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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두 번은 당하지 않아 (140/151)


140. 두 번은 당하지 않아
2022.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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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긴 말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쏟아내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헐떡이면서도 나는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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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그래! 알렉산드로스는 계속 날 믿었어. 그러니까, 이제 나도 그를 믿을 거야!”

그를 생각하면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울면서 고함치는 꼴은 대단히 추하겠지만, 지금의 나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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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내게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어! 허튼수작 부리지 마. 그는 나를 행복하게 해줬어. 오갈 데 없는 부평초 같은 나를 처음으로 사랑해줬어. 내게 처음으로 온기를 줬어! 그러니까, 이제는 내 차례야. 나도 그를 행복하게 해줄 거야. 나도 그의 차갑고 건조하고 계획과 목표밖에 몰랐던 삶에 온기를 줄 거라고! 계획 같은 거 없어도 통하는 진심이라는 게 있다는 걸 가르쳐줄 거야!”

목소리가 몇 번이나 탈선했고, 목이 쉬었는지 깔깔하게 아파졌으나 나는 목에서 피가 나도록 부르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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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나한테 이제 이런 개수작은 안 통해! 다 집어치워!!!”

그제서야 나는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나는 몸이 부서지도록 헐떡였다. 머리에 산소가 모자라서 어질어질해 나는 반쯤 주저앉아야만 했다.

그렇게 한참이나 거친 숨을 몰아쉰 뒤에야, 나는 내 귀에 들려오던 목소리들이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변을 둘러보자 온통 어둠뿐이었다. 점점 크기를 불리며 나를 압박해오던 가족들은 그곳에 없었다.

나는 앞을 바라보았다.

방금 알렉산드로스가 날아가 떨어진 곳에서 무언가가 반짝였다.

여전히 허파가 불타는 것만 같았지만, 나는 그쪽을 향해 필사적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작고 투명한 보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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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잇!”

나는 부족한 숨을 삼키곤, 발에 체중을 실어 보석을 짓밟았다.

발아래에서 와작 하는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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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

새카만 벽이 부서지며 빛이 들어오는 것을 마지막으로, 나는 정신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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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황후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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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드셨군요!”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황궁에 있었다. 내 곁에는 케일럽과 시녀들, 비서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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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은 부쉈어. 대신관은?”

나는 다급히 그들에게 물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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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아악!”

절망적인 비명이 1층 로비를 가득 채웠다.

바로 대신관이었다. 그는 입을 쩍 벌린 채 신음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경련했다.

그의 목에는 긴 검이 꽂혀 있었다. 검붉은 피에 뒤덮인 검이 그의 목을 관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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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재생하지 않는 걸 보니, 로벨리아가 성공한 모양이군.”

그리고 그 검 손잡이를 쥔 알렉산드로스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의 금빛 눈에는 선연한 승리의 빛이 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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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과 현생을 이은 질긴 악연도 이걸로 끝이다, 대신관. 내가 지난 생에서 느꼈던 절망을 너 역시 느껴보도록 해라.”

콰드득! 살갗이 찢어지고 뼈가 부서지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알렉산드로스는 검 손잡이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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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어억…… 컥! 꺼억……!”

목이 꿰뚫렸기 때문인지 바람 새는 소리밖에 내지 못하던 대신관은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하더니…….

마치 녹아내린 액체가 다시 굳어지듯, 그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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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관의 본모습이다!”

기사들이 경악에 빠져 소리쳤다.

충격을 받을 만도 했다. 외신의 숭배자, 인간은커녕 이 세계의 존재조차 아니라고 하는 대신관은 이곳에 있는 모두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끔찍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갑충이나 갑각류를 닮은 관절이 있는 다리가 여섯 개 달려 있고, 다리와 몸통에는 길고 뻣뻣해 보이는 털이 돋아 있었다.

등은 온통 잘 익은 노란색 종기와 같은 것으로 뒤덮여 우툴두툴했으며, 머리가 있어야 할 곳에는 벌레 같은 촉수가 꿈틀거렸다. 촉수는 움직일 때마다 녹색의 기분 나쁜 점액질을 남겼다.

그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과학적, 마법적 지식과 거리가 멀었다.

그의 존재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 세계의 모든 생명체, 그리고 그 모든 걸 창조해낸 창조주에 대한 모독처럼 느껴졌다.

알렉산드로스는 촉수에 꽂혀 있던 검을 뽑았다. 그가 바닥을 향해 검을 튕기자, 흰 대리석 위로 녹색 점액질이 후두둑 떨어졌다.

대신관이었던 흉측한 괴물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최후의 몸부림을 치더니, 결국 축 늘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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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끔찍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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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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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대신관의 본모습이었다니…….”

기사와 시녀들이 한 마디씩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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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관이 쓰러졌다! 성기사들은 투항해라. 무기를 버리고 항복한다면 포로로서의 예를 갖춰 대하고, 목숨은 빼앗지 않겠다!”

노먼이 아직 남아 있는 성기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성기사들은 어쩔 수 없이 무기를 버리고 무릎 꿇었다. 그들은 기사들의 손에 연행되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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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렇게 되어버렸네, 황비.”

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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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했지, 악한 행동은 당장은 네게 이익이 되는 것 같아 보여도 결국 너를 파괴하고 말 거라고.”

내 시선 끝에는 아이샤가 있었다.

그녀는 더없이 창백한 얼굴로 벌벌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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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화, 화, 황후 폐하…….”

그녀가 가까스로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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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부디, 제발 자비를……. 화, 황후 폐하께선 자비로운 분이시잖아요. 부디 제게…… 딱 한 번만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네?”

두 손은 자신의 머리를 움켜쥔 채, 파리한 입술을 달싹여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목소리를 내뱉는 모습은 그 누구라도 동정심이 들 법했다.

그러나 그 누구에 나만은 예외였다.

나는 싸늘하디 싸늘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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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가 준 마지막 기회를, 네 양심의 소리를 져버리고 말았어. 황비의 몸으로 외신에 협력하여 나라를 흔들리게 한 죄, 중벌로 다스리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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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아……! 아아아……!”

아이샤는 안쓰러울 정도로 떨고 있었기에 난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설마 그녀가 내게 덮쳐들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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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아악!”

그녀는 갑자기 태도를 바꿔 히스테릭한 비명을 지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그녀가 하나 남은 손에 손톱을 세우는 모습을 보고도 나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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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너무 방심하고 말았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탓에 이런 실수를…….’

그때였다.

서걱! 차가운 금속성의 소리와 함께 인영이 내 눈앞을 가로막았다.

그 등은 온통 검었으나 피와 점액,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그 등이 그 무엇보다도 믿음직스럽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런 감상에 빠질 여유는 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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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악! 아아아아악, 내, 내 손! 내 손이이!”

정신 차리고 보니 아이샤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녀의 하나 남았던 손은 손목에서부터 잘려 나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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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감히.”

알렉산드로스는 믿을 수 없이 차가운 시선으로 아이샤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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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번은 당하지 않아, 황비.”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몹시 낮고 엄숙하게 울려서,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가 차마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의 위엄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시리도록 차가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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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같은 자에게 두 번의 기회 역시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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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아…… 흐아아, 아……. 내, 내 손……. 내 손…….”

아이샤의 귀에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피와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같은 말을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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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나는 거의 울먹이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제서야 그는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나를 그 눈에 담는 순간, 잔뜩 굳어 있던 그의 얼굴은 믿을 수 없이 부드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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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벨리아.”

매서웠던 그의 눈매가 휘었다. 너무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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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고생 많았어. 이제 다 끝났어, 로벨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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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나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는 한달음에 그에게 달려가서 안겼다.

그는 그 단단한 팔로 내 몸을 감고, 한 손으로는 몇 번이고 내 등을 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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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벨리아, 내 사랑스러운 아내……. 이런 고생을 그것도 나 없이 겪게 해서 정말로 미안해. 그대가 힘들었을 거라는 걸 알아. 마음껏 울고, 원망해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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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은 실크와 같이 부드러워서 나는 언제까지나 그의 품에 안겨 있고 싶었다.

그에게 안겨 있다는 사실이, 그가 나를 향해 웃어주며, 다정하게 위로해준다는 사실이 내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안심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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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말로 다 끝났구나.’

나는 몇 번이고 그 생각을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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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그와 함께 행복해질 일만 남은 거야.’

영원히 그러고 있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모든 일이 끝나고, 그를 다시 만나면 곧바로 하려고 했던 일이 있었다.

그것을 하기 위해 나는 울음이 그치자마자 그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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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최대한 진지하게 말하려 해보았지만, 히끅대는 흐느낌에 섞여 별로 진지한 느낌은 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알렉산드로스는 더없이 다정한 얼굴로, 세상에 중요한 일이라곤 이것 하나밖에 없는 듯한 태도로 나를 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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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무엇이든 듣고 싶군.”

그는 눈물에 젖어 내 옆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곤 말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몇 번이고 결심하고 다짐했지만…….

하지만 이것은 내 인생 최초의 고백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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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당신을 사랑해요.”

나는 필사적으로 말했다.

나의 이 모든 마음을 다 담기에는 너무나 짧은 말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해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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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당신을 사랑해요, 알렉산드로스. 당신이 사라진 동안 얼마나 가슴 졸이고 그리워했는지 몰라요. 그리고 이 말을 얼마나 하고 싶어 했는지 몰라요. 계속 당신의 곁에 있고 싶어요. 이 진심을 서로 나누고, 당신의 진짜 아내가 되고 싶어요. 이름뿐인 아내가 아닌, 진정으로 서로를 곁에 두고 반려하는……. 진짜 아내가.”

가까스로 생각했던 것을 다 내뱉은 나는 밭은 숨을 몰아쉬었다.

이건 도저히 내가 생각해둔 멋진 고백과는 거리가 멀었다.

울음이 멈추지 않아 훌쩍이면서, 미리 준비한 것이 아닌 즉석에서 나온 말로, 피와 먼지투성이의 로비 한복판에서의 고백이라니. 고백이 이토록 낭만과 거리가 멀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굳어진 얼굴로 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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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벨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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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흣!”

그때였다. 그의 입술이 아직 헐떡이고 있는 내 입술을 덮친 것은.

이미 그와 몇 번 입술을 겹쳐보았지만, 그가 이토록 평정을 잃었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그는 너무나 다급히 나를 탐했다. 마치 지금이 아니면 내가 사라져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내가 한순간에 사라질 신기루라도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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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알레, 으…… 음!”

당황한 나는 그를 불러보려 했지만, 그를 부르는 내 목소리에 더 흥분하기라도 한 듯이 그는 더더욱 뜨겁게 나를 갈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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