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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3화 (3/193)

3화

감옥은커녕, 외진 곳에만 둬도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들이 미아에게 시비를 걸 게 분명했다.

“……역시 그러기엔 굉장히 몹쓸 짓을 하는 기분이 드네요. 제가 이 정도니, 두 분도 같은 의견이시겠죠?”

페르디안마저 거기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곧 아딜로트가 한숨을 쉰 뒤 말했다.

“내가 감시하지. 따라와.”

“네? 네!”

의외의 말에 놀란 건 미아만이 아니었다.

“폐하께서요? 어디로 가십니까?”

요아힘의 질문에 아딜로트는 간단하게 대답하며 몸을 돌렸다.

“내 방.”

* * *

미아는 종종걸음으로 아딜로트의 뒤를 쫓고 있었다.

‘따라와’ 이후, 아딜로트의 걸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 두 사람은 어느새 중앙궁을 지나 황제궁을 향하고 있었다.

황제궁은 황궁에서 가장 보안이 엄격한 곳이다. 출입하는 인원 역시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일상 소음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주변은 조용해져 있었다.

‘……몰래 아무도 모르는 곳에 데려가서 쓱싹하는 거 아냐?’

미아가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폐하?”

“왜.”

“저희 어디로 가는 거예요?”

“자러.”

“저도 같이요?”

“응.”

미아는 멍한 표정을 했다가, 곧 용맹하게 눈을 부릅떴다.

“집 지키는 개군요!”

아딜로트가 걸음을 뚝 멈췄다. 그는 어쩐지 몹시 피로해 보이는 얼굴로 몸을 돌렸다.

“미아 셀레스티얼.”

“네!”

“혹시 그런 게 취향이야? 아니면 폭군이어도 상관없으니 황제 옆에서 뭐라도 얻어먹어 보겠다는 건가?”

미아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그런 게 뭔데요?”

“뒷부분의 대답부터 해 봐.”

“얻어먹는 건 모르겠고 살아남고는 싶은데…….”

미아가 아딜로트의 눈치를 보면서도 정직하게 답했다. 그녀가 버릇처럼 손가락을 꼼지락대는 것을 아딜로트는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마음에 안 드세요?”

미아가 좀 더 움츠러들었다.

“……그렇게 살아남고 싶어 하면서 왜 남았는지 모르겠네.”

아딜로트는 휙 소리가 날 정도로 몸을 돌린 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얼마나 더 걸었을까, 곧 커다란 문이 나타났다.

문의 표면은 붉은 벨벳이었고, 황금으로 된 손잡이에는 사자가 조각되어 있었다. 누가 봐도 황제의 침실이었다.

문 앞에는 시종이 두 명 있었다. 한 명은 남자고, 한 명은 여자였다. 아딜로트는 그중 시녀에게 눈짓했다.

“제인. 저거 씻겨.”

“예, 폐하.”

“네!? 자, 잠깐만요!?”

제인이라 불린 시녀가 고개를 숙였다.

“이쪽으로 오세요, 아가씨.”

곧 어디에선가 다른 시녀들도 나타나 부드럽고 완강하게 미아를 이끌었다. 아차 하는 순간엔 이미 욕조에 들어간 뒤였다.

“제인 씨! 이거 뭔가 잘못……!”

“어머, 피부가 고우시네요. 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따, 따로 하진……?”

“손에 굳은살이 있네요. 서류 작업을 많이 하시나 봐요? 이 크림을 바르면 부드러워질 거예요.”

“아, 감사합니…….”

“네롤리 향이 좋으세요, 장미 향이 좋으세요?”

“어, 네롤리?”

“그럼 네롤리 오일을 발라드릴게요.”

대화는 어찌나 노련하고 손놀림은 어찌나 신묘하던지, 미아가 반항할 틈조차 없었다.

“끝났습니다, 아가씨.”

“헉.”

그래서 미아는 등 뒤에서 침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저, 저기요!? 저 아직 안 나갔는데!?”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미아는 겁먹은 얼굴로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나비 날개 같은 하늘하늘한 천을 여러 겹 포개어 만든 잠옷. 맨발. 좋은 향이 나는 오일.

그리고 침실.

‘……이건 좀 상황이 이상한데!’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다 물렸어. 웃기는 짓 하지 말고 이리 와.”

“깩…….”

미아가 울상을 지으며 몸을 돌렸다. 아딜로트는 햇빛이 들이치는 침대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그 역시도 씻고 나왔는지, 안개 같은 은빛 머리카락이 아직 젖은 채로 반짝였다.

몸을 따라 흘러내리는 흰 토가는 아딜로트와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트인 가슴팍 사이로는 단단한 복근이 보였고, 미아는 더는 흔들리는 동공을 감출 수 없었다.

‘어, 어떡하지!? 이, 이런 건 상상 못 했단 말야!’

소설에는 아딜로트가 세레니티 이전에 여자를 만났다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없었다.

게다가 그는 전체연령가 소설의 남자주인공답게 방탕하지도 문란하지도 않았다. 범죄자가 아니라면 여자를 함부로 대하는 일도 없었다.

그래서 안심하고 침실까지 따라온 것인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그때 아딜로트가 말했다.

“올라와.”

“……동물은 주인 침대에 올라가면 안 되는데요!”

아딜로트는 대답 대신 머리맡의 검집을 쥐었다.

“하지만 저는 말 잘 듣는 애완동물이니깐!”

미아가 잽싸게 침대 위로 기어 올라갔다.

침대의 끝에만. 아주 살짝.

그러곤 불안한 눈으로 아딜로트를 훔쳐보았다.

‘여차하면 오르퀘니나의 대를 끊는 수밖에……!’

미아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딜로트는 나른하게 은쟁반 위의 포도를 하나씩 따먹을 뿐이었다. 그러다 눈이 마주쳤다.

조금 망설이는 듯하던 아딜로트가 물었다.

“왜 남았어?”

“네?”

의외의 질문에 미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셀레스티얼 백작이 진작 혼자 도주한 걸 모르진 않았을 테고. 멍청하게 남들 다 내보내고 너 혼자 죽으면 누가 칭찬이라도 해 줄 줄 알았어?”

신랄한 말에 미아가 멍청히 눈을 깜빡였다. 그녀는 곧 한 가지 생각에 도달했다.

‘어머니인 레아 황비 생각이라도 난 걸까?’

젠타리아의 백성들을 오르퀘니나의 국민으로 받아 주는 것을 조건으로 자신을 희생한 레아 황비.

그리고 그걸 지켜봐야 했던 어린 아딜로트.

소설에서도 나온 아딜로트의 트라우마였지만, 표정만으로는 그가 무슨 생각인지 도무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미아는 그냥 솔직해지기로 했다.

“누가 칭찬해 달라고 그렇게 한 건 아니니까요!”

“개죽음이 취미야?”

근데 이 새끼가…….

미아가 속으로 참을 인을 그리며 나오려는 욕을 참았다.

“그게 왜 개죽음이에요? 어쨌든 사람들을 구하긴 했는데!”

“다 살아도 자기가 죽으면 소용없어.”

“뭔가는 남잖아요.”

“그건 네 착각이고. 희생이랍시고 개죽음에 뛰어들어 봤자 아무것도 안 남아.”

빈정대듯 하는 말에 미아가 물끄러미 아딜로트를 응시했다. 미아에겐 그의 말이 자책처럼 들렸다.

‘어머니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자신이 싫겠지.’

뭔가를 말하고 싶지만, 아직은 그럴 사이가 아니었다. 미아는 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폐하. 아무리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는 만약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같은 선택을 할 거예요.”

“목숨이 아깝지도 않은 모양이지.”

그 말에 미아는 멈칫했다가, 배시시 웃었다.

“아까워요. 저보다 더 아까울 사람은 없을걸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 사람들은 네게 고마워하지 않을걸.”

미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저 엄청 이기적이라서 그냥 착하다는 소리 듣고 싶은 거라 상관없는데요!”

“…….”

아딜로트는 일순 말을 잊은 듯했다. 그는 한참을 미아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의미 모를 실소를 흘리고는, 괴고 있던 팔을 풀고 누웠다.

“셀레스티얼 백작의 딸이 똑똑하다더니…… 다 헛소문이었어.”

“저 여기 있어요, 폐하?”

“하지만.”

아딜로트의 붉은 눈이 천천히 깜빡이더니, 이윽고 아예 감겼다.

“멍청해서 그런가……, 나빠 보이진 않아…….”

아딜로트는 그렇게 말하고서 순식간에 잠들어 버렸다. 미아는 당황했다.

‘불면증 아니었어?’

불면증 치유는 아딜로트가 세레니티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 중요한 사건이기도 했다. 원래 소설 속 여자주인공들은 몸에서 사람을 잠들게 하는 ‘이상하게 좋은 향기’라는 것을 풍기곤 하는 법이니까.

그러니 아딜로트 역시 세레니티를 만나기 전까진 잠도 제대로 못 자는 게 당연할 텐데…….

눈앞에서 손까지 흔들었는데도, 아딜로트는 깨지 않았다.

미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다른가……?”

순간, ‘이대로 도망칠까?’란 생각이 들었지만, 빠르게 접기로 했다. 일단 머리맡에 칼이 있었다. 아딜로트의 애검이자, 엄청 유명한 전설의 어쩌고 하는 명검인 ‘샹귀스―에키온’이었다.

‘이게 만약 자는 척이라면 도망가려 하는 순간 쓱싹이야.’

자신은 여자주인공도 아니니, 일단은 얌전히 있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집 지키는 개 흉내라도 내야 신뢰를 얻고, 그래야 안 죽고…….”

미아가 중얼거리다 말고 하품했다.

‘생각해 보니 나한테도 긴 하루였어.’

긴장이 풀려서인지 졸음이 몰려왔다.

“자면 안 되는데…….”

미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어느샌가 까무룩 잠들고야 말았다.

* * *

미아가 고롱고롱 소리를 내며 잠든 지 얼마 뒤.

아딜로트의 눈꺼풀이 뜨였다. 그는 급하게 상체를 일으킨 뒤 자신의 입을 가렸다.

“……정말 잤다고?”

당황스러웠다. 자는 척 하고서 미아 셀레스티얼의 동태를 살필 생각이었는데, 진짜로 잠들어 버린 것이다.

새벽녘에야 겨우 잠들던 그가, 그것도 옆에 수상한 여자가 있는 상황에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정작 그 수상한 여자는 폭군이라 불리는 남자 옆에서 잘도 잠에 빠져 있었다.

미아는 잠든 상태로 울상을 지은 채 흐느꼈다.

“안 돼……. 더 못 먹어…….”

“……무슨 꿈을 꾸는 거야?”

태평하게 입을 냠냠거리는 모습이 아딜로트에게는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가 숨을 쉴 때마다 색이 연한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새하얗고 부드러운 뺨도 움찔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딜로트는 저도 모르게 미아의 뺨을 폭 찔렀다.

“흐힝.”

미아는 신기한 소리를 내며 키득거리더니, 다시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

깨지도 않고, 웃기나 하고.

나른한 오후 시간, 무방비하게 잠든 미아의 잠꼬대는 어쩐지 놀랍도록 그의 마음을 부드럽게 했다. 왠지 이런 여자를 경계하고 있는 자신이 바보 같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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