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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황후 폐하를 지켜라! (62/151)

62. 황후 폐하를 지켜라!2021.08.05.

이번에는 대체 어떤 기사일지 나 역시도 궁금했기 때문에, 나는 곧바로 그녀들이 주는 신문을 받아들었다.

16549685181023.jpg“위클리 오피니언 단독 기사, 익명의 장기 후원자의 정체는 황후?”

나는 헤드라인에 쓰인 가장 큰 글씨를 소리 내 읽었다.

16549685181023.jpg“보육원, 도서관, 빈민 구호소에 오랜 시간 거액의 후원을 해온 익명 후원자의 정체가 비로소 밝혀졌다. 신뢰할만한 정보 제공자에 따르면 그 정체는 바로 황후 로벨리아 카스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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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편 국무회의실에서는 이날의 뉴스 기사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었다.

16549685181035.jpg“황후 폐하께서 그동안 몰래 운용하신 예산이 어마어마합니다. 이제껏 쓰셨던 예산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16549685181035.jpg“이건 말이 안 됩니다. 고작 평민들을 위해서 국고를 그만큼이나 쓰시다니요!”

16549685181035.jpg“이렇게 무의미한 일에 이 정도의 돈을 쓰는 일을 전 본 적이 없습니다!”

대신들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로벨리아를 비판했다.

16549685181035.jpg“보육원, 도서관, 빈민 구호소라니요! 평민들에게 도서관이 대체 왜 필요합니까? 어차피 글도 읽을 줄 모를 텐데요!”

16549685181035.jpg“게을러서 가난한 거지들에게 돈을 쓸 바에는 차라리 그 돈을 불쏘시개로 쓰는 편이 낫겠습니다!”

16549685181035.jpg“이럴 바엔 차라리 드레스에 국방 예산의 0.02%를 투자하셨던 때가 더 나았습니다. 그래도 의복을 구매하는 것은 품위유지라도 되지 않습니까?”

온갖 이유를 들어 로벨리아를 강하게 비난하던 대신들 중, 누군가가 이런 말을 꺼냈다.

16549685181035.jpg“진지하게 제안드리는 바입니다만, 이번 의제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황후를 폐하는 것에 대한 안건이 국무회의에 올라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봅니다.”

16549685181035.jpg“그렇습니다! 이번에야말로 황후를 폐하는 것에 대해 논의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16549685181035.jpg“이런 거액의 예산을 쓸데없는 곳에 그것도 익명으로 사용하시다니, 이건 황후 폐하께서도 문제시될 것을 아셨기 때문일 겁니다.”

언제나 예산이 어떻고, 외교 대응이 어떻다는 문제에 대해 파벌로 갈라져 싸워대던 대신들은 드물게도 한마음 한뜻으로 일치단결했다. 그들은 국무회의가 시작되자마자 황후를 폐하는 안을 당장 꺼내 들 것처럼 열정적으로 떠들어댔다. 그런데 그때였다.

16549685208191.jpg“이게 웬일이지? 오늘따라 본 회의 전부터 모두가 열성적이로군.”

국무회의장에 마지막 회의 참가자가 나타났다. 그는 바로 알렉산드로스였다.

16549685208195.jpg“헉, 폐하!”

좀 전만 해도 신나게 혀를 놀리며 로벨리아를 비난하던 대신들은 알렉산드로스의 얼굴을 보자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입을 다물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비서관이 주는 자료를 확인하며 빙긋 웃었다.

16549685208191.jpg“왜들 그러지? 분명 내가 들어오기 전에는 다들 열성적으로 떠들어대더니, 갑자기 쥐죽은 듯 조용해졌군.”

16549685208195.jpg“…….”

16549685208191.jpg“이제 곧 본회의가 시작될 텐데 할 말이 있으면 해야지. 하고 싶은 말을 참으면 쓰나.”

무언가 아는 듯, 모르는 듯, 어쩐지 위협적인 얼굴로 알렉산드로스는 미소 지었다.

16549685208191.jpg“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무엇이든 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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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달 전 드레이프 백작의 일도 있었는데,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만큼 눈치 없는 사람이 이 자리에 있을 턱이 없었다. 그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어떤 말이든 해도 좋다.’라는 말은 곧 ‘그 말을 하는 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죽을 것이다.’라는 뜻과 마찬가지였다.

16549685208195.jpg“…….”

로벨리아에 대해 마구 트집을 잡고 비판해댔지만 사실 이 자리의 모든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가 로벨리아에게 얼마나 지극정성이며, 그녀와 관련된 일이라면 얼마나 피도 눈물도 없어지는지.

16549685208191.jpg“대표로 말할 자가 없나? 아무도?”

알렉산드로스는 회의 참가자들에게 하나하나 시선을 주었다. 웃고 있지만 매섭기 짝이 없는 그의 시선이 닿을 때마다 대신들은 화들짝 놀라며 몸을 떨었다. 그렇게 마지막 한 사람에게까지 시선을 준 다음, 알렉산드로스는 예의 그 미소를 띈 채 이렇게 말했다.

16549685208191.jpg“아무도 없다면, 이만 본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지.”

16549685181035.jpg“본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행여 자신에게 불똥이라도 떨어질까 긴장하고 있던 대신들은 십 년 감수한 듯 한숨을 쉬었다. 황후의 마음에 안 드는 행동에 대해 험담을 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목숨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되새기면서. *** 한편 이번 일이 화제가 된 곳은 국무회의장뿐만이 아니었다. 사교계의 호사가들도 이번 일에 대해 흥미를 감추지 않았다.

16549685181035.jpg“또 황후 폐하인가요?”

16549685181035.jpg“황후 폐하는 정말 못 말리는 이슈 메이커이시군요. 언제나 우리를 놀랍게 만드시니까요.”

사교계에는 항상 사건사고를 몰고 다니는 로벨리아를 정숙지 않다며 안 좋게 보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집단도 있었다. 실로 의외의 집단이 로벨리아를 비호하고 있었다.

16549685181035.jpg“모두들 황후 폐하에 관한 이번 기사를 보았어요?”

16549685181035.jpg“그럼요. 저는 기사를 스크랩해두기까지 했답니다.”

16549685181035.jpg“저는 이번 기사가 난 위클리 오피니언을 50부 구매했답니다. 독서용, 스크랩용, 소장용, 보관용, 배포용으로 말이죠.”

그것은 바로 십 대의 어린 영애들이었다.

16549685181035.jpg“황후 폐하께서는 어쩜 이렇게 멋있으실까요?”

16549685181035.jpg“지난주에 평민 소녀를 희롱하는 남작의 뺨을 치고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었다는 소문을 들으셨나요?”

16549685181035.jpg“황후 폐하는 정말 당당하고 근사하세요. 당신의 취향과 가치관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으시죠. 저도 꼭 그런 멋진 여성이 되고 싶어요.”

16549685181035.jpg“황실 기사단보다도 황후 폐하께서 훨씬 멋있으세요.”

사교계에서 보수적인 사람일수록 로벨리아의 엉뚱한 행적들을 아니꼽게 여겼지만, 반대로 어린 영애들은 그녀를 동경하고 지지했다. 심지어 십 대 영애들만이 모인 팬클럽도 존재했는데, 그 규모는 결코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다.

16549685181035.jpg“아, 황후 폐하! 그분과 단둘이 대화를 나누어볼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겠어요.”

16549685181035.jpg“저는 황후 폐하와 눈이 마주치기만 해도 행복할 것 같아요.”

16549685181035.jpg“저희 아버지께 앞으로 국무회의에서 무조건 황후 폐하를 지지해달라고 말씀드렸어요. 저희 아버지는 저를 무척 아끼시기 때문에 분명 제 부탁을 들어주실 거예요.”

그렇게 로벨리아의 팬클럽의 회원 수는 나날이 늘어만 가고 있었다. *** 로벨리아의 멋진 행적을 널리 알리는 데 주저함이 없는 팬클럽의 활동 덕일까, 어느샌가 그녀의 행적은 평민들 사이에도 퍼져나갔다.

16549685181035.jpg“뭐라고, 그동안 빈민 구호소 등에 거액의 후원을 한 익명 후원자가 황후 폐하였다고?”

워낙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곳에 큰돈을 썼기 때문에 그 덕을 본 평민들이 꽤 있었다.

16549685181035.jpg“우리 집이 찢어지게 가난한데도 첫째를 아카데미에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도서관 덕이었는데, 그것이 다 황후 폐하의 은총이었다니!”

16549685181035.jpg“우리 사촌도 작년에 수재를 겪고 한동안 피난소에서 살았는데, 후원자 덕에 상당히 지낼 만 했다지 뭔가. 그런데 그 후원자가 바로 황후 폐하이셨다니!”

16549685181035.jpg“우리 삼촌이 운영하는 노인정 역시 익명의 후원자 덕에 폐업을 면했지. 정말 훌륭하신 분이야!”

귀족들과 달리 평민들로서는 자신들의 일이었기에 로벨리아의 후원을 좋게 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제껏 그런 귀족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더욱 감동을 했다.

16549685181035.jpg“귀족 나리들은 우리 같은 천것들에게는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16549685181035.jpg“그렇지, 허영심에 찌들어서 자기들끼리 사치나 부릴 줄만 알지 우리들에게는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지.”

16549685181035.jpg“사실 실제로 대부분의 귀족들이 그렇지 않나.”

16549685181035.jpg“하나 황후 폐하는 달라! 진심으로 우리 백성들을 위하시는 분이야!”

로벨리아도 모르는 새에 수도의 평민들 사이에서 그녀에 대한 여론은 하늘 높은 줄 오르고 치솟고 있었다.

16549685181035.jpg“제국 역사상 가장 훌륭하신 황후! 로벨리아 황후 폐하 만세!”

16549685181035.jpg“영원히 우리들의 황후로 남아주소서!”

이러한 여론 변화의 영향은 로벨리아의 눈앞에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그저 거리를 구경하기 위해 시내에 나왔을 뿐인데 그녀를 알아본 평민들이 절을 줄줄이 절을 올리는 일도 있었다.

16549685181023.jpg‘사람들이 황실을 이렇게나 좋아하다니. 원래 황족의 삶은 다 이런 건가?’

영문을 몰랐던 로벨리아는 적당히 그런 식으로 생각해 넘겼다. 하지만, 도저히 그렇게 넘길 수 없는 일도 생겨났다.

16549685181035.jpg“여보게들! 그 소식 들었나? 글쎄, 국무회의에 황후 폐하를 폐하는 안건이 올라갔다는 소식일세!”

16549685181035.jpg“뭐라고? 이유가 대체 뭔가?”

16549685181035.jpg“우리 같은 평민들에게 지나친 예산을 썼다는 이유일세.”

16549685181035.jpg“이게 말이나 되나? 우리 같은 천것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시는 분은 황후 폐하밖에 없어!”

16549685181035.jpg“황후 폐하께서 폐위당하시면 정말 큰 일이지. 우리의 삶도 더 어려워질 거야. 그러니 황후 폐하의 폐위만은 반드시 막아야만 해!”

16549685181035.jpg“옳소, 옳소!”

실제로는 그런 안건을 올리자는 말만 나왔을 뿐 정말로 안건이 올라간 적은 없지만, 원래 약간의 사실이 섞인 거짓이 제일 무서운 법이다. 그러한 소문이 퍼졌을 때 백성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심지어는 황궁의 앞에서 수백 명의 평민들이 모여 황후의 폐위를 반대하는 시위까지 일어났을 정도이니까.

16549685181035.jpg“황후 폐하의 폐위에 반대한다!”

16549685181035.jpg“황후 폐하를 지켜라!”

16549685181035.jpg“로벨리아 폐하만이 우리의 영원한 황후다! 황후 폐하 만세!”

언제나처럼 궁 내 정원을 거닐다가 그 모습을 보게 된 로벨리아는…… 그야말로 고혈압으로 넘어갈 뻔했다. 한편, 이러한 여론을 기껍게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바로 알렉산드로스였다.

16549685208191.jpg“동방의 옛 격언 중에서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이 있지. 이 여론을 강화하기 위해 생각해둔 방법이 있다.”

16549685316479.jpg“그것이 무엇입니까, 폐하?”

16549685208191.jpg“이 서류를 받아라, 비서관.”

알렉산드로스는 비서관 로버트에게 두꺼운 두께의 서류뭉치를 건넸다.

16549685208191.jpg“나는 제국 역사상 최초의 황립 빈민구제기금을 설립하려고 한다.”

알렉산드로스가 여유롭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16549685208191.jpg“익명으로 다양한 후원 활동을 할 정도로 백성들을 생각하는 황후의 어진 마음을 기리기 위해, 그 이름은 ‘로열 로벨린 기금’으로 하도록 하지.”

16549685316479.jpg“하지만…… 괜찮으시겠습니까? 황후 폐하의 이름으로 기금을 설립하면 황후 폐하께서 반발하실 가능성도 있을 텐데요.”

비서관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는 고개를 저었다.

16549685208191.jpg“아니. 난 그녀에 대해서 안다. 그녀는 특이할 정도로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사람이지. 일반적으로 권력에 약한 귀족들과는 완전히 다른 행동 양식이야.”

16549685316479.jpg“…….”

16549685208191.jpg“그런 그녀가 빈민구제기금을 설립한다는데 반대할 리가 없다. 이름은 다소 신경 쓰여 할 수도 있지만, 기금 설립이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 잘 설명하면 그녀도 결국 받아들일 것이다.”

16549685208191.jpg‘또한 약한 자들을 상대로 마음이 여린 그녀의 성격상, 백성들이 그녀를 황후로 섬긴다면 더더욱 이혼을 선택하기 어려워지겠지.’

알렉산드로스는 이어지는 속내를 목 뒤로 삼켰다.

16549685208191.jpg‘이번 일로 그녀의 황후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다지고 내 곁을 떠나지 못하도록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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