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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황제의 귀환 (137/151)


137. 황제의 귀환
2022.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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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관의 말에 로벨리아와 일행은 큰 충격을 받았으나, 충격받은 사람 중엔 의외의 인물도 있었다.

바로 아이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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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요? 대신관님, 그건 약속과 다르잖아요! 황궁은 원래 제게 주기로 한 대가 중 하나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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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뜻을 이어받아 계획을 성공시키는 것, 그리고 고작 궁전 나부랭이 하나 손에 넣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중합니까?!”

고함치는 대신관의 모습에 아이샤는 놀라 움찔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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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관이 화내는 모습은 처음이야. 내게 폭력을 휘두르더라도 감정의 동요는 절대 내비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그 낯선 모습은 아이샤의 뼛속까지 새겨진 대신관에 대한 두려움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기에 아이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대신관은 금방 본연의 태도를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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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이 다소 어긋났으니, 그에 따라 적절한 수정을 했을 뿐입니다. 제가 황비 전하와의 거래를 잊을 리가요. 황궁을 대가로 드릴 수 없게 되었으니, 그에 상응하는 것으로 값은 톡톡히 치르도록 하지요.”

마치 방금의 그것은 한순간의 실수일 뿐이었다는 듯. 그렇게 말하는 대신관의 태도는 온화했으며 목소리는 달콤했다.

하지만 아이샤는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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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에게 무언가를 바치는 일은 즉흥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오랜 준비가 필요한 일이지.’

그녀의 지식을 뒷받침하듯, 황궁의 온 바닥과 벽에 숨겨져 있던 문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하얀 빛으로 빛나는 문양은 대단히 불길하고 음침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것은 성국이 오랜 시간에 걸쳐 준비한, 황궁을 외신에게 바치기 위한 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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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관은 처음부터 황궁을 제물로 바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어.’

아이샤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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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과연 그는 나와의 약속을 지킬 생각이 있었던 것일까? 약속했던 대가를 주긴커녕, 오히려 나까지 외신에게 바칠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아이샤가 그런 의심을 품는 동안, 로벨리아와 일행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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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폐하의 몸이 흐려지고 있어요!”

케일럽의 말대로였다.

로벨리아와 일행들은 그 몸이 조금씩 투명해지고 있었다. 반외신 결계마법으로 약간 더 버티기는 했지만, 그것도 시간끌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통째로 외신의 세계로 넘어가면서, 로벨리아는 전신을 점령하는 끔찍한 사기(邪氣)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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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분은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어.’

로벨리아는 이를 악물고 버텨내려 하였으나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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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정말……. 신성은 물론 인간의 존엄마저 모독당하는 듯한 기분이야. 외신이란 건 이렇게 추악하고 악의로 가득한 것이었구나.’

로벨리아뿐만 아니라 기사들까지 모두가 같은 것을 느꼈다.

그 치명적인 감정과 맞서 싸우는 것도 엄청난 일이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대신관을 공격할 수 없었다. 기사들 중에는 이 지독한 사기를 버티지 못하고 미쳐 발광하는 이조차 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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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지?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끔찍한 감각과 싸우면서도 필사적으로 방법을 찾던 로벨리아의 시야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바로 아이샤였다. 로벨리아는 아이샤가 대신관에 대한 의심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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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샤! 내 말이 들리겠지? 내 말을 들어 봐!”

로벨리아가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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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대신관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대신관이 황궁을 외신에게 바치기 위해 오랜 시간 준비해왔다는 것은 너도 깨달았겠지? 그런데 대신관을 믿고 그에게 협력할 수 있겠어?”

물론 로벨리아는 아이샤를 결코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좋아하긴커녕, 용서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로벨리아는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샤가 저지른 수많은 죄악들을.

특히 그녀는 알렉산드로스를 어쩌면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곳으로 보낸 사람이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치가 떨려서, 그녀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끔찍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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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쩔 수 없어. 이 판세를 역전시키려면, 단 한 사람의 도움이라도 더 필요해!’

그것이 로벨리아의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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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아이샤는 대신관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사람이지. 대신관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을 그녀가 우리에게 협력한다면 엄청난 도움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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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관은 비열하고 계산적인 자야. 너조차 대신관에게 속고 있었던 것일지도 몰라. 그는 처음부터 네게 대가를 지불할 생각이 없었던 거야! 그러니 아이샤, 내 말을 들어. 우리와 힘을 합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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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됩니다. 저런 악녀와 협력하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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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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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황후 폐하께 거역하는 자가 누구냐? 폐하를 믿지 못하는 것이냐?”

로벨리아의 말에 기사 몇 명이 반발했으나, 노먼이 매서운 시선을 쏘아 보내자 곧 모두들 잠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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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샤! 네게 인간으로서의 양심과 정의가, 성녀로서의 긍지가 남아 있다면 부디 내 말에 귀 기울여 줘. 이건 널 위한 선택이기도 해! 인간이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은 결국 그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야. 선한 행동은 너를 너답게 있을 수 있게 하고, 악한 행동은 당장의 이득은 가져다주어도 결국엔 너라는 인간을 파괴하고 말 테니까!”

한편, 로벨리아의 제안은 아이샤에게 굉장히 뜻밖으로 다가왔다.

최악의 적인 그녀가 이런 상황에서 자신에게 협력하자는 말을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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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관과 달리 로벨리아는 약속을 저버릴 만한 성격은 아니지. 만일 내가 지금이라도 그녀의 편에 선다면, 로벨리아는 틀림없이 내가 죄를 벗는 것을 도와줄 거야.’

황후궁이 사라지기 직전에 고민하던 것들이 생각났다. 그때 자신은 계획이 실패해 죗값을 받을까 봐 두려워했다.

그러다 결국은 대신관을 배반하고 로벨리아와 알렉산드로스에게 붙기로 결심하기까지 했지 않았던가.

아이샤의 동공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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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랑 똑같아. 로벨리아와 나의 양심을 믿고 대신관에게 맞서느냐? 아니면 양심을 져버리고 대신관을 계속 믿어보느냐?’

그녀는 대신관과 흐릿해진 로벨리아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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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는…….”

결국 아이샤는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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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 말을 듣지 않겠어, 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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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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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너에 대해 잘 알아. 만일 내가 네 편에 서서 대신관과 맞선다 해도, 모든 일이 해결된 뒤에 나는 참작을 받아도 목숨만 가까스로 부지한 죄인이 될 뿐이야.”

그것은 사실이었다.

로벨리아는 아이샤가 처벌받지 않도록 도와줄 수는 있어도, 아이샤의 죄를 숨기거나 그녀에게 상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러기에 아이샤는 너무나 많은 죄를 지었다. 그녀는 몇 번이나 황후를 암살하려 하고, 황제를 실종되게 하였으며, 황궁을 외부 세력의 손에 넘겨 수많은 궁인들을 고통받게 하였으며, 무수한 목숨을 잃게 했다.

한 번 협력하여 로벨리아와 그 일행을 구해준다 해도 아이샤의 죄악은 그 정도로 되돌릴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공식적인 처벌을 면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특별대우라고 할 수 있었다.

결국 아이샤는 처벌만 가까스로 피할 뿐, 만인에게 비난받을 것이며 모든 것을 잃고 곤궁하게 살아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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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로벨리아는 이런 상황에서도 거짓말은 할 수 없었다. 대신관과 달리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큰 상을 주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해주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아이샤의 예상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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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 삶은 필요 없어. 애초에 가진 것 없는 삶을 피하기 위해 그 모든 일들을 감수하고 이 자리까지 온 내가 왜 그런 길을 선택하겠어? 양심을 좇다가 가진 것 없는 죄인이 될 바에는, 차라리 적은 확률로 부와 권력을 손에 넣어 부유하게 살 수 있는 미래를 택하겠어!”

그렇게 말하는 아이샤의 얼굴에는, 그 누구도 단 한 번도 본 적 없을 정도의 탐욕과 광기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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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관님! 저는 당신을, 아니, 당신이 제게 주실 찬란한 미래를 믿어요. 이제 저는 당신을 의심하거나 배신하지 않겠어요. 왜냐하면, 제가 가지고 싶은 것들을 주실 분은 이 세상에 당신뿐이니까!”

아이샤의 말에 대신관은 흡족한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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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보았습니까? 인간의 탐욕은 불확실한 미래마저 기대하게 만들고, 매달리게 하고, 집착하게 만들죠. 그뿐만 아니라 그런 자신을 합리화해 당연한 것처럼 만들어, 스스로는 결코 이상한 점을 눈치챌 수 없어요. 결국 그렇게 파멸한 인간들의 수는 지옥을 발 디딜 틈도 없게 만들 정도인데도 불구하고.”

대신관은 아이샤를 향해 유유히 걸어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치 귀여운 애완동물이라도 되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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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그대들, 인간이라는 종족의 본질이랍니다. 참으로 사랑스럽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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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끔찍한 모습에 노먼과 케일럽이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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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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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희망조차 사라졌어요. 이제 정말로 끝인 걸까요…….”

로벨리아는 입을 꾹 다물고 대신관을 올곧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의미가 없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조차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 모습이 투명하게 사라지려 하는 그때…….

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그들이 있는 1층 홀에 빛이 비쳐 들어왔다.

새벽의 붉은 석양빛이 홀을 물들이자, 당연하게도 모두가 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들의 시선 끝에 있는 자는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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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

로벨리아는 너무나 놀라고 감격하여, 꺼질 듯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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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그랬다. 문을 열고 나타난 자는 바로 알렉산드로스였다!

말을 전속력으로 몰고 온 듯 그의 앞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옷매무새도 온통 엉망이었으나…….

붉은 석양 아래에서 형형하게 빛나는 두 눈만큼은 진정한 황궁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려주고 있는 것 같았다.

콰앙!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검격이 대신관을 향해 내리꽂혔다.

제국 최고, 아니 대륙 제일의 검사라고 불리는 그의 검술은 대신관조차 피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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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윽!”

대신관의 상체에 긴 대각선의 붉은 선이 생겨났다. 틀림없이 중상이었다.

하나 놀랍게도, 대신관의 상처는 모두가 보는 눈앞에서 순식간에 나았다. 곧 상처는 옷을 물들인 혈흔만을 남기고 깨끗하게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의 공격이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공격은 대신관의 주의를 완전히 흐트러뜨렸고, 덕분에 황궁을 외신에게 보내기 위한 술법이 풀렸다.

거의 다 투명해져 사라지기 직전이었던 이들은 순식간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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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랄, 황제! 대체 어떻게……!”

대신관의 만면에 경악이 얼룩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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