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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악녀의 연애 기술 (4) (151/151)


외전. 악녀의 연애 기술 (4)
2022.06.12.



 
그런 이유로 시작한 건강 관리였는데, 의외의 장점이 있었다.

일할 시간을 줄일 각오를 하고 시작한 운동인데. 운동을 시작한 뒤에도 로벨리아는 자신의 업무량이 전혀 줄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체력이 붙으니 피로가 덜 느껴지고 집중력이 좋아져서 이전보다 업무 효율이 높아진 것이다.


‘이렇게 좋은 줄 알았으면 진작 할 걸 그랬어.’

이쯤 되니 로벨리아도 결국에는 운동의 장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궁의에게 건강검진을 받는 날. 로벨리아는 평소보다 자신감 있는 태도로 검진에 임했다.


“요즘 체력 관리를 아주 열심히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구경 온 알렉산드로스가 놀리듯 말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당당한 기세가 내게도 전해져오는 것 같군 그래.”

그의 말대로였다.

건강관리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그 결과가 스스로도 체감될 정도로 나타나자 로벨리아는 검진을 받는 날이 내심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두고 보세요. 지난번과 같은 제가 아니라고요.”

로벨리아가 뽐내는 듯한 태도로 말하자 알렉산드로스는 그런 그녀가 귀엽다는 듯이 웃었다.

사실 제국 제일, 아니 대륙 제일의 소드마스터라고 불리는 그가 하는 정도에 비하면, 로벨리아의 체력 단련은 새 발의 피조차 못 되겠지만…….

알렉산드로스는 굳이 그 사실을 입에 담지 않았다. 로벨리아의 의욕을 꺾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사실을 지적하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그거 참 이상하군. 지난밤에도 그대는 두 시도 채 되기 전에 나가떨어지지 않았나. 이제 도저히 못 버틴다고 울며불며 매달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다, 다, 당신 미쳤어요? 다른 사람도 있는데!”

로벨리아가 새빨개진 얼굴로 소리쳤다. 알렉산드로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궁의와 그 조수들뿐이지. 비밀을 숨기는 데 누구보다도 익숙한 존재들이야.”

그의 말대로였다. 지금 방에는 로벨리아의 맥을 짚는 궁의와 바삐 움직이는 조수들뿐이었다.

그들 모두는 이런 상황에 익숙한 듯 눈썹 한 가닥 까딱하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음을 알면서도, 혹시 아까의 말을 못 들었나 싶을 정도였다.


“역사적으로도 궁의는 제국에서 가장 입이 무거운 이들이었지. 황족의 가장 은밀하고 사적인 문제를 다루는 직분이니, 입을 함부로 놀렸다간 목이 날아가기 마련이거든. 그러니 안심해도 좋아.”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거든요!”

로벨리아는 머리가 지끈지끈해졌다. 차라리 화제를 돌리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건강을 관리하면서 새삼 깨달았어요.”

“무엇을?”

“저는 당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연애 기술을 갈고닦았는데……. 그렇게 공부한 기술 중에 제대로 쓴 건 한 개도 없었죠.”

로벨리아는 말했다.


“반면 의외로 우리의 관계에 도움이 된 것은, 당신보다는 저를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서 별로 끌리지 않았던 운동과 건강 관리였어요.”

“그렇지. 우리의 행복에 있어서 그대의 건강과 안녕보다 중요한 것이 뭐가 있겠나. 덕분에 그대가 밤에 버티는 시간도 조금은 늘었고.”

알렉산드로스의 짓궂은 말에 로벨리아는 그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하지만 그는 나직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래서…… 생각했어요. ‘저를 위해’가 아니라 ‘당신을 위해’ 노력하고 싶어서 계속 외면해왔던 것인데……. 사실은 ‘저를 위한’ 일이야말로 정말로 당신, 그리고 우리를 위한 게 아닐까…… 하고.”

로벨리아는 쑥스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지나친 생각일까요?”

알렉산드로스는 그런 그녀를 보고 픽 웃었다. 그는 의자를 끌어당겨 그녀의 옆에 앉았다.


“지나치기는. 맞는 말이야. 그대는 이타적인 영혼을 타고났기에 항상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하고 싶어하지.”

그는 로벨리아의 손을 잡아 끌어당겨 손바닥에 입술을 대고 눌렀다.


“그것은 훌륭한 황후의 자질이기도 하지만, 나는 그대가 덜 훌륭해도 좋다고 생각해.”

“…….”

“내가 그대에게 바라는 건 다른 게 아니야. 한순간도 쉴 새 없이 웃게 만드는 화술, 감동적인 데이트와 이벤트, 능수능란한 연애의 기술? 나는 그런 걸 기대하고 그대를 사랑하는 게 아니야.”

속삭이듯 낮고 작게 울리는 목소리가, 달싹이는 입술이 손바닥을 간지럽히자 로벨리아는 기분이 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 그대는 그런 것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알렉산드로스…….”

“나는 그대가 조금 더 그대를 위했으면 좋겠어. 이토록 완벽한 아내에게 조금의 욕심을 부려보자면, 그래. 내가 그대에게 바라는 것은 그것뿐이야.”

단둘이 있는 것도 아닌데. 궁의는 맥을 짚고 있지, 조수들이 돌아다니지, 그다지 낭만적인 분위기도 아닌데…….

그의 말이 가슴 속에 와닿아 이토록 강렬한 파동을 남기리라고, 로벨리아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다.


‘내게 이런 말을 진심으로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그 답은 너무나 뻔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그와 같은 깊고도 완전한 사랑을 자신에게 느끼게 해줄 수는 없을 것이었다.

이것은 오로지 그, 알렉산드로스만이 가능한 것이었다.

로벨리아는 붉어진 눈가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아무리 그래도 궁의 앞에서 울고 싶지는 않았다.


“당신도 참. 너무 두근거리게 하지 마세요. 둘이 있는 것도 아닌데…….”

“설레기를 기대하고 한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다니 기쁘군. 내게 마음껏 두근거리길 바라. 다시 한번 반하면 더 좋고.”

로벨리아는 붉어진 눈가를 한 채 키득거렸다.


“아무튼 알겠어요. 당신이 그걸 원한다면야…….”

“그거 반가운 소식이군. 좀 더 이기적이고, 자신만 아는 로벨리아를 기대해 봐도 되겠나?”

“네. 저도 이제야 좀 적응이 되었거든요. 제국의 황후이자 당신의 아내로서의 삶에.”

로벨리아가 자신감 있는 태도로 말했다.


“그리고 로벨리아로서의 삶도 말이에요. 앞으로도 쭉 지금처럼만 하면 될 것 같아요. 대신관 문제도 해결 되었고, 황궁 재건도 완료된 참이고, 안팎으로 안정되었으니 앞으로는 한동안 별 문제없겠죠! 모든 게 안정되었으니, 이제 정말 자신 있어요.”

“이 정도로 상황이 안정되어야 이기적으로 될 수 있다니 그대도 참 별종이라니까. 역시 내가 선택한 여인이야.”

“저 이래 봬도 안정성을 추구하는 편이거든요. 최근에 하도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서 안정적일 틈이 없었지만요. 휴, 당분간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테니 다행이야! 이제는 안정적인 인생을 만끽해야지.”

그때였다.

몇 번이나 로벨리아를 검진하는 일을 반복하던 궁의가 별안간 외쳤다.


“감축드립니다! 회임하셨습니다.”

궁의의 말에 로벨리아는 그만 웃는 얼굴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감……축? 저게 대체 무슨 말이지?’

그녀는 너무나 큰 충격에 빠져들었다. 멀쩡한 자신의 어휘능력을 의심할 정도로.


‘회임……이라고? 설마, 내가 아는 그 단어가 맞나?’

궁의는 진심으로 기쁜 듯한 태도로 말했다.


“진심으로 감축드립니다, 황제 폐하, 황후 폐하! 아무래도 황후 폐하의 옥체가 다소 기가 허하셔서 한동안 회임을 하시지 못했는데, 최근 건강 관리를 하신 것이 그 빛을 본 것 같습니다.”

“황손의 회임이라니, 오진의 가능성은 없겠지?”

“몇 번이나 거듭 진찰하였지만 틀림없습니다. 틀림없는 아기님이십니다!”

궁의의 말과 로벨리아의 반응에 알렉산드로스는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를 어쩌나. 아무래도 안정적인 인생을 즐기는 것은 좀 나중으로 미루어야겠군!”

그는 옆에 앉아 있는 로벨리아를 덥석 끌어안았다. 물론 배가 눌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로벨리아, 정말 고마워!”

알렉산드로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태도로 말했다.


“그대와 황손을 위해서 나 역시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하지. 정말이지, 내가 그대와 아이를 위해 하고 싶었던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대는 상상도 못 할 거야.”

“당신…… 그렇게 아이를 갖고 싶어 했어요?”

로벨리아가 얼떨떨하게 물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런 그녀를 꿀이 뚝뚝 떨어질 듯 다정한 눈으로 보았다.


“그대와 나의 사랑의 결실이니 당연하지.”

“…….”

“그대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어. 지난날 그대가 겪은 일들이 좀 험난했어야 말이지.”

그다운 말에 가슴이 울렁였다. 로벨리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전생에나 이번 생에나, 영 좋지 않은 부모만 만나온 제가.”

커다란 손이 그녀의 납작한 배 위를 덮어왔다.


“그대는 슈워츠코프 공작에게 말했었지.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하기에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주곤 한다고. 중요한 것은 상처를 주느냐, 주지 않느냐가 아니라, 그 이후의 대처라고.”

알렉산드로스의 다정한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나를 믿어, 로벨리아. 그대가 어떤 가정에서 자라왔는가와 상관없이, 그대는 훌륭한 어머니가 될 거야.”

로벨리아는 웃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그렇게 말한다면, 믿을 수밖에는 없었다. 그 역시 최악의 부친을 두었으나 이런저런 일들을 겪은 끝에 이렇게 훌륭한 아버지 감으로 성장하지 않았나.


“당신도 마찬가지예요.”

로벨리아는 그의 뺨에 가볍게 입맞추곤 말했다.


“어휴, 어쩔 수 없죠.”

“정말 괜찮겠나?”

“이미 생긴 걸 어쩌겠어요. 받아들여야지.”

‘하도 이런 저런 일들로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에 대해서는 미처 숙고해보지 못했지만…….’

비록 알렉산드로스의 아이를 갖는 일까지는 자신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긴 했지만, 그것도 이젠 꽤 오래 전의 일이었다.

그때는 자신이 그를 이렇게까지 깊게 사랑하게 될 줄 생각도 하지 못했으니까.


‘게다가 아이가 생긴다는 건 안정적인 삶에서 제일 크게 멀어지는 방법이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그와 함께라면 어떻게든 괜찮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나는 적응력이 꽤 좋은 편이라는 걸 지난 경험으로 이미 증명했으니까 말이야.’

로벨리아는 결심했다.


‘까짓 불안정한 생활, 조금 더 해보지 뭐.’

“이 아이는 분명 신의 선물일 거야. 우리의 관계를 더욱 성숙케 하고, 행복 위에 더한 행복이 있음을 알려줄 신의 선물.”

알렉산드로스의 말에 로벨리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변화가 기대되는 것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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