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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회귀자의 권능 (131/151)


131. 회귀자의 권능
2022.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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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됐든 이 문제에 대해서는 로벨리아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어보아야겠군.’

알렉산드로스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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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분명하게 말할 것이다.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고. 나는 그녀를 원망하고 있지 않다고. 그녀에 대한 나의 마음은 이런 일로 흔들리지 않는다고.’

만일 그녀가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면,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이야기해줄 것이었다.

그가 그녀에게 믿음을 줄 수 있을 때까지. 그녀가 그의 말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믿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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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 신경 쓰이는 건.’

단단한 결심을 굳힌 뒤, 알렉산드로스는 다시 한번 일기를 뒤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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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초반에 나온 정보이다. 바로, 내가 있는 이 세계가 저쪽의 세계에서는 소설이었다는 것.’

일기에 따르면, 소설 속의 자신은 아이샤를 사랑하게 되어 로벨리아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했다.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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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내가 알고 있는 과거의 나라면, 황비를 진정으로 사랑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진중한 얼굴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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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그녀가 이용가치가 높다고 여겨 곁에 두고자 했을 뿐이겠지.’

예전 계획의 따르면 대신관의 음모를 막기 위해 성녀인 아이샤의 협조가 꼭 필요했다.

그러나 계획에 없던 사건이 생겼다.

바로 그가 로벨리아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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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계획을 전면 수정하고, 황비의 협조를 받지 않고 여기까지 오게 되긴 했지만……. 만일 내가 로벨리아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협력의 대상으로 황비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리고 황비 위주로 계획을 짜서 그녀를 곁에 두었다면, 충분히 내가 황비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겠지.’

게다가, 이 목적을 위해 모두를 체스말로 이용하려 했던 과거의 자신이라면 아이샤의 협력을 얻기 위해 그녀를 사랑하는 척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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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 신경 쓰이는 것은……. 이 일기의 내용에 따르면, 이 세계의 존재는 그저 한 편의 소설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것.’

제국과 성국, 그 외 알렉산드로스가 알고 있는 모든 국가와 대륙이 존재하는 세계.

대신관이 잔학한 음모로 손에 넣어 통째로 외신에게 넘기려고 하는 이 세계.

알렉산드로스에게 ‘세계’에 대해 사적인 애착은 없었다.

그래도 그가 나고 자란 곳이었다. 대신관에게 넘기지 않기 위해 사활을 걸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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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세계가 한낱 소설에 불과했다면, 이제껏 내가 했던 행동들은 모두 종이 위 활자의 발버둥에 지나지 않았겠군.’

알렉산드로스는 자조적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그가 손에 든 일기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하얀 빛은 대신관이나 아이샤가 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고귀함과 신성함을 품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예리한 직감에도, 결코 위험한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는 눈이 부셔 눈을 감았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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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났군요. 얽히고 얽힌 운명의 실타래를 풀어낼 열쇠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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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는 눈을 떴다.

그러나 그의 눈에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상대는 보이지 않았다. 이 기묘한 음성은 마치 그의 머릿속에 직접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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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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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모든 이야기의 첫 구절이자 마침표. 이 세계의 운명을 다른 세계에 전달한 자. 그대들의 종교가 숭배하는 자. 그대들이 신이라고 부르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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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일기를 매개체로 절대자와 접촉하게 된 것 같군.’

신의 자상한 음성을 들으면서도 알렉산드로스의 두뇌는 팽팽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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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기에 따르면 로벨리아는 성녀와 마찬가지의 존재. 이 일기는 신과 가장 가까운 자의 물건, 즉 성물이다. 게다가 이곳은 그 어떤 세계도 아니며 그 어떤 세계의 질서에도 간섭받지 않는 곳이지. 이런 곳에서 이런 물건을 가지고 있다면, 신과 접촉할 수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신의 앞에서 신중하게 질문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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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벨리아가 말한 ‘소설’은 그녀가 오지 않았을 때의 이 세계의 미래를 담은 내용인가? 그 세계의 끝은 어떻게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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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운명 속에서 그대는 잘못된 선택을 하여 대신관의 음모를 막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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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세계는 외신의 손안에서 멸망했겠군.”

신은 동의를 표하듯이 잠시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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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다른 세계에서 읽은 소설, 그것은 이 세계의 절망적인 운명을 담은 역사서이자 예언서입니다. 다른 세계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 의해 소설로 알려졌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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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세계가 소설에 불과한 것도, 내 행동이 한낱 활자의 발버둥인 것도 아니었군.’

알렉산드로스는 내심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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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의 최후를 지켜본 직후, 저는 운명의 수레바퀴를 되감고자 했습니다. 세계의 시간을 모든 일이 일어나기 이전으로 되돌린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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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세계가 회귀했단 말인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텐데. 회귀 전의 기억을 가진 자가 없으니, 어차피 모두가 같은 행동을 반복할 뿐이다. ……아.”

날카롭게 반박하던 알렉산드로스는 순간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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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로벨리아가 이 세계로 오게 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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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로벨리아, 이전의 세계에서는 임정아. 그녀야말로 이 세계의 비참한 운명을 뒤바꿀 열쇠.〉

신이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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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대신관은 외부 세계의 존재이기에 이 세계의 법칙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회귀 전의 기억을 잊지 않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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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빈틈없는 행동은 그 덕분이었군. 이전의 내 행동과 생각을 대부분 알고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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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역시 저의 행동에 대처하고자 했습니다.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성녀를 살해하고, 충실한 꼭두각시가 되어줄 가짜 성녀를 데려온 것이지요.〉

대신관의 잔학한 범죄 행위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 저절로 미간에 주름이 졌다. 그런 그에게, 가슴속을 깊이 파고드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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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이 세계의 운명을 바꿔줄 열쇠의 반쪽. 이 세계의 정해진 운명을 알게 된 그대에게 회귀자의 권능을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회귀 전의 그대가 가지고 있던 기억입니다. 후회와 절망감으로 얼룩진 패배의 기억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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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잘됐군. 기쁘게 받아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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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제가 모든 이에게서 회귀 전의 기억을 앗아간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과거의 선택에 대한 후회, 완전한 패배, 멸망의 기억은 인간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권능을 가진 그대는 과거와는 결코 같아질 수 없을 것입니다.〉

신은 신중할 것을 종용했다. 아마 창조주의 창조물에 대한 사랑에서 우러난 조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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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그대는 이것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알렉산드로스의 눈 위로 눈꺼풀이 덮였다가 다시 올라갔다.

무(無)와 같은 어둠 속에서 오직 그의 금빛 눈동자만이 빛을 발했다.

죽음도, 외우주의 신도 결코 꺾을 수 없을 강인한 의지의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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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날의 나는 맹세했다. 만일 내가 한순간이라도 대의보다 내 목숨을 아깝게 여긴다면, 나는 영원히 지옥 불에서 타오를 것이라고. 그리고 이제껏 단 한 번도 그 맹세를 어긴 적이 없다. 대신관의 계획에 다가서면 다가갈수록 두려움이 커질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도망치고 싶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한 맹세였지만 기우에 불과했지. 그 계획에 가까워질수록 내가 이 일을 위해 태어났다는 확신만 강해지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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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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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조차 지금 이 순간만큼이나 더 강한 의지를 느낀 적은 없다. 대신관, 그 자가 노리는 세계는 로벨리아가 있는 세계다. 나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이 세계를 지킬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나는 극독이라도 기꺼이 삼키겠다.”

신은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소중한 이를 지키기 위해 가장 위험한 곳에 뛰어들겠다는 아이의 말에, 어버이는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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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의지는 잘 알겠습니다. 그럼…….〉

마침내 신이 침묵을 깨었고, 알렉산드로스에게 권능을 부여했다.

신이 경고했듯이,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간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지식을 손에 넣는 일과 다름없었다.

알렉산드로스조차 순간 사경을 헤맬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는 결국 버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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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부탁합니다. 부디 대신관의 음모를 막고, 이 세계를 외신의 손에서 지켜주세요.〉

신의 음성은 차분했으나, 그 표면 아래에는 자신의 피조물에 대한 사랑과 간절한 진심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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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남은 힘으로 그대를 원래의 세계로 되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개입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나머지는, 운명을 바꿀 두 조각의 열쇠인 그대들의 몫입니다.〉

그 말과 함께 눈앞의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알렉산드로스가 눈을 떴을 때, 그는 수도 옆 도시에 있었다. 아직 대신관의 마수가 뻗치지 않은 곳이었다.

***

한편 그 시각.

새하얀 빛과 함께 눈 깜짝할 사이에 남자의 목이 잘려나갔다.

잘린 머리는 바닥을 굴렀고, 몸 역시 묵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로벨리아 일행이 탈옥했다는 소식을 가져온 성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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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이익!”

대신관과 아이샤의 시중을 들던 궁인들이 창백한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개중에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는 자들도 있었다.

아이샤는 얼굴에서 조금 핏기가 사라졌을 뿐, 이런 풍경이 익숙하다는 듯이 다시 차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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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래서 성공만을 반복해서는 안 되는 모양입니다. 어리석은 이들은 이리도 쉽게 안주하고야 마니.”

대신관은 손수건에 손을 닦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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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본보기가 필요한 법이지요. 안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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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예, 예…….”

그의 말에 궁인들이 새파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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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감옥을 담당하던 성기사들을 전부 처형해, 그 시신을 중앙궁 현관에 나란히 걸어놓도록 하세요. 궁 내의 모두가 쉽게 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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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지시를 받은 궁인들이 나간 뒤, 대신관이 아이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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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황비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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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임무는 모두 끝난 것이 아니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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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는데 다시 시작되었군요. 황제와 황후, 두 사람 모두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그대의 임무였으니까요.”

혀에 기름칠이라도 한 듯한 대신관의 그럴싸한 말솜씨에 아이샤는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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