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 황비 전하의 선한 마음을 믿었는데 (49/151)

49. 황비 전하의 선한 마음을 믿었는데2021.06.20.

첫 곡이 끝났다. 손님들은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16549682900582.jpg“앙코르! 앙코르!”

16549682900588.jpg“정말 감사합니다.”

아이샤는 사랑스럽게 웃으며 계산된 각도로 옆머리를 뒤로 넘겼다. 아니나 다를까 젊은 귀족 청년 몇 명이 그 모습에 얼굴을 붉혔다.

16549682900588.jpg“다음 곡은 바이에른 협주곡 제7번, ‘가면’입니다.”

16549682900601.jpg“어머, 바이에른 협주곡이라니…….”

16549682900601.jpg“그 난이도 높은 곡을.”

귀족들에게 있어 클래식은 기본교양이었기 때문에 아이샤가 어떤 곡을 연주하려고 하는지 모두가 빠르게 이해했다.

16549682900588.jpg“‘가면’은 협주곡이기 때문에 반주를 사용하겠습니다.”

아이샤는 하녀들을 향해 눈짓했다. 곧, 하녀들이 거대한 축음기를 가지고 나왔다. 하녀들이 sp판 위에 바늘을 올렸다. 마력으로 작동하는 축음기의 태엽이 돌아가고, 나팔관에서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16549682900588.jpg‘「가면」은 협주곡이기는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피아노가 돋보이는 곡이지.’

아이샤는 호흡을 조절하고 다시 건반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16549682900588.jpg‘좋아, 이 정도면 분명히 모두의 머릿속에 각인 될 거야. 피아노를 연주하는 나의 모습이.’

그런데……. 「직, 지지직…….」 분명 미리 준비해두었던 반주가 흘러나와야 할 축음기의 나팔관에서…….

16549682900588.jpg「제 말, 무슨 뜻인지 이해하셨죠?」

이상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16549682900601.jpg「무, 물론입니다, 황비 전하. 하지만…… 약간 걱정이 됩니다. 황후 폐하에 대한 소문을 퍼뜨리는 것을 발각당해 해로 돌아오면 어떻게 하지요?」

16549682900588.jpg「소문을 퍼뜨리다니요? 공작부인, 그렇게 말씀하시면 꼭 제가 유언비어라도 퍼뜨리는 것 같잖아요. 이것은 유언비어 따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실인걸요.」

16549682900601.jpg「그, 그야 그렇지만…… 아무래도 황후 폐하의 명성에 직접적으로 손상을 입힐 수 있는 것이다 보니…….」

  잡음이 들어갔나 하고 의아해하며 귀를 기울이던 아이샤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16549682900601.jpg“이게 뭔 내용이야?”

16549682900601.jpg“황비 전하의 목소리 같은데…….”

16549682900601.jpg“다른 한 명은 셀리먼 공작부인인가?”

손님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이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16549682900588.jpg“뭐 하는 거야? 빨리 꺼!”

시녀들은 축음기로 달려가 당장 재생을 멈추려고 했다. 하지만…….  

16549682900588.jpg「가엾은 셀리먼 공작부인.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황후 폐하께서 서른 명의 노예를 궁에 들이셨다는 사실은 신문에도 나왔던 내용이라고요. 모두가 잊고 있는 사실을 다시 상기시켜주는 것뿐이에요.」

16549682900601.jpg「그, 그렇지만……. 저는 역시 발각될까 봐 걱정이,」

16549682900588.jpg「말이란 발이 달려서 스스로 움직이죠. 널리 퍼진 소문의 근원지를 캐어내는 것은 마탑의 대현자라도 불가능할 거예요.」

16549682900588.jpg“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끄라고 했잖아!”

아이샤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16549682900601.jpg“끄, 끄려고 하고 있는데요…….”

16549682900601.jpg“이, 이게 왜 이러지?”

하지만 시녀들이 아무리 재생을 멈추려고 해도 이 정체불명의 음향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마력의 출력을 차단해도, 턴테이블을 정지시켜도, 심지어 바늘을 떼어내고 sp판을 꺼내도…… 이 소리는 도저히 멈추지 않았다.  

16549682900601.jpg「그렇다면…… 알겠습니다, 황비 전하.」

16549682900588.jpg「저는 셀리먼 공작부인의 뛰어난 인망과 영향력을 믿어요. 이번 일에 큰 도움을 주실 거라는 사실도요.」

  조급한 마음에 아이샤는 거의 이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청소 용구함에서 대걸레를 꺼냈다. 그리고 대걸레 자루로 축음기를 내리쳤다. 쾅! 콰직, 와드드득! 황궁 소유의 값비싸며 섬세한 마도구가 엉망으로 부서지기 시작했다.  

16549682900588.jpg「이건 조작이 아니에요, 공작부인. 그저 공론화일 뿐이죠. 황후 폐하께서 어떤 비행을 저지르고 계신지, 국민에게는 알 권리가 있으니까요…….」

  축음기는 완전히 박살나 산산조각이 난 후에야 재생을 멈췄다. 아이샤는 헉헉 숨을 몰아쉬며 박살난 축음기를 내려다보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손에는 손때가 잔뜩 묻고 지저분한 대걸레 자루가 들려 있었다.

16549682900588.jpg“엄마야!”

아이샤는 기겁하며 그것을 손에서 놓았다. 땡그랑 하는 큰소리를 내며 대걸레 자루가 대리석 바닥 위로 쓰러졌다. 잠시 동안 아무도 말이 없었다. 파티장에는 고요한 적막만이 흘러넘쳤다. 여기 있는 모두가 지금 일어난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16549682900588.jpg“이, 이게 대체 무슨…….”

아이샤는 창백한 얼굴로 입술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의 시선은 불안정하게 허공을 떠돌았다. 절망과 두려움, 비참함. 전신을 뒤흔드는 듯 강렬한 그 감정들 속에서 그녀는 반쯤 이성을 잃고 말았다.

16549682900588.jpg“조, 조작이에요! 여러분, 알고 계시죠? 제가 황후 폐하에 대한 여론을 일부러 조성할 리 없다는 것…….”

16549682900582.jpg“…….”

16549682900588.jpg“아시잖아요. 전 이세계에서 온 지 아직 1년밖에 되지 않았고……. 제국에 대해선 잘 알지도 못하고……. 그, 그런 제가 이, 이렇게 비열한 짓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16549682900582.jpg“…….”

16549682900588.jpg“그, 그렇죠?”

아이샤는 간절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모두가 그녀의 시선을 피할 뿐, 섣불리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주지 않았다. 그때였다.

16549682963322.jpg“‘1년밖에’가 아니죠. ‘1년이나’가 아닙니까.”

묵직한 목소리가 장내를 울렸다.

16549682963322.jpg“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하시다니. 그런 부끄러운 말씀을 잘도 하십니다.”

모두의 시선이 모인 곳에는 장신의 미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바로…… 노먼 슈워츠코프 공작이었다.

16549682963322.jpg“결국 황비로서 짊어져야 할 의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해 오셨다는 것 아닙니까?”

그의 귀신처럼 붉은 눈동자는 서늘한 빛으로 아이샤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냉정한 눈을 본 아이샤는 숨이 넘어갈 듯이 놀랐다.

16549682900588.jpg“슈, 슈워츠코프 공작님…….”

그럴 수밖에는 없었다. 그는 비록 자기 고집이 세긴 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아이샤를 위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가 아이샤에게 헌신하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었다. 슈워츠코프 공작령은 제국 최북단의 변경으로 마물이 가득한 곳이었다. 슈워츠코프 공작가의 사람들은 공작령을 거의 벗어나지 않아, 사교 시즌에 수도에 내려오는 일도 드물었다. 이러한 슈워츠코프 공작가에 대해서는 소문만이 무성할 뿐이었다. 그중에서는 ‘공작가의 사람들은 마물들과 함께 살다 보니 마물과 동화되어 반인반마의 괴물이다.’라든가, 심지어는 ‘공작가의 사람들은 마물의 혈통이다, 마물의 피가 옅어지지 않게끔 몰래 마물과 교접하여 혼혈아를 낳는다.’라는 소문마저 있었다. 그런 와중 어느 날, 선대 공작이 17년 만에 외아들을 데리고 수도에 왔다. 아무런 예고도 없는 갑작스러운 일이었기에 사람들은 갑자기 소문 속의 주인공들과 대면하게 되었다. 그렇게 실제로 만난 선대 공작은 냉혈하다 못해 인간을 혐오하는 괴짜였으며, 공작의 아들은 제국에서도 극히 희귀한 은발에 붉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슈워츠코프 공자에 대해 사람들은 입을 모아 떠들어댔다. 그는 ‘반인반마의 괴물’이며, 그의 모친은 마물임이 분명하다고. 그러한 소문은 이제까지 끝나지 않은 것이다. 선대 공작이 죽고 노먼 슈워츠코프가 작위를 물려받아 ‘괴물 공작’이라는 별명을 얻은 지금까지. 이제껏 노먼은 늘 혼자 지냈다. 어떤 이유에선지 사교 시즌마다 수도에 내려왔지만 사교행사에 참가하는 일도 없이 사람과의 접촉은 최소화했다. 그런 노먼이 난생처음으로 누군가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바로 아이샤였다. 그가 아이샤를 잘 따르게 되자 ‘괴물조차 길들인 성녀’라며 아이샤를 칭송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이샤 역시 그를 기꺼워했다. 그는 제국 내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자산가였으며, 이색적인 머리색과 눈색을 제외하고 보면 굉장한 미남자였다. 더군다나 그를 가까이하는 것만으로도 주변이 자신을 칭송하고 여론이 좋아졌으니 아이샤가 그를 마다할 리가 없었다. 이제껏 노먼은 자신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으며,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남들은 무섭다고 말하는 그 붉은 눈에 어린 호의적인 미소를 보는 것은 그녀의 큰 즐거움 중 하나였다. 그랬는데 오늘, 그 붉은 눈에 담겨 있는 것은 호의적인 감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명백한 적개심과 분노였다.

16549682900588.jpg“고, 공작님. 왜 그러세요. 저를 못 믿으시는 거예요? 공작님은 저를 잘 아시잖아요. 제가 저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16549682963322.jpg“물론 황비 전하를, 전하의 선한 마음을 믿었습니다. 바로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말입니다.”

노먼은 볼품없이 박살난 축음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16549682963322.jpg“하지만 저것은 황실에서 독점하고 있는 특수 마도구로 음원의 조작이 결코 불가능합니다. 국방 보안과 범죄 수사를 위해 개발한 물건이니 당연한 일입니다.”

아이샤는 도저히 반박할 수 없었다. 국방과 수사라니, 그런 분야에는 평소 관심이 없었으니 아는 것 역시 없었다.

16549682900588.jpg“그…… 그런, 그렇다는 건…… 공작님께서는…….”

아이샤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했다. 그것은 바로 눈물이었다.

16549682900588.jpg“공작님께서는…… 저를 믿지 않으신다는 건가요? 제가 황후 폐하께 피해를 주는 여론을 조작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녀의 하얀 얼굴 위로 투명한 눈물이 아룽대며 뚝뚝 떨어졌다. 아이샤는 알고 있었다. 노먼은 자신의 눈물에 약했다. 원래 이곳의 남자들은 숙녀의 눈물에 약하긴 했지만 그의 경우는 특히 더했다. 몇 달 전 언젠가 불량배를 마주쳤을 때 자신이 눈물을 글썽이는 것만으로도 분노한 그가 불량배들을 단칼에 처단해버렸던 것을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틀림없이 마음이 약해진 그는 누그러진 반응을 보일 것이다. 새하얀 속눈썹이 촘촘히 박힌 그 눈꼬리를 어쩔 수 없이 휘고 말 것이라고, 아이샤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16549682963322.jpg“유감이지만, 예. 그렇습니다.”

그녀를 보는 상대의 얼굴은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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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9682963322.jpg“저도 결코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저는 이제껏 황비 전하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쳐 왔지만, 현실을 부정하고 전하를 감싸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달랐다. 이제껏 그녀에게 말할 때의 단단하지만 진심 어린 온기가 어려있던 목소리보다는 차라리…….

16549682900588.jpg‘지난번 셀리먼 공작부인의 티파티에서 다른 귀부인들에게 말하던 목소리와 닮았어.’

그 충격적인 사실에 아이샤는 숨이 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16549682963322.jpg“파티의 분위기를 망쳐서 죄송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마치 완전한 타인에게 말하듯 건조한 그 목소리와 함께, 노먼은 티파티에서 그랬듯 등을 돌렸다. 많은 사람들이 숨도 쉬지 못하고 그의 떠나는 등을 지켜보았다. 아이샤는 차마 그쪽으로 눈을 돌릴 수조차 없었다. 머리가 멍해지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현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16549682900588.jpg‘대체 누구야? 마도구의 sp판을 바꿔치기한 게?’

아이샤는 답이 나오지 않는 의문을 되뇌었다.

16549682900588.jpg‘대체 누가, 어떤 의도로 나를 이렇게까지 괴롭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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