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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당신을 좋아해요 (105/151)

105. 당신을 좋아해요2022.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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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말에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입술을 핥았다.

16549694129567.jpg“그랬지. 그대와 혼인한 이후 3년……. 아니, 나의 일평생 동안 지켜온 규율이지.”

16549694129572.jpg“그런데 왜…….”

16549694129567.jpg“비록 나도 이제껏 이 규율을 중요시해오긴 했지만……. 하지만 그대가 원하기만 한다면 얼마든 깰 가치가 있는 일이야.”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뜨거운 열기와 물기가 실려 있었다. 욕망에 녹아버린 듯 녹진하게까지 느껴지는 그 말은, 몹시 이성적이고 계산적인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라서……. 나는 공연히 얼굴이 홧홧해졌다. 그런 자신을 그 역시 알아챈 것일까, 알렉산드로스는 무언가 깨달은 듯한 눈을 하더니 가볍게 웃었다.

16549694129567.jpg“아니, 변명이지. 사실 이 규율을 깨고 싶은 것은 나야. 그대가 아니라.”

16549694129572.jpg“네?”

16549694129567.jpg“내가 그대를 너무나 원하기에, 그대가 날 원할지도 모른다는 핑계를 생각해낸 것뿐이야.”

그의 그 말, 그리고 나를 올곧게 바라보는 욕망 어린 눈동자 앞에서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서늘하고 딱 기분 좋은 정도의 온도의 방이었는데, 그 시선을 전신으로 받고 있자니 어쩐지 덥게 느껴졌다. 이런 것에 둔한 나조차도 확연히 알아차릴 정도로 그의 금빛 눈동자에는 나를 향한 뜨거운 감정이 담겨 있었다.

16549694129572.jpg‘머릿속에 뿌옇게 김이 끼는 듯한 느낌이야.’

이대로라면 나까지 이성을 유지하지 못할 것 같아서……. 나는 화제를 돌리려 물었다.

16549694129572.jpg“왜 저나 황비와 동침해서 황손을 생산하지 않으신 거죠? 황족에게 황손의 생산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잖아요.”

사적인 질문인데도 그는 의외로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그것은 그가 나를 얼마나 위하는지, 그리고 신뢰하는지 짐작게 했다.

16549694129567.jpg“그건 나의 일생을 건 목적 때문이야, 로벨리아. 그 목적을 달성하기 전에 나는 그 어떠한 것에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던 거지. 정욕이 이성을 유지하는 데 얼마나 큰 방해가 되고, 인간이 실수를 저지르게 만드는지 알고 있으니까.”

고작 그런 이유로 여태까지 아내들과도 동침하지 않고, 순결을 지켜왔다고? 그것도 제국의 황제가? 있기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한편으로는 그런 점마저도 알렉산드로스답게 느껴지기도 했다. 애초에 그 역시 보통 비범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한편으론 그의 ‘일생의 목적’이라는 것이 궁금해졌다.

16549694129572.jpg‘정말 이상한걸. 그런 이야기는 원작에서 전혀 본 적 없었어.’

알렉산드로스는 <이세계에서 온 꽃>의 남주인공이었고, 남주인공에게 그렇게 중요한 목표가 있다면 작중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거나 적어도 언급이라도 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16549694129572.jpg‘그런데 원작의 후반부까지 그런 얘기가 나온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건 확실히 이상해.’

내 머릿속에 어떠한 섬광이 스쳐 지나갔다. 여태껏 느껴왔던 수많은 작은 위화감들이 하나로 모여, 커다란 하나의 깨달음을 이루어내는 순간이었다.

16549694129572.jpg‘여태까지 내가 알던 원작은, 과연 믿을 만한 내용이었던 걸까?’

왜 여태까지 의심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분명 이상했다. 원작에선 눈치가 약간 없긴 하지만 한없이 선하기만 한 주인공 아이샤가 이곳에서는 질투심과 열등감에 눈이 멀어 악행을 저지르는 악인인 것도. 원작에선 아이샤를 사랑해서 두 아내 사이에 노골적으로 편파적인 대우를 해 로벨리아를 죽게 만든 알렉산드로스가 이곳에서는 이토록 나를 위해주는 것도. 원작에선 아이샤를 사랑하고 집착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목적이 없어 보였던 알렉산드로스가 이곳에서는 일생을 건 목적과 극도로 이성적이고 계산적인 성미를 가지고 있는 것도…….

16549694129572.jpg‘처음에는 내가 다르게 행동해서 상대들 역시 다르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확실히 갈수록 이상해.’

하지만 내가 여태까지 원작을 의심하지 못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원작이 아예 못 믿을 것이라고 하기에는, 정확한 부분도 많았다. 알렉산드로스의 과거사, 케일럽이나 노먼의 설정 같은 것들은 원작의 내용이 맞는 듯했으니.

16549694129572.jpg‘어떤 부분은 믿을 만하고, 또 어떤 부분은 믿을 만하지 못한 건가? 그러고 보니 미심쩍은 부분들은 다 여주인공, 남주인공과 관련된 부분이네. 조연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원작과 다른 점을 거의 찾지 못했어.’

원작이 정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여태까지 내가 굳게 믿고 있던 것을 뒤흔드는 깨달음이기에 나는 무척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내가 이 부분에 대해 더 깊게 고민할 수는 없었다. 알렉산드로스가 말을 이었기 때문이었다.

16549694129567.jpg“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이루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대를 생각하면 나의 그 목적도 어쩐지 덜 중요하게 느껴지더군.”

그렇게 말하며 그는 천천히 손을 뻗어 내 손을 감싸 쥐었다. 그는 금방이라도 손등에 입을 맞출 듯이 내 손을 끌어당겼다. 그는 커다란 두 손에 담긴 내 손이 마치 무엇보다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듯 다정한 눈으로 살폈다.

16549694129567.jpg“이전에는 나도 미처 몰랐어. 세상에 그 목적만큼 중요한 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도 그대를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후에야 깨닫게 되었지.”

16549694129572.jpg“…….”

16549694129567.jpg“만일 그대의 안전과 평온이 내가 평생 동안 이루려 했던 목적과 상충한다면……. 난 이제 그것을 포기할 수도 있어.”

그렇게 말한 그는 내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정말로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귀중품을 대하듯 조심스럽게 내려앉는 그 온기에……. 나는 그의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없음을 깨달았다. 어찌할 도리 없이 심장이 뛰었다. 그의 다정한 마음은 너무나 사랑스러우면서도, 또 슬프게 느껴졌다. 그 슬픔의 근원은 그를 향한 미안함이었다. 그의 나를 향한 마음은 이토록 진지하고 깊은데, 나는 그에게 똑같은 깊이로 되돌려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 가슴 깊은 곳이 저릿해져서 나는 그 몰래 이를 악물었다.

16549694129572.jpg‘만일 내가 그를 사랑한다고 하면…….’

나는 생각했다.

16549694129572.jpg‘그는 나를 염치없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기뻐할까.’

내 발로 그의 곁을 떠났던 내가 이런 생각을 하기에는 무척 민망하고 부끄럽지만, 하지만……. 나를 향한 그의 헤아릴 수 없는 감정의 깊이를 이렇게 마주한 지금은. 적어도 그가 나를 싫어하거나 불쾌해하지는 않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16549694129572.jpg‘비이성적인 생각이라도 좋아. 지금만큼은 이 판단을 믿고 싶어.’

어쩐지 입이 근질근질했다. 그가 용기를 내어준 만큼 나도 한 발짝은 용기를 내고 싶었다.

16549694129572.jpg“저, 알렉산드로스. 아까 당신이 했던 질문 말인데요. 왜 입맞춤을 허락했냐는 그 질문…….”

알렉산드로스는 대답 없이 나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그 뜨겁고 강렬한 금빛 눈동자에 꿰뚫리는 듯한, 마음속까지 전부 읽히는 듯한 기묘한 기분을 느끼며 나는 말을 이었다.

16549694129572.jpg“사실 저도 혼란스럽긴 하지만……. 하나 확언할 수 있는 게 있어요. 전 당신의 몸을 이용하고 싶다거나 그런 게 아니에요.”

16549694129567.jpg“그렇다면…….”

16549694129572.jpg“그러니까……. 그때 저는 분명, 두근거렸어요. 도저히 거절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차마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의 시선 앞에서 내 얼굴은 불타서 없어져 버릴 것 같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연설문도 여러 번 작성했고, 달변가라는 말을 여러 번 들은 나인데, 오늘만큼은 내가 굉장히 헛소리를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역시 괜한 시도를 한 걸까? 아까의 용기는 그저 만용에 불과했던 것일까?

16549694129572.jpg‘하지만……. 만용이라도 좋아. 계속 그만이 용기를 내고, 그만이 배려하고 마음을 쓰게 만들고……. 그런 건 이제 싫어.’

16549694129572.jpg“저 당신이 싫지 않은 것 같아요. 아니, 오히려 좋아하는 쪽에 가까운 것 같아요. 사랑한다고까지 말하긴 어렵지만, 하지만 호감은 확실히 있다고 말할 수 있…….”

얼굴이 머리카락만큼이나 새빨갛게 물든 채로,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자각하지 못한 채로 횡설수설하던 나는…….

16549694129567.jpg“로벨리아.”

그의 열기 어린 목소리에 말을 멈추었고.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였다. 내 입술 위로 그의 입술이 겹쳐진 것은.

16549694129572.jpg“……!”

나의 문을 열고 들어온 그의 움직임은 어느 때보다도 거칠고, 뜨거웠다. 그저께의 키스가 한껏 자제력을 발휘해 나를 부드럽게 이끌었다면, 이번의 키스는 욕망을 제어하는 것을 실패한 듯 거칠게 나를 탐했다.

16549694129572.jpg“하아, 하아아…….”

허리가 녹아서 흐물흐물해질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자, 그의 두 손이 내 허리를 감싸 받쳤다. 숨이 모자라서 숨이 막힌다는 생각이 들 때쯤 그는 잠깐 숨 쉴 틈을 주었다.

16549694129572.jpg‘이런 걸 보면 배려를 하지 않는 건 아닌 것 같지만, 그렇지만…….’

그래도 힘들지 않은 건 아니라서 나는 그의 목을 팔로 감싸고 몸을 기댔다. 한데 그는 그 사실에 더 흥분한 것처럼 더욱 집요하게 나를 몰아 붙여왔다. 헐떡이는 숨소리와 뜨거운 열기, 물기 어린 소리. 진득한 시간이 끝나고 그는 가까스로 나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16549694129567.jpg“로벨리아, 사랑해.”

그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너무나 분명하고 뜨거운 그 단어. 나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만 같은 전율을 느꼈다.

16549694129567.jpg“그리고 그대 역시 나를 사랑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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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귓가가 간지러울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속삭이던 그는, 가볍게 내 귀에 입 맞췄다.

16549694129567.jpg“무슨 짓을 하더라도……. 꼭 그렇게 만들도록 하지.”

곧, 그의 금빛 눈동자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나를 보며 아름다운 눈매를 휘었다.

16549694129567.jpg“약속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숨이 막힐 정도로 뜨거운 공기, 야릇할 정도로 아름다운 눈동자. 도무지 진정할 수가 없었다. 심장이 벅찰 정도로 뛰었고, 머릿속은 진작에 푸딩처럼 녹아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내가 느끼는 기묘한 기대감이었다. 그가 무슨 일을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주고, 어떤 말을 해줄지. 내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16549694129572.jpg‘나 진짜 미쳤나 봐.’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나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암전된 시야 너머로 그의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이렇게 만든 게 그이기에 약간 얄밉게 느껴지면서도, 왠지 그 웃음소리가 듣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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