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4. 대신관 암살 작전 (134/151)


134. 대신관 암살 작전
2022.04.14.


그 짧은 시간 안에 난생처음 배운 외신의 힘의 메커니즘을 터득하고, 심지어 응용하여 마법 주문까지 고안했다니!

16549700050638.jpg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더니 맞긴 맞구나. 케일럽은 정말 대단한 아이야.’

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감명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의 제안에 긍정적인 답변을 해줄 수 없었다.

16549700050638.jpg

“유감이지만 케일럽, 나는 너의 작전에 동의할 수가 없구나.”

16549700050647.jpg

“어, 어째서인가요?”

16549700050638.jpg

“그건 너무나 위험한 작전이야. 오로지 너 한 명만을 적진 한복판에 침투 시켜, 적의 수장을 암살하게 하다니. 심지어 그 작전대로라면 만약의 경우 우리가 도와주러 갈 수도 없지 않겠니.”

16549700050647.jpg

“하지만, 폐하……. 부디 저를 한 번만 믿어주세요. 저는 7서클에 거의 다 도달했어요. 게다가 공작님으로부터 외신의 힘에 대항하는 법을 배웠으니, 지금의 저라면 대신관을 쓰러뜨릴 수 있을 거예요. 부디 허락해주세요.”

16549700050638.jpg

“나는 너를 믿지 못해서 이러는 것이 아니야, 케일럽. 나는 그 누구보다도 너를 믿는단다.”

나는 진지한 얼굴로 그의 어깨를 붙잡고 눈을 맞추었다.

16549700050638.jpg

“나는 너의 뛰어난 능력과 노력, 용기, 신의를 믿는단다. 하지만 이리도 완벽한 너에게도 부족한 게 하나 있지. 그건 바로 경험이야.”

16549700050647.jpg

“경험이요?”

16549700050638.jpg

“그래. 이러니저러니 해도 너는 아직 17살이고, 뛰어난 재능에 비해 실전 경험은 많이 부족한 상태야. 침투와 암살은 제일 위험한 임무 중 하나고, 마법도 마법이지만 연륜과 경험이 굉장히 많이 필요한 일이란다.”

16549700050647.jpg

“그렇지만……. 한나절째 교착상태인데, 아무런 돌파 방법도 보이지 않잖아요. 약간의 위험부담이 있더라도 뭐라도 시도해보는 수밖에 없어요.”

16549700050638.jpg

“아직 한나절밖에 지나지 않았잖니. 나를 믿어줘, 케일럽. 머리를 맞대고 서로 협동한다면, 우리는 결국 방법을 찾아낼 거야.”

케일럽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나는 그런 그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16549700050638.jpg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너를 믿는단다. 그리고 친동생만큼이나 아끼고 있고. 그런 너를 도저히 그렇게 위험한 곳에 보낼 수가 없구나.”

16549700050647.jpg

“하지만…….”

케일럽은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슬픈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리던 그가 고개를 들었다.

16549700050647.jpg

“그럼 폐하, 하나만 약속해주세요. 만약 내일도 교착상태가 이어지고 해결할 방도를 찾지 못한다면, 그때는 이 작전을 실행하게 해주세요.”

16549700050638.jpg

“그래, 그때는 네 작전을 긍정적으로 고려해보마. 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 내가 반드시 방도를 찾아낼게.”

그제서야 케일럽은 물러났다. 여전히 시무룩해 보이기는 했으나, 내 말에 납득한 듯하여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6549700050638.jpg

‘내가 부족해서 케일럽이 그런 위험한 작전을 생각해낼 정도로 걱정을 시켰구나. 나도 정신 바짝 차리고 집중해서 이번 일의 해결 방법을 찾아내어야지.’

하지만 그때의 나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여리고, 순진하고, 내 말이라면 반드시 따르던 케일럽이 자기만의 꿍꿍이를 가지고 있을 줄은.

1654970008012.jpg

 

***


16549700050647.jpg

‘한나절, 아니 한나절하고 하루는 너무 길어. 기사들이 지치고도 남을 시간이지.’

회의실을 나서며 케일럽은 생각했다.

16549700050647.jpg

‘게다가 숫자는 저쪽이 훨씬 많으니, 교대를 하기 어려운 우리 쪽이 먼저 지칠 수밖에 없어. 그러면 접전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도 시간문제야.’

케일럽은 절뚝이는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그는 지하 2층 식품 보관실로 향하고 있었다.

16549700050647.jpg

‘나는 황후 폐하를 그 누구보다 믿고, 존경하고 사모해. 하지만 이번만큼은 폐하께서 판단을 잘못하셨다고 생각해. 내 마법은 폐하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고, 경험도…… 이만하면 그리 부족하진 않아.’

다행히 식품 보관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케일럽은 서늘한 눈으로 뚫린 벽을 들여다보았다.

비밀통로에 있을 때, 그들은 식품 보관실로 이어진 두꺼운 벽을 뚫어 지하층에 침투할 수 있었다.

16549700050647.jpg

‘이 길을 따라가면 지난번에 우리가 들어갔던 비밀통로의 입구가 나오지. 안쪽에서 여는 법은 폐하께서 보여주신 바깥에서 여는 법을 그대로 반대로 하면 돼. 이 부분은 내가 정확히 기억하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어.’

케일럽은 작은 소리로 마법 주문을 외웠다.

그는 순식간에 키가 크고 체격이 우람한 성기사의 모습으로 변했다. 폴리모프 마법은 일종의 환시(幻視)이기 때문에 다리를 저는 것도 숨길 수 있었다.

16549700050647.jpg

‘외신의 힘에 의한 탐지 능력을 방해할 수 있는 시간은 한 번에 15분 정도.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해. 비밀통로에서 나와서 대신관을 찾아내 처치하고 몸을 숨길 때까지만 유지하면 되니까.’

그렇게 생각한 케일럽은 부서진 벽을 통해 들어섰다.

16549700050647.jpg

‘모두 합쳐서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을 거야. 잘하면 폐하께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고 끝낼 수 있어.’

그는 비밀통로의 길을 따라 이동했다. 비밀통로의 입구가 있는, 중앙궁 서재를 향해서.

***

비밀통로의 입구에 다가서자 외부의 소리가 들려왔다.

16549700108423.jpg

“아직도 비밀통로를 찾지 못했다고? 대체 너희들이 하는 일이 뭐야? 밥 축내는 것이 너희 일이냐?”

16549700108423.jpg

“죄송합니다, 대장. 하지만 이제 와서 꼭 비밀통로의 입구를 찾아야 할까요? 어차피 황후 일행은 지하에서 1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에 죽치고 있다고 들었고 비밀통로를 이용할 생각은 없는 것 같은데요…….”

16549700108423.jpg

“만에 하나를 위한 거다! 불평하지 말고 제대로 샅샅이 뒤져라. 감옥을 지키던 녀석들도 너희처럼 불평 많은 놈들이었지. 방심해서 일을 제대로 안 하다가 모두 신의 곁으로 가버리지 않았느냐!”

숫자도 세 명밖에 없었고,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외신의 기운 역시 그리 강하지 않았다. 케일럽에게는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케일럽은 로벨리아가 문을 열었던 방법을 떠올려 전부 반대로 실행했다.

곧 비밀통로의 문이 열렸고, 케일럽의 눈에 서재의 풍경이 보였다.

16549700108423.jpg

“어? 너는 누구냐?”

16549700108423.jpg

“어디서 나온 거지?”

서재를 뒤지던 성기사들이 갑자기 나타난 그를 미심쩍게 여기며 공격하려 했으나, 케일럽이 더 빨랐다.

성기사들을 순식간에 쓰러뜨리고, 비밀통로 입구도 눈에 띄지 않게 원래대로 해둔 뒤, 케일럽은 서재에서 나왔다.

16549700050647.jpg

‘대신관은 가장 안전한 곳에 있겠지. 황후 폐하께서 지하에 계신 지금이라면, 가장 높은 층인 6층이려나.’

그렇게 생각하며 계단을 오르고 있자니 곧 멀리서부터 대신관의 기운이 느껴졌다.

강대하고, 지독한 그 기운. 인간의 존엄은커녕 신성조차 모독하는 듯한 사악함. 흰빛을 띠고 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음험하며 끔찍한…….

그 기운을 느끼는 순간 케일럽은 등골을 타고 한기가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16549700050647.jpg

‘정말 기분 나쁜 기운이야. 살면서 그렇게 사악한 존재는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어.’

팔에 닭살이 돋고, 손안에 땀이 고였다.

케일럽은 저도 모르게 패배의 기억을 떠올렸다. 너무나 손쉽게 패배당했을 때의 그 절망.

대신관의 힘으로 만들어진 창살에 갇혔을 때, 케일럽은 그 특유의 끔찍한 기운에 전신을 꿰뚫리는 듯했다. 그런 기분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16549700050647.jpg

‘안 돼, 생각하지 말자.’

케일럽은 서둘러 고개를 흔들고 눈에 힘을 주었다.

16549700050647.jpg

‘정신 차려야 해. 그래야 15분 안에 대신관을 처치하고 돌아갈 수 있어.’

멀리서도 느껴지는 그 뚜렷한 기운 때문에 대신관을 찾는 데에는 시간이 거의 들지 않을 거라는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16549700050647.jpg

‘뭐야? 갑자기 이동하기 시작했어!’

6층에 있던 대신관이 계단을 통해 내려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케일럽은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 멈추어 섰다.

점점 더 가까워지던 대신관의 기운은 마침내 지척까지 다가왔다.

케일럽이 서 있는 계단 바로 위에, 대신관이 있었다.

16549700050647.jpg

‘뭐야, 알아서 죽으러 와줬잖아.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차라리 잘됐어.’

대신관은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케일럽은 그에게 경례를 하곤 가던 길을 계속 올라갔다. 수상해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16549700050647.jpg

‘예상보다 너무 일찍 만난 탓에, 아직 공격마법의 술식이 다 준비되지 않았어. 근처에 있다가 술식이 완전히 완성되면 바로 숨통을 끊어야지.’

대신관과 케일럽이 서로를 스쳐 지나가던 그때였다.

16549700137859.jpg

“거기, 잠깐 멈추세요.”

케일럽은 심장이 발밑까지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16549700050647.jpg

“저 말입니까?”

16549700137859.jpg

“이곳에 그대 말고 사람이 또 있습니까.”

대신관은 들고 있던 두꺼운 책을 케일럽에게 내밀었다. 케일럽은 엉겁결에 그것을 받아들었다.

16549700137859.jpg

“시간이 괜찮다면 저와 함께 가시죠.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케일럽은 예상 밖의 전개에 순간 당황스러웠으나 곧 이것이 자신에게는 유리한 일임을 깨달았다.

16549700050647.jpg

‘아직 탐지 방해 마법은 한참 남았고, 공격 마법의 술식은 거의 다 완성되었어. 짐을 들어주는 척하고 따라가다가 공격 마법이 완성되는 즉시 숨통을 끊어주면 되겠군.’

그런 꿍꿍이를 숨긴 채 케일럽은 말했다.

16549700050647.jpg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곧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대신관은 망설임 없이 그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16549700050647.jpg

‘내 계산에 따르면, 이 속도라면 1층 바닥을 밟는 순간 공격 마법이 완성될 거야. 대신관이 고개를 뻣뻣이 들고 살아 있을 수 있는 것도 그때까지야.’

계단을 내려가는 그 짧은 순간에도 케일럽의 머리는 팽팽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1층 바닥까지 계단을 고작 일곱 개 남겨두고 있던 때였다.

16549700137859.jpg

“걸음이 느린 편이군요.”

16549700050647.jpg

“예?”

대신관을 돌아본 케일럽은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늘 그렇듯 입가에 걸친 온화한 미소가, 비웃음으로 변한 것 같다고 생각한 그 순간…….

16549700165724.jpg

 

16549700050647.jpg

“!”

폴리모프 마법으로 숨기고 있었으나, 케일럽은 한쪽 다리를 끄는 채로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두 다리 모두 자유롭게 운용하는 사람에 비해 전신의 균형이 흐트러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성한 다리 앞에 무언가가 걸렸다. 전신의 체중을 싣고 있던 다리에 무언가가 걸리니, 케일럽은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말았다.

차라리 외신의 힘으로 공격해왔다면 미리 준비해둔 방어 술식이 작동되었을 텐데. 설마 대신관이 자신에게 ‘발을 걸’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케일럽이 비틀거린 건 아주 잠깐이었다. 그는 마법의 힘으로 몸의 균형을 찾아 넘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을 대신관은 놓치지 않았다.

16549700137859.jpg

“이상한 일이군요. 두 다리 모두 멀쩡한 장사가 그저 살짝 닿은 것만으로도 몸의 균형을 잃다니.”

대신관이 비웃듯 말했다.

16549700137859.jpg

“아니면 혹시…… 멀쩡해 보이는 겉껍데기로 다리 병신인 몸뚱이를 숨기고 있는 건 아닙니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