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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또 다른 빙의자 (111/151)

111. 또 다른 빙의자2022.01.23.

대신관은 로벨리아가 빙의자임을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한순간에 성격과 취향이 완전히 바뀐 것도, 다른 세계의 국가, 대한민국이라는 곳의 요리를 알고 있었던 것도 바로 그 하나의 사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심증뿐으로, 물증은 어디에도 없었다.

16549695231136.jpg‘원래는 그녀가 빙의자인지 아닌지 최대한 떠보고, 그녀가 빙의자라는 사실을 자백하면 나의 계획에 끌어들이려고 하였지만…….’

그녀의 경계심이 강하니 차근차근 그 경계심을 허물어 파고든다. 멀리까지 내다본 계획이었지만, 변수가 생겼다. 바로 황후와 황제가 가까워지는 속도가 너무나 빠르다는 것이었다.

16549695231136.jpg‘황후가 빙의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녀에게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 주겠다고 설득할 계획이었는데……. 이대로라면 황후가 황제에게 완전히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렇게 되면 그녀는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이 세계에 남는 것을 선택하겠지.’

그렇게 되면 오래 준비해오고 그리도 공을 들였던 계획은 어차피 물거품이 되고 말리라.

16549695231136.jpg‘어차피 물거품이 될 바에는, 내가 먼저 계획을 망쳐버리는 수밖에 없겠군.’

그렇게 생각한 대신관은 서둘러 귀빈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몇 명의 사람을 통해 편지를 보냈다. 마지막 편지를 가진 파발꾼이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본 대신관이 읊조렸다.

16549695231136.jpg“좋은 꿈 꾸시길, 황후 폐하. 그것이 그대의 마지막 행복한 꿈이 될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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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렉산드로스와 야시장 데이트를 한지 나흘 뒤, 오후 업무를 보고 있던 나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16549695231158.jpg“그게 정말이니? 빙의자라고?”

16549695231161.jpg“네, 황후 폐하. 빙의자…… 라는 존재를 자칭하는 여성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시녀가 말했다.

16549695231161.jpg“게다가 그 여성의 말로는 자신 외에도 빙의자라는 존재가 여럿 있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그, 그중 제일 유명한 인물이…… 바로…….”

힘겹게 말을 쥐어 짜내는 시녀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가고, 눈에는 눈물이 고여가는 것을 본 로벨리아는 한숨을 쉬며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막았다.

16549695231158.jpg“안 들어도 알겠어. 나로구나.”

16549695231161.jpg“…….”

시녀는 코를 훌쩍이며 대답하지 않았다. 무언은 수긍의 뜻이라고 생각하며, 로벨리아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16549695231158.jpg‘올 것이 왔구나.’

대신관이 빙의자에 대한 예언기록을 보여줄 때부터, 이런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16549695231158.jpg‘하지만, 그가 나와 하고 싶은 거래가 있는 것으로 보여서 빠른 시일 내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는 이른걸.’

예상 밖의 일이었기에 나는 조금 놀랐다.

16549695231158.jpg‘괜찮아.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대비해서 미리 대응책을 준비해 두기까지 했잖아. 나는 충분히 이겨낼 수 있어.’

그렇게 마음을 굳게 먹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16549695231158.jpg“직접 찾아가 보고 싶구나. 그 여인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는 곳이 어디니?”

16549695231161.jpg“라이트 자작저라고 합니다.”

나는 서둘러 준비를 해서 마차를 타고 그곳으로 떠났다. 되도록 기자회견이 끝나기 전에 도착하는 편이 좋았으니까. *** 탐스러운 꿀빛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이었다. 그녀는 보기 드물 정도의 미인으로, 얼굴에 걸친 근심이 아니었다면 어딜 가더라도 시선의 중심이 될 것 같았다. 그녀는 특이하게도 목까지 완전히 가리는 디자인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목을 시원하게 드러내는 드레스가 유행인 요즘의 수도에서는 흔치 않은 디자인이었다.

16549695231161.jpg“이것으로 이만 저의 기자회견을 마치려고 합니다. 혹시 질문 있으신 분 계십니까?”

떨리는 목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기자석의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16549695231161.jpg“라이트 자작부인, 질문이 있습니다.”

16549695231161.jpg“네, 무엇인가요?”

16549695231161.jpg“라이트 자작부인께서 말씀하신 ‘빙의자’라는 개념과, 본인이 빙의자인 근거는 알겠습니다. 자작부인께서는 다른 세계의 ‘대한민국’이라는 곳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정보를 몇 개나 근거로 드셨으니까요. 그러한 것은 성녀, 아니면 말씀하신 ‘빙의자’가 아니면 알 수 없지요.”

한 기자가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말하며 안경을 치켜올렸다.

16549695231161.jpg“하나 황후 폐하께서도 빙의자라고 주장하시는 것의 근거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하지만 황후 폐하께서 빙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신 일의 경위를 더 자세히 설명해주셨으면 합니다.”

16549695231161.jpg“맞습니다. 아무래도 황족에 대한 것은 다소…… 예민한 문제이니까요. 정확한 근거가 없으면 기사에 싣기 어렵습니다.”

기자들이 맞아, 맞아 소리를 내며 동조했다. 라이트 자작부인은 감정을 읽어내기 어려운 눈으로 그들을 내려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16549695231161.jpg“좋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할 테니, 모두 잘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이제껏 숨겨져 있던 ‘빙의자’라는 존재에 대한 정보는 분명 놀라운 것이었지만……. 라이트 자작부인은 그렇게 유명하거나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다. 이제껏 귀족 사회에서 존재감이 없었던 그녀보다는, 많은 국민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으며 언제나 이슈의 중심에 서 있던 황후가 빙의자라는 사실이 훨씬 더 흥미롭고 이목을 끌만한 기사가 되리라. 그러니 이 기자회견의 본론은 사실상 이 부분부터였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기자들은 일제히 필기할 준비를 했다. 그들 모두가 어찌나 집중했는지 시끌벅적하던 자작저 홀은 종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라이트 자작부인이 아름다운 입술을 벌려 말을 이었다.

16549695231161.jpg“하루아침에 제국의 귀부인이 되어버린 저는, 크나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완전히 다른 문화를 가진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던 저는 이 세계의 문화에 적응하기 어려웠습니다.”

16549695231161.jpg“…….”

16549695231161.jpg“큰 충격에 두문불출하기 시작한 지 한 달째 되는 날, 저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국의 대신관님께서 제게 직접 보내신 편지였습니다. 제가 빙의자라는 예언을 받았으며, 이 세계에서의 생활과 적응에 대해 논의하고 싶다. 그리고 원한다면 저를 원래의 세계로 돌려보내 줄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기자들이 미친 듯한 속도로 필기를 해나가는, 금속 펜촉이 종이를 긁어내리는 소리가 쏟아졌다. 라이트 자작부인은 마치 반응을 지켜보듯 흥미로운 부분에서 잠시 끊었다가, 말을 이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녀의 사정은 이러했다. 안 그래도 완전히 다른 세계의 일면식 없는 사람에게 빙의되었다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던 그녀는, 대신관의 편지만을 희망으로 여겨 성국에 찾아갔다. 대신관은 그녀를 따뜻하게 맞은 뒤, 그녀가 처한 상황과 예언에 대해 설명해주곤,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으냐는 의사를 물었다. 그녀에게 있어 그 답은 정해진 것과 다름이 없었다.  

16549695231161.jpg‘물론이죠. 돌아가고 싶어요. 저를 제발 원래의 세계로 돌려보내 주세요.’

16549695231136.jpg‘알겠습니다. 빙의자의 영혼을 원래의 세계로 되돌려보내는 일은 어렵지는 않지만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며, 시간이 많이 듭니다. 2달 뒤에 다시 오시면 그때는 바로 돌려보내 드리겠습니다.’

  대신관은 그녀에게 2달 동안 이 세계에서 지내는 데 도움이 될만한 정보와 책을 주곤, 그녀를 돌려보냈다. 그런데 정보와 책을 전달받는 과정에서, 그녀는 알게 되고 만 것이다. 제국의 황후 역시 빙의자라는 사실을.

16549695231161.jpg“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알게 되신 겁니까?”

16549695231161.jpg“고위 신관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습니다. 황후 폐하의 빙의를 다룬 예언에 대해서요.”

라이트 자작부인의 말에 또 다른 기자가 손을 들었다.

16549695231161.jpg“그렇다면 결국 그 근거는 자작부인의 증언뿐이군요. 좀 더 명확한 물증은 없는 겁니까?”

라이트 자작부인은 오랜 근심에 시달린 듯 야위고 수색이 짙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그 시선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16549695231161.jpg“그렇게 말씀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있습니다. 물증이.”

그렇게 말한 그녀는 책상 아래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크고 두꺼운 양장본의 책이었으며, 표지에 굉장히 신비롭게 빛나는 잉크로 복잡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기자들 중에는 그 책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16549695231161.jpg“그것은…… 성국의 예언기록이 아닙니까!”

16549695231161.jpg“맞습니다.”

16549695231161.jpg“자작부인께서 그것을 어떻게 들고나오신 겁니까?! 허가받지 않은 성국 외부로의 반출은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웅성거림 속에서 자작부인은 처음으로 미소 지었다.

16549695231161.jpg“그렇습니다. 무척이나 염치없는 이야기이지만……. 저는 대신관님의 호의와 믿음을 배신했습니다. 고위 신관들의 대화를 듣고, 기록 서고에서 이것을 몰래 들고 나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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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9695231161.jpg“그…… 그것은 절도가 아닙니까!”

16549695231161.jpg“예언기록의 절도는 중죄이며 성국이 직접 처벌합니다, 자작부인!”

경악 속에서 쏟아지는 질문들에 자작부인은 차근차근 대답했다.

16549695231161.jpg“네, 맞습니다. 제가 한 짓은 절도입니다. 게다가 그 사실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자백하기까지 했으니 저는 곧 성국으로 송환되어 큰 처벌을 받을 겁니다. 빠른 시일 내에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도…… 아마도 어렵게 되겠지요. 물론 제가 자백하지 않았어도 성국의 엄중한 수사로 인해 며칠 내에 신관분들이 들이닥쳤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16549695231161.jpg“그, 그런데 그런 짓을 대체 왜!”

16549695231161.jpg“잠깐만요. 예언기록은 어마어마한 양의 성력으로 결계가 쳐져 있어, 일정 이상의 성력을 갖지 못한 자는 만질 수도, 펼칠 수도 없고 들고나올 수도 없었을 텐데요. 그게 대체 어떻게 자작부인의 손에 있는 겁니까?”

16549695231161.jpg“맞습니다. 그게 실제 예언기록이라면 평범한 귀부인의 손에 들려 있을 수 없습니다. 혹시 위조된 가짜는 아닙니까?”

16549695231161.jpg“그것도 간단합니다. 이 몸에 빙의된 뒤 차차 알게 된 사실인데……. 이 몸에는 굉장히 막대한 잠재된 성력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일반인이 가진 성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지만, 대신관님께서는 이 힘에 대해 ‘오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고 표현하시더군요.”

그렇게 말한 라이트 자작부인은 손을 예언기록 위에 포갰다. 그녀가 품은 성력과 반응하여, 예언기록 서적이 하얀빛을 뿜어내며 빛났다.

16549695231161.jpg“하지만 교육의 부재 탓인지, 원주인은 이 잠재력을 눈치채지 못하고 꺼내어 써보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세계의 영혼인 저는 한 달의 시간 동안 이 몸의 잠재력을 느끼고, 그 성력을 어느 정도 다루게 되는 데까지 성공했습니다. 대신관님의 설명에 따르면, 이 세계의 사람들보다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성력 감응력이 몇십 배는 높다고 하더군요. 그것이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이곳에 넘어온 뒤 ‘성녀’라는 칭호를 받게 되는 이유였습니다.”

16549695231161.jpg“그, 그렇다면 그 대단한 성력을 이용해 예언기록 절도를…….”

16549695231161.jpg“네, 그렇습니다. 현 성녀님에 준하는 어마어마한 성력을 손에 넣은 저는, 손쉽게 예언기록을 훔쳐서 제국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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