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그와의 첫 입맞춤2021.12.19.
자신의 심장이 이렇게까지 벅차게 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로벨리아는 미처 몰랐다. 어찌할 수 없는 열기에 얼굴이 홧홧했다.
“내게 화가 난 게 아니라면 내 눈을 보고 말해줘, 로벨리아.”
나직한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여 그녀는 파르르 몸을 떨었다. 심장이 너무 뛰어서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의 오해를 풀어주고 싶었다. 안 그래도 자신으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은 그였다. 이미 받은 상처를 낫게 해주진 못 할지언정, 이 이상의 상처를 얹어주고 싶지는 않았다.
“당신에게 화가 난 거 아니에요. 당신의 눈을 피한 건……. 이건 그냥…….”
그의 눈빛은 말을 계속해보라는 양 한층 더 그윽해졌다. 그의 눈빛과 맞잡고 있는 손바닥의 감촉을 느끼며, 로벨리아는 멍한 머리로 대답을 필사적으로 쥐어 짜냈다.
“당신 보는 게 너무…… 민망해서.”
“민망해?”
“얼굴이 너무 뜨겁고……. 저도 잘 모르겠어요. 오늘따라 심장이 너무 뛰어서…….”
“로벨리아.”
나직한 웃음소리. 그의 웃음소리는 낮지만 울림이 아름다워 듣기 좋았다.
‘그가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웃는 걸 보니 기분이 상한 건 아닌 듯해 다행이다.’
멍한 머리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쪽, 하고 작고 가벼운 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그와 동시에 작은 온기가 귓가에 퍼졌다. 끈적한 열기에 머리가 잘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가 그녀의 귀에 입을 맞춘 것이었다. 하지만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입술이 닿은 곳부터 천천히 녹아드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가 어떤 생각으로 그런 건지 알고 싶어, 로벨리아는 상대의 얼굴을 살폈다. 그리고 시야에 들어온 그의 모습은……. 언제 웃었냐는 양, 그의 시선은 한층 더 뜨겁고 무거웠다. 마치 꿰뚫는 듯, 맛있는 것을 핥아먹는 듯, 집요하기까지 한 그 눈빛 앞에서 로벨리아는 취할 것만 같았다.
“로벨리아.”
“…….”
“이러면 나도 참기가 힘이 들지 않나.”
로벨리아는 스스로 일이라면 모를까 연애 쪽의 능력은 젬병이라고 평가하고 있었지만, 그런 그녀조차도 어쩐지 다음에 그가 할 행동을 알 것만 같았다. 도저히 모를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그의 시선과 얼굴은 너무나 짙은 의도를 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조금씩 가깝게 다가왔다. 마치 거부할 기회를 주려는 양, 아주 느리게. 욕망이 들끓는 그의 금빛 눈동자 속에 로벨리아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거부할 기회는 지금뿐이야.’
그녀와 그의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고요 속에서, 로벨리아는 생각했다. 정말 믿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거부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는다는 것이. 지금 그녀가 할 행동이라곤 단 하나밖에 없었다. 로벨리아는 떨리는 마음을 억누른 채 천천히 눈을 감았다. 시야가 검게 내려앉자, 이윽고 입술 위에 입술이 겹쳐왔다. 그것은 믿을 수 없도록 선연하고 뜨거운 감촉이었다. 손과 손이 겹칠 때도 허리가 저릿했는데,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로벨리아는 입술의 갈라진 틈 안으로 그가 드밀고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가 들어와, 두드리고 쓸어내리며 얽어맬 때마다 머릿속에서는 불꽃이 튀고 이성이 녹아내렸다.
“으…… 음.”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지나칠 정도로 반응한다는 사실은 조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눈앞의 상대에게 집중하는 일이 알량한 자존심보다도 훨씬 중요하게 느껴졌다.
“으응…….”
진득한 입맞춤에 꼿꼿했던 허리가 녹아들 듯 힘이 빠지자, 단단한 팔이 그녀를 지탱하듯 감겨왔다. 스킨십에 익숙하지 않은 그녀가 자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등을 단단히 받친 채로 알렉산드로스는 갈급한 듯 그녀를 탐했다. 다정한 손에 비해 그 입술은 조금 조급했고, 거칠었다. 중간중간 숨이 모자랄 정도로.
‘이렇게 입을 맞추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구나. 한 5개월 만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로벨리아는 그의 소매를 잡아쥐었다. 그동안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기에 이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일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다를 거라고 로벨리아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전에도 무서울 정도로 잘한다고 느끼긴 했지만…… 이건 정말…….’
겨우 키스만으로, 이걸 하기 전의 자신과 한 뒤의 자신이 전혀 다르게 느껴질 거라는 생각은 그녀는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 그저 입술과 입술을 붙이는 행위가 뭐 그리 대단해서 그렇게 큰 의미부여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의 로벨리아는 이해했다. 두려웠다. 그가 자신에게 준 쾌감을, 이 감각을 결코 잊지 못할까 봐. 헐떡이며 달뜬 숨을 나누던 두 사람은 아쉬운 듯 가까스로 떨어져 나갔다.
‘그와의 키스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어쩐지 이전과 지금은 달라도 너무 달라.’
로벨리아는 가쁜 호흡을 가다듬으며 생각했다.
‘이걸 기준으로 따지자면 이번이 첫키스라고 할 수 있을지도.’
멍하니 생각하며 손으로 타액을 닦아내는데, 보드라운 감촉의 무언가가 입가에 불쑥 내밀어졌다. 알렉산드로스는 실크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며 말했다.
“너무 조급했던 탓에 다소 거칠게 대하고 말았군.”
“…….”
“좀 더 함께 있고 싶지만……. 이대로라면 정말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그대도 내 말뜻을 알고 있겠지?”
그의 말뜻을 이해할 것 같아 로벨리아는 다시 얼굴이 달아올랐다. 키스와 ‘그 일’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키스를 했다고 ‘그 일’도 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는 뜻은 아니기에, 그녀는 그의 말에 공감했다. 입술의 루주가 다 지워질 정도로 정성스럽게 문질러 닦아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늘 여유로운 태도와는 다르게 약간 조급한 태도였다.
“내일 다시 보도록 하지. 좋은 꿈 꾸기를.”
그렇게 말한 그는 다정하게 웃었고, 그녀의 눈꺼풀 위에 입 맞췄다. 곧이어 알렉산드로스는 그녀의 방을 떠났다. 방 안이 고요해지자, 아까 있었던 일들은 전부 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다만 얼굴의 열기를 식히는 열린 창에서 들어오는 찬바람만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음을 알려주었다. *** 다음날. 안절부절못하며 로벨리아의 곁에 머무르던 시녀가 아까와 똑같은 질문을 했다. 벌써 네 번째였다.
“황후 폐하, 혹시 옥체가 편찮으신가요?”
“그런 거 아니야. 왜 자꾸 같은 걸 묻는 거야?”
로벨리아는 최대한 신경질적으로 들리지 않게 노력하며 물었다. 그럼에도 시녀는 대답을 주저했다.
“늘 일찍 일어나시는데, 오늘은 오전이 다 지나도록 일어나지도 않고 식사도 하지 않으시기에…….”
듣고 보니……. 시녀가 걱정을 할 만도 했다. 오늘 로벨리아는 평소와 같은 시각에 잠에서 깨어났지만 거의 세 시간은 누워만 있었다. 무언가 생각할 게 있다고 식사도 물리더니, 간간이 이불을 걷어차거나 이상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시녀들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로벨리아는 한숨을 쉬며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식사할게. 이리로 가져다줘.”
“네! 주방에 따끈한 조식을 새로 만들어오라 이를게요.”
시녀가 기쁜 듯 달려 나갔다. 침실은 다시금 고요해졌다.
‘역시 이런 거로 이렇게 오래 고민하는 건 좀 지나친 거겠지? 나랑 그가 처음으로 키스한 것도 아닌데.’
하지만…… 다시 생각해도 역시 부끄러웠다. 이제까지의 입맞춤은 그녀의 의사와는 거의 관계없이 그쪽에서 일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어제 그녀의 의사는 명백했다. 그녀는 그가 입맞춤할 것을 허락했다. 게다가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정말로, 그녀는 그것이 싫지 않았다. 그러니 어제의 입맞춤은 이제까지의 입맞춤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아, 정말! 그가 대체 뭐라고 생각할까. 난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
입술과 입술이 맞닿았을 뿐이지만 그때 그들의 행위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짐승 같았다. 그렇게까지 서로를 갈구하고 더 깊은 곳을 탐하는 날이 오리라고 그녀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정말이지 뭐에라도 홀린 것 같았다.
‘아니야. 키스 까짓거 좀 할 수도 있지. 게다가 우리는 법적인 부부이고 말이야. 애초에 키스 한 번 했다고 세 시간이나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모쏠스러운 행동이야. 지금 이 시간에도 그쪽에서는 별생각 없을 수도 있고……. 그래, 분명 나만 이렇게 의미부여 하는 걸 거야.’
최대한 그런 식으로 생각했더니 마음이 좀 잠잠해졌다. 그녀는 머리를 식히기 위해 찬물로 세수하고, 아침식사를 한 뒤 여우를 보러 갔다.
“잘 잤니? 밥을 잘 먹는지 털에서 윤이 나는구나!”
“헤헥, 헥, 끼잉, 낑, 낑, 낑!”
이 여우는 토파즈 궁 근처의 숲에서 데려온 뒤로, 로벨리아를 너무 잘 따라서 황궁에서 도망칠 때마저 데려갔던 아이였다. 금방 슈워츠코프 대공령에 도착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뜻밖의 사건으로 여행길이 길고 험난해진 탓에 여우에게도 팔자에 없을 고생을 시키고 말았다. 로벨리아는 케일럽 몰래 자신의 밥을 조금 떼어서 여우에게 주곤 했지만 역시 야생동물인 여우에게는 그걸로는 부족했다. 험난한 여행 때문에 여우는 살도 빠지고, 털도 푸석푸석해져서 로벨리아는 무척 미안했다.
‘케일럽은 여우가 좀 덜 먹고 힘들어도 나랑 함께 있어서 행복했을 거라고 위로했지만……. 애초에 내가 도망치지 않았으면 하지 않았을 고생이니까.’
그래서 황궁에 돌아온 뒤로는 여우에게도 특식을 먹이고 특별대우를 명했다. 어리고 건강한 탓인지 여우의 건강은 금방 돌아왔다.
“내가 없어도 이렇게 잘 먹으면 좋을 텐데. 그래야 너도 친구들이 있는 숲으로 돌아가지 않겠니?”
“꾸꾸꾸꾸꾸! 꾸꾸꾸꾸꾸!”
얼른 여우를 야생으로 돌려보내고 싶은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우는 기분 좋은 소리를 내고 뒹굴거리며 그녀의 손을 핥아댔다. 어쨌든 그 모습은 가슴이 살살 녹을 정도로 귀여웠기에, 어젯밤 있었던 일 때문에 혼란스러운 그녀의 기분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됐다. 한데 그때였다.
“황후 폐하, 귀한 손님이 오셨습니다.”
‘올 게 왔구나.’
‘귀한 손님’이라는 말에 로벨리아는 당연히 알렉산드로스가 찾아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은 어긋났다.
“대신관께서 찾아오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