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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그대가 날 만지도록 해 (91/151)

91. 그대가 날 만지도록 해2021.11.14.

16549691038306.jpg“그래, 연습.”

잠시 고민하던 로벨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16549691038306.jpg“잘 생각했어. 알다시피 우리는 서로의 몸에 닿는 것에 익숙지 않은 편이지. 대외적으로 사이좋은 부부인 척하려면 서로에게 익숙해져야만 해.”

그 말에 로벨리아는 알렉산드로스가 자신에게 키스나 포옹 같은 것을 해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은 빗나갔다. 알렉산드로스는 그녀에게 스킨십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뒷짐을 지고 섰다.

16549691038306.jpg“나는 그대에게 손대지 않을 거야. 연습이라곤 해도, 그대가 원치 않는 접촉은 하고 싶지 않거든.”

16549691038324.jpg“그러면요?”

16549691038306.jpg“내가 그대에게 닿는 건 그대가 불쾌해할 수 있겠지만, 그대가 나를 만지는 건 불쾌함이 덜하겠지.”

예상치 못한 말에 로벨리아는 깜짝 놀라 알렉산드로스를 보았다.

16549691038324.jpg‘이 사람, 진심인가?’

알렉산드로스는 웃고 있었다. 조금도 거리끼거나 주저하는 기색이라곤 없었다.

16549691038306.jpg“자, 로벨리아.”

그는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16549691038306.jpg“어서.”

그 목소리는 나른하고 부드러웠으나 기묘한 힘이 있었다. 로벨리아는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올렸다. 그렇다곤 해도…… 어딜 만져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16549691038324.jpg‘남자 몸 같은 거 만져본 적은 한 번도 없는걸.’

로벨리아는 곁눈질로 상대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검은 옷은 목부터 손목, 발목까지 남김없이 감싸고 있었으나, 옷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넓은 어깨와 탄탄한 체형이 여실히 드러났다. 곁눈질로도 알 수 있었다. 여자라면 누구라도 넋을 놓을 정도로 아름다운 몸이었다.

16549691038324.jpg‘과연 괜히 로맨스 판타지 남주가 아닌걸.’

잠시 넋을 놓을 뻔하던 로벨리아는 상대의 목소리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16549691038306.jpg“역시 곤란한가?”

알렉산드로스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로벨리아의 상념을 끊었다.

16549691038306.jpg“연습이라곤 해도, 도망칠 정도로 미워하는 남자의 몸에 닿는 것은.”

그 말은 로벨리아의 책임감을 건드렸다.

16549691038324.jpg‘주저할 때가 아니야. 나로 인해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하니까.’

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16549691038324.jpg“아니에요, 할게요.”

그녀는 조금 더 각오한 얼굴로 상대의 몸을 보았다. 그렇다곤 해도 여전히 그의 단단한 근육에 손을 댈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녀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16549691038324.jpg‘시선이 너무 강렬해.’

알렉산드로스의 시선은 분명 다정했으나, 그 부드러운 표면 아래에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함을 품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하는 행동을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았다. 뚫어질 듯한 시선을 느끼자 안 그래도 민망한데, 더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의식됐다. 자신의 몸과 그의 몸이 닿은 얼마 안 되는 접촉면이 저릿하게 느껴졌다.

16549691038324.jpg‘목에 팔을 감는 정도로는…… 부부라기에는 역시 모자라겠지.’

로벨리아는 침을 꼴깍 삼켰다. 자연스레, 몸과 몸이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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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이 닿은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몸 아래로 로벨리아는 상대의 몸이 얼마나 단단한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기대와도 그의 몸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꼭 땅에 깊이 뿌리를 박은 나무처럼 안정감이 있었다. 로벨리아는 자신의 심장이 크고 빠르게 뛰고 있음을 깨달았다.

16549691038324.jpg‘들키면 어떻게 하지?’

그의 아내로 살고 싶지 않아 도망치기까지 했던 여자가 고작 포옹 정도로 이토록 동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알렉산드로스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화를 낼까. 배신감을 느낄까. 자신의 두근거림을 들킬까 불안해하던 로벨리아는 문득 깨달았다. 자신의 몸 위로 작은 박동이 닿아오고 있었다. 그것은 알렉산드로스의 심장이었다. 그의 심장은 무척 빠르게 뛰고 있었다. 로벨리아도 놀랄 정도로.

16549691038324.jpg‘고작 나랑 포옹한 것만으로도 심장이 이렇게 빠르게 뛰는 거야?’

로벨리아는 조심스레 상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그녀의 온기와 감촉에 집중하려는 듯이. 이 따스함을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 주저하던 로벨리아는 이윽고 손을 뻗었다. 그녀의 팔이 목을 휘감아오는 것만으로도 알렉산드로스는 평정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와 이런저런 일을 겪긴 했지만, 그녀가 먼저 접촉해오는 것은 완전히 처음이었으므로. 비록 이것이 연습일 뿐이라고 할지라도. 이윽고 몸과 몸이 겹치고, 그녀의 가녀린 육체의 나긋나긋한 감촉과 다정한 체온이 느껴지자……. 알렉산드로스는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새하얗게 빛나는 무언가가 눈 앞을 가렸다가, 곧 다시 시야가 돌아왔다. 로벨리아가 보지 못하는 그의 등 뒤, 뒷짐을 진 손에 꽈악 하고 힘이 들어갔다가 풀려나갔다.

16549691038306.jpg‘이거 큰일이군.’

그는 내심으로 생각했다.

16549691038306.jpg‘그저 그녀가 먼저 안겨 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자극적인데, 만일 나중에 후사라도 만들게 된다면 이성을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전신이 저릿해져 왔다. 이 소중한 시간을 단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몸을 조금 더, 느끼고 싶었다. 뒷짐을 진 이 손을 풀고, 여린 등을 끌어안고 입술을 탐하고 싶었다.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은 욕망과,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은 욕망이 강렬하게 충돌했다. 하지만…….

16549691038306.jpg‘알고 있다. 그녀가 내게 안겨 오는 이 순간이 나에게 있어 어느 정도로 큰 행운인지.’

당연히 알 수밖에 없었다. 한 달 동안 그녀가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로서는. 그녀의 부재를 견디던 그때를 생각하면, 그녀가 살아 돌아온 데다가 이렇게 안겨 와주기까지 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실감 할 수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 기적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 무슨 일이 있어도 움켜쥐고 싶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욕망 정도는 얼마든지 억누를 수 있었다.

16549691038306.jpg‘로벨리아에게는 이 정도도 익숙하지 않겠지. 아마 이것만으로도 그녀의 최선일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생각했다.

16549691038306.jpg‘그런 그녀에게 부담감을 주어서는 안 돼.’

그것은 그녀를 위한 일이면서도, 사실은 그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그녀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아야만 오래오래, 언제까지나 그녀의 곁에 있을 수 있을 테니까. 그 사실을 그녀가 없는 한 달간 알렉산드로스는 너무나 여실히 느낀 것이다. *** 알렉산드로스가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고, 어떤 생각을 하며 그 욕망을 참아내는지는 꿈에도 모른 채 로벨리아는 그의 심장 박동에 신경을 집중했다. 처음에는 멀게 느껴졌던 그의 심장은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더더욱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 빠르고 강렬한 움직임은 로벨리아의 심장마저 더더욱 박차를 가하게 했다. 그 강렬한 박동을 느낀 로벨리아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이 포옹을 얼마나 기쁘게 여기고 있는지. 그가 그녀에게 어느 정도로 진심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로벨리아가 생각하기에 그녀는 그에게 잘해준 적도 없었다. 과거 그를 대했을 때를 생각하면, 이혼당하겠답시고 그를 험하게 대했던 일들만이 떠올랐다.

16549691038324.jpg‘그런데 대체 왜……. 나를 이토록 좋아하는 걸까.’

로벨리아는 생각했다.

16549691038324.jpg‘내가 죽은 줄 알았던 한 달 동안 그렇게 슬퍼했을 만큼이나.’

그때의 생각을 하면 여전히 가슴이 아파 왔다. 원작에서도 단 한 순간도 멀끔함과 여유를 잃지 않았던 그의 그렇게나 비참한 모습이라니. 그를 싫어했던 때의 일도 떠올랐다. 로벨리아 자신을 포함해 모든 사람을 장기 말로 보는 듯한 오만한 모습. 호인의 가면 아래에 감춰져 있던 냉혹함.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이 다정한 남자와 같은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16549691038324.jpg‘이 사람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계속 변화해 왔구나. 내가 죽은 줄 알았을 때도, 그리고 지금도…….’

그리고 그의 변화는 전부, 그녀로 인한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로벨리아는 뱃속이 크게 울렁이는 것을 느꼈다. 싫지는 않은 기분이었다. 그가 그녀로 인해 변한다니. 그것도 좋은 쪽으로.

16549691038324.jpg‘그래, 분명 좋은 일이지. 그렇지만…….’

로벨리아는 한숨을 삼켰다.

16549691038324.jpg‘계속 이 남자의 곁에 있어도 되는 걸까? 내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내가 꿈꿔왔던 삶은 이제 포기해야 하는 걸까?’

그런 고민거리들이 두근거림에 뒤섞여 흘러갔다. 그의 심장 박동은 마치 자장가처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데가 있었다. 로벨리아는 고민거리는 잊고 그의 그 다정한 박동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 로벨리아가 돌아온 것을 궁내의 모두가 기뻐했다. 그녀의 시녀들은 물론이고, 그녀를 지지하고 존경하던 궁인들 역시 기뻐하길 마지않았다. 그러나 단 한 명, 그녀의 귀환을 기쁘게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아이샤였다.

16549691094462.jpg“황비 전하! 황비 전하! 제발 문 좀 열어주세요.”

16549691094462.jpg“몸이 상하시겠어요. 그래도 식사는 하셔야지요!”

시녀들의 말도 듣지 않고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그녀는 완전히 겁을 먹었다. 아이샤는 방에 틀어박혀 그 누구도 만나려 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만나러 직접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바로 대신관이었다.

16549691122085.jpg“대, 대신관님. 여긴 어떻게…….”

16549691122089.jpg“시녀들이 나서서 절 찾아오더군요. 황비 전하께서 식사도 마다하시고 두문불출하고 계신다고.”

대신관은 한심하다는 듯한 얼굴로 아이샤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침대에 앉은 채 창백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몇 날 며칠 동안 씻지도 않은 듯 꾀죄죄한 꼴이었다.

16549691122089.jpg“황후도, 황제도 암살자를 보낸 게 우리라는 사실은 모를 겁니다. 증거라곤 조금도 남겨놓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대체 왜 이렇게까지 겁을 먹고 계시는 겁니까?”

16549691122085.jpg“그, 그게……. 저, 저는…….”

16549691122089.jpg“아니면 설마…….”

대신관의 눈이 냉혹한 빛을 띠었다.

16549691122089.jpg“설마, 황제와 해서는 안 될 대화라도 하셨나요?”

16549691122085.jpg“…….”

주저하던 아이샤는 결국 모든 것을 실토했다. 알렉산드로스가 로벨리아 암살사건의 범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눈치챘다는 사실. 그와 나누었던 대화. 그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일…….

16549691122085.jpg“저…… 저는 이제 어떻게 하죠? 범인이 저라는 걸 알렉산드로스가 알았으니, 언제 절 죽이겠다고 할지 몰라요. 게다가 로벨리아가 죽은 것도 아니었다니, 전 이제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너무 무서워요, 대신관님. 전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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