그사이에도 아딜로트는 탁자 위에 턱을 괴고서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날 해치고 싶은 거라면 막지 않았을 텐데, 그러지 않았네.”

그 순간, 미아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지금…… 할 말이 그게 전부예요?”

* * *

눈빛으로 사람도 꿰뚫을 정도로 날카로운 시선이었다. 입술을 깨문 채 바들바들 떠는 미아의 모습에 아딜로트는 그녀의 분노를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의심한 데다가 독까지 발라 놓았으니 치를 떨 만하지.’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다만 크고 둥근 분홍색 젤리 같은 눈동자가 촉촉해지는 것을 보니 속이 껄끄러웠다.

그는 미아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독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신하의 잘못은 주인의 책임이니까.”

“그게 아니잖아요!”

“아니면 뭔데?”

미아가 주먹을 꽉 쥐었다. 울상 지은 얼굴이 새빨갰다.

“아딜이 그런 상황인 거 알아요! 누굴 쉽게 믿으면 안 된다는 거 알지만…… 그러지 말아요, 좀!”

“황제는 원래 남을…….”

“그거 말고!”

뭔가를 참아 내는 듯한 모습으로 끙끙대던 그녀는 결국 폭발하듯 외쳤다.

“왜 그렇게 자기 몸을 함부로 다뤄요!?”

생각지도 못한 말에 아딜로트의 눈이 커졌다. 요아힘 역시 마찬가지였고, 엠브라만이 착잡한 표정으로 미아를 가만히 응시했다.

침묵하는 세 사람을 두고, 미아는 아딜로트를 똑바로 바라보며 울먹였다.

“정말 황제고 귀한 몸이라고 생각했다면 안 마셨겠죠! 그걸 대체 왜 마셔요? 만에 하나 잘못됐으면 어쩌려고!”

“하지만 아가씨? 제가 옆에 있…….”

“속인 사람은 발언 금지!”

“옙…….”

슬그머니 끼어들려던 엠브라가 다시 뒤로 물러났다.

그때껏 멍한 얼굴이었던 아딜로트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속였다고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물론 깜빡 속았고!”

미아가 자그마한 몸에 어울리지 않는 박력을 뿜어내며 외쳤다.

“그 덕에 엄청 걱정했고! 알고 나니 섭섭하고! 그렇지만 이해할 수 있는데! 꼭 안 마셔도 방법은 있었을 거 아니에요! 마시는 척만 한다든가!”

한참을 미아의 말을 곱씹은 아딜로트가 뒤늦게 입을 열었다.

“……너 화내는 포인트가 좀 이상하지 않아?”

“안 이상하거든요!”

그리고 기어이, 미아가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아딜로트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날 뻔했다. 당황 때문에 입이 말라 오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난 그것도 모르고 죽을까 봐……. 내가 못 말려서 죽을까 봐……!”

미아의 어깨가 파들파들 떨렸다. 그녀는 정말로 그것이 서럽다는 듯이 울었다.

알 굵은 눈물이 진주처럼 빛나며 카펫을 적셨지만, 아딜로트는 딱딱하게 굳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미아가 옆에 있던 요아힘에게 다짜고짜 손을 내밀었다.

“……?”

요아힘이 의아한 얼굴을 하자, 그녀는 눈물을 방울방울 떨구면서도 눈을 부릅떴다.

“손수건!”

“아. 네.”

요아힘은 드물게 당황하며 손수건을 바쳤다.

미아는 코를 훌쩍거리며 눈물을 닦다가 다시 버럭 외쳤다.

“속이셨으니까 안 돌려줄 거예요! 쓰고 밟아서 버릴 거야!”

“……그러시죠.”

“더러운 거 닦아서 아딜 베개 속에 쑤셔 넣을 거야!”

“…….”

철혈의 재상이라는 요아힘을 너무나도 손쉽게 당황시킨 그녀는, 다시 서럽고 원통하게 훌쩍이기 시작했다.

“진짜……, 사람이 어떻게 그래? 아딜은 맨날 자기 자신은 신경도 안 쓰고……! 그러다 나중에 좋아하는 사람 눈에서 피눈물 뽑아도 나는 몰라! 변명 안 해 줄 거라고!”

아딜로트가 겨우 목구멍에서 말을 끄집어냈다.

“그걸 왜 네가 변명…….”

“속인 사람 발언 금지!”

“……황제인데?”

“난 황제 애완동물이거든요!!”

“아. 그래…….”

아딜로트 역시도 요아힘만큼이나 당황하고 말았다. 그는 자신 앞에서 이 정도로 할 말을 다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미아의 눈에 다시 닭똥 같은 눈물이 맺혔다.

“난 잘 거예요!”

그녀는 그렇게 외친 뒤, 문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폭풍 같은 퇴장이었다.

“…….”

미아가 사라지고 난 뒤, 방 안에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발언을 금지당한 두 남자와 한 여자만 남았다.

잠시 뒤, 요아힘이 곤란하다는 듯이 웃었다.

“……간파한 걸까요. 아니면 정말 황태후 측 인사가 아닌 걸까요?”

“일단 넌 시말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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