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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한 개의 궁전, 한 개의 침실 (141/151)

141. 한 개의 궁전, 한 개의 침실 2022.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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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어느 때보다도 갈급한 알렉산드로스의 입맞춤은 내게서 많은 숨을 빼앗아갔다. 안 그래도 긴 고백을 쏟아내어 숨이 가빴던 나는 산소가 부족해 머리가 핑 돌 정도였다.

16549701806942.jpg “하아, 알렉산드로스…….”

짙고 뜨거운 감정이 넘실거리는 금빛 눈동자를 바라보며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잠시 떼어냈지만 스칠 듯이 가까운 곳에 있는 나와 그의 입술 사이에 은사(銀絲)가 반짝였다. 내 시야 가득히 들어온 그의 눈에는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득해질 정도의 강렬한 욕정과 소유욕이 들끓고 있었다.

16549701806942.jpg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곧바로 나의 입술을 옭아매오지 않고, 잠시 내가 숨을 고를 틈을 주었다. 그의 눈에 비치는 감정의 깊이를 보면, 그는 정말 대단한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리라. 내가 숨을 고르는 그 잠깐의 순간에도 그의 진득한 눈빛은 오로지 나의 입술만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차마 그 긴장감을 견딜 수 없어 필사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그의 시선 앞에서 심장이 떨렸다. 긴장 때문인지 내가 숨을 고르는 그 잠깐의 순간은 몇 배나 길게 느껴졌다. 내 숨이 안정되자, 그는 세상에서 가장 긴 기다림이었다는 양 다시 입술을 덮어왔다.

16549701806942.jpg ‘너무 뜨거워. 그저 입술을 섞는 것뿐인데 데일 것 같아.’

나는 헐떡이며 그의 품에 기댔다.

16549701806942.jpg ‘하지만……. 멈추고 싶지 않아.’

데이는 한이 있더라도 그저 영원히 이러고 있고 싶었다. 지금 그와 결합된 것은 입술뿐이 아니었다. 그와 나의 감정, 마음까지도 온전히 결합된 것이 느껴져 감격에 목이 멨다. 대한민국의 대학원생으로 살던 나와, 카스티야 제국의 황제인 그. 그 어떠한 접점도 없는 우리가, 서로에게 너무나 많은 비밀을 숨기고 있던 우리가. 그 많은 고난과 장애물을 넘어 이토록 완전히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될 가능성을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오직 단 하나. ‘기적’밖에는 없으리라. 나는 팔을 뻗어 그의 목을 감았다. 그 역시 나를 배려하듯, 한 손으로는 내 등을 단단히 받치고, 한 손으로는 뒷머리를 감쌌다. 하지만 그렇게 행복한 시간에도 끝은 있어서, 결국 우리는 입술을 떼었다. 나는 잠시 머리가 멍해서 상황판단을 하지 못했다. 달콤한 열기에 머릿속이 온통 녹아내려 푸딩처럼 흐물흐물해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결국 깨닫고 말았다. 우리들을 향해 사방에서 쏟아지는 무수한 시선들을.

16549701806942.jpg “……!”

나는 움찔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백 명의 기사, 궁인, 시녀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 누구도 수군거리기는커녕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그만큼이나 모두들 경악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침묵을 깬 사람은 다름 아닌 알렉산드로스였다.

16549701806961.jpg “로벨리아 르 카스티야. 내 사랑하는, 그리고 하나뿐인 아내.”

그의 단단하고 흔들림 없는 목소리가 장내를 가득 채웠다.

16549701806961.jpg “이 마땅한 결말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너무나 긴 길을 돌아왔고, 나는 수많은 과오를 범하고 말았지.”

이렇게 무수한 시선에 휩싸인 와중에도 그는 오로지 나만을 눈에 담고 있었다. 이곳에서 그에게 중요한 존재는 오직 나밖에 없다는 양.

16549701806961.jpg “하지만 오랜 방황 끝에 결국 그대를 진정한 반려로 맞이하게 되어 더없이 기쁘다. 이 기쁨은 즉위의 순간이나 숙적과의 승리의 순간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야.”

그렇게 말한 그는 내 두 뺨을 감싼 채 코 위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코끝에 작고 간질간질한 온기가 퍼지자 나도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16549701806961.jpg “우리가 서로에게 숨겼던 비밀은 신의 앞에 모두 밝혀졌고, 서로를 향한 진심을 가로막는 것은 신조차 불가능할 지금, 이 사랑이 영원할 것이며 오직 그대만을 향할 것임을 메스타포에 맹세하지.”

16549701806942.jpg “……저 역시 당신만을 사랑할 것을 메스타포에 맹세할게요. 비록 그 시작은 늦었지만 그 끝은 영원할 것임을.”

수많은 사람들을 증인 삼아서 맹세의 말을 주고받은 우리는 다시 한번 입술을 겹쳤다. 사방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16549701838094.jpg “황제 폐하, 만세! 황후 폐하, 만세!”

16549701838094.jpg “카스티야는 영원할지어다!”

16549701838094.jpg “신이여, 두 분을 굽어살피소서!”

이번 입맞춤은 짧았기에 나는 금방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시선이 닿는 근처에서 눈물을 찍어내는 비서관과 폴짝폴짝 뛰며 서로를 얼싸안는 시녀들을 발견했다. 어쩐지 씁쓸하게 웃는 노먼과 케일럽의 모습도 찾아냈다. 그들은 미소 띤 얼굴로 가벼운 박수를 쳤다.

16549701806942.jpg “다들 이리 와요. 정말 수고 많았고, 고마웠어요.”

내가 손을 뻗자, 그들은 주저하다가 (아마 알렉산드로스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결국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16549701838094.jpg “폐하! 정말 축하드려요!”

16549701838094.jpg “행복하셔야 해요, 폐하!”

16549701806942.jpg “너희는 무슨 말을 이제 영영 못 만날 사람처럼 하니? 어차피 계속 내 황궁에 출근할 거면서.”

16549701838094.jpg “헤헤, 들켰네요.”

16549701838171.jpg “황후 폐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노먼이 잔잔한 미소를 띤 채 말했다.

16549701838171.jpg “또한 이번 일에 보여주신 현명한 판단, 용기, 지혜, 모든 것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저 역시 황제 폐하께서 내리신 임무를 완수해낼 수 있었습니다.”

16549701806942.jpg “저야말로 노먼이 없었으면 이번 일을 해낼 수 없었을 거예요. 정말 수고가 많았어요, 노먼. 이 고마움을 저는 영원히 잊지 못할 거예요.”

16549701866755.jpg “폐하, 저…….”

케일럽이 갈라지는 목소리를 뱉다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분명 아까 전까지만 해도 웃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의 눈시울은 붉었다.

16549701866755.jpg “……저, 정말 축하드려요. 아, 이런. 죄송해요. 이런 모습 보여드려서…….”

16549701806942.jpg “아니야, 케일럽. 울어도 괜찮아. 그럴 만한 일이었으니까.”

나는 도망치려는 케일럽을 황급히 끌어안았다.

16549701806942.jpg “정말 고생 많았어, 케일럽. 많이 힘들었지? 되도록 위험한 일을 겪지 않게 해주고 싶었지만 내 부족함으로 어린 널 이런 전장으로 끌어들였구나.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줘. 넌 내 최고의 기사이자, 최고의 친구란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의 등을 조심스레 두드려주었다. 그가 울고 싶은 만큼 마음껏 울 수 있도록. 하지만 케일럽은 울지 않았다. 그는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 듯 몇 번 입을 열었지만, 다시 입을 다물었다.

16549701866755.jpg “정말 존경합니다, 황후 폐하. 제가 이토록 존경하는 분은 앞으로도 결코 없을 거예요.”

16549701806942.jpg “고맙구나.”

나는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케일럽은 어쩐지 홀가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서로 인사를 나눌 시간을 주었던 알렉산드로스가 말했다.

16549701806961.jpg “서로 쌓인 이야기가 많을 텐데 이런 곳에 서서 모든 대화를 나눌 수는 없지.”

그는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어쩐지 절로 웃음이 나왔다.

16549701806961.jpg “내일부터는 할 일이 많겠지. 황궁을 수리하고, 궁내 인원과 설비를 재정비하고, 이번 사건을 온 대륙에 알리고……. 분명 한숨 돌릴 틈조차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그런 것은 잊어버리고 휴식을 취하도록 하지. 모두에게 연회를 베풀 테니 편히 회포를 풀도록.”

16549701838094.jpg “감읍합니다, 폐하!”

16549701838094.jpg “지혜로운 판단이십니다, 폐하!”

기사들이 다시 한번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축하연은 나에게도 무척 반가운 소식이었다. 나와 알렉산드로스 역시도 서로 나눌 이야기가 많았으니까. *** 알렉산드로스의 말대로, 이후는 정말로 바쁜 나날이었다.

16549701866755.jpg “사건의 규모가 어마어마했으니 그 수습도 어마어마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건 정말로 상상 이상이네요.”

케일럽이 한숨을 쉬며 불평했다.

16549701806942.jpg “호위기사인 네가 이런 일까지 도와줄 필요는 없는데. 사건 내내 고생했으니 좀 쉬지 그러니?”

16549701866755.jpg “아, 아니에요. 하나도 안 힘들어요. 그냥 해본 소리였어요. 간만에 서류 작업하니까 기분전환도 되고 좋은걸요.”

케일럽이 황급히 주워섬기는 말에 나는 피식 웃음 지었다.

16549701806942.jpg ‘하여간에 정말 다정하고 대견한 아이라니까.’

대신관과 아이샤가 벌인 사건을 수습하느라 나도, 알렉산드로스도, 시녀들과 케일럽도, 비서관도 정말로 할 일이 많았다. 심지어 무관(武官)인 노먼조차 바빴다. 이번 일로 기사단에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여 인원을 충원하고 특별훈련도 해야 했으니까. 그래도 황궁의 모든 이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도와준 덕일까, 노고의 결과물은 눈에 띄게 나타났다. 궁인을 새로 뽑고, 부서지고 무너진 곳을 수리하자 황궁은 금방 이전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16549701806942.jpg ‘아예 통째로 사라진 황후궁을 재건하는 데는 꽤 긴 시간이 걸릴 예정이라고 하지만…….’

하지만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건 뒤 첫 국정회의에서 알렉산드로스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16549701806961.jpg ‘이거 어쩔 수 없군. 비록 황제와 황후의 거처를 분리하는 것이 황실의 오랜 전통이었다고 하나, 이번 일의 중대성을 고려하여 황후는 앞으로 나와 함께 중앙궁에서 지내는 것으로 하지.’

16549701838094.jpg ‘하, 하지만 폐하. 전통은 귀중하며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전통을 모든 제국민들의 모범이 되어야 할 황실에서 앞장서서 깨는 것은 조금…….’

  보수파의 가신이 눈치를 보며 말했으나, 곧 모두의 차가운 시선을 받고 입을 다물 수밖에는 없었다.  

16549701806961.jpg ‘또한, 두 명이서 한 개의 건물을 써야 하니 공간절약을 위하여 침실은 따로 두지 않고 공유하도록 하지.’

  제국의 귀족들은 부부라고 해도 방을 따로 쓰는 것이 오랜 예법이었던지라 알렉산드로스의 파격적인 결정에 모두가 깜짝 놀랄 수밖에는 없었다. 특히나 보수파의 가신은 뒷목을 잡을 정도였다.  

16549701806961.jpg ‘이에 이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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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폭군의 결정에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특히나 그가 외우주에서 온 괴물을 쓰러뜨려 대륙제일의 검사임을 증명한 지 며칠밖에 지나지 않은 이때에는 더더욱.  

16549701838094.jpg ‘이의 없습니다.’

16549701806942.jpg ‘사실 황비궁도 있고, 귀빈궁도 있고 빈 건물은 많은데 아무도 그걸 지적할 생각을 못 했다는 게 놀라워. 물론 나야 좋기는 하지만…….’

그렇게 우리는 한 건물, 한 침실, 한 침대를 같이 쓰게 된 것이다.

16549701806942.jpg ‘덕분에 매일 밤이 외롭지 않아서 좋아. 이제는 침대를 덥혀줄 사람도 있고…….’

나는 서류 뒤에 얼굴을 숨긴 채 어젯밤의 일을 떠올렸다. 생각만 해도 흐뭇하고 기분 좋은 기억이었으나, 그런 잡념에 오래 빠져 있을 수는 없었다.

16549701838094.jpg “황후 폐하, 귀한 손님께서 오셨습니다.”

시녀의 말에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16549701806942.jpg “모셔오도록 하렴.”

시녀가 나가고 잠시 뒤 그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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