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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6화 (6/193)

6화

“……그러게요!”

미아가 눈을 부릅떴다.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눈에서는 더 굵은 눈물이 퐁퐁 쏟아졌다.

아딜로트는 의아한 심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미아 셀레스티얼이 자신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아딜. 말할 게 있어요.”

아딜로트의 눈이 살짝 커졌다. 대화가 안 들리는 척 경비를 서고 있던 기사들이 흠칫하는 것이 느껴졌다.

황제의 이름을 애칭으로 부르는 건 건방진 짓이었고, 미아 셀레스티얼은 아직 반역 혐의가 벗겨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아딜로트는 신기하게 기분이 나쁘긴커녕, 잊고 있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아딜. 사랑하는 내 아들.’

크리소르 황후 때문에 이제는 초상화 하나 남지 않은 레아 황비의 목소리였다.

다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미아를 밀어내지 않고 선 아딜로트를 바라보며, 미아는 단호하고 간절하게 말했다.

“그때 아딜은 너무 어렸어요.”

자세한 사정은 아무것도 모를 텐데.

미아는 마치 그의 속에 들어왔다 나온 것 같았다.

“아니, 어리지 않더라도…… 살아남고 싶어 하는 마음은 죄가 아니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미아의 분홍색 눈에는 괴로움이 떠올라 있었다.

“누구도 그걸 탓할 수는 없어요. 그게 설령, 레아 황비님이더라도요.”

“네가 뭘…….”

“모르죠! 맞아요, 난 아무것도 몰라!”

미아는 그게 못내 서럽다는 듯이 외쳤다.

“하지만 그게 아홉 살짜리 어린애가 견뎌야 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는 건 알아!”

아딜로트를 잡은 미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딜은 그때……, 고작 아홉 살이었잖아……. 너무 어렸잖아…….”

그녀는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아딜로트는 당황했다. 날것의 울음을 보는 것은 두 번째였다. 첫 번째도 미아였고, 이번에도 미아였다.

그녀는 보통의 귀족 영애들처럼 조용히, 아름답게 울지 않았다. 온 얼굴을 찡그린 채, 목젖이 다 보이도록 아이처럼 울었다.

“제일 슬픈 사람이 아딜인데, 왜 마음 편히 슬퍼하지도 못하게…….”

아딜로트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동안 마음속을 까맣게 채웠던 뭔가가 걷히는 기분이었다.

내심 자신이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무섭다는 이유로 어머니를 외면했으니까.

하지만 미아는 지금 그래도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의 우는 모습을 보며 아딜로트는 깨달았다. 아마 자신은 그때 저렇게 울었어야 했던 거라고.

파들파들 떨며 아이처럼 우는 미아에게서 아홉 살의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

그는 망설이다 미아의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어떤 말도 하지 않고 미아가 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 * *

아딜로트의 정무는 밤이 되어서야 끝났다. 자정도 넘은 시간이었다. 눈앞에는 요아힘과 페르디안이 보고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중이었다.

“정말 반역을 도왔을까?”

아딜로트의 중얼거림에 페르디안이 즉답했다.

“아직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미아 셀레스티얼은 지나치게 고분고분합니다. 그래서 더 수상합니다.”

“그렇긴 하지.”

아딜로트는 가볍게 수긍했다.

“꼭 오래전부터 날 알고 있던 것처럼.”

흰 피부에 복숭앗빛 뺨. 뾰족한 턱에 강아지처럼 약간 처진 눈매.

연한 분홍색의 눈은 자신을 볼 때면 놀랍도록 다정하고 친근하게 빛났다.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다가도,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투덜대기 바빴다.

겁도 없이 그의 애칭을 부르기도 했다. 누가 자신을 그렇게 편하게 대한 게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아딜로트가 넓은 소매 사이로 팔짱을 끼고선 고개를 좌우로 까딱였다.

“어머니의 일을 알고 있는 눈치더군.”

“반역자 셀레스티얼의 배후를 생각한다면, 미아 셀레스티얼도 당연히 그 일을 알고 있을 겁니다.”

낮의 일을 전해 들었는지 페르디안은 딱딱하게 대답했다. 황제를 감히 이름으로 부른 것이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다.

반면 요아힘은 부드럽게 미소 지은 채 말이 없었다. 아딜로트가 그에게 눈짓했다.

“요아힘은?”

“……저는 사실 미아 양이 셀레스티얼 백작의 반역을 도왔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유는?”

요아힘이 손가락으로 자기 뺨을 톡톡 두드렸다.

“생각이 얼굴에 바로 드러나요.”

그건 확실히…….

세 남자가 동시에 미아를 떠올렸다. 울든 웃든 남들의 배 이상으로 표정이 다채로웠다. 가끔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무표정이 될 때도 있었다. 이를테면 도화지의 흰색 같은.

그런 무심한 표정이 툭툭 드러나기 때문인지, 그 이후에 찾아오는 다른 모든 감정이 빛이 나듯 선명했다.

“연기일 수도 있다.”

그래도 페르디안은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키토 후작께선 뛰어난 기사시니 저보다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동공의 확장 같은 신체 반응은 연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페르디안이 미간을 좁혔다. 반박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틀린 말은 없었다. 요아힘이 미소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뭐, 저야 검사는 아니니 그저 표정이나 행동의 어색함을 살필 뿐이지만요.”

“……하지만 미아 셀레스티얼이 미로미스 상회로 셀레스티얼 백작가의 반역 자금을 마련한 것은 사실이다.”

“모르고 도왔을 수도 있습니다, 키토 후작.”

“그런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놓고도 사용처에 대해 일절 간섭하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군.”

“그 부분이 이상하긴 합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는 물욕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더하죠. 호흐실트 후작만 봐도 그렇지 않나요?”

그렇게 말한 요아힘이 안경 너머 연둣빛 눈을 내리깔았다.

“……참 신기한 분이네요. 말할수록 좀 궁금해지는군요.”

“어쨌든 셀레스티얼 백작이 아직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속단은 금물이다.”

“그 점에는 동의합니다. 폐하께서 언제까지고 그녀를 곁에 두며 ‘감시’하실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안경알 너머 연둣빛 눈이 묘한 빛을 띠며 아딜로트를 향했다. 사람들이 자기 속을 꿰뚫어 보는 것 같다며 몸서리를 치곤 하는 현자의 눈이었다.

하지만 아딜로트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할 말이 있으면 똑바로 하지, 요아힘. 그러라고 널 재상에 앉힌 거야.”

“하하. 그냥 요즘 감시는 손을 잡고 하는 줄을 미처 몰랐을 뿐입니다.”

“큼.”

페르디안이 작게 헛기침했다. 그가 하지 못하는 말을 한다는 점에서, 요아힘은 확실히 철혈의 재상이었다. 아딜로트는 팔짱을 낀 채 시선을 미끄러뜨렸다.

그리고 잠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주의하지.”

요아힘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황제의 이런 점 때문에 그를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니 제안 드릴 것이 있습니다.”

“말해 봐.”

“시험해 보는 건 어떨까요?”

“시험?”

아딜로트가 되물었다.

“예. 키토 후작께서 불안해하시니 간단하게라도 그녀를 시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방법은?”

“서면으로 보고 올리겠습니다. 그리 까다로운 방법은 아니니 준비에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딜로트는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엉엉 울던 미아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딜은 그때……, 고작 아홉 살이었잖아……. 너무 어렸잖아…….’

아딜로트는 자신이 여기서 어머니의 일에 대해 말했을 때, 페르디안과 요아힘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할 수 있었다. 재상이자 현자인 요아힘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사자도 필요할 땐 몸을 낮춥니다. 전략적으로 옳은 선택이었습니다. 황태후 폐하는 명목을 가졌지만 실리는 없으니, 이 싸움은 언제고 폐하의 승리로 끝나겠지요.’

충성스러운 신하이자 기사인 페르디안은 보다 짧게 답할 것이다.

‘제가 선봉에 서겠습니다.’

둘 다 고마운 말이다. 하지만 분명 미아의 말과는 뭔가 달랐다. 미아는 그를 ‘황제’가 아니라 ‘아딜로트’로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설사 그렇다곤 해도 반역자의 딸.’

아딜로트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새벽까지 보고 올리고 진행하지. 가 봐, 둘 다.”

“호위는…….”

“이거면 됐어.”

아딜로트가 허리춤의 단검을 성의 없이 건드렸다. 페르디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모시는 황제는 뛰어난 검사이기도 했다.

아딜로트는 문을 나가기 전, 하품하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참. 노인네에게 연락해서 오라고 해.”

“노인네라 하시면…… 지로티 공 말씀이십니까?”

“응. 노인네 의견도 좀 들어 봐야겠어.”

“알겠습니다.”

뒤로 한 손을 흔들며 방을 나선 아딜로트는 고요한 복도를 지나쳤다. 그리고 침실 문을 연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

넓은 침대 구석에 미아가 토끼처럼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왜 저런 자세로.

어쩐지 웃음이 나올 것 같은 기분에 아딜로트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미아의 벚꽃색 머리카락은 흰 이불보 위에 꽃잎처럼 펼쳐져 있었다. 얼굴은 엉망이었다. 얼마나 눈을 비볐는지 빨갛게 일어난 눈가에는 말라붙은 눈물 얼룩이 가득했다.

아딜로트는 말없이 근처의 물병에서 물을 따라 소매에 적셨다. 그리고 잠든 미아 옆에 앉아, 젖은 소매로 미아의 눈가를 닦아 주었다.

“씨이…….”

미아가 귀찮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리고 신음했다. 세상 모르게 잠든 그녀의 모습을 보고 아딜로트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참 사람 헷갈리게…….”

그런 두 사람을 달빛이 고요히 비추었다.

* * *

미아는 또다시 새소리를 들으며 깨어났다. 아딜로트의 침대 위였고, 아딜로트는 없었다. 감옥 앞에서의 일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하지만 그게 아홉 살짜리 어린애가 견뎌야 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는 건 알아!’

미아는 차가운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가, 곧 울부짖으며 주먹으로 베개를 팡팡 때리기 시작했다.

“으아앙! 내가 대체 뭐라고 지껄인 거야!?”

지하 감옥 앞. 수많은 기사.

난데없이 황제한테 반말하는 애완동물.

얼마나 황당했으면 그걸 다 들어 준 아딜로트…….

“으엉엉엉! 아무리 봐도 감정 과잉 드라마퀸이잖아!”

그때 아딜로트가 지었던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그리고 미아가 다 울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나마 손을 뿌리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마지막엔 미아에게 말없이 손수건을 건네기도 했다. 하지만 침실로 돌아오는 내내 자신을 흘끔거리던 것을 미아는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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