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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떠나는 사람들 (146/151)


146. 떠나는 사람들
2022.05.26.


대신관의 음모를 막았으며, 책임을 가려내어 상벌을 내리고, 모든 일이 마무리되어가는 지금.

황궁에서 불행한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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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차갑고 축축한 지하감옥의 독방에서 아이샤는 생각했다.

황비라는 지위. 호화로운 방과 다정한 사람들. 부유한 생활과 알렉산드로스의 사랑…….

이제는 그중 어떤 것도 그녀의 손안에 남아 있지 않았다.

지금의 그녀가 가진 것이라곤 형편없이 마르고 초췌해졌으며 사지조차 온전하지 못한 몸.

그저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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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마저도 이제 곧 내 것이 아니게 되겠지. 지금의 내게 처형을 피할 방법은 없을 테니.’

처음에는 그저 억울했다. 괴롭고 또 괴로웠다. 좀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먼 동방에서 제국까지 온 자신이 이런 꼴이 되었다는 것이.

눕는 것이 고작이고 하루 종일 밤처럼 어두운 공간에서 아이샤는 마음속으로 수천 번, 수만 번도 더 증오스러운 얼굴들을 죽였다.

지옥도처럼 타들어가서 어떤 방법으로도 끌 수 없을 것 같았던 가슴속의 불꽃은 그녀의 감정과, 한 자락 남은 이성까지. 모든 것을 살라먹었다.

모든 것이 뒤바뀌고 대신관이 죽은 그날 이후로 며칠이 지났을까?

몇 주가 지났을까?

몇 달, 어쩌면 몇 년이 지났을지도 모른다. 시계도 달력도 없는 이곳에서 그녀는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없었다.

언제 개처럼 끌려나가 처형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아이샤는 미칠 것 같았다.

그런 그녀에게도 결국 끝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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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 아이샤, 나와라.”

간수의 목소리에 아이샤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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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것이 왔구나.’

그녀는 후들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작은 독방에서는 걸을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굉장히 오랜만에 제 다리로 섰다.

그녀는 포승줄에 묶여 간수와 기사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끌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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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오랜만에 본 밝은 빛이 눈을 찔렀다.

눈이 아파 눈물이 줄줄 흘렀으나 간수는 그녀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저 재촉하듯 포승줄을 끌어당길 뿐이었다.

복도를 걷는 동안 무수한 사람들을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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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사람이 황비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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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잘도 그런 짓을…….”

팔다리는 꼬챙이처럼 말랐으며, 피부는 푸석푸석해졌고 눈은 움푹 꺼진 데다가 오랜 시간 씻지 못해 더러운 그녀를 상대로 모두가 수군거리고 손가락질을 했다.

그들 모두가 2년 전만 해도 그녀 앞에서는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했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감옥에서의 시간 동안 감정마저 마모되어버린 것일까? 그들의 태도를 보면서도 아이샤는 아무런 기분도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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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이 순간이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

광장 같은 곳에서 공개처형을 당하게 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녀가 도달한 곳은 실내였다.

그들이 한 문 앞에 도착하자 궁인들이 문을 열었다.

아이샤가 보게 된 광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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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

한눈에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있었다.

방청객으로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으며, 그 앞에는 변호사와 검사가 있었다.

그리고 가장 높은 단상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바로 그들이었다.

아이샤의 인생의 원수.

로벨리아와 알렉산드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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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을 한단 말이야? 나 같은 반역자에게?’

놀라운 일이었다. 법적으로야 모든 죄인이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었지만, 반역자에게 그 법이 지켜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보통 재판은 생략하고 곧바로 처형당하기 마련이었다.

심지어 아이샤는 몇 번이고 황후를 암살하려 했으며, 황제를 다른 차원으로 보내기까지 했다. 즉결처형을 당해도 몇 번은 당해야 마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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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까지 이상하게 오래 걸린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최대한 준비해서 본보기를 보여주려는 건 줄 알았는데……. 설마 재판을 준비하고 있었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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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는 피고석에 서도록.”

알렉산드로스가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샤는 그의 말대로 했다.

재판은 평범하게 이루어졌다.

무수한 사람들 앞에서 아이샤의 크고 작은 죄가 낱낱이 밝혀졌으며, 그 증거가 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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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 아이샤는 차원이동자가 아님에도 요세프 카프카 리히트만과 결탁하여 차원이동자를 사칭하여 제국의 황비 자격을 얻었고…… 투기심으로 인해 몇 번이고 황후를 상대로 언론조작과 암살 시도를…….”

검사와 변호사가 번갈아가며 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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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일을 아이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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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그냥 나를 죽여버리면 간단할 텐데.’

황제와 황후라는 이들이 할 일이 없어서 재판을 준비한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대신관과 아이샤가 벌인 일의 규모를 보면 지금도 그 뒷수습을 하느라 눈코 뜰 새도 없이 바쁘리라.

아이샤가 보기에 일이 이렇게 번거로워진 원인은 당연히 로벨리아에게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관행대로 그녀를 즉결처형하고도 남았을 인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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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그놈의 성녀 놀이를 하려는 것일까. 자신은 이렇게나 선하고 고결하고, 나 같은 더럽고 추한 가짜 성녀와는 격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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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은 피고의 최후 변론이 있겠다.”

알렉산드로스의 낮고 깊이 있는 목소리가 재판장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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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는 할 말이 있다면 해보도록.”

아이샤는 멍하니 두 재판관들을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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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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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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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처형하면 될 것을…… 왜 이렇게 복잡한 길을 선택하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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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 말조심하시오! 황제 폐하, 황후 폐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어찌 감히 그런 무례한 발언을!”

나이든 비서관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에게 동조하듯 많은 방청객들이 술렁였다.

그들을 침묵시킨 것은 로벨리아였다.

그녀는 손을 들어 모두의 입을 다물게 했다. 모두가 순간 숨을 멈출 정도로 극도로 우아하며 또 단호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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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가 있는 듯한데, 아이샤. 내가 그대를 즉결처형하지 않고 재판의 기회를 준 것은 그대에게 자비를 베풀기 위해서가 아니야.”

그 자리의 모두의 집중이 로벨리아의 입술 위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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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대를 즉결처형하지 않은 것은, 죽음이 인간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가혹한 형벌인 게 아니기 때문이야. 세상에는 죽음만도 못한 삶도 존재하지. 그대라면 그것을 알고 있을 텐데.”

로벨리아의 말에 아이샤는 마치 뒷목을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그랬다. 그녀는 그런 삶을 알고 있었다.

대신관을 만나기 전의 그녀의 삶이 그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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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무도한 죄를 지어 그 자리에 서게 될 때까지 그대는 한 번의 잘못만 한 것이 아니야. 몇 번이고 그대는 멈출 기회가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지. 탐욕과 시기심에 눈이 멀어 몇 번이고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말았어.”

그랬다. 아이샤에게는 무수히 많은 멈출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끊임없이 새로운 죄를 만들어나갔다.

지금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은 마음에. 지금까지 저지른 죄의 죗값을 치르기가 두려운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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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간, 나는 분명 그대에게 말했지. 선한 행동은 너를 너답게 있을 수 있게 하고, 악한 행동은 당장의 이득은 가져다주어도 결국엔 너라는 인간을 파괴하고 만다고. 선을 선택하는 것은 결국 너를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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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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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을 듣고도 마지막까지 악한 길을 선택한 그대는 지극히 탐욕스럽고 투기심으로 가득한 인간이야. 그런 그대에게 완전하고 영원한 휴식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야.”

로벨리아는 가벼운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그 어느 때보다 명료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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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벌로써 그대가 가장 바라지 않은 삶을 주겠어. 그대는 앞으로 부유함과 권력이라곤 실오라기만큼도 소유하지 못할 거야. 자신의 선택과 판단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었던 것인지 평생에 걸쳐 뼈저리게 느낄 기회를 주지.”

로벨리아는 재판봉을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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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 아이샤에게 평생에 걸친 빈민가, 전쟁피해지, 재난피해지 봉사활동을 명한다.”

땅, 땅, 땅. 맑고 엄숙한 소리가 긴장감 가득한 공기 중으로 퍼져나갔다.

그것은 아이샤의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소리이기도 했다.

***

큰일이 끝났기 때문인지 내 주변에서도 많은 것이 바뀌었다. 노먼이 성국으로 떠났듯이.

그리고 그 큰 변화에는 케일럽의 유학행 역시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때 케일럽이 독립하기를 바랐지만, 내 곁에 있겠다는 그의 의지가 워낙 강했던 탓일까.

케일럽이 먼저 유학을 가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나의 놀라움은 노먼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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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마탑으로 유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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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사실은 제 재능에 대한 소문을 들은 현 마탑주가 제게 좋은 제안을 주셨거든요. 자신의 지도 아래에서 연구를 하는 게 어떻겠느냐 하는.”

케일럽이 부끄러운 듯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깊은 아쉬움을 느끼는 나 자신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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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케일럽을 독립시키기 위해 애쓰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 나는 그동안 케일럽이 곁에 있는 것을 익숙하게 느끼게 되었구나. 이게 다 케일럽이 성심을 다해 나를 도와주었기 때문이겠지.’

케일럽이 나를 떠난다니……. 생각만 해도 정말 아쉽고 슬펐으나 나는 그를 소중하게 여기는 만큼 그의 발전을 위한 선택을 응원해주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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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일럽의 재능이라면 마탑주의 아래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겠지. 분명 빠른 시일 안에 현 마탑주보다도 대단한 대마법사가 될 거야.’

마침내 케일럽이 마탑으로 떠나는 당일. 나는 당연히 그를 배웅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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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 폐하, 마지막까지 저를 이렇게 챙겨주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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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나를 위해 힘써준 네 일인데 당연하지.”

나는 케일럽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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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마웠단다.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항상 네 곁에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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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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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재능을 마음껏 펼치고 오렴. 너는 분명 세계에서 제일가는 마법사가 될 수 있을 거야. 혹시 힘이 들거나 기댈 데가 필요하다면 언제든 연락하고.”

케일럽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그는 붉어진 눈으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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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의 그런 다정함이 가끔은 사람을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 폐하께선 모르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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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뭐라고?”

의미심장한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케일럽은 붉어진 눈으로 나를 똑바로 보았다. 항상 수줍음이 많고, 나를 존경하는 태도를 보이는 그에게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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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저 폐하께 숨겨왔던 것이 있어요.”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나직하고, 실바람에도 흩날릴 듯 부드러웠다.

그 순간, 나는 새삼스럽게 그가 굉장히 많이 자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는 더 이상 누구도 그를 소년이라고 부를 수 없으리라. 훤칠한 키에, 제법 남자다운 선을 그려내는 그의 얼굴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케일럽의 깊은 눈동자에는 짙은 애정이 담겨 있음을 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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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저 사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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