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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그녀를 놀게 하기 위한 계략 (96/151)

96. 그녀를 놀게 하기 위한 계략2021.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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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969191049.jpg“대해에 수장된 왕국 아틀란타의 전설적인 보물들을 전시하는 순회전시가 수도에 도착했다더군.”

로벨리아가 연이은 업무로 지쳐 휴식을 필요로 하는 그때에, 알렉산드로스는 지나가듯 가벼운 어조로 말을 걸었다.

1654969191049.jpg“그대라면 관심이 있을 듯도 한데, 어떤가?”

그 제안에는 로벨리아 역시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스트레스가 너무 쌓여서 잠시 머리를 식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화려하고 예쁜 것을 좋아하는 그녀에게, 전설 속 왕가의 보물 전시회라니? 심지어 순회 전시회라 지금이 아니면 볼 수가 없다니? 로벨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165496919105.jpg“근사한 생각이네요. 좋아요.”

그렇게 업무 중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찾아간 전시회는……. 상상 이상으로 즐거웠다. 그저 화려하고 값비싸기로는 로벨리아가 가진 것들이 훨씬 더했지만, 전시는 전시만의 매력이 있었다. 천 년 전 바닷속에 수장되었다는 전설 속 왕국! 팔백여 년간 낭설로만 여겨져 왔으나 이백 년 전 우연히 유적지를 발견해 전설이 진실임이 알려졌다는 이야기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흥미를 끌었다.

165496919105.jpg“이게 정말로 천 년 전 아틀란타의 왕족들이 착용했던 보석인가요?”

1654969191049.jpg“그렇지. 대륙 최고의 역사학자들과 감정사들이 증명했다니 틀림없어.”

골동품 하나하나에 담겨 있는 역사와 이야기만으로도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로벨리아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더군다나 세계사에 박식한 알렉산드로스는 로벨리아를 위해 전시품 하나하나마다 얽힌 전설과 역사 속의 이야기를 설명해주었다.

1654969191049.jpg“제국과 다르게, 아틀란타에서는 8명의 주신들과 1명의 보조신을 섬겼지. 이 목걸이의 디자인은 아틀란타의 신들을 모티브로 한 듯하군.”

1654969191049.jpg“이 항아리에 새겨져 있는 것은 고대의 영웅 필라테라스의 3가지 시험을 모티브로 한 것이야. 필라테라스는 인간을 초월할 정도로 강했으나 그 오만함으로 인해 신의 분노를 샀지.”

1654969191049.jpg“아틀란타의 장인들은 대부분 정령과 인간의 혼혈이었는데, 정령의 예리한 오감과 특유의 미감으로 인해 무척 감각 있는 예술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해.”

165496919105.jpg‘그가 이렇게 좋은 가이드인 줄은 상상도 못했는걸.’

알렉산드로스의 설명을 들으며 로벨리아는 문득 생각했다.

165496919105.jpg‘지루할 수도 있는 역사 이야기를 참 재미있게 하는 것 같아. 목소리도 듣기 좋고 말이지.’

책을 열심히 읽긴 했지만 아직 고대 국가의 역사까지는 잘 알지 못했던 로벨리아로서는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알렉산드로스의 설명을 곁들이자 전시품을 보는 로벨리아의 시선도 달라졌다. 전시품 하나하나의 매력을 훨씬 더 생생하게 느끼게 된 것이다. 충분히 둘러볼 만큼 둘러본 뒤, 로벨리아는 알렉산드로스에게 말했다.

165496919105.jpg“전시회를 구경하는 건 처음이었는데, 덕분에 정말 즐거웠어요. 당신이 아니었으면 이런 좋은 경험을 놓칠 뻔했네요.”

그녀는 전생에도 워커홀릭이었고, 밤낮없이 일만 하느라 친구가 별로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전시나 공연 같은 여가생활과도 멀어지게 되었다.

165496919105.jpg‘그런데 처음으로 참석한 전시회가 이렇게까지 재미있을 줄은 몰랐어. 즐거운 추억이 하나 생긴 것 같아.’

로벨리아의 솔직한 반응이 기뻤는지 알렉산드로스는 꿀이 뚝뚝 떨어질 듯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1654969191049.jpg“그대가 즐거웠다니 나도 기쁘군.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생기면 함께 오는 것이 어떤가?”

165496919105.jpg“앞으로도요?”

1654969191049.jpg“그래. 일도 좋지만, 영혼을 살찌우는 것은 이런 여가생활이지. 그대와 함께 할 수 있다면 더더욱 기쁠 것 같군.”

무척 기분이 좋았고, 알렉산드로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로벨리아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165496919105.jpg“그래요. 종종 이렇게 함께 나오도록 해요.”

1654969191049.jpg“몇 번이고 그대를 기쁘게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지.”

이후로 알렉산드로스는 정말로 온갖 곳에 로벨리아를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전시, 공연, 운동경기는 물론, 강가에서 돗자리를 깔아놓고 하는 소풍과 길거리 공연까지.

165496919105.jpg‘알렉산드로스는 즐겁게 노는 방법을 여러 가지 알고 있구나. 나는 정말 일만 하느라 이런 건 잘 몰랐는데.’

로벨리아는 돗자리를 깔고 앉아 길거리 음식을 먹으며 생각했다.

165496919105.jpg‘역시 로맨스 판타지의 남주인공이라 그런 걸까? 로맨스물 남주인공이니까 데이트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거겠지?’

데이트? 자신의 생각에 로벨리아는 스스로 깜짝 놀랐다. 그녀는 내심 이것을 데이트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165496919105.jpg‘상대는 별생각 없을 수도 있는데 나도 참. 요즘 갈수록 설레발이 심해진다니까.’

하지만 한 번 시작된 설레발을 잠재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특히나 상대가 기쁜 듯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때는 더더욱.

165496919105.jpg“왜 그렇게 봐요? 뭐 묻었어요?”

결국 시선을 견디다 못한 로벨리아가 물었다. 그녀의 의아해하는 얼굴에 알렉산드로스가 픽 웃었다.

1654969191049.jpg“묻긴 묻었지.”

165496919105.jpg“묻었다고요?”

165496919105.jpg‘잘생김이 묻었다 같은 소리 하면 가만 안 둬.’

그가 말장난을 하려는 줄 알고 심드렁한 얼굴을 하던 로벨리아의 눈이 대번에 커졌다. 알렉산드로스가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훑더니, 그대로 손가락을 입에 넣었던 것이다.

1654969191049.jpg“뺨에 소스가 묻었잖나.”

뺨을 훑고, 맛있다는 듯 손가락을 쪽 빠는 동안……. 그의 눈은 그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 꿰뚫을 듯 뜨겁고 강렬한 눈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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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벨리아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하다 알렉산드로스를 밀쳤다.

165496919105.jpg“정말, 저도 알았거든요!”

당황한 탓에 손에 힘이 들어갔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벽처럼 단단한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로벨리아가 부끄러워하자, 알렉산드로스는 배를 잡고 웃으며 그녀에게 기댔다. 그 웃음소리의 울림은 생각보다 듣기 좋았다. *** 로벨리아는 알렉산드로스가 ‘로맨스 판타지의 남주인공이기 때문에 노는 법을 잘 알고 있다’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사실 알렉산드로스 역시 여가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도 로벨리아 못지않은 일 중독이었고, 평생을 일에 몰두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가 갑자기 여가활동에 대해 잘 알게 된 것은 모두 공부의 결과였다. 로벨리아가 좋아할 만한 활동을 다양한 방법으로 조사하고, 준비하고, 코스를 짜고……. 그는 오로지 로벨리아가 즐거워하며 그런 활동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끔 하기 위해 그런 일들을 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1654969191049.jpg‘로벨리아에게 일보다 재미있는 활동이 많다는 사실을 알려주어, 최대한 일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 그것이 나의 일차 목표다.’

그랬다. 그것이 바로 알렉산드로스의 계략이었다. 그는 여전히 로벨리아가 일을 지나치게 하는 것을 걱정했고, 건강을 해치거나 스트레스를 받아 황궁에 돌아온 걸 후회하게 될까 봐 우려했다. 그래서 일보다 더 그녀의 흥미를 끌 만한 활동을 끊임없이 준비해온 것이었다. 평소 아무런 관심이 없던 전시, 공연, 운동경기 관람 같은 활동도 그녀를 위해 조사한다고 생각하니 즐거웠다. 기뻐할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면 국정업무와 여가활동 조사를 동시에 수행하는 빠듯한 일정에도 피로함을 잊을 수 있었다. 게다가 처음에는 그저 그녀의 일을 방해하기 위해서였다지만,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즐거웠다. 그녀를 더 오래 볼 수 있었고, 그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로벨리아와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그녀의 취향의 윤곽을 그려나가는 것은 무척 즐거우면서도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전시, 공연, 운동경기 관람은 물론이고 그들은 더더욱 다양한 활동을 했다. 운하에서 뱃놀이를 하거나, 자선파티에 참석하고, 축제를 구경하거나 다양한 대회를 관람했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모습과 달콤한 추억들이 차곡차곡 쌓여나갔다.

1654969191049.jpg‘요즘은 거의 매일, 하루에 서너 시간씩은 여가를 함께하고 있으니 그녀의 업무량도 많이 줄었겠지.’

알렉산드로스는 생각했다.

1654969191049.jpg‘보통 저녁에 나가서 밤늦은 시간에 돌아오곤 하니 그녀도 피로할 것이고, 돌아오는 즉시 잠자리에 들겠지. 하루 종일 책상 업무만 하는 것보다 훨씬 건강한 생활이야.’

그러나 그의 그런 흐뭇함은 오래 가지 못했다.

16549691992269.jpg“폐하, 아뢰기 황공합니다만……. 요즘 매일 깊은 새벽까지 황후궁의 집무실 불이 꺼지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비서관이 침통한 얼굴로 보고했다.

16549691992269.jpg“아무래도 황후 폐하께서는 외출하고 돌아오신 뒤 밀린 업무를 밤을 새워서 해내시는 것 같습니다.”

비서관의 말에, 알렉산드로스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1654969191049.jpg‘외출 뒤에도 일을 해서 업무량을 채운다고? 그녀의 업무량을 줄이기 위해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아무런 효과가 없지 않은가!’

그는 생각했다.

1654969191049.jpg‘아니, 오히려 더 안 좋지. 외출도 하고 업무도 하느라 쌓인 피로가 이만저만이 아닐 테니까!’

그야말로 최악의 결과였다.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알렉산드로스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머리를 싸맸다. *** 황궁으로 돌아온 뒤 나는 사교활동도 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사교행사를 주최하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귀부인의 초대를 받아 가기도 했다. 적절한 사교활동을 해서 집안의 체면을 세우는 것, 그것은 제국 안주인들의 의무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사교활동을 시작하자 믿음직하며 성격이 맞는, 꽤 친하다고 볼 수 있는 사람도 생겼다. 그날 역시 가까운 사이가 된 귀부인의 티파티에 참석한 날이었다. 이런 작은 모임은 보통 가까운 사람끼리 모이는지라 늘 그 얼굴이 그 얼굴이기 마련이었는데, 웬일로 낯선 얼굴이 보였다. 20대 중반 정도의 젊은 여성이었는데, 수수하고 화장기가 없었지만 표정에 자신감이 있고 똑 부러질 듯한 인상으로 호감이 갔다.

1654969199229.jpg“태양의 영원한 반려, 황후 폐하를 뵙습니다.”

165496919105.jpg“그래요. 클레먼스 자작부인이라고요? 처음 보는 듯한 얼굴인데, 영지에서 지내다가 올라온 건가요?”

1654969199229.jpg“저는 4년 동안 해외에서 지내다가 이제 입국했습니다, 황후 폐하. 혹시 아틀란타 전시회를 들어보셨나요? 9년째 전 대륙을 돌고 있는 순회 전시회인데, 제가 그 전시회의 담당자랍니다.”

아틀란타 전시회라니! 그 이름을 여기서 들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즐겁게 본 전시회의 담당자라니. 반가울 수밖에!

165496919105.jpg“어머! 그 전시회는 저도 관람했어요. 바로 지지난주 목요일에요. 전시물이 정말 알차고 재미있던데요. 그 관계자를 여기서 만날 줄은 상상도 못했네요.”

1654969199229.jpg“지지난주에 귀한 손님이 오셨다고 들었는데 그분이 바로 황후 폐하였군요! 관심 보여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였어요.”

165496919105.jpg“빈말이 아니라 정말로요. 제 인생 최고의 전시회였어요. 천 년 전에 바다에 묻힌 왕국의 전시물이라니 꿈만 같아요.”

내 진심이 담긴 칭찬에 클레먼스 자작부인 역시 무척 기쁜 것 같았다. 그녀는 상기된 얼굴로 어쩔 줄 모르며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1654969199229.jpg“황가 분들께서 이 전시회에 이리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어찌나 영광인지 모릅니다. 황후 폐하도 그렇고, 황제 폐하께서도 말이에요…….”

그냥 그러려니 지나갈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나는 문득 의아해졌다.

165496919105.jpg‘나는 그렇다 쳐도 알렉산드로스가?’

165496919105.jpg“황제 폐하께서도 저처럼 관심을 드러내셨나요?”

1654969199229.jpg“그럼요. 이번 달에 저희 전시가 수도에서 열린 것도 모두 황제 폐하의 제안 덕분이었는걸요. 저희 전시의 가치를 알아봐 주시고, 전시할 자리까지 제공해주셔서 저희로서도 정말 좋은 기회를 얻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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